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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 스님, 8일 하안거 종료 <매일경제 2006/8/8/화/문화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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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4월 보름부터 3개월간 계속된 하안거가 8일로 종료된다.
하안거란 선승들이 외부와 출입을 끊은 채 참선수행에 매진하는 여름철 수행.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에 따르면 전국 94개 선방에서 선승 2319명이 하안거에 참여해 용맹정진했다.
불교계의 큰 어른인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하안거 종료를 맞아 법어를 발표했다.
스님은 법어에서 중국 노조선사와 남전선사 일화를 들려주며 "노조 선사가 후배 스님들이 찾아오면 꼭 벽을 향해 돌아앉은 이유를 아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스님은 이어 "하안거 해제대중이 만약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만행길에도 걸망 속에 꼭꼭 집어넣고 다니면서 참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상덕 기자] |
[인터뷰] 덕숭총림 수덕사 수좌 설정 스님
<연합뉴스 2006/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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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정진은 사유·분석·체계화를 버리는 것"
"사회갈등은 '진실'이 없는 불신에서 비롯"
(예산=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지혜가 영글지 않으면 중생을 구제하기 어렵습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자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불제자의 수행정진은 중생을 구할 지혜를 얻기 위한 시간입니다."
충남 예산 덕숭산 자락에 자리잡은 덕숭총림 수덕사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우리나라 불교계 5대 총림의 하나이다.
백제말 숭제(崇濟) 법사가 창건해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한말(韓末)에 경허(鏡虛) 선사가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키고 그의 제자 만공(滿空) 선사가 중창해 500년 조선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끊어지려 했던 한국 불교의 선맥(禪脈)을 다시 이은 곳이다. 개화기 문필가이자 신여성이었던 김일엽 스님이 이곳 견성암에 머문 것을 계기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만공 스님이 1932년 세운 정혜사 능인선원은 덕숭산 정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덕숭총림의 대표적 비구 선원이다. 밤낮으로 용맹정진하던 수도승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만행을 위해 선원의 입구로 나서면 멀리 서해 바다와 홍성읍이 내려보인다. 이른 아침 매미의 시원한 울음을 싣고 선원에 선선한 산바람이 불어올 시간, 3개월의 수행을 마친 수행자들은 걸망을 짊어진 채 좁은 오솔길을 따라 하산한다.
8일(음력 7월15일) 하안거(夏安居) 해제일을 맞아 이곳의 수행 가풍을 듣기 위해 3개월간 수행을 이끈 덕숭총림 수좌(首座) 설정(雪靖·66) 큰스님을 찾았다. 세속과 인연을 끊고 수행에 몰두하다 선방에서 막 빠져나온 노스님의 얼굴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하늘처럼 정갈했고,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자태는 엄격하면서도 편안하고 은은한 기운을 내뿜었다.
"정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온힘을 쏟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공부하는 법은 사유하고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버리는 공부를 합니다. 생각이 다 없어져 버려서 사실 할 말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 한 점 일지 않아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지듯 큰스님에게 "수행의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었다.
큰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9시에 취침하는 일정은 다른 선원과 다를 바 없으나 낮에 일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덕숭총림의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수행자들은 정진하는 시간 외에 채소를 길러 자급자족한다거나 도량 주변의 풀베기 등 울력(공동 노동)을 자주 했다고 한다.
"수행자들은 죽비를 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공부할 만큼 이미 수행경력이 많은 분들입니다. 자율적으로 공부하되 3개월간 바깥출입을 할 수 없고 웃거나 떠들어서도 안됩니다. 다른 선원과 달리 자유정진의 시간조차 주지않고 엄격한 규율 속에 공부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하안거가 진행되는 동안 바깥세상은 태풍과 장맛비로 고통이 컸다. 이에 대해 큰스님은 "수행자들은 부모형제를 떠나 불가에 들어섰지만 사회적 역할을 떠나거나 내팽개친 것은 아니다"면서 "사회의 고통을 생각하며 더욱 정진에 몰두해 지혜를 얻어 중생을 제도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고 말했다.
