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나 江가의 집 / 안영희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어김없이
사랑입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는 아그라의 벌판
무무타즈마할의 무덤 집 다 둘러보고도
20세기 말 저 세계인들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저 유구의 야무나 강에,
지금 노을이 들고 있는 까닭이 아닙니다
노 젓는 한 인도의 청녕
열창의 연가 탓이 아닙니다
한 사내의 열네 번재 아이를 낳다 죽은 여자와,
무려 스믈두 해를 바친
끝내 왕좌와 여생 포로의 城 유폐로 맞바꾼
한 사랑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단순성,
놓아 버릴 줄 모르는
자신이 쥔 수많은 끈에 스스로 결박된 탓이었습니다
단 한 가지만을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영원에 이르는 길
300년이 흘렀으므로
속살 깊이 더욱 부시게 반짝이는
빛,
아라베스크와 코란으로 새긴
생의 진실에
사로잡힌 탓이었습니다
타지마할,
무굴황제 샤자한 그의 불멸의 신전에서.
- 안영희 시집 <가끔은 門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1999
세상은 잠시 저녁 예배에 드네 / 안영희
어두워지는 강으로부터
쏟아지는 눈발 헤치며
새 한 마리 돌아가고 있네
지금 방향 표지판 지워지고 눈 들 수도 없는 악천후의 한랭기류 속
수천만 킬로 줄짓는 지명들의 숲 다 지나
지도 위 한낱 점으로도 표시되지 않은
나를 향해 퍼득여 오는 작은 날개
언 몸의 너를 위하여
내 가슴 단 한 개의 둥지일 수 있음,
이 살아 있음
머리 숙이게 하네
둥글게, 둥글게
이 땅 위 다치고 부딪친 날선 모서리들
덮어내리는
흰 미사포
세상은 잠시 저녁 예배에 드네
지금 눈 내리네.
- 안영희 시집 <가끔은 門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1999
다시 인도에 가고 싶다 / 안영희
기약없는 겨울 감옥에 쳐박혀서도
어쩌자고 희미한 실오라기 밀어올리고 있나
냉장고에서 꺼낸 완두콩 한줌
씨앗임을 포기못하는
저 무망한 본질의 요구
마주 보는 일
작은 몸짓 하나에도
나는 다쳤다
너를 보러간 인사동 그 찻집에
갑각의 갑옷으로 무장한
웬 게 한 마리 앉아있었으니까
흙 위에 천 한 장으로 족한 강가의 강변
혹은 문짝없는 열차의 층계참에 주질러앉아
하루낮 하룻밤을 마냥 흔들리고 싶다
완두콩은 단지 밥을위해 있어야 할 뿐,
유산을 강요하는 차디 찬
콘크리트 도시의 논리
소의 등에 앉아 노는 새
철로를 넘어가는 돼지 가족
저 무방비의 순한 자연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코팅의 포장아래서도 초록의 배아(胚芽) 도도록히
우리들 가슴마다 살아있음 확인해주던
그 땅, 인도에 가고 싶다.
- 안영희 시집 <가끔은 門밖에서 바라볼 일이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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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아직 안개에 싸여 있는 작은 山과 무덤들도 뒤섞인
마을을 지나서, 벼밭 옥수수 논두렁의 콩잎사귀 할 것 없이
그다지도 유순하게 이슬에 몸 씻기고, 떨며 순결의
면사포 걷어올리는 유월의 아침.
내 전율하며 만났던 적이 비록 번번이 사막에 내던져져
제 그림자 하나 거느리고 세상의 밖을, 혹은 모래바람 속
눈 못 뜨고 허우적여 온 낙타였을 지라도, 이 하구쯤에서
나도 아침을 노래하고 싶다. 불가사의한 자연의 치유력으로
자고 새면 다시 태어나는 지구별처럼, 나도 날마다
後生으로 일어서서
1999년 4월 안영희
[시인만세] 안영희 시인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