버리고 떠날 때인데
이월 셋째 목요일을 맞았다. 여느 학교에서나 봄방학 기간이지만 학교 문화가 예전과 달라지는 풍경이다. 삼월을 앞둔 ‘새 학년 맞이 교원 워크숍’이 그것이다. 신학기에 부임해 가는 전입교사를 포함해 학교 구성원들이 새 학년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길게는 사흘이 잡힌 학교가 있고 하루나 이틀로도 끝내기도 한다. 내가 옮겨가는 학교는 내일 하루 일정이 잡혀 출장을 신청했다.
며칠 전 예전 같은 학교 근무했던 동료가 안부 전화가 왔다. 신학기 내가 옮겨가는 학교에 자기네 학교에서도 국어과 여교사가 그곳으로 간다고 전해주었다. 내가 가는 거제 이웃 학교엔 외롭지 않게 같은 국어과로 창원 시내와 김해 장유 사는 친구 둘이 가게 되었다. 창원 친구는 시내 집은 전세를 내주고 그곳에 이사를 가고, 장유 친구는 나처럼 원룸에서 지내기로 마음을 정했단다.
창원 친구는 내가 젊은 날 삼랑진 근무시절 이웃에 살아 잘 안다. 서로는 신혼 때라 아내끼리도 잘 어울려 지냈다. 우리는 여름방학이면 예비군교육도 같이 받고 가끔 주탁에 마주 않아 세상사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장유 친구는 그가 창원 살 때 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 원주민 격이다. 내가 뒤늦게 합류하니 한동안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엘리베이트를 사용하고 층수만 달랐다.
이렇게 인연이 닿은 동료가 정년을 앞두고 거제 이웃 학교 근무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각별한 생각이 든다. 인사이동 발표 이후 아직 한 자리 만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앞으로 자연스레 자리를 같이 하게 될 것이다. 장유 친구는 한 자리 오래 있었더니 인생이 나그네란 사실을 모르다가 이번에 깨달게 되었다나. 창원 친구는 거제가 섬이라고 시도 간 교류로 임지로 간다고 빗대었다.
새벽녘 일어나 약차를 달여 놓고 산행을 나서려니 머뭇거려졌다. 내일 걸음은 그렇다 치고 주말이면 그곳서 지낼 짐을 원룸으로 옮겨둘 예정이다. 이삿짐센터를 부를 정도가 아닌지라 어떻게 간편히 해결하려 한다. 벤을 불러 나르기도 그렇고 해서 시내에 사는 친구가 도와주기로 했다. 초등학교 관리자가 되어 거제 사택에 살다가 뭍으로 건너온 대학 동기가 한 걸음 해주기로 했다.
그새 나는 틈틈이 소소한 세간(?)을 사 모았다. 슬리퍼와 욕실 실내화까지 한 켤레씩 더 있어야 했다. 압력솥까지는 아니라도 소형 전기밥솥이 필요했고 전기다리미도 마찬가지다. 반송시장을 지나다 다용도 다과상도 하나 마련해 놓았다. 밥상과 함께 서안으로 책상을 겸할 용도였다. 이런 것들이 출퇴근 가능한 근무지면 전혀 필요하지 않는지라 일상에서 많은 변화가 오게 된다.
그곳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기에 집에서 쓰고 있는 주방기기들도 챙겨가야 할 처지다. 점심은 학교에서 학생들과 급식이 되지 싶다. 어쩌면 저녁까지 학교 급식소에서 매식이 가능하길 바란다.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면 나도 그 틈새 끼면 저녁밥은 해결된다. 문제는 아침밥이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활동하기에 아침밥을 거를 수 없는지라 혼자서 어떻게든 때워야할 형편이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기는 가운데 컴퓨터로 고심이 된다. 이참에 노트북을 사야 되지 싶다. 근무지 학교에서는 업무용 컴퓨터가 배정되기에 상관이 없다. 내가 사는 창원 집에서도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로 뉴스 검색이나 메일을 주고받는다. 나한테 컴퓨터는 이런 용도보다 글쓰기 워드작업이 따른다. 언제부터인가 몇 줄 메모정도는 몰라도 펜으로 원고를 작성하기는 어색해졌다.
아직 봄방학이라 시간 여유는 있으나 산행이나 산책을 나서질 못하고 집안서 맴돌며 서성이고 있다. 주말에 옮겨갈 물건들의 목록을 살피고 있다. 트럭이 아닌 친구 승용차 트렁크에다 싣고 갈 짐짝들이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 챙겨도 소소하게 자꾸 늘어가는 듯하다. 이즈음이면 이제 버리고 떠날 채비를 해야 할 때인데, 새삼스레 무엇을 그리 더 모아야하는지 부끄럽기만 하다. 19.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