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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산행지로 소문나면서 유명세에 오른 이 산은 강원도 정선군 남면과 영월군 중동면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그 생김이 곡식이나 액체 등의 분량을 헤아릴 때 쓰는 말(斗)과 같이 두리 둥글다 하여 두위봉(斗圍峰·1465.9m) 또는 두리봉이라 한다. 두위봉은 백두대간상의 함백산(1573m)을 조산으로 서쪽으로 가지를 뻗어 망향재(만항재·1330m), 박심재, 백운산(1426.2m) 그리고 야생화 천국인 꽂꺾기재에 이르러 다시 한번 용솟음치며 솟은 산이다. 석탄과 중석을 비롯하여 각종 광물질이 매장되어 있고, 희귀한 약초와 산나물도 풍부하다. 봄철 철쭉꽃도 좋지만 겨울철 설경도 그만이다. 겨우내 온 눈은 늦게까지도 응달진 곳에 남아있다. 특히 적설량이 많아 나무 끝에 내린 눈이 녹았다가 다시 언 얼음이 바람에 서로 부딪치며 나는 소리는 마치 실로폰이나 풍경소리를 연상케 한다. 아니다. 더 자세히 들어보면 그 어떤 악기로도 흉내낼 수 없는 하늘의 소리가 아닐는지. 빙화(氷花), 솜사탕처럼 금세 날아갈 듯한 설화(雪花), 이런 것들은 도시에서 찌든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오지산행의 기쁨이다. 두위봉은 신동읍 방제리 함백, 남면 문곡리 자미원, 사북읍 사북리 도사곡 그리고 남면 무릉리 증산 등이 산행 들머리다. 신동읍 방제리 함백에서 두위봉 철쭉제가 열리던 날, 호젓한 남면 무릉리 자목골(자뭇골)을 산행 들머리로 잡았다. 억새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민둥산을 건너다보며 증산역을 뒤로하고 기차 굴다리를 빠져나가니 땅이 온통 돌덩이가 많은 척박한 자목골마을이다. 옛날 이 골짜기에는 주목이 빼곡이 들어차 있어 자목골이라 유래됐다.
다시 말하면 자색(紫色) 나는 주목이 많이 자생하는 골이라 하여 자목골, 발음은 자뭇골이라 한다. 그런데 이곳을‘자매골’로 잘못 표기한 개념도가 있다. 주민에게 이곳의 지명을 물어 보았을 때‘자뭇골’이라 발음한 것을 잘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무릉3리 농산물 간이집하장 그 썰렁한 건물 옆, 작약·더덕·수수 등을 심은 텃밭으로 이끼낀 돌담에 쌓여 토종냄새 풍기는 집이 산행들머리인 장수식당이다. 평상에 걸터앉아 메밀부침 안주 삼아 텁텁한 옥수수막걸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배낭 짊어지니 배를 두드릴 만하다. 가뭄에도 앞개울 물소리는 제법 싱그럽다.‘남면 제4공영 주차장’이란 글과 두위봉 산행안내 그림,‘두위봉 등산로·해발 670m·정상 6㎞·소요시간 2시간’푯말이 땡볕에 서있다. 포장길은 이내 끝나고 말발도리꽃 눈부시게 피어있는 취수장 옆으로 오르니 관목들이 다투어 꽃을 피운 터널이다. 쨍쨍한 햇살도 나뭇잎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는 소금에 절인 파김치다. 소름이 끼치도록 냉기가 덮친다. 온몸이 짜르르하다. 게다가 함박꽃 향기에 저절로 입이 벌어져 걷는데 산들바람을 타고 레인보우향이 골 안에 가득하다. 눈알을 둘벙거려 찾으니 꽃개회나무향이다. 아-하!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한다. 바른골과 절골의 합수점 삼거리다. 여기에도‘해발 675m·정상 5㎞·1시간 57분’더 가면 된다는 푯말이 고맙다. 삼거리에서 바른골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 절골로 접어든다. 여기도 하늘을 가린 숲 터널이다. 큰꽃으아리 덩굴이 나무를 감아 오르며 꽃을 달고, 층층나무는 부챗살을 활짝 펴고 꽃을 피웠다. 조잘거리는 계곡물소리에 맞춰‘북궁북궁’,‘쪽박 바꿔 줘, 쪽박 바꿔 주우’산새 소리의 메아리가 듣기 좋다. 이끼와 산일엽초를 뒤집어 쓴 바위 아래 마르지 않는 샘물과 함께‘현위치 835m·1시간 45분 소요됩니다’란 문구가 적힌 친절한 푯말이 서있다. 샘물로 목을 축이고 몇 걸음 올라서니 숲에 묻힌 폐광터에는 납석을 채광하다 버린 녹슨 폐자재들이 옛 영화를 말해 준다. 잠시 후 절터에 닿았다. 그대로 직진하는데 또 푯말이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계속 푯말이 나타난다. 계류를 슬그머니 건너는 곳에도‘현위치 1060m·정상2㎞·소요 1시간’. 조금 위에서 만나는 샘터 앞에도‘두위봉 1㎞’. 샘물로 수통을 채운다. 습지 주위에는 도깨비부채가 군락을 이뤘고 천남성도 가끔 눈에 띈다. 지금까지 줄곧 남쪽으로 오르던 길이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1448봉에서 뻗은 능선에 올라서니 여기에도 이정표가 있다.‘해발 1240m·소요시간 35분’여기 이정표에‘자뭇골’ 이란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자뭇골 이름을 낳게 한 주목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붉은 꽃으로 잔치를 벌인 큰 앵초속에 감자란과 은난초도 섞여있다.