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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비장전(裵裨將傳)
● 줄거리
제주 기생 애랑은 여러 모로 빼어난데, 배비장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金卿)을 따라온 평범한 인물이다. 이러한 설정은 배비장에 대한 애랑의 우위(優位)를 예견하게 한다. 작품 첫머리에는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金卿) 일행이 풍랑을 만나 고생을 겪은 뒤에 제주도에 도착하는 사건이 묘사되었다. 이 부분에는 비장들의 자탄사설(自歎辭說)이 끼어 있는데, 이는〈적벽가 赤壁歌〉에 나오는 군사들의 자탄사설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장면이 벌어진다. 이 장면은 그 자체가 희극적이지만, 동시에 애랑과 배비장 사이에 벌어질 사건을 준비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정비장이 애랑에게 창고에 넣어둔 자신의 짐을 모두 내어주고 이별하려 할 때, 애랑은 정비장의 몸에 지닌 것을 남김없이 얻어 내고는 끝내 그의 이빨까지 빼게 만들었다.
서울을 떠날 때 어머니와 부인 앞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떠났던 배비장은 이 장면을 보고 정비장을 비웃다가 애랑을 두고 방자와 내기를 걸게 되었다. 기생과 술자리를 멀리하면서 홀로 깨끗한 체하는 배비장을 유혹하기 위해서 방자와 애랑은 계교를 꾸몄다.
이러한 계획은 목사가 지시한 일이었다. 목사는 계교의 실행을 돕기 위하여 야외에서 봄놀이판을 벌였다. 목사 일행을 따라 나와 따로 자리 잡은 배비장을 유혹하려고 애랑은 수풀 속 시냇가에서 온갖 교태를 부리며 노닐었다.
이에 크게 마음이 움직인 배비장은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뒤처졌다. 이 부분에 금옥사설(金玉辭說)이 끼어 있는바, 이것은 앞 부분에 끼어 있는 기생점고(妓生點考)와 함께 〈춘향전〉에 나오는 금옥사설․기생점고 부분과 비교될 만하다.
배비장은 방자를 사이에 넣어 애랑이 차려주는 음식상을 받아 먹고서, 애랑을 잊지 못하여 마음의 병이 들게 되었다. 배비장은 방자를 매수하여 애랑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만날 기약을 얻어냈다. 배비장은 방자가 지정하는 개가죽옷을 입고 애랑의 집을 찾아갔다.
배비장은 애랑의 집 담 구멍을 간신히 통과하여 애랑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방자가 애랑의 남편 행세를 하며 들이닥치자, 황급해진 배비장은 자루 속에 들어갔다. 방자가 술을 사러 간다고 틈을 내준 사이에 배비장은 피나무궤에 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방자는 배비장이 숨어 들어가 있는 피나무궤를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위협을 하다가, 다시 톱으로 켜는 흉내를 하면서 궤 속에 든 배비장의 혼을 뽑아버렸다.
배비장이 든 피나무궤는 목사와 육방(六房)의 아전들 및 군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헌(東軒)으로 운반되었다. 바다 위에 던져진 줄 안 배비장이 궤 속에서 도움을 청하자, 뱃사공으로 가장한 사령들이 궤문을 열어주었다. 배비장은 알몸으로 허우적거리며 동헌 대청에 머리를 부딪쳐 온갖 망신을 다 당하였다.
● 핵심정리
▶연대 : 조선 후기,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이미 판소리로 발표된 일이 있다
▶갈래 : 판소리계 소설, 골계소설(滑稽小說), 풍자소설
▶성격 : 해학적, 풍자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근원설화 : 발치설화, 미궤설화
▶주제 : 양반의 위선을 폭로하고 조롱하며 풍자함. 배비장의 이중적 성격 풍자 비판
▷ 등장인물
* 배비장 : 제주 목사를 따라 온 비장.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깨끗한 척하다 애랑에게 놀림을 당함
* 애랑 : 제주 기생으로 제주 목사와 짜고 배비장을 놀림
● 이해와 감상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구활자본. 판소리로 불리어진 〈배비장타령 裵裨將打令〉이 소설화된 작품이다. 판소리 열두마당에 속하지만, 고종 때 신재효 ( 申在孝 )가 판소리 사설을 여섯마당으로 정착시킬 때 빠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배비장타령〉은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신재효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오섬가 烏蟾歌〉에〈배비장전〉의 한 부분인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배비장이 애랑에게 조롱당하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시기까지〈배비장타령〉은 부분적으로 불리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1938년에〈배비장전〉은 판소리가 창극으로 공연되었으며, 최근에는 재창조되기도 하였다.
