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1- 정지용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 기 :유리창에 어린 영상(1-3행)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1),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승: 창 밖에 부딪히는 죽은 아이의 영상(4-6행)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전 :유리를 닦으며 느끼는 모순된 심정(7-8행)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山)새처럼 날아 갔구나! ▶결 : 죽은 아이의 사라진 영상(9-10행)
(조선지광 89호, 1930.1)
* 열없이 : 맥없이. 기운 없이. 속절없이
* 늬 : 너(2인칭)
핵심 정리
▶ 감상의 초점
정지용의 시풍은 참신한 이미지의 추구와 절제된 시어의 선택에 있다. 이 시에서는 죽은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극도의 절제된 감정과 비정하리 만큼 차가운 객관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혈육과의 이별은 커다란 슬픔일 것이다.
이 시는 어린 자식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애절한 슬픔을 노래한 작품인데 시적 화자가 바로 슬픔의 주체인데도 맑고 차가운 감각적 이미지에 의해 그러한 주관적 감정이 과잉 노출되지 않고 절제되어 나타난 작품이다. 정지용의 초기시의 특징이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 성격 : 서정적(애상적), 감각적, 회화적
▶ 특징 : 선명한 이미지, 감각적 시어의 선택과 감정의 대위법(對位法)을 통한 감정의 절제 가 돋보임.
▶ 어조 :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감정(애상)을 절제한 지성적 어조
▶ 구성 :
① 기 : 유리창에 어린 영상(1-3행)
- 가냘픈 새 : 사라지는 자신의 입김자국
② 승 : 창 밖의 밤의 영상(4-6행)
③ 전 : 유리를 닦으며 느끼는 모순된 심정(7-8행)
- 외로움 : 자식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마음
- 황홀함 : 죽은 자식을 마음으로 만나는 순간(별빛이 유리창에 박힘)
☞ ‘외롭고 황홀한 심사’ → 모순형용의 역설적 표현
④ 결 : 죽은 아이의 사라진 영상(9-10행)
- '아아' : 감정의 집약적 제시
--- 참고 월명사 향가 <제망매가> '낙구의 첫머리 감탄사'와 비교
( <유리창1>도 향가처럼 모두 10행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주목됨 )
▶ 제재 : 유리창에 어린 입김
▶ 주제 : 죽은 아이(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 시어의 풀이
* 유리창 : 서정적 자아를 그리워하는 대상과 단절시키면서, 동시에 별(죽은 아이의 영혼)과 영상으로 대면하게 한다. 즉, 창 안(삶)과 밖(죽음)을 단절시키는 동시에 연결해주는 매개 역할.
* 언 날개 : 입김 자국을 가냘픈 새에 비유
* 별과 새 : 죽은 아이의 영혼
* 외로운 황홀한 심사 : 슬프고 외로운 감정과 차갑고 황홀한 감정이 대비되는 ‘감정 대위법’.
연구 문제
1. ㉠,㉡,㉢이 나타내는 이미지의 공통점을 쓰라.
☞ 소중하고 고귀함을 드러내는 공통점을 지닌다.
2. 이 시에서 ‘물먹은 별’의 의미를 50자 정도로 쓰라.
☞ 별을 보며 저 먼 세상에 가 있을 아들을 생각하고 화자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표현했다.
3. 이 시와 김현승의 ‘눈물’은 창작 동기가 비슷하고, 시의 바탕에 흐르는 정서도 일치한다. 각각의 화자는 자신들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그 차이점을 60자 정도로 쓰라.
☞ ‘유리창’은 화자의 슬픈 감정을 엄격히 절제하고 있으며, ‘눈물’은 슬픈 감정을 신에 대한 신앙으로 극복하고 있다.
4.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모순 형용의 시구를 화자가 처한 정황에 비추어 설명해 보라.
☞ ‘외로운 심사’는 자식이 죽은 정황에 비추어 당연하거니와, ‘황홀한 심사’는 유리창을 보석처럼 닦으며 죽은 아이의 영상과 만날 수 있다는 데 연유한다.
5. 이 시의 제목 ‘유리창’이 암시하는 의미를 50자 정도로 쓰라.
☞ 이승과 저승의 운명적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두 세계를 잇는 교감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감상의 길잡이
이 시의 제재인 ‘유리창’은 이승과 저승의 운명적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교감의 매개체이기도 하여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유리창에 가까이 서서 죽은 아이를 생각하는 화자는 창 밖 어둠의 세계로 날아가 버린 어린 생명의 모습을 한 마리의 가련한 ‘새’로 형상화하여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고 말하고 있다.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는 어둠’은 화자의 어둡고 허망한 마음과 조응(照應)이 되고, ‘물먹은 별’이라는 표현은 별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이 시에서 ‘외로운 황홀한 심사’와 같은 관형어의 모순 어법은 독특한 표현이다. ‘외로운’ 심사는 자식이 죽은 정황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하거니와 ‘황홀한’ 심사는 유리창을 닦으며 보석처럼 빛나는 별에서 죽은 아이의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데 기인한 것이다.
이 시는 겉으로 서늘하고 안으로 뜨거운 정지용 시의 특징과 낙이불음(樂而不淫),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절제된 정서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