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달 탄현동 단독블럭에 새로 주인이 바뀐 암소뱅크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쇠고기가 국적과 품종을 가릴 것 없이 안 팔린다고 한창 시끄러운 와중에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정육점 식당들 입니다. 실은 중산 공원 맞은 편에 새로 생긴 집이 출퇴근 때보니 주차장이 붐비길래 거길 먼저 갔다가 곧 끝난다는 바람에 암소뱅크로 왔는데 그 집도 한달 전인가에 생겼고 주변에 새로 생긴 정육점 식당이 꽤 있습니다. 위기가 기회라고 착각들 하신 건지 잘 모르겠으나 어찌됐건 경쟁이 격화되면 소비자 후생은 좋아질테니 기대가 됩니다.
좀 늦은 시간에 갔습니다.
그래도 제법 손님들이 계시더군요.
계란찜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반찬입니다.
속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고 든든하게 해주기 때문에 요거 리필 한 번 해 먹으면 1인분 추가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을 덜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반찬 리스트에서 계란찜을 없애려는 사장님들이 계시면 곤란합니다. 기왕이면 계란탕으로 해주세요!
미역냉국
먹을 때마다 건강해지는 느낌이 팍팍 전해져 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초는 몸안의 독성도 제거해주고 장청소도 해주고 두루두루 몸에 좋고 식초 역시 몸에 좋죠. 염분도 적어 해도 적구요.
올백은 거저 되는 게 아닙니다.
외식 자리에까지 책을 가져와 열공 중인 우리 따님.ㅋㅋ(다음 시험에 올백 못 받을까 걱정이 몰려오네요)
저도 역사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과목마저도 취향이 비슷한 거 보면 참 신기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대목은 조선말기 개항기 역사라고 합니다.
한심한 선조들의 뻘짓의 기록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습니다.
공부를 방해하고 사진 찍자고 조르는 아비의 청을 이제서야 받아주네요.
눈이 가끔씩 짝짝이가 되는 것도 저랑 닮은 점입니다. ㅠㅠ
아는 분이 직접 재배하신 허브를 한무더기나 주셨는데 먹을 시간이 없네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먹으려고 집에서 싸왔습니다.
향 죽입니다.
억세서 그냥 먹기엔 부담스러울 정도로 싱싱합니다.
이런 걸 먹다가 마트에서 파는 걸 보면 갸들은 정체가 뭔지 의심스러워 지기도 합니다. 향과 맛이 약한만큼 영양소도 없는 거 같기도 하구요.
누누이 강조하는 바이지만 고기의 육질만큼 소금도 중요합니다.
그냥저냥 통과할 수준입니다.(그냥 그렇다는 뉘앙스로 들릴 수 있겠지만 상당한 칭찬입니다. 어지간한 고기집 소금들은 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제 기준이 높은 게 아니라 싸구려 중국산을 쓰거나 맛소금을 쓰는 곳이 태반이니까요. 오죽하면 제가 처음 가는 고기집에 소금을 싸가지고 다니겠습니까?)
소금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각적으로나 기분을 위해 중요한 게 바로 숯이지요.
그래도 요즘은 대부분의 가게들이 숯만큼은 좋을 걸 씁니다.
철망이 구리가 아닌 건 아쉽지만 삼겹살 철판같이 구멍이 적은 스텐 철판이 아니면 합격점을 줘야 합니다.
궁금했던 이 집의 육질이 공개됩니다.
대단한 마블링과 때깔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냉동창고에 들어가면 볼이 새빨게지죠. 반대로 찜질방에 가도 그렇긴 하지만... 또 곰국 같은 거 끓인 다음 차갑게 식히면 허옇게 기름이 굳죠?
고기를 겹치지 않게 한 다음 냉장실에서 찬바람 좀 쏘여주면 지방은 하얗게 살은 빨갛게 선명해집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노출 시키면 수분이 달아나기 때문에 육질이 떨어질 우려가 생기죠.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고 주방장의 감이 중요합니다. 파리날리는 날 잔뜩 꺼내두면 손해보는 거고 너무 적게 꺼냈다가 제 색깔 내지 못하면 뜨내기 손님들 실망하고 그런거죠.
그런 테크니컬한 측면을 떠나 심하게 좋은 마블링입니다.
어서 익기를 바라는 마음에 얼굴이 자꾸 불판쪽으로 다가갑니다. 조금만 늦게 익었으면 머릿고기까지 먹을 뻔 했습니다.
주변이 화이트가 아닌 이상 이런 접사를 똑딱이 카메라로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게다가 전 아직 매뉴얼을 한 번도 제대로 익지를 않아서 더더욱 어렵네요.
식욕을 억제하며 찍다보니 결국은 초점을 젓가락에 맞춘 채 찍어버리게 됩니다.
캬~. 맛 죽입니다.
좋은 고기를 좋은 숯에 구워서 좋은 소금에 찍어먹으니 맛이 환상일 수밖에 없죠.
고기 자체의 맛이 좋은 엄밀히 말하면 향이 좋은 한우는 소스 맛으로 장난하기 보다는 이렇게 심플하게 후추도 안 뿌린 소금을 찍어 먹는 게 최상의 조리법 같습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좋은 와인이죠. 좋은 와인까지 곁들인다면 부러울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Catena Zapata CB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세운 아르헨티나 최대 와이너리 카테나의 좀 좋은 등급의 카버넷 쇼비뇽입니다.