인쇄된〈배비장전〉의 자료로는 중요한 이본(異本)의 차이를 보이는 두 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1916년부터 발간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구활자본이고, 또 하나는 필사본을 대본으로 한 1950년에 나온 주석본이다. 앞의 자료에서는 배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빠져 온갖 곤욕을 치른 뒤에 정의현감(旌義縣監)이라는 관직에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뒤의 자료에서는 배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빠져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궤 속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끝나고 있다.
〈배비장전〉의 소재가 되었을 것으로 지적된 근원설화(根源說話)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기생을 이별할 때 이빨을 뽑아 주었던 소년의 이야기인 발치설화(拔齒說話)이다. 다른 하나는 기생을 멀리하였다가 오히려 어린 기생의 계교에 빠져 알몸으로 뒤주에 갇힌 채 여러 사람 앞에 망신을 당하는 경차관(敬差官)의 이야기인 미궤설화(米櫃說話)가 지적되어 왔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에 실려 있는 발치설화는 애랑과 정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 한편, 이원명(李源命)의 ≪동야휘집 東野彙輯≫에 실려 있는 미궤설화는 애랑과 배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실제 있었던 일이 어떻게 설화로 바뀌어지는가 하는 관점에서〈배비장전〉의 바탕이 된 미궤설화의 근원이 더욱 자세히 밝혀지기도 하였다. 김안로(金安老 )의 ≪용천담적기 龍泉談寂記≫에 수록된 〈모안렴위기광욕 某按廉爲妓狂辱〉, ≪실사총담 實事叢譚≫에 실린〈풍류진중일어사 風流陣中一御史〉라는 이야기 등이 미궤설화의 근원이 되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관인사회(官人社會)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 겪어야 되는 입사식(入社式)인 신참례(新參禮)도 소재로 수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형성시기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우나, 유진한(柳振漢)이 남긴 만화본(晩華本)〈춘향가〉에 〈배비장타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영조 때까지는 판소리 한 마당으로 성립되었던〈배비장타령〉이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고 그 사설만 기록되면서 소설화된 것이〈배비장전〉으로 남아 전해졌을 것이다.
1950년도 출간본은 희극적 파탄이 최고조에 도달한 이 부분에서 끝났다. 구활자본에서는 이와 같은 망신을 당한 배비장은 목사를 하직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하여 배를 기다리다가, 애랑이 해남(海南)에 간다고 소문내면서 준비해 놓은 배에 숨어 들어갔다가 다시 애랑을 만나고, 뒤에 정의현감으로 임명되어 애랑과 함께 부임해서 그 고을을 잘 다스리고 행복을 누렸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판소리 사설이 기록화되면서 소설화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판소리 사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문체는 판소리 사설의 문체적 특징을 수용하고 있다.
