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란 언제나 새롭게 가슴에 부딪혀 오는 것이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11월의 추억은 해마다 새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11월은 두 천재가수가 짧은 생을 마감한 추억 어린 달이기 때문이다. 바로 11월 1일 10주기를 맞이한 김현식과, 또 그날 13주기를 맞이한 가수 유재하. 두 사람 모두 천재 가수라 불리기도 했고, 죽은 뒤에는 전에 없던 추모의 열기를 쏟아냈던 가수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둘을 가르쳐 죽은 뒤 자신의 존재를 더 빛내게 한 이들이라고 꼽는 사람도 있다. 유재하는 87년 교통사고로,김현식은 90년 간경화로 요절한 가수이지만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11월1일 두 사람의 기일을 전후로 한 추모행사는 오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비명에 간 두 사람은 80년대 말 민중 가요라는 젊은이들의 의식을 지배하던 음악 속에서 또 다른 의미에서 젊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 사이에 있던 대중가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 다. 또한 처음으로 추모의 열기를 몰고 온 가수라는 점에서도 둘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 느끼고 알아나가던 10대 중반 시절이었기에 그 추억의 깊이는 더욱 크다. 때문에 최근에는 점차 사그라지고, 변질 되어가는 이들의 추모 열기에 아쉬움을 넘어 마치 젊은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이 빛바랜 사진 처럼 사라져 가는 듯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약속’의 김범수가 고(故)김현식과 함께 듀엣곡을 낸다고 한다. 김범수는 자신의 2집 음반 수록곡중 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김현식과 함께 컴퓨터 합성으로 노래했고 뮤직비디오에도 고 김현식이 등장했다고 한다. 김현식은 사람의 실제 모습과 흡사한 우레탄소재의 인형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리고, 11월 1일 그의 10주기를 맞아 동료와 후배가수들이 2장짜리 헌정앨범을 선보이고 추모 콘서트를 마련한다. 워너뮤직 코리아 안정대 부사장과 작스 미디어 이응주 사장이 함께 준비하고 기타리스트 함춘호씨가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엔 후배.동료 가수 등 국내 가수 20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점차 잊혀져가던 김현식을 생각할 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유재하의 경우, 유재하 추모 가요제도 예전의 모습을 생각할 때 요즘의 그것은 너무 쇠락한 인상을 주고 있어 안타깝다. 그나마 아쉬우나마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김현식 추모의 열기와 점점 쇠락해가는 유재하의 추모 열기를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화가 될 수 있는가의 차이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느껴져서 아쉬울 따름이다. 인형까지 만들어서 억지로 김현식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은 추모라기 보다는 극적인 상업성으로 밖엔 이해할 수 없고, 유재하의 경우는 그나마 또 다시 상업화를 시도하기에는 유재하가 남긴 음악의 절대적 양이 부족해서 였으리라 생각해보곤 한다. 사실 이들의 음악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어차피 이들이 대중 가수였기에 가능한 것이라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음악이라는 본래적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은 듯한 인상이 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물론 김현식 추모 음악제 등의 행사는 반드시 상업적이라 이야기하긴 힘들 것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들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이들의 음악은 그 둘사이의 인연 만큼이나 묘하고 의미있는 구석이 많다. 유재하는 김현식의 백 밴드 봄, 여름,가을,겨울의 멤버이기도 했으며 생전에 김현식은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 유재하의 곡 (그대 내 품에)를 그의 앨범에 수록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랑하는 후배를 뒤이어 3년후 11월에 그 또한 파란만장한 세상을 등지게 된 것이다.
84년 한양대 음대 재학중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한 멤버로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유재하는 87년 여름교통사고를 겪을 때까지 `사랑하기 때문에'가 수록된 단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한 가수였다.그래도 그는 한국적발라드를 탄생시킨 주인공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또한 라이브 무대만을 고집했던 언더 가수였다가 유작앨범 `내 사랑 내곁에'가 2백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국민가수가 된 김현식은 자신의 백밴드였던 `봄여름가을겨울'을 한국의 대표적인 록그룹으로 올려놓기도 했다.사후 몇 년간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하는 곡으로 그의 곡이 애창됐음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두 사람은 가요 사상 유례없는 추모 붐을 일으켰던 가수다.
유재하의 경우,유재하 음악장학회가 설립돼 국악 서양음악 대중음악을 망라한 음악 지망생들을 후원했고 추모가요제도 개최돼 조규찬 유희열 등의 가수를 배출하기도 했다.작년에는 10주기를 맞아 유재하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사업의 일환으로 김현철 신해철 이소라 유영석 전람회 패닉 등 대중가요 가수들이 참여한 헌정앨범이 발매됐다. 김현식의 경우,96년 프랑스로 유학갔던 후배가 병상에서 녹음했던 미발표작이 후배들의 재녹음으로 발매되고 지난해에는 30대의 여자팬이 간직했던 콘서트 실황음반이 출시됐다.이 최초의 `팬 메이드' 앨범의 수익금은 추모사업기금으로 쓰일 것이라고 발표됐다.유품도 전시되고 국내 최초의 다큐 뮤직비디오도 나온 바 있다.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인 것일까? 사람은 가도 예술은 영원하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도 얼마가지 못하는 법이다.
음악을 사랑했던 두 사람을 이곳에 소개하는 것은 음악이 영원하다는 경구를 계속 믿고 싶은 마음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유재하와 김현식의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던 10대 후반이던 시절,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하나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다. 유재하가 죽던 날, 재계의 거목이라던 이병철 삼성 회장도 같이 세상을 떠났었다. 이병철 회장의 죽음에 관련한 기사로 신문은 가득 채워지고, 사회면 하단에 아주 조그마한 토막기사로 대학 졸업사진과 함께 실렸던 유재하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기억되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