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서 노무현대통령은 정말 말을 많이, 오래 했다. 무려 1시간 20분이나 말했다. 처음 긴장을 했던 나는 ‘혹시…’했으나, ‘역시’했다. 변함없는 넋두리, 약한 대통령이라는 하소연, 그리고 여전한 감성적인 말투로 처음부터 끝까지 간 1시간 20분의 토크쇼-정말 지루했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노무현 대통령이 말을 잘한다고 했을까?’
정치는 토크쇼가 아니다. 또 정치는 도박이 아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오늘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하며 ‘올인’을 해버렸다.
오늘 노무현대통령의 기자회견에 국민은 무엇을 기대했을까? 진심으로 사과하고 야당의 탄핵발의에 화해의 손짓을 하기를 바랐다. 벼랑끝의 파국, 자살골을 막아보자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인공기를 소각한 것에 대해 나라안의 여러 의견이 있음에도 북한에 대해 사과했다. 당시 나종일 특보는 ‘우리 사회 통념은 권력과 책임을 지닌 사람이 비판받는데 익숙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며 유감 표명의 당위성을 이야기했다. 북한과의 관계만큼 현직 대통령에게 의회는 중요하다. 그러나 북한에 유감을 표할 수 있어도, 국민에게는 사과할 수 있어도 대통령을 흔드는 야당에게는 사과할 수 없다고 했다. 야당의원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여론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으로서 ‘사과를 원했던 절대 다수’의 국민을 뜻을 받들 수 없었는가 묻고 싶다.
국민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데는 나라의 앞날도 걱정스러웠지만 실은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라는 것을 노 대통령은 알았어야 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잃었다.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번듯한 지도자로서 치명상을 입었고 권력자로서는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노무현이란 이름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발의’를 받은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이중적으로 해석하고 독특하게 갖다 붙이는 노무현 대통령이지만 이 ‘엄연한 현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거대 야당의 ‘대통령 흔들기’ 횡포라고 해도 탄핵발의까지 갔다는 것은 이미 ‘온전한 대통령 노무현은 없다’는 이야기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부끄럽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정도가 아닌 것이다.
국민은 ‘파국’을 원치 않았다. 또 대한민국 국회가 법이 아니라 힘겨루기에 의해 난장판이 되는 것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국정 수행자로서 지난 1년 노무현 대통령의 무능과 시행착오를 참아온 국민들은 ‘미워도 다시한번’의 심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개입을 사과하고 측근비리를 사죄하기를 바랐다. 나는 10분이면 끝날 회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시간 20분이나 계속된 노무현 토크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변명과 무조건 형님도 이해하고 안희정씨도, 최도술씨도 너그럽게 봐달라는 말로 이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겸손하고 냉정하게 읽어야 한다. 탄핵을 반대한다고 해서 결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고달픈 국민은 생활고에 국가적 혼란까지 닥칠까 두려운 것이다. 무려 60여%가 넘는 국민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등을 돌렸다는 여론조사를 노무현 대통령은 보았을 것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을 원하는 국민이 30%가 넘는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의회주의 아래 있는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의회와 관계를 잘 꾸려가야 하는 당연한 책임이 있다.
왜 야대여소가 문제란 말인가? 이것은 이 지구상의 많은 나라 국민들이 ‘힘의 균형’을 위해 고의적으로 만든 구도이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야대여소는 상식이다. 여대야소야말로 희귀한 정치상황이다. 대통령은 언제나 의회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생각했다면 이것은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스스로 표현했듯 ‘대통령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이 역전의 명수이며 노림수의 달인이며 꼼수의 대가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노무현 브랜드는 수명을 다했다. 국민들은 토크쇼 정치와 올인식 정치도박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노무현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여느 때처럼 적잖은 실수를 했다. 스스로 말했던 대선자금이 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재신임절차 없이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책임지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결론은 ‘총선과 재신임연계’로 결론이 내려졌다. 누가 대통령을 믿겠는가? 더구나 ‘넘더라도 수억원을 넘지는 않는다’고 했다. 형님은 3000만원을 추석 선물로 생각하고 동생인 노무현대통령은 ‘수억원’을 아이 이름처럼 부른다. 국민은 자신만만하게 10분의 1을 이야기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며 단돈 1원이 많아도 물러날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정도로 알고 있나보다.
최도술씨의 당당함과 안희정씨의 자신만만한 웃음, 노무현대통령처럼 ‘억’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여택수 전 청와대부속실 행정관의 그 여유로운 모습은 많은 것을 국민에게 암시했다. 오늘 노무현대통령은 그 해답을 주었다. 노무현대통령에게 몰린 당선축하금이 ‘신뢰하는 그들이 개인적으로 치부하고 축재하기 위한 모아둔 돈이 아니라, 대통령으로 최소한의 체면치레가 앞으로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알아서 관리하던 돈’으로 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법을 아는 판사였고 변호사였다. 당선 축하금은 당연히 뇌물이며 불법자금이다. 그리고 대통령 월급도 고스란히 저축하고 퇴임 후 만만찮은 대통령 연금도 나오며 강금원씨 같은 지인도 있는 대한민국의 노무현대통령이 왜 ‘최소한의 체면치레’도 할수 없는가?