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능선을 따른다. 자뭇골, 자미원, 사북도사골 지명의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하여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숲으로 들어서니, 주목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 찍기에 좋다. 주능에 닿아 1448미터 바위봉에 올라서니 철쭉꽃이 절정을 이뤘다. 1448봉에 표석이 있는데 정상은 이곳이 아니다. 실질적인 정상은 동쪽으로 10분쯤 더 가면 닿는 세번째 바위봉인 1466미터 봉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조망을 즐긴다. 북으로 가리왕산까지 눈길을 보낼 수 있고, 가깝게는 곰봉·벽암산·민둥산·노목산이 있다. 동쪽은 주능을 따라 철쭉꽃으로 옷을 입고 함백산으로 이어진다. 남쪽은 일망무제다. 아찔한 발아래 장산·순경산·매봉산·단풍산·꼭두봉들이 사열하고, 옥동천 건너에는 태백산을 지나 남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도도한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다. 털진달래, 철쭉꽃이 어울려 흐드러진 화원 아래 도시락을 푼다. 팔뚝이 근질근질했다. 진드기 한 마리 부지런히 기어 오르는중이다. 크기 2밀리미터쯤 되는 놈을 붙잡아 증명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는…. 하산은 동쪽 주능을 따른다. 앗차! 아직도 정상을 밟지 못했으니 하산은 아니다. 1448암봉을 내려서니 바글거리던 사람들이 사라진 조용한 헬기장이다. 철쭉꽃을 어깨로 툭툭 치며 다시 봉을 하나 넘으니 또 헬기장이다. 두번째 헬기장을 뒤로하고 앞의 봉에 올라서니 4평 넓이에 삼각점(25복구·77. 7 건설부)이 있는 정상이다.
여기서도 조망은 여전히 좋다. 파아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미풍을 따라 유유자적이다. 원점 회귀를 염두에 둔 산행이라 계속 동릉을 따르다가 여섯번째의 1460봉 헬기장에서 주능선을 버리고 증산역까지 이어진 북릉을 따르다 자목골로 하산할 예정이다.. 동쪽 주능으로 세번째 헬기장이다. 다음 봉을 오르는 길옆에 주목이 나타나고, 봉을 내려서니 철쭉꽃으로 성을 쌓은 네번째 헬기장이다. 산나물도 지천인 주능을 오르내리며 잘록이 마다 어김없이 헬기장이 자리잡고 있다. 정상에서 20분쯤 왔다. 1460봉, 여섯번째 헬기장 삼거리다. 헬기장 북쪽 모서리에 보이는 고사목 한 그루가 서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고 북북동으로 내려섰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지만 평지나 다름없는 하산길.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시원하다. 발바닥이 푹신한 꽃밭이다. 봄철 쌈나물로 일품인 참나물이 좌악 깔렸다. 오른편으로 바위가 듬성듬성 나타나는 것도 이 숲에서는 이색적이다. 이제는 넓고 평탄한 지형을 산죽이 차지한 곳을 지나니 바위가 성문을 만들었다. 철쭉나무·단풍나무가 유난히 많고 자작나무·물푸레나무·떡갈나무·피나무·박달나무·거제수·오갈피나무 등의 활엽수들이 들어찬 내리막길에 의외로‘등산로’란 글자가 허름한 말목에 선명하다. 주능선의 여섯번째 헬기장(1460봉)을 떠난 지 40분쯤 뒤에 자작나무·산벗나무 아래 샘터에 닿았다. 사람이 밟고 지나간 곳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 법, 옛날에는 이 길을 많이 사용한 듯하다. 샘터를 지나 5분 더가면 삼거리다. 오른쪽은 비교적 사람 발길이 많이 이어지는 도사곡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계속 능선을 따른다. 이제부터는 길도 희미하다. 같은 능선에 사람이 다니고, 다니지 않은 차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짐승의 배설물이 즐비하다.‘등산로’말목이 능선을 따라 가끔씩 나타난다. 이 길을 개척, 홍보하려고 푯말을 세운 분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고인이 되셨다나. 그래서 이 길은 말목만 세워놓고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계속 능선을 따라 증산역까지 산행하고픈 욕심이 있으나 장수식당을 원점으로 하였기에 샘터를 떠난 지 40분쯤에 탕건바위봉(924m) 오르기 전 안부에서 능선을 버리고 왼쪽 자목골로 무조건 길을 트며 15분쯤 내려서니,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청정한 계곡이다. 계곡을 건너 5분쯤에 숲을 나오니 취수장 앞이다. 타오르는 석양에 들깨, 수수, 고추는 고개를 숙이고 한줄기 비를 그리워하고 있는 자목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