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뚱은 프롤레타리아의 본성과 부르조아의 본성은 다르다는, 되지도 않는 말을 했다.
러시아 2월 혁명, 10월 혁명, 그리고 마오쩌뚱의 공산주의 혁명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 말한다.
그러나, 러시아 2 월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라기보다 1 차대전으로 굶주리던 여성노동자들의 시위였다. 10 혁명은 임시정부를 무너뜨린 볼세비키의 혁명이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의 볼세비키 레닌 마오쩌뚱을 비롯한 이후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전부 부르주아였다.
미셀 푸코에 의하면, 부르주아의 탄생은 흑사병으로 전 유럽의 인구 3분의 1이 사망하고 행정 공백을 채우기 위한 행정요원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이들은, 중세 절대 왕조의 도우미로서 지방 영주들의 세력을 막기 위한 중앙집권 왕의 도우미가 되었다.
무식한 지방 영주를 속이기 위한 지방 행정 문서는 전부 라틴어였다.
그렇게 탄생한 부르주아는 자신을 탄생시키고 도왔던 절대왕권을 배신하고 프랑스 혁명을 완성한다.
이후 부르주아는 다양한 변신을 한다.
자본주의를 완성한 자본가가 되기도, 학자나 철학자가 되기도 하고 예술가가 되기도 하고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기도 하고 민주주의 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정치를 완성한 영국에서도 부르주아는 중심 세력이었고 자본주의 역시 그들이 완성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의 의미를 혼동하게 되었다.
공산주의 혁명도 역시 부르주아의 작품임에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한 것은 영국의 산업혁명이다.
프랑스 프로렌스 지방에서 발달한 양모산업에 원료를 수출하기 위해, 영국의 지방 영주들은, 자신의 장원에 농노들의 최소한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한 공유지에 말뚝을 박고, 농노들을 쫒아내는 엔클러저 운동이 일어난다.
프랑스 양모산업은 남아메리카에서 노략질한 스페인의 금이 프랑스로 이동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다.
영국의 지방영주에서 쫒겨난 농노들은 전국을 떠돌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것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 유럽의 복지법의 기원이라고 한 구민법 빈민법이다.
프랑스에 팔려던 양모를 과잉생산 하게 되고, 처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을 단번에 해결한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은 영국의 부르주아였다.
전국에 흩어져 골치 거리였던 농노들이 산업혁명의 공장으로 이동되고 드디어 플로레타리아 라는 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한다. 그때까지 인간의 노동이 상품
생산의 한 단위로 환산 된 적이 없었다.
플로레타리아와 산업혁명의 자본가 부르주아와의 문제는 노동의 상품화로 나타났고, 영국의회는 스피넘랜드법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스피넘랜드법은, 플로레타리아의 최저임금 실업수당 해고수당 등으로 발전한다.
플로레타리아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투표권 획득을 위한 챠티스트로 계급적 투쟁을 한다.
19 세기는 플로레타리아의 투쟁의 시기였다. 부르주아와 플로레타리아의 대립은, 사회주의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는, 사회주의 혁명의 주동자들이 전부 부르주아였다는 것이다.
자본론의 맑스 자유시장의 아담스미스 역시 부르주아였다.
부르주아에 의해 좌우로 갈라졌던 세계는 현재 새로운 자본주의 변화 속에서,
다시 만났다.
부르주아와 플로레타리아는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소비자와 민주주의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되어 만났다.
부르주아와 플로레타리아는 가고 없다.
이제 어떤 계급의 인간형이 나타날 것인가. 세계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로 변할 것인가.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