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여진, 내친구는 미스코리아다.
2007/10/04 15:07
|
내 친구 홍여진은 미스코리아다.
그 것도 미스코리아 '선'이다.
미스 남가주 '진'이었던 그녀는 해외동포라는 이유로 '진'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아름다운 국가대표 미인이(었)다.
나에게 미스코리아 친구가 있다는 건 대단한 자부심이다.
키 큰 후배들 사이에서 '내가 예전엔 미스코리아 키였다구! 작은 키가 절대 아니야"라고 큰소리를
치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여진과 난 키가 같다. 다만 여진이 다리가 나보다 한뼘 정도 더 길 뿐이다.
여진이와 내가 어떻게 만난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신기하다.
아무리 애써도 도통 떠올려 지지가 않는다.
그만큼 내 의식에 깊게 자리를 잡아서 일까.
그녀는 벌써 20년이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오랜 친구를 가진다는 건 어쩜 행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적극적인 노력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세상물정 모를 때 만난 친구가 더 순수하게 오래 갈 수도 있다고들 한다.
여진이를 떠올리면 가슴이 따끔거린다.
자꾸만 고개가 떨구어진다. 떳떳하지가 않다.
20년 전 난 풀을 빳빳히 먹인 무명천 같았다. 올올이 날이 바짝 서있는.
그러니 옆에서 비비다간 쓸려 쓰라린 상체기가 날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을게다.
심성이 여리고 속감정을 잘 보이지 않던 그녀가 제일 가까이 있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왜 나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묻던 나에게 그녀는 그랬다.
난 네가 제일 어려워...
순간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물론 세월 탓도 있겠지만 그 순간 부터가 아닐까 싶다.
친구는 마주 보는 관계가 아니라 옆에서서 같은 곳을 보는 관계라는 걸 그 땐 몰랐다.
참 어리석기 짝이 없다.
여진이는 김치찌게를 잘 끓인다.
돼지고기를 숭덩숭덩 썰어넣고 푹 끓인 김치찌게는 먹어본 것 중 제일 진국이다.
밥 맛이 없을 때마다 찾아가 참 많이도 얻어먹었다.
여진이 냉장고는 마트보다 낫다.
안동에서 올라온 간 고등어, 전라도에서 부쳐온 젓갈, 일산에서 가져온 청국장...
죽어라 예빈이를 따라 다니던 고질병 감기도 그녀가 챙겨준 거제도 유자차로 떼어버렸다.
여진이는 뒷셈없고 속깊은 큰언니다.
자신에게 섭섭함을 주었던 친척들까지도 알뜰하게 챙긴다.
이사람은 이러니까 저렇게 해주어야하고 저사람은 또 저러니까 이렇게 해주어야하고...
상대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보다 무엇이 아쉬운지를 먼저 살피는 모습이 영락없는 맏이의 모습이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나도 피붙이면 좋겠다는 약삭빠른 생각이 들곤 했었다.
여진이는 기운 센 우렁각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사랑에 관한한 본인의 결정에 흔들림이 없다.
자신의 살을 태워 불같은 사랑을 한다. 아낌없이 아쉬움없이 재가 남을 때까지.
구태여 티내지 않아도 달라고 보채지 않아도
주고 주고 또 준다. 돌아서 가다가 다시 돌아와 마저 주고 간다.
. . . . . . . . .
여진이는 개성사람이다.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서 일까 나름의 확실한 경제개념을 가지고 있다.
쓸 데와 안 쓸 데를 가리는 영리함이 그녀에겐 존재한다.
하지만 쓸 데는 확실하고 충분해서 표시가 난다. 현명하다.
순간 섭섭함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되려 미안함으로 바뀌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생기곤 한다.
여진이 마음 속살은 솜털이 송송하다.
그래서 상체기가 잘 난다.
아물만 하면 또 다치고 딱쟁이가 떨어지면 또 쓸리고.
아프다 소리 안하고 약을 바르고 자신을 탓하며 붕대를 감는다.
내 자신 그녀에게 수도 없이 상처를 주었고 그 중 몇은 흉터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말 안하니 몰랐고 어리석어 깨닫지 못했다.
잠시 멀어진 순간은 그녀가 상처를 입었을 때고 다시 돌아온 건 상처가 아물어서 였을게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은 나에게 있어 처절한 전쟁같은 시절이었다.
일이 그랬고 사랑이 그랬다.
그러면서도 철은 왜그리 늦게 들었는지.
그런 내 옆에서도 예빈이에겐 더없이 좋은 이모노릇을 멈추지 않았다.
예빈이가 아장거리던 그 시절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길 눈이 놀랍도록 어두운 내 친구.
유별나게 추위를 잘 타는 내 친구.
로맨스 영화보다 호러물을 더 좋아하는 내 친구.
인체 탐구를 즐기는 의사같은 내 친구.
아플 때마다 화려한 약통을 열어 제조를 해주는 약사같은 내 친구.
지금은 멀어져 많이 아쉬운 내 좋은 친구 여진이.
36- 24-36
내 친구 홍여진은 대빵 이쁜 미스코리아다.
. . . . . . . . . . . . . . . . . . . . . .
미안하다......... 친구야.
[출처] 홍여진, 내친구는 미스코리아다.|작성자 계아
첫댓글 우연히 언니친구 블러그를 보게 되었어요~ 오래된 예쁜 친구사이가 넘 부러워용~ 여기에 올려도 되나싶긴 한디요...
부럽네요 이렇게 예쁜 미스코리아 친구분을 두셔서 얼마나 행복할까요 글을 읽는것만으로 두분의 정이 묻어나는군요 두분의 우정 깊이깊이 간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