판소리로 불리어진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삽입가요(揷入歌謠)도 발견된다. 그런데 1950년도 출간본은 판소리 사설에 더욱 가까운 면을 지니고, 구활자본은 소설로 바뀌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방자는 배비장의 약점과 위선을 폭로하고 파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런 면에서 가면극에 등장하는 말뚝이와 상통한다.〈춘향전〉에 나타나는 방자보다도 더 날카로운 풍자의 기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배비장전〉의 방자는 판소리 사설이나 판소리계 소설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개입시키는 장치로 형상화되는 인물유형의 하나로 주목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위선적인 인물 또는 위선적인 지배층에 대한 풍자를 그 주제로 하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배비장전〉은 관인사회의 비리(非理)와 야합상(野合相)을 소재로 하여 관인사회 일반을 풍자한다. 그러기에 날카로운 웃음의 긴장상태가 계속되는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참고문헌≫ 裵裨將傳(金三不, 國際文化館, 1950), 韓國說話文學硏究(張德順, 서울大學校出版部, 1970), 裵裨將傳의 諷刺構造(李石來, 韓國小說文學의 探究, 一潮閣, 1978), 房子型人物考(權斗煥․徐鍾文, 韓國小說文學의 探究, 一潮閣, 1978), 裵裨將傳硏究(權斗煥, 韓國學報 17, 1979)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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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층간의 갈등 대립 : 애랑은 이 작품의 중심인물이며 애랑에게 당하는 정 비장은 양반 계급을 나타내며, 특히 애랑이 방자와 함께 배 비장의 위선을 폭로하는 후반부가 이 작품의 중심 사건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정 비장이나 배 비장은 중인 계층이지만 제주도의 통치자로 들어온 사람들로 유교적 윤리로 무장된 지배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반하여 애랑과 방자는 피지배 계급인 제주도 토착민을 대표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피지배 계층인 토착민과 지배 계층인 외래인과의 갈등에 근거하여, 피지배 계층이 관료 사회의 착취상을 폭로 고발하고, 위선에 찬 지배층의 행태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고 하겠으며, 이 작품을 이조 후기의 작품으로 본다면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 애랑과 정 비장의 역할 :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애랑은 일패에 속하는 기생으로 양반과 작별하는 자리에서 애랑이 온갖 교태로 정비장의 재물을 탈취하는데 이것은 확대시켜 본다면 탐관오리의 재물을 되찾는다는 의미를 상징하며 기생에게 재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 관리들이 부정 비리를 통해 많은 재물을 착취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폭로하고 있다는 의미도 지닌다. 또 당시 기생 신분이지만 작품의 중심에 서있는 기생은 여성의 권익 쟁취는 아닐지라도 여권 내지는 여성들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성들의 생각이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으며, 애랑을 통해 정비장의 이별 장면이 희화화되면서 양반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위선 의식을 폭로하는 계기를 만들고, 또한 배비장으로 대표되는 지배계층의 이중성과 위선과 허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양반 계급을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는 측면은 서민들의 지배적 정서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 애랑과 방자의 역할 : 애랑과 방자는 이 작품에서 보조적 인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시종일관 사건의 중심에 애랑과 방자가 서 있으며, 방자는 배 비장의 위선을 폭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 작품의 해학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배 비장을 약점과 위선을 적극적으로 폭로하는 점에서 봉산 탈춤의 '말뚝이'와 비슷하며, 애랑 역시 방자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신분이 천한 기생이지만 지혜가 남다르고 미모가 뛰어나, 정 비장으로 하여금 이를 빼게 해서 발치설화를 연상하게 하고 다시 배 비장을 유혹해서 배비장의 위선을 폭로하고 망신을 당하게 하는 인물이다. 배 비장을 훼절 망신시킬 것을 종용한 목사나, 애랑의 교태에 놀아나 정 비장, 그리고 훼절 망신의 대상을 선택된 배 비장, 이들은 애랑의 눈으로 보면 모두 권력을 가진 호색가에 불과할 것이지만, 배비장의 훼절 망신을 종용한 목사의 역할은 당대의 계급 세력중 특이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배비장전과 기생 문화 : 배비장전은 작자와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풍자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이미 판소리로 발표된 일이 있다. 옛날에는 기생을 해어화(解語花)라 했다. 규방 규수들이 꼭꼭 닫혀진 대문 속에서 바느질을 하는 동안 기생이라는 특정 계층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술시중을 들어 한량들이 일컬어 '말하는 꽃이다' 해서 해어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생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고대부족사회의 무녀가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즉 제사와 정치가 하나였던 사회에서의 사제였던 무녀가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고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지방세력가와 결합해 근대의 기생 비슷한 역할을 했을 거라는 얘기다.
