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없는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섰다. '제주 가는 길'. 여행은 언제나 마음 설레게 한다. 더구나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떠나는 길이다. 한결 가벼워진 옷처럼 발걸음도 가벼웠다.
'청정 제주'(淸淨 濟州). 길거리에서 만난 큼지막한 입간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제주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공기도 맑았다. 수첩을 접었다. 감상을 일일이 기록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저 마음에 담으면 되는 것을….
바다를 옆에 둔, 작고 아듬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오조리 61-10. 서귀포에서 동쪽으로 50여분 가량 달렸을 때였다. 제주 제1절경, 성산 일출봉이 있는 제주도 동쪽 끝. 그래서 성산포성당(주임 이시우 신부)은 제주에서 해를 가장 먼저 맞는 성당이다.
오대휴(요셉,58) 사목회장이 반갑게 맞았다. "성당 전체 대지 면적이 8000평 입니다." 야자수를 정성스레 가꾼 것을 빼면 거의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성당.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성당 뒤를 돌아서자 아름다운 연못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전국 어느 성당도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잔잔한 연못 물결엔 갈대가 드리워져 있었다. 갈대숲은 끝이 없었다. 갈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좌우로 흔들리며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해냈다. 그 끝자락에 제주 절경 중 가장 빼어나다는 성산 일출봉이 솟아올라 있었다.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아름다운 이국적 풍경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성산포성당의 자랑은 이뿐만이 아니다. 성산 일출봉을 비롯, 윈드서핑 마니아들이 즐겨찾는다는 신양해수욕장, 드라마 '올인' 촬영장소로 유명한 섭지코지가 모두 자동차로 5분 거리다. 신자들이 제주에 가면 반드시 성산포성당을 들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헛말은 아니었다.
성당에 눈을 돌린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너무 빼앗겼다. 성당에 오면 성체부터 먼저 찾아야 하는데…. 문득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성당에 들어서기 전 원통형 종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바다 인근에 위치한 성당 답게 등대를 형상화했다. 종탑에는 모자이크로 형상화한 그리스도 문양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그 큰 의도와 달리 성당 전체 분위기는 깨끗하게 머리 빗어 넘긴 새색시를 닮았다.
성당은 화려하지 않고 단정했다. 높이를 추구하지 않은 편안한 단층 외양에선 자연을 누르지 않고, 순응하겠다는 겸손함이 배어났다. 성당 내부도 외양을 닮아 편안한 모습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오랫동안 성당 안에 앉아 있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만들었다.
한참을 편안함에 몸을 맞기고 있는데 오 사목회장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 본당 만큼 일치가 잘되고, 또 활성화된 본당은 없을 겁니다." 오 사목회장은 뭔가 자랑할 것이 많은 듯했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제주교구에서 선교운동 및 소공동체 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전개하는 본당이 바로 우리 본당입니다."
성당의 아름다운 풍광을 닮아서일까. 공소 신자를 포함 신자 900여명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또한 아름다웠다. 지난해 한해 동안 대대적으로 쉬는 선교 및 신자 회두운동을 전개했고, 주일 미사 때는 성서 공부, 평일미사때는 복음나누기를 실시했다.
처음엔 쭈뼛거리던 신자들도 하나둘 거리선교, 방문선교 등 선교 운동에 대대적으로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주일 미사 참례자가 전체 교적 신자수의 50%에 육박하고 있고, 전체 쉬는 신자의 15%가 다시 교회로 돌아왔다. 일반 본당 미사 참례율이 30%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그 분위기를 올해도 계속 이어갈 방침이다. 사랑의 릴레이 편지쓰기 운동 및 같은 시간대에 동시 기도하기 운동 등을 통해 공동체 일치를 한층 돈독히 해 나갈 계획이다.
성산포성당은 또 제주교구에서 소공동체 운동이 가장 활성화된 본당으로 손꼽힌다. 소공동체 나눔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출판할 계획까지 갖고 있을 정도다.
아름다운 성당에서 삶을 꾸려가는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에 부러움이 절로 났다. 마치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음 착한 이웃을 만난 듯한 느낌. 추운 겨울 어느날 밤, 움추린 몸으로 골목길을 지나다 창문 밖으로 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듣는 그런 느낌이었다.
성당에서 나와 옆으로 돌아서자 성당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마치 배 모양을 닮았다. 원래 등대라고 생각했던 종탑이 이제는 배 뒷부분으로 보였다. 제대가 있는 성당 머리 부분은 동쪽, 즉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신앙인들을 태운 성산포 성당은 이제 신앙인들의 종착지, 부활을 향해 막 출항을 앞두고 있다. 선교와 교소공동체 활성화라는 두 돛대는 이미 높이 올렸다.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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