엄연한 뇌물인 당선 축하금을 ‘모시는 분의 체면치레’를 위해 관리했던 그들을 왜 믿느냐? 십수년간 저를 한번도 속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믿는 그들은 국민을 속였다. ‘대통령의 동지’인 안희정씨는 그 돈 2억원으로 새 아파트를 살 때 모자란 돈을 잠시 썼다가 메꿨으므로 착복의 고의가 없다고 했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이 오늘도 감옥에 가서 몇 년 살고도 남는 ‘유용’이다. 그럼에도 ‘너그러운 평가가 있기 바란다’고 대통령은 말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국민들은 ‘형님이 사업이 안되고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일자리가 없다’는 대통령의 눈물겨운 집안사정을 들어야 할까. 노무현 대통령 취임이후 이 대한민국에 사업안되고 딸 시집갔고 일자리 없는 집이 어디 형님댁 뿐이란 말인가? 노건평씨는 아무런 힘이 없다며 ‘대우건설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주고 하는 일이 이제 없으며 좋겠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좀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했다. 이름까지 거명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인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왜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대통령 형님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을 줄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는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며 왜 한강에 투신자살을 했는지를 그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통령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을 꼭 집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동시에 대통령은 못배우고 성공하지 못하고 별볼일 없는 수많은 사람을 무시하는 발언 역시해서는 안된다. 못배우고 가난해도 좋은 학교 나오고 성공한 사람을 능가하는 깨끗함과 자존심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님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어도 유혹과 돈과 헛된 욕심을 멀리하며 꼿꼿하게 정직하게 사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다.
더 이상 국민에게 떠넘기도 협박하지 말아야 한다. ‘당선된 원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다. 국민은 취임 초기 많은 기대를 했다. 인정받으려면 인정받게끔 해야 한다. 국민의 머슴이라고 한 신문과 1주년 회견에서 야단만 치지 말고 잘하면 잘한다고 해야 힘이 난다고 했다. 대통령은 칭찬 고갈증과 애정 결핍증에 걸린 머슴이 아니다. 학벌사회, 연고사회에서 돛단배처럼 떠있는 존재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며 지도자이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의 수호자이다. 그리고 그리고 이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지금 한국에 온 소중한 기회에 불을 붙여야 할 존재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어떤 자리인지를 노무현대통령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 노무현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기자회견 말미에 대통령은 그 특유의 화법으로 말했다. ‘너-적당하지 않다고 하면 그만두라 하면 혼란없는 적절한 시기에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지금 이 대한민국 국민이야말로 격한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위의 돛단배이다.
방송인 전여옥 : 1981년부터 1994년까지 KBS 기자로 일한 방송인. KBS 도쿄 특파원을 거쳐 KBS ‘뉴스 700’ 공동앵커, 라디오 ‘생방송 오늘’과 ‘다큐 법정추적’을 진행했다. 특파원 재직 당시 취재 경험을 책으로 펴냈던 ‘일본은 없다’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대한민국은 있다’ 등 논쟁적인 저서를 펴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입력 : 2004.03.11 17:56 16' / 수정 : 2004.03.11 18:36 21'
이 기사에 대한 100자평은 총 998건입니다.
한상칠(hsc147)
3657 693 구구절절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노사모,0415를 비롯한 노란색을 좋아하는 분들은 또 욕을 해 대겠지. 옳은소리 바른소리를 하면 욕먹는 우리나라!! 지금까지 대통령께서 정말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국민대통합정치를 하기를 바랐던 한사람으로서 실망이 커다. 오늘 기자회견으로 미루어 탄핵을 해도 찬성을 하고싶다. 마음이 참으로 우울하다. (03/11/2004 18:19:14)
이호선(aifirst)
1949 383 정말 시원한 칼럼입니다. 짜릿하기까지합니다. 자기변명, 남탓에 올인하면서 국민을 등신으로 취급하는 빨간개구리에게 아주아주 명쾌한 해석을 내려주셨습니다. 저런종자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게 수치중에 수치입니다. 대통령 다시뽑아야 합니다. (03/11/2004 18:30:28)
이천림(chshk)
1044 229 남상국 전사장은 아무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죽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종학력이 상고에 불과한 노무현대통령은 그런 수치스런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이 없지만 좋은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부끄럽기보다 죽기를 선택하니까요... (03/11/2004 18:39:04)
박희철(wqnbvc)
982 242 이제 곧 노무현 前 대통령 되겠습니다 (03/11/2004 18:35:46)
남철(wj9185)
697 124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쭈구리의 궤변을 듣고있어야만하나 당장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해서 탄핵처리해야 한다 (03/11/2004 18:37:52)
최현룡(appeardr)
676 147 놈현땜시 또 한분 운명을 달리하셧군여??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말이 생각나네여 (03/11/2004 18:32:16)
박제영(jaytheboss)
647 132 또 노무현과 사기꾼들의 모임 인간들은 또 전여옥이를 수구보수반동에 친일파로 몰겠지만... 뭐 어디 틀린말이 있는가?????????? (03/11/2004 18:36:51)
김명준(audrudwltn)
571 102 대통령 개인만 위하고 백성은 위하지 않는 난신적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나라는 빨리 망한다..역사가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 난신적자를 믿었다니 기가찬다..대통령은 친목모임의 회장이 아님을 모르는게 아니라면 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03/11/2004 18:34:07)
박승규(bark122)
427 136 그랑게 더도 덜도 아닌 한 마리의 미꾸라지 밖에 안되라지오. (03/11/2004 18:16:45)
첫댓글 한계가 바로 그것 이라는 이야기.....'자존심' 보다도 더 중요한 '실리'를 챙기겠다는 이야기.....계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