조선 중기 이후 기생문화는 독특하다. 우선 유교문화와 더불어 사대부들의 문학 예술이 기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황진이, 이매창 같은 명인들이 문명을 날렸다. 한편 말기에 오면서 기생들은 일패(一牌), 이패, 삼패 등 셋으로 구분되는데, 일패는 전통 무가의 보존, 전승자로 뛰어난 예술 감각을 지닌 기생들이다. 일패는 대부분 관기로 그들 내부에서는 규율도 엄했고, 자부심도 굉장했다. 이패는 밀매음(密賣淫), 삼패는 공창(公娼)의 기능을 했다. 일제 시대 진주 기생 산홍은 "기생 줄 돈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피 흘리는 젊은이에게 주라"고 하릴없는 한량들을 꾸짖었다고 한다.〈배비장전〉은 일패기생 애랑이 양반을 갖고 노는 이야기로 애교 있고, 의기 있고, 재주 뛰어나고, 미모도 있는 애랑이와 애랑의 꾀에 빠진 배비장에 대한 풍자가 주된 이야기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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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제목록
-2008년 4월 3학년 전국연합 학력평가
▷ 작품 해제
배비장전은 판소리로 불리어진 배비장타령이 소설화된 조선 후기 때의 작품이다. 판소리 열두 마당에 속하지만 고종 때의 신재효가 판소리 사설을 여섯 마당으로 정착시킬 때 빠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배비장타령은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신재효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오섬가>에 배비장전의 한 부분인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또 배비장이 애랑에게 조롱당하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까지 배비장타령은 부분적으로 불리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배비장전은 판소리 소설로 당시의 시대상황을 날카롭게 풍자한 소설이다.
▷ 근원 설화
※ 발치설화(拔齒說話) - 이빨을 뽑는 이야기
계림촌에 한 기녀가 있어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장안에서 온 한 소년이 그를 몹시 사랑하였다. 그 기녀는 소년에게 “본래 가벌 있는 집안의 딸이었으나, 몰락하여 기녀가 되었다가 비로소 남자를 만났다.”고 하며 애교를 부리는 바람에 그 소년은 더욱 감동되었다. 그러다가 소년이 장안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기녀가 작별에 임하여 슬피 우는 바람에 소년은 곧 떠나지 못하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기녀는 재물은 원하지 않는다고 하므로 소년은 모발을 끊어서 주었다. 기녀는 모발도 좋거니와 더 공실한 것을 원한다고 하였다. 소년은 이를 빼어서 주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 괴롭게 지내는데, 계림에서 상경한 사람이 있어 기생의 안부를 물어 보았더니, 작별한 후로 다른 남자와 지낸다는 것이다. 크게 화난 소년은 창두를 시켜 이(齒)를 찾아오게 하였다.
이에 그 기녀는 박장대소하고 한 포대를 던지면서,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남자들의 이를 뽑아 모은 것이라.”
하였다.
※ 미궤설화(米櫃設話) - 쌀괘 이야기
경차관이 경주에 부임하여 기생들을 요귀니 기물이니 하면서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에 기녀들이 조심하고 촌장도 미워하였다. 촌장이 기녀를 보고 경차관을 능히 속이면 큰상을 주겠다 하자, 한 기녀가 자진하였다.
어린 기녀는 차관이 묵고 있는 객사의 소동과 짜고, 날마다 저녁이면 객사로 소동을 불러내어 이야기하곤 돌아갔다. 차관은 소동이 없는 사이에 찾아온 기녀를 불러들여 자기의 심정을 고백하며 같이 자자고 하자, 기녀는 그 차관을 꾀어 자기의 집으로 오라고 해서 옷을 벗고 같이 자려 하였다. 그때 문 밖에서 남자의 소리가 나므로 차관은 누구냐고 물었다. 기녀는 전 남편이라 하면서 성격이 사나우니 빨리 피신하라고 하였다. 차관은 숨을 데가 없으므로 벌거벗은 채 궤 속에 들어가 숨고, 그 남자가 들어와서는 나의 의복과 재물을 가지러 왔으니 궤를 내 놓으라 하였다. 기녀도 궤는 내 것이라고 시비하다가 관가에 호소하기로 하고, 그 궤를 지고 관가로 가니 날이 새었다. 재판에서 판관은 궤를 톱으로 썰어서 반씩 나누어 가지라 하고, 사람을 시켜 궤를 썰게 하였다. 차관이 궤 속에서 톱소리를 듣고,
“사람 살리라.”
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궤를 열어 보니 차관이었다 한다.
▷ 풍자성
비장이란 감사, 부수, 병사, 수사, 관외사신을 수행하던 조선시대의 관원의 하나로 중간층 출신의 관원이다.
중간층 출신인 비장의 성격은 대체로 이중적인데, 그 전형을 바로 배비장에서 볼 수 있다. 배비장은 상전으로 나오는 장면에서는 지배층을 대변하여 그 법도와 위세가 당당하다. 하지만 제주관기 애랑에게 매혹되어 방자에게 당하면서 그는 어리석은 인물로 부각된다.
