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밭에 서면 눈이 시리다/ 박수원 시인

[박수원]

                < 파밭에 서면 눈이 시리다 >

                                                                   박수원

지금, 파밭에 서면

올곧게 뻗은 일렬종대의 시위가 한창이다

무처럼 진득하게 허리 파묻지 못하고 

혹시라도 제풀에 넘어질세라 독기 품은 그 파밭을 기세 좋게 내치던 바람도

그만 눈이 시려 눕히지를 못하고 먼저들 갔다

빨리 자라라, 빨리 버티고 일어서라고

허리 굽은 우리 할매 미리 눕혀 심는 바람에

아예 서지도 못하고 그냥 누워 버려서 미리 바람이 져 버리고 먼저들 갔다

드디어 파 머리 동그라니 피어나고 가슴부터 불타오는 튼실한 날에

가지고 있는 손, 손마다 다들 뻗쳐 쳐두르는 바람에

그 무저항, 무언의 소리가 너무나 매워

바람이 최루탄 피해가듯 또 져 버리고 먼저들 갔다

황토밭 붉은 정만큼 시퍼렇게 독기 서린

파밭에 서면 지금, 파들은

저희들끼리 눈이 시려 눈물이 나고 바람도 결국은 눈물이 나서 눈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