바깥의 고통을 모른 체 할 수 없지만 우선 수행정진을 통해 먼저 지혜의 문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에 빠진 이를 구하려면 먼저 수영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큰스님은 수해현장에 찾아가진 못했지만 주머니를 털어 피해민을 돕고자 했고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원했다고 밝혔다.
경허와 만공선사 등 한국 근현대 불교의 선(禪)을 중흥시킨 선지식들이 논밭에서 일하면서 수행했던 것과 다르게 요즘들어 선방에 가만히 앉아 참선하는 것은 죽은 선(禪)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큰스님은 "근자에 와서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등 해이해진 측면이 있다"면서 "수행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쉽고 편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쉽게 산다는 것은 공부를 안하고 명예나 돈 등에 마음을 기울게 함으로써 수도자 본래 모습을 잃게 만든다"며 "육체를 항상 움직여야 하며,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수행자로서 바르게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의식주가 풍족해지면 편하려는 속성에 빠져 발심을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일정한 단계에 이르기까지 좌선(坐禪)을 해야 한다"고 말한 큰스님은 "참선이 동정여일(動靜如一)의 경지에 이르면 잠자면서도 화두를 들게 된다"고 덧붙였다.
큰스님은 조계종에서 선(禪)을 보급하는 간화선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 것에 대해 "사회가 정신적 갈등을 극심하게 겪는 때에 선의 보급은 승속이나 타종교를 막론하고 정신적 치료법으로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다만 '간화선 지도자'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숙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치원 선생이나 보모와 같이 선의 기초단계를 보급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큰스님은 "북한 미사일 발사 등으로 빚어진 한반도 긴장 상황, 국내 정치권의 갈등 등에 대해 바깥사람들로부터 간간히 소식을 들었다"면서 "우리 민족의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면서 "주변 열강이 남북통일을 바라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자주적 통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남북 공히 민족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갈등은 불신에서 오고, 그 불신은 진실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면서 "정치든 뭐든 자기 소임에 충실하고 남을 속이려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면 너무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해 여유를 갖지 못함으로써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고 적대적 관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민족 특유의 은근과 끈기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고도 말했다.
큰스님은 "불가의 화두는 그동안 살아온 습관, 이해관계, 분별하려는 것, 일체의 못된 정신을 잘라버리는 칼과 같은 것"이라며 "수행자들은 3개월간의 하안거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화광동진(和光同塵·진리의 빛을 세상과 함께한다)의 마음을 갖고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와 긍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철수개화(鐵樹開花·쇠나무에서 꽃이 피고)와 화중생련(火中生蓮·불 가운데 연꽃이 핀다)이 불법 가운데 있고 그것이 선(禪)이다"라며 세상의 논리와 다르지만 진실을 다하려는 마음에 참선의 길이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설정 큰스님은 1955년 수덕사에서 혜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으며 조계종단 개혁회의 법제위원장,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ckchung@yna.co.kr |
[이덕일 사랑] 中元과 立秋
<조선일보 2006/8/8/화/오피니언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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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신라나 고려에서는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었다. 하안거(夏安居) 끝 날 행하는 불사로서 ‘우란분경(盂蘭盆經)’에는 목련경(目連經)을 지은 목련비구(目連比丘)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지기 위해 오미(五味)의 백과(白果)를 쟁반에 담아 시방대덕(十方大德)에게 공양했다고 전하는데, 시방대덕은 사방(四方)과 사우(四隅)와 상하에 있는 모든 부처를 뜻한다.
부처에게 공양함으로써 명계(冥界)에서 거꾸로 매달린 망령(亡靈)의 괴로움을 구원한다는 뜻에서 망혼일(亡魂日)이기도 했다. 신라나 고려에서는 민간도 함께 공양했으나 억불숭유(抑佛崇儒)의 나라 조선에서는 승려들만의 행사가 되었고, 사대부들은 대신 가묘(家廟)에 조생(早生)의 벼를 천신(薦新)했다.