배비장은 애랑과 방자의 꾐에 빠져 여러 가지 곤혹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해학과 풍자의 절정이다. 이러한 비장의 위선과 호색성은 비단 배비장 뿐 아니라 정비장도 마찬가지여서 비장 계급의 공통된 성격이라 할 수 있다.
비장의 이중성 가운데서도 서민성이 귀족성보다 강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그들이 중간계층으로서 서민층에 영합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비장의 호색성은 곧 대중적 관심사이기도 한데, 이러한 애정문제를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적인 면에서 서민층과 통한다.
한편 조선후기 평민 문학의 여인상으로는 정절의 표본인 성춘향과 돈만 알고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애랑을 들 수 있다. 춘향은 정조를 지키는 형이요, 애랑은 개방적인 형이다. 근대 시민사회로 오면서 개방형인 애랑이 점차 부각된다. 또 방자는 풍자의 담당자인 동시에 부패 사회를 고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방자가 등장하는 작품은 대개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며, 또한 구성이 희곡적이다. 방자가 지배계급의 위선적인 부패를 폭로하고 비판함으로써 오랫동안 억압되었던 서민들의 울분이 일시에 폭발하는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조선 후기의 풍자문학은 방자 없이는 작중인물을 구성할 수 없을 만큼 서민들의 숙원을 대변하는 중요한 임무를 지녔기 때문이다.
<지문 일부>
[앞부분의 줄거리] 제주 목사로 부임하게 된 김경(金卿)은 배비장에게 예방의 소임을 맡긴다. 이에 서울을 떠나게 된 배비장은 어머니와 부인 앞에서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제주에 도착한 배비장은 구관 사또를 모시던 정비장과 기생 애랑이 이별하는 장면을 보게 되고, 애랑의 간교에 넘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정비장을 비웃는다. 뿐만 아니라 기생들과의 술자리에서도 혼자 고고한 척하며, 사또 일행을 비웃기까지 한다. 이를 본 사또는 기생 애랑을 불러 배비장의 절의를 꺾을 수 있는 계책을 모의한다. 이들의 계책으로 배비장은 꽃놀이를 갔다가 아름다운 애랑을 보게 되고 상사병이 든다. 참다 못한 배비장은 방자를 매수하여 애랑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날 기약을 얻어 낸다.
오제산월락(烏啼山月落)하고 어화수(魚火水)에 불 비친다. 전계(前溪)에 인귀(人歸)하고, 춘풍에 학이 운다. 전 기약 맺은 낭자 차야 중에 어서 가자. 거들거려 갈 제 방자놈 이르는 말이,
“나으리 소견 바이 없소. 밤중에 유부녀 통간(通姦) 가오면서 금의 야행(錦衣夜行)으로 저리 하고 가다가는 될 일도 못 될 것이니, 그 의관 다 벗으시오.”
“벗기는 초라하구나.”
“초라커늘 가지 마옵시다.”
“이애야, 요란히 굴지 마라. 내 벗으마.”
활짝 벗고 알몸으로 서서, / “어떠하니?”
“그것이 원 좋소마는, 누구 보면 한라산 사냥꾼으로 알겠소. 제주 인물 복색으로 차리시오.”
“제주 인물 복색은 어떤 것이냐?”
“개가죽 두루마기에 노펑거지를 쓰시오.”
“그것은 과히 초라하구나.”
“초라하거든 그만두시오.”
“그러하단 말이로다. 개가죽 아니라, 도야지 가죽이라도 내 입으마.”
구록피(狗鹿皮) 두루마기에 노펑거지를 쓰고 나서서 앞뒤를 살펴보며,
“이애야, 범 보면 개로 알겠다. 군기총(軍器銃) 하나만 내어 들고 가자.”
“무섭거든 가지 마옵시다.”
“이애야, 그러하단 말이로다. 네 성정 그러한 줄 몰랐구나. 정 못 갈 터이면 내 업고라도 가마.”
배비장 뒤를 따라가며 하는 말이,
“기약 둔 사랑 여자 어서 가 반겨 보자.”
