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전체
한시와 한국화 산책 (3) 아기새의 날갯짓
한시와 한국화 산책(3) - 아기새의 날갯집
남창서 하루 종일 기심(機心)잊고 앉았자니, 뜨락엔 사람 없고 새가 날기 배우네. 여린 풀의 고운 향기 찾을 길이 없는데, 옅은 안개 남은 볕에 부슬부슬 비 내리네.
南窓終日坐忘機(남창종일좌망기) 庭院無人爲學飛(정원무인위학비) 細草暗香難覓處(세초암향난멱처) 淡烟殘照雨비비(담연잔초우비비) *비:雨+非
강희맹(姜希孟, 1424∼1483, '病餘吟' 넷째 수

작가가 큰 병을 앓고 난 후 벗에게 지어 준 네 수의 절구(絶句) 가운데 마지막 수이다. 그 때 그는 병으로 관직에서 두 번째 물러나 있던 터였다. 모처럼의 봄볕이 따사롭다. 종일 볕바라기를 하느라 남창(南窓) 아래 앉아 있었다. 입을 다문 채 내면에 침묵을 깃들이니 마음이 잔잔해진다. 벼슬길에 있으면서 떠나지 않던 이런저런 스산한 생각들도 말끔히 가라앉았다. 해가 다 넘어가도록 찾아오는 이 하나 없다. 전 같으면 허전했을 이 상황이 그는 오히려 고맙다. 대신, 손님의 발자국이 사라진 뜨락에 아기새가 팔짝팔짝 뛰면서 날갯짓을 배우고 있다. 좀더 힘차게 날개를 퍼득여 보렴. 주인은 그 하는 짓이 귀여워서 열린 들창 사이로 마당을 내다본다. 미풍(微風)에 이따금 코끝을 간질이는 것은 여린 풀의 은은한 향기다.

오랜 병 끝에 누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마당에서 걸음마를 떼는 저 새는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나도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지, 첫 비상(飛翔)을 준비하려 푸드득대는 아기새의 날갯짓에서 시인은 뜨거운 생명력을 느낀다. 오후 들어 날이 꾸물꾸물해지더니 엷은 안개가 마당에 깔린다. 새는 벌써 제 보금자리로 찾아들었다. 풀 내음은 안개가 걷어 간 모양이다. 서산엔 아직도 남은 볕이 있는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포근하다.
버들에 엉긴 안개 푸른 장막 깔렸는데, 새 연꽃 수면 위로 잎들이 나란하다. 뜰 가득 푸른 나무 그늘과 하나 되자, 꾀꼬리 날아와 올라앉아 우누나.
楊柳凝烟翠幕低(양류응연취막저) 新荷出水葉初齊(신하출수엽초제) 滿庭綠樹重陰合(만정녹수중음합) 忽有黃鸚來上啼(홀유황앵래상제)
같은 시의 첫 수다. 묵은 병을 딛고 오랜만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사방에서 피어나는 봄기운 때문이었다. 버들 가지 하늘대자 어디선가 몰려든 안개가 푸르스름한 커튼을 짠다. 연못에선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애를 쓰며 올라오던 연잎이 마침내 수면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조그만 녀석들이 앳된 표정을 하고 마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연못 위에 조막손을 내민다. 온통 싱그럽다.
(정 민의 <꽃들의 웃음판> 책에서 전재)
전시회 관람 소감
목어(木魚) 박경현(朴慶鉉) 서각전(書刻展)