이날을 전후해 세서연(洗鋤宴), 즉 호미씻이 모임이 벌어졌다. ‘머슴날’이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농부위로연으로서 더위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는 날이었다. 마을 형편에 따라 적당한 날을 정해 동네 숲이나 큰 느티나무 아래 머슴과 농부들이 모여 주인집에서 장만한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농사의 수고를 위로했다. 농악(農樂)과 씨름판이 벌어지고, 씨름왕이나 가장 농사가 잘된 집 머슴을 뽑아 장원(壯元) 술을 먹이고 황소에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돌아 주인집으로 가면 새로운 음식을 내어 대접했다.
삼원일뿐만 아니라 사립일(四立日)도 도가(道家)에서 높이는 날인데 사립(四立)은 입춘(立春)·입하(立夏)·입추(立秋)·입동(立冬)이다. 오늘(양력 8월 8일)이 음력 7월 보름이자 입추이다. 조선의 태종은 이런 날 재계(齋戒)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원과 입추가 겹친 오늘을 기점으로 더위가 한풀 꺾이듯 우리 사회도 침체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강원문화순례](29)오대산과 문화유산
<강원일보 2006/8/8/화>
-수려한 산세, 중요문화재 32점
인류의 문화는 산과 강을 배경으로 창조되었고, 강은 산을 모체로 하여 탄생하였으므로 우리민족은 일찍부터 큰 산을 신령한 곳이라 하여 오악(五嶽)을 정하고 국가적으로 제사를 지냈다. 도읍지의 진산을 오악의 하나로 했기 때문에 도읍지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오악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북한산(삼각산), 지리산을 오악으로 정하고 제사를 지냈다.
강원도의 오악을 든다면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치악산을 들 수 있는데, 이 오악은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특히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를 중심으로 한 오대산은 더욱 귀중한 문화재를 품고 있다. 상원사동종(국보36호)을 비롯하여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48호),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48호), 상원사중창권선문(국보292호) 등 국보 4점, 월정사석조보살좌상(보물139호), 월인석보(보물745호),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보물793호), 월정사팔각구층석탑내 발견유물일괄(보물1375호) 등 보물 4점, 오대산사고지(사적37호), 청학동소금강(명승1호), 세조대의 백초회장저고리(중요민속219호) 등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 11점을 품고 있다.
또한 월정사적멸보궁(유형문화재28호), 탑동3층석탑(유형문화재29호), 상원사목조보살좌상(유형문화재52호), 월정사육수관음상(유형문화재53호)을 비롯하여 월정사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12점 등 유형문화재 15점, 그 외에 월정사부도, 금강산성 등 강원도가 지정한 문화재 17점을 품고 있어 총 32점의 문화재를 오대산이 품고 있다. 특히 강원도에는 국보가 총 8점이 있는데, 4점을 오대산이 품고 있으니 참으로 오대산은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가장 귀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명산이다.
해발 1,563m의 오대산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호령봉, 상왕봉, 두노봉, 동대봉의 봉우리가 중대를 가운데 두고 북대, 남대, 동대, 서대가 오목하게 원을 그리고 있어, 다섯 개의 연꽃잎에 싸인 연심(蓮心) 같은 산세라 하여 오대산(五臺山)이라고 한다고 전해지고,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모양의 오대산의 산세가 월정사, 상원사같은 유명한 명찰(名刹)과 수많은 암자들을 창건케 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거목들이 울창한 숲으로 푸근하고 웅장하며 수려한 계곡을 품고 있는 오대산은 불심 깊은 불자들은 물론이고 철따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다.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신라 선덕왕 12년(643)에 월정사를 창건하였는데 임시로 초암(草庵)을 얽고 머무르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보고자 하였으나 3일동안 음산한 날씨가 계속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오대산이 다른 산들보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많이 품고 있는 것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관계가 있으나 문화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창조하는 것이므로 인간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인간관계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장율사가 일찍이 월정사와 상원사같은 명찰을 창건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왕조 7대왕인 세조(世祖)가 불교를 숭상하면서 오대산 상원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원영환<강원대 명예교수>
<기획탐구> 지구촌 화약고, 분쟁지역 현황 ④스리랑카
<연합뉴스 2006/8/8/화>
다수 싱할리족과 소수 타밀족의 갈등이 원인 타밀반군 타밀엘람해방호랑이 극렬테러 주도 식민통치 후유증에 종족-종교 갈등까지 혼합
(서울=연합뉴스) 이선근 기획위원 = 지난 4월25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시내에 있는 육군본부 구내에서 강력한 폭발물이 터졌다. 이 폭발 사건으로 육군사령관이 부상하는 등 근 40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이 사건은 스리랑카로부터 타밀족의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무장반군세력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의 최고 정예조직인 `검은 호랑이'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세간을 놀라게 한 것은 경비가 삼엄한 육본 구내에서 육군 사령관인 사라트 폰세카 중장을 노리고 탑승 차량에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한 것이 임산부라는 점. 산모 건강검사를 가장해 검문을 통과하고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뱃속의 태아까지도 희생시킨 것이었다.
