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운 것이 불법(佛法)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자기 마음 바깥 것을 찾는 데 애를 쓰지만,
불법은 가장 가까운 자기 마음을 곧바로 보는 데 있다.
자기의 주인인 자기 마음 자체는 알 바 없이
바깥 경계에만 이끌려 미혹되는 모순을 떠나 먼저 지신의 마음을 바로 보는 데 있다.
모든 상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마음을 바로 보면,
곧 한 구절의 언하(言下)에 크게 깨닫는 것이다.
마치 밝은 해를 가린 검은 구름이 금방 없어지듯이,
모든 사물을 보고 듣고 그 가운데 곧 큰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큰 깨달음은 모양과 형체가 없다.
생사의 모든 상을 해탈한 불멸이며 모든 상대가 끊어진 본각성(本覺性)이다.
모든 상(相)이 다 나의 자성에서 창조되어 비로소 상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일체 상대가 다시 끊어진 나의 본래면목(크게 깨달은 本覺性)은
말과 모양으로 알거나 귀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다.
또 신통 방광을 내는 것도 나의 본래면목이 아니다.
옛날 구봉(九峰) 선사가 말하기를
“열반 때 향을 피워놓고 사리가 나와 방광 하는 신통이 있는 것도
조사의 공안을 대답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다.
과거 제불(諸佛)은 많은 법을 설할 때 주장자[公案 法門]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는 것도
언어 명상이 끊어진 대오(각자의 마음자리)를 보이는 뜻이다.
언어 명상 이전의 경계를 다시 무어라고 상이 붙으면 곧 법이 아니다.
법사의 주장자를 보지 말고 그 주장자를 보는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야
일체 상이 끊어진 마음의 본성을 보게 된다.
주장자의 색상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색상이 아닌 곳에 머물러서도 안 되고,
또한 부처(大悟)에도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한 물건도 머무는 것이 없는 것도 이미 상이 된다.
그러므로 나의 본래면목을 바로 보는 즉시 활연대오(豁然大悟)하여
색상 그대로가 곧 불법(佛法)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직 스스로 묵조(黙照)의 사선(死禪)을 끊어버리고
언하(言下)에 크게 깨닫는 활구선(活句禪)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큰 의심(話頭) 하나를 가져야 크게 깨치는 길이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두 수제자를 데리고
남방으로 만행(萬行) 도중 금비라성-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먹을 것이 없어 아난존자가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하려고 하였으나
불교를 모르는 곳이라 도리어 학대만 받고 그냥 돌아왔다.
그때 가섭존자가 다시 마을에 들어가 한 집을 찾아 주인을 물으니
아주 예쁜 처녀가 나와 천하의 미남 가섭존자를 보고 어찌 된 사정이냐고 물었다.
가섭존자가 말하기를 부처님을 모시고 남방으로 가던 중
먹을 것이 떨어져 귀댁을 찾아왔노라고 하였다.
그 처녀가 가섭존자에게 마음이 끌려 극진히 대우하고
백만장자의 쌀을 내놓고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가섭존자는 그 처녀의 시주 공덕을 찬양하며 후세에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
32상이 구족(具足)한 복과 사해(四海)를 다스릴 왕이 되라고
처녀에게 일러주고 부처님께 많은 시주를 알려 드렸다.
그때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이 많은 시주를 받고
그 처녀에게 무슨 보답을 해주고 왔느냐고 물었다.
가섭존자는 그 처녀에게 후세에 전륜성왕의 복을 받으라고 하였다고 하니,
부처님께서 노하면서 전륜성왕의 복은 복진 타락으로 다시 지옥고에 빠지게 되는 복이니
다시 가서 그 보답을 물리고 더 큰 보답을 하라고 하였다.
가섭존자는 다시 그 처녀를 찾아가
전륜성왕보다 더 큰 복을 줄 터이니 전륜성왕의 복은 도로 물리라고 하면서,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무근수일주(無根樹一株)를 찾기만 하면
전륜성왕의 복에 비할 수 없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큰 복을 받게 된다고
화두 하나를 일러주고 가섭존자는 온데간데없이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1968. 1. 28 - 전강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