見山是山(견산시산:지금 보는 산이 바로 그 산이다.) - 느릎나무
꼭 한 달 전이다. 전시회 다녀온 후 바로 글을 써서 심경의 정리를 해야 하는데 나태함이 키보드판을 늦게 두드리게 했다. 어찌됐던 한 달 전에 동구문화체육회관에 다녀왔다. 대 대구시내 표적인 문화공간이라 하면 봉산문화의 거리를 들 수 있는데, 그 외 장소들은 모두 따로 격리되어 놓여 있다. 각 구별로 문화공간을 확충하면서 십여 리 떨어져 위치하게 된 듯 하다. 동촌 유원지 건너편 한적한 곳에 위치했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훌륭하고 장대하다. 개관 당시 민간 위탁업체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있어 논란거리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관청에서 설비한 이런 큰 문화 공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무슨 콘크리트 더미의 황량함과, 문화 향유의 사연이 깃들여 있지 않은 썰렁함이 바로 느껴졌다. 수많은 경비를 들여 완공한 소중한 공간이 문화 주체의 관심과 배려가 없는 상태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선(茶禪:차를 마시며 명상에 잠김) - 느티나무
전시회 한다는 별 표지판이 없어 주차장에서 입구를 찾아 어렵사리 3층 전시실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에서 중년 남자 한 분이 새참으로 떡을 드시다가 나에게 턱인사를 한다. 알고 보니 작가 선생이시다. 흔치 않은 서각(書刻) 전시회라 관람 전에 여러 말씀을 물어 보았더니 대답은 별로 없으시고 대신 '어느 곳에서 서각을 하시느냐?'는 질문뿐이시다. 그냥 관심있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씀드리고 관람을 마친 후에 자세한 말씀 다시 여쭙겠다고 하고, 자그마한 도록(圖錄)을 들고 50여 점 전시 작품을 차례대로 감상하였다. 첫 인상은 작품에 대한 정성과 많은 노력, 완결성이었다. 세심하고 치밀한 노력 속에서 작품이 만들어 졌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수십 점의 작품들이 일관된 하나의 경향으로 묶여져 흡사 잘 다듬어진 한 작가의 전집 도서를 읽는 느낌을 받았다.
호를 목어(木魚)라 하였는데, 절의 사물(四物)중 하나요, 죄를 지어 평생 등짝에 나무를 매어 달고 사는 물고기 형상을 절에 걸어놓고 업보의 경계와 중생의 구제를 위해 두들기는 악기라고 들었다. 이 분은 말 그대로 평생의 예술 업보요, 지향하는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나무 물고기"라는 호를 택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반야심경 목각 - 느티나무
서예로 본 두 번째 인상은 붓의 능숙한 사용을 느낀 점이다. 서각(書刻)에서 다른 이의 작품을 나무에 옮겨 새기는 경우가 흔한데, 작가 선생은 자신의 붓에서 서예 작품을 잉태시켜 놓고 그것을 그대로 나무에 담아 놓았다. 그런데 담은 모습이 매우 정밀하고 사실적이다. 붓으로 표현된 획의 힘과 중봉, 먹의 분량과 농담, 필의 방향, 붓을 들이고 빠져나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 나와 있었다. 나무판 안에서 붓과 칼은 그대로 혼융일체(混融一體)가 되어 버린 듯 하였다.
작가의 서각(書刻) 경력은 스승 이남석(李南石)선생 휘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품 곳곳에 스승 필적과 글이 보인다. 한자(漢字) 오체(五體)를 넘나들며 칼을 붓보다 더 수월하게 다루는 솜씨를 보아 아직 불혹(不惑)의 나이를 넘지 않았는데, 한 계통의 세계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충분히 섭렵(涉獵)했다고 보았다.

중용(中庸) - 느티나무
세 번 째 인상, 그것은 재료의 선정이었다. 서각용 나무로 꽤 많은 종류의 침·활엽수가 사용되었는데 친절하게 나무의 종류를 밑에다 써 놓았다. 작품에 새겨진 글들은 나무결을 때로는 따르고 때로는 거스르면서 조화의 여유를 부렸고, 옹이나 갈라진 틈까지 작품의 큰 틀에 원용(援用)되어 맛깔스럽게 기교와 의미를 표현해 놓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작품을 벽에 걸기 위한 나무못에도 풍류와 운치를 쏟아 부어 모양을 달리 하고 작품과 관련된 글자 한 개씩 집어넣어 놓았고, 전시공간 가운데에는 좌탁 여러 개를 보기좋게 배열해 놓고 찻잔과 나무쟁반 등에 따로 작품처리를 해 놓은 점이 돋보였다. 전시작을 다 보고 데스크로 다시 걸어가면서 작가 선생님을 바라보니, 작가 선생님은 이야기 나누시자는 말씀을 금새 잊으셨는지 나를 보시고는 그냥 턱인사만 하신다. 역시 예술가는 우리와 다른 듯하다.
전시회 소식
1. 금동효 한국화전 - 일시 : 4월 11일부터 4월 16일까지 - 장소 : 대구문예회관 제 4 전시실 - 개관 : 우리 주변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담은 금동효의 두번째 개인전. 영양 수비의 산과 시냇물, 넓은 들판과 이름 모를 들꽃,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그려진 500호에서 10호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수묵 산수화 작품 20여 점 출품. 2. 계명 한국화회전 - 일시 : 4월 11일부터 4월 16일까지 - 장소 : 대구문예회관 제5 전시실 - 개관 : 계명대 한국화과 출신 동문들로 구성된 계명한국화회의 작품전. 역사 속에 묻힌 진부함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들 체질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방향의식을 통해 한국화가 갖는 표현의 자유와 깊이를 화폭에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3. 다정(茶汀) 김효숙 개인전 - 일시 : 4월 13일부터 4월 22일까지 - 장소 : 목연 갤러리
국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 씨는 이를 전통을 근간으로 한 작품 외에도 인위적인 선들과 우연히 번지는 먹, 여백 처리의 색채들을 조합시켜 색다른 느낌의 문인화를 선보이고 있다. 작품을 완성한 뒤의 느낌을 제목으로서 표현한 병풍 등 대작을 포함해 10여 점을 전시한다.
4. 박병구 서양화전 - 일시 : 4월 12일부터 4월 17일까지 - 장소 : 대백프라자 갤러리 - 개관 : 봄의 기운과 가장 잘 어울리는 듯한 밝고 따스한 화면 구성으로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는 서양화가 박병구의 전시에서는 이제까지의 풍부한 색채구성에서 변화하여 동일색상 계열의 색채이미지만으로 처리함으로써 색상의 범위를 좁히고,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증가시키고 있는 그의 변화된 색채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색채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통해 자연주의의 조형적인 틀에서 벗어나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는 일반적인 자연주의 표현기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현실에서 맛볼 수 없는 회화적인 아름다움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그의 풍경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몽환적인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한다.

Moon&P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