브리딩 시간도 충분히 가졌는데도 단단하기만 하네요. 검고 깊은 색조가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충분한 브리딩을 하더라도 대단한 매력을 발휘할 것 같지가 않네요.
가격을 고려하면 평가는 더욱 내려갈 운명입니다. 허망하게 짧은 뒷맛과 부족한 복합성 때문입니다.
자두 맛과 후추맛이 특징적입니다.
Catena zapata Malbec
진한 자주색 외관은 이것 역시 상당히 진하고 단단한 와인이라는 느낌을 전해줍니다.
아르헨티나의 대부분의 질 좋은 말벡이 그러하듯 바닐라향과 풍성한 과일향이 잘 어울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토스트향과 담배향 그리고 가죽향도 살짝 비칩니다. 동급의 카버넷쇼비뇽보다 훨씬 좋군요. 온도가 문제인지 뭐가 문제인지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슷한 가격대인데 차라리 얼마 전에 마신 Benegas이나 Broquel이 훨씬 경쟁력있겠네요.
돼지 갈매기살
온 김에 이 집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돼지고기도 먹어봅니다.
아내는 내심 항정살을 먹어보고 싶었나본데 아줌마가 갈매기살을 강추했습니다.
항정살의 태반이 외국산이라는 걸 아는 저도 갈매기살에 동의해버렸죠.
갈매기살은 원래 탄현동에 유명한 집이 따로 있"었"죠.
왜 과거형으로 썼냐면 최근에는 어떻게 변했는 지 몰라도 많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한창 유명세를 타면서 원료 공급이 제대로 안 되서 그러거나 초심을 상실해서 그러거나 망가지는 집들이 종종 있습니다.
암소뱅크는 그런 일 없이 초심을 잃지 않고 잘 성장해 나가길 기원합니다.
잘 익었습니다.
갈매기살은 단백해서 좋습니다.
이렇게 살짝 위에 부담이 오는 시점에서 추가를 할 때는 항정이나 삼겹같이 지방분이 많은 부위보다 이게 낫죠.
맛도 더 진합니다. 맛이 진한 아르헨티나 와인에 압도 되지 않으려면 역시 갈매기살을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돈 낸 만큼 값어치를 하나봅니다.
돼지고기도 괜찮지만 소고기는 어지간해서는 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돼지고기로 기본 양만큼 먹어주고 소고기로 입가심하고 마무리하는 것도 경제적인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식사류에선 된장찌게가 좋다고 하십니다.
조미료를 안 쓰고 하긴 힘들겠죠. 조미료 맛이 과도한 느낌까지 들지는 않습니다만, 조미료가 들어간 만큼, 그래서 떨어지는 매력만큼 그것을 상쇄할 깊은 맛이나 개운함, 구수함이 있으면 좋은데 상쇄하기는 버거운 정도의 매력입니다.
일산 탄현동.
탄현 2지구라는 택지지구가 조성될 당시부터 지금 시세와 비교하면 '거저'로 보이는 분양가에 분양받아 거주하는 분들도 계시고 여기저기 전세로 전전하다 그런 신세가 지겨워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하려고 생활여건과 "(직장까지의) 거리"를 포기하고 이 시골바닥까지 내려온 중산층이 많은 지역입니다. 초기에 분양받은 분들은 주로 고양 파주가 생활의 터전인 분들이 많고 나중에 온 분들은 아파트 담보 대출로 버거워 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즉 가처분 소득이 별로 없는 허덕거리는 중산층이 대부분이라는 거죠.
그래서인지 정말 대표적 서민음식인 돼지 부속 집도 많고, 2900원 세숫대야 냉면집이나, 냉동 삼겹살집 같은 서민형 외식집이 대부분인 탄현동.
그런데 의외로 정말 숨은 보석같은 훌륭한 맛집도 많습니다.
심씨갈비, 왕십리곱창, 계림 삼계탕, 막국수집 이학, 칼국수집 종가집, 짱깨 향주, 한(정)식 풀꽃 향기(한정식이라고 하기에는 좀 가벼운 곳이라 정 자를 괄호 안에 썼죠)은 전국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춘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탄현동 자체가 상가로서의 매력이 없는 동네인데, 특히나 위치도 별로 좋지 않은 곳에 있는 이런 보석같은 집들이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합니다. 제가 우물 안 개구리인지 하나님의 축복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시골바닥에 그냥 두기 아깝습니다.(그렇다고 떠나시면 안되요!!!) 이런 가게들이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잘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탄현동 대표 맛집에 암소뱅크를 추가해야 겠네요. 가격을 조금 더 탄현동 수준으로 내려주면 강력하게 추천할 만 합니다. 솔직히 가격을 내리긴 부담되실 테고 같은 가격이라도 양을 더 주면 대박 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부러 유명한 산지를 찾아 가서 먹거나 지방의 유명한 식당을 찾아가는 게 유의미한 일인가?
첫댓글 요긴 우리동네 이야기인데 어디인지 잘 모르겠네요. 함 찾아 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