사건 발생 후 스리랑카 정부군은 즉각 반군지역에 대한 공습에 나서는 등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했던 스리랑카 내전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공식명칭이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인 스리랑카는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다. 인도 대륙 남부에 마치 막 떨어진 물방울처럼 떠 있는 스리랑카는 신대륙 개척기 아프리카 대륙 남단을 도는 장기 항해에 지친 선원들이 인도양으로 접어들어 처음 만나는 큰 섬. 선원들은 반가움과 상륙에 대한 기대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실론이라는 옛 이름과 유명한 `실론티'의 산지로 더 친근한 스리랑카는 계속되는 내전의 상흔에 `찬란한'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스리랑카도 서구 열강들의 식민쟁탈전 과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두어 차례 손바뀜 끝에 인도와 마찬가지로 영국 식민지로 들어갔고, 영국의 교묘한 분할통치 정책의 결과 종족갈등이 증폭되면서 결국 삶의 터전을 공유하던 이들끼리 서로 피를 흘리는 격렬한 증오가 온 땅에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종교갈등에 종족간 증오, 인도 남부와의 지정학적 연계성 때문에 좀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내전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
◇ 식민통치의 유산 - 싱할리와 타밀족의 갈등 = 스리랑카는 싱할리족이 전체인구 1천990만 명 중 74%를 차지하는 다수종족이다.
스리랑카 토착 타밀족(4%)과 영국 식민통치시절 인도 남부에서 차농장 노동자로 대거 유입된 인도 타밀족(5%),스리랑카 무어족(7%)에 비해 압도적이다.
다행스럽게 종교분포도 종족을 넘나드는 복잡성을 띠고 있지 않아 싱할리족은 대부분 불교도(70%)이고, 타밀족은 힌두교도(15%)다.
싱할리족은 기원전 6세기 무렵 인도에서 넘어와 이 지역을 장악하고 불교왕국을 세웠으나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영국 식민지를 거치면서 오히려 차별받는 계층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영국이 민족과 종족을 갈라놓는 분할통치 정책을 전개하면서 소수족인 타밀족을 상대적으로 우대하는 여러 수단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는 농업과 어업 등으로 구분됐던 계층간 갈등이 종족간 갈등으로 전이되고, 그 양상도 심화되는 경향이 전개됐다.
영국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한 후 다수의 힘으로 정권을 장악한 싱할리족은 보수주의 정파가 교대로 집권하면서 싱할리족 위주의 정책을 전개해나갔다. 불교우대 정책을 펴고, 싱할리어를 유일 공용어로 지정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소수파인 타밀족은 당연히 반발했다. 특히 1970년대 초반 타밀족 거주지역에 싱할리족을 이주시키는 정책은 타밀족의 저항에 불을 댕겼다. 타밀족이 몰려 사는 자프나 등 북부와 동부 일원에서 여러 차례 폭동이 일어났고, 결국엔 급진 무장투쟁조직 타밀렐람해방호랑이가 타밀족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싱할리 정부와 타밀 반군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됐다.
1983년 자프나 폭동을 계기로 타밀엘람해방호랑이의 게릴라전이 본격화된 이래 2002년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휴전이 이뤄지기 전까지 스리랑카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어림잡아 6만5천여 명에 이른다.