서입 죽창(西入竹窓) 돌아들어 동편 송계(東便松階) 다다르니, 북창에 밝게 켠 불 고등(孤燈)은 일점이요, 야색은 삼경이라. 높은 담 궁궐 찾아가서 방자 먼저 기어들며,
“쉬, 나으리 잘못하다가는 일 날 것이니, 두 발을 한데 모아 묘리(妙理)있게 들이미시오.”
배비장이 방자 말을 옳게 듣고 두 발을 모아 들이밀자, 방자놈이 안에서 배비장의 두 발목을 모아 쥐고 힘껏 잡아당기니, 부른 배가 딱 걸려서 들도 나도 아니하는지라. 배비장은 두 눈을 희게 뜨고 이를 갈며,
“좀 놓아 다고!”
죽어도 문자(文字)는 쓰는 것이었다.
“포복불입(飽腹不入)하니 출분이기사(出糞而幾死)로다.”
방자 안에서 웃으며 탁 놓으니, 배비장이 곤두박질하여 일어나 앉으며 하는 말이,
“매사가 순리가 아니 되니 대패(大敗)로다. 산모(産母)의 해산법으로 말하여도 아해를 머리부터 낳아야 순산이라 하니, 내 상투를 들이밀 것이니 잘 잡아당겨라.”
방자놈이 배비장 상투를 노펑거지 쓴 채 왈칵 잡아당기니, 아무리 하여도 나은 줄 모르겠다. 사지부생(死地復生)이라, 원명(元命)이 재천(在天)이로다. 뻥 하고 들어가니 배비장이 아프단 말도 못 하고,
“어허, 아마도 내 등에는 꼰질곤자판을 놓았나 보다.”
그리할 제 방자 여쭈오되,
“불 켠 저 방으로 들어가서 욕심대로 얼른 잠깐 하고 날 새기 전에 나오시오.”
은신하여 엿본다. 배비장이 일변 좋기도 하고 일변 조심도 되어 가만가만 자취 없이 들어가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문 앞에 가서 사뿐사뿐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구멍을 배비작배비작 뚫고 일목(一目)으로 견지(見之)하니, 삼경 등화(燈火)에 앉은 저 여인 연재 이팔 고운 태도, 켠 불 등화 밝다 한들 너를 보니 어두운 듯, 피는 도화 곱다 하되 너를 보니 무색한 듯, 저 여인 거동 보소. 김해 간죽(金海簡竹) 백동관(白銅管)에 삼등초(三登草)를 서뿐 담아 청동화로 백탄(白炭)불에 사뿐 질러 빨아 내니, 향기로운 담뱃내가 일조향등 생자연(一條香燈生紫烟)의 붉은 안개 피어 돋듯, 일점 이점 풍기어서 창구멍으로 돌아나오니, 그 담뱃내를 손으로 움키어 먹다가 생 담뱃내가 콧구멍으로 들어가서 재채기 한 번을 악칵 하니, 저 여인이 놀라는 체하고 문을 펄쩍 열뜨리고,
“도적이야!”
소리 하니, 배비장이 겁결에,
“문안드리오.”
저 여인이 보다가 하는 말이,
“화호불성(畵虎不成)이로고. 아마도 뉘 집 미친 개가 길 잘못 들어왔나 보다.”
전반으로 한 번 지끈 치니, 배비장이 하는 말이,
“나 개 아니오.”
“그러면 무엇이니?”
“배걸덕쇠요.”작자 미상, <배비장전>
* 오제산월락(烏啼山月落)하고 어화수(魚火水)에 불 비친다.:달이 진 산에 까마귀 울고 고기 잡는 불빛이 물에 비친다.
* 노펑거지:노벙거지. 노끈으로 만든 벙거지.
* 구록피(狗鹿皮):개가죽.
* 포복불입(飽腹不入)하니 출분이기사(出糞而幾死):(배가 불러)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쉽게 나가지도 못함.
* 꼰질곤자판:고누판. 고누는 땅바닥이나 종이에 장기판 비슷하게 말판을 그리고 승부를 가리는 놀이. 여기서는 등이 이리저리 긁혔다는 뜻.
* 간죽(簡竹):담배설대.
* 일조향등 생자연(一條香燈生紫烟):담뱃대에서 한 가닥의 향기로운 보랏빛 연기가 남.
* 화호불성(畵虎不成):범을 그리려다 강아지를 그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