◇ 타밀엘람해방호랑이 = 지금은 자살폭탄 공격이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의 전유물처럼 돼 있지만 실제 원조를 따지자면 스리랑카가 먼저다. 스리랑카에서는 1980년대부터 유력 정치인들을 희생시키며 유행했던 테러수단이다. 1991년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라지브 간디 당시 인도 총리의 암살사건도 스리랑카 타밀 반군의 자살폭탄 공격이었다.
타밀엘람해방호랑이는 이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력으로 타밀족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대표적인 반군조직이다. `엘람'은 타밀어로 스리랑카를 의미하며 `호랑이'는 스리랑카 국기에도 등장하는 싱할리족의 상징 `사자'에 대응되는 개념이자 타밀족 옛 왕조의 전통문양이기도 하다.
LTTE는 1983년 7월 자프나에서 발생했던 스리랑카 정부군 피살사건을 계기로 타밀족 1천여 명이 스리랑카 전역에서 보복살해됐던 당시 결성됐다. LTTE는 온건파였던`타밀통일해방전선(TULF)'를 제치고 대 스리랑카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무장봉기에 의한 독립쟁취를 목표로 활동해왔다.
마오쩌둥주의를 표방하는 LTTE는 옛 소련으로부터 무장과 훈련을 지원받았으나 동구권 붕괴 이후에는 인도 남부와 해외 타밀족의 재정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LTTE는 자체 치안조직도 두고 있으며 전차와 대포, 소형고속정 등 중무장한 1만여 명의 병력을 자랑하고 있다.
LTTE는 특히 비밀자살특공대격인 `검은 호랑이' 조직이 유명하다. 이들은 임산부를 이용한 자살폭탄 공격은 물론 노인이나 부녀자 등 상대를 가리지 않는 잔인한 테러로 스리랑카 싱할리족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4일 모슬렘 마을인 북동부 무투르에서 발생한 민간인 100여 명 집단학살사건도 LTTE의 투쟁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LTTE는 스리랑카 정부군과의 교전을 피해 무투르 마을 주민들이 피난길에 나서자 이들이 정부군을 배후지원했다는 이유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00여 명을 사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스리랑카 정부와의 평화협상 대상도 타밀족 대표조직임을 자임하는 LTTE이다. 그러나 2002년 2월 22일 노르웨이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LTTE가 테러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는 LTTE를 테러조직으로 선언해 자산동결 등의 조치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 실패로 돌아간 인도의 개입 = 인도도 발밑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시종 수수방관만 했던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와 접한 타밀나두 지역에는 스리랑카 타밀족과 유대감을 갖고 있는 타밀족 인구가 5천만 명이나 되는 데다 내전의 참화를 피해 좁은 해협을 건너 인도로 유입되는 스리랑카 타밀족의 숫자가 늘어나자 스리랑카 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내전이 스리랑카 내부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입장에서는 동족이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는 논리에서다.
스리랑카 정부로서도 엄청난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 남부의 타밀족과 국내 타밀족의 유대가 긴밀해질 경우 싱할리족이 오히려 소수로 몰리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이런 사정으로 1987년 스리랑카 정부군-타밀반군의 전면충돌을 계기로 인도가 개입해 스리랑카는 북.동부의 타밀족의 자치를 허용하는 대신 인도가 타밀반군 무장해제를 맡기로 협정이 체결됐다.
그러나 인도가 막상 7만 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스리랑카 타밀반군 지역에 파견해 무장해제에 나서자 반군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도군과 타밀반군이 충돌하게 됐다.
결국 인도군은 1990년 철수했지만 타밀반군 조직은 인도에 대한 보복으로 이듬해 라지브 간디가 유세차 타밀나두 지역을 방문하자 LTTE `검은 호랑이' 소속인 여성자살폭탄요원을 보내 그를 암살하게 된다.
◇ 다시 불붙는 내전 = 스리랑카 내전은 2002년 평화협정 체결로 일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했다.
양측이 타협한 골자는 타밀반군이 독립국가 전설노선을 버리는 대신 스리랑카 동부와 북부 지역을 자치지구화한다는 일종의 연방제 채택이다.
그러나 그후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사라지지 않다가 작년 8월 타밀족 출신이면서 국제적으로 LTTE 불법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던 라크시만 카디르가마르 스리랑카 외무 장관의 피격사망사건을 계기로 스리랑카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무게중심이 다시 내전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다.
올들어서도 지난 4월 스리랑카 육군본부 임산부 폭탄테러 사건, 6월 140여 명이 사상한 버스 폭탄테러 사건 등으로 양측의 충돌 수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사망자수가 이미 700여 명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이에따라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6월 국가 비상사태를 거듭 연장했고, 유럽연합(EU)은 LTTE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해 재정압박을 통한 무력화에 동참했다. 이로써 타밀반군에 대한 자금동결과 자금모금 불법화 등에 이미 나선 미국,영국, 인도, 캐나다 등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압박강도는 한층 높아지게 됐다.
또 스리랑카 정부와 LTTE가 주도하는 타밀반군은 국제 휴전감시단의 중재 아래다시 평화협상에 나섰지만 타밀반군 측이 동북부 임시자치정부 수립을 먼저 허용해줄것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해 협상 추진이 난항을 겪고 있다.
sunny@yna.co.kr |
[문화소식] '오늘의 작가상'시상식 10일 개최
<연합뉴스 2006/8/8/화>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 민음사와 계간 '세계의 문학'이 주관하는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시상식이 10일 오후 4시 강남구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센터 지하 2층 이벤트홀에서 개최된다.
'오늘의 작가상'에는 권기태(40) 씨의 장편소설 '파라다이스 가든', 박주영(35) 씨의 장편소설 '백수생활백서'가 공동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천도교는 '지일기념일(地日紀念日)' 143주년을 맞아 14일 오전 11시 종로구 경운동 중앙대교당을 비롯한 전국 교구에서 일제히 기념식을 거행한다.
'지일기념일'은 제2세 교조 해월 최시형이 1세 교조 수운 최제우로부터 도통(道統)을 이어받아 교조가 된 것을 기념하는 날.
기념식에서는 한광도 교령이 기념사를 낭독하며 기념식 후에는 도올 김용옥 전 순천대 석좌교수가 중앙대교당에서 '해월사상과 조국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한다.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이사장 일면스님)에서는 '백중(우란분절. 盂蘭盆節)'을 맞아 7일 조계사 설법전에서 난치병을 앓고 있는 15명의 환우들에게 총 3천만원의 지원금을 전달했다.
'우란분절'은 부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구해내기 위해 하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15일 음식, 과일, 초, 등과 같은 공양구를 갖추어 공양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에서 유래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불교계의 대표적 장기기증 시민운동단체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환우들에게 실질적인 치료비와 수술비를 지원하는 작업을 12년째 지속적으로 실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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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만인보]연꽃, 동자승
<경향신문 2006/8/8/화/오피니언28면>
회산 백련지에 동자승들이 피었습니다.
그들의 몸짓은 마치 실잠자리들처럼 가볍습니다.
때론 웃고, 때론 울고, 때론 찡그리고, 때론 노래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 눈에는 사람이 모두 연꽃으로 보였다 합니다.
어떤 것은 진창 속에 있고, 어떤 것은 진창을 헤어나려 하고, 어떤 것은 물 위로 머리만 내밀고 있고,
어떤 것은 ?育? 피우려 애쓰고….
고해를 떠돌리야 사람이 연꽃이나 마찬가지이련만,
염화시중의 미소를 모르는 나는 아직도 사람을 연꽃으로 보지 못하고 연꽃을 사람으로 보지 못합니다.
그 무위의 날들 위로 연꽃은 마냥 피고 집니다.
*무안 회산백련지에서는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백련대축제가 열린다. 금년의 주제는 '생명화 평화의 울림, 8월의 연풍연가(蓮風蓮歌)'다.
첫댓글 수행과 포교....그리고 함께하는 사부대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