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태극종주를 마치고
내가 이 글을 올리는 목적은 신체적 나이보다 정신적 나이가 들어서 등산에 자신이 없다고 하는 사람과, 등산을 하고 싶어도 직업에 얽매여 있는 사람과, 어떤 지병이 있어서 등산을 회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되기를 바람이 있어서 이 글을 올린다.
나는 1950년생이고 직업은 현직 목사이다. 그리고 20년 이상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거리 산행에는 문제가 없으나 지리산 태극종주를 무박으로 시도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도전하는 자에게만 성취를 얻어낼 수 있는 것처럼 이번에 지리산 태극종주를 홀로 무박산행에 도전하여 34시간 만에 무탈하게 완주하여 표현 할 수 없는 감격을 맛보게 되었기에 카페에 글을 올려서 등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과 어떤 지병이 있는 사람들과 이미 등산을 시작한 산우들에게 신선한 도전이 되었으면 해서 이 글을 올리니 양해를 바란다.
1. 산행 일시 : 2005년 7월 18일 03:10시부터 19일 13:10시 까지 (34시간)
2. 준비물 : 찹쌀주먹밥 4개, 미시가루 작은 것 5봉, 도마도 4개, 양갱 2개, 초코렛 약간, 1컵, 물 1리터 1병 0.5리터 1병, 기타 갈아입을 양말 속옷 등...(배낭무개 11Kg)
3. 등산 코스와 시간
가. 동부능선 : “쉴만한 물가”에서 천왕봉까지
(03:10출발 15:15도착, 산행시간 12시간 5분, 15분 휴식 후 출발)
나. 주능선 :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15:30출발 익일 03:10도착, 산행시간 11시간 40분, 50분 휴식 후 출발)
다. 서부능산 : 성삼재에서 인월리 마을회관까지
(04:출발 13:10도착, 산행시간 9시간 10분) (총 산행시간 34시간)
4. 나만의 등산 방법
3시간 산행하고 10분에서 15분 휴식함
식사시간 외에는 휴식시간에 가능한 자리에 앉지 않음
물통에 물이 있어도 샘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물을 보충하고 물로 배를 채움
발이 아파도 신발을 완주할 때가지 벗지 않음(발의 상처를 보면 심리적으로 위축됨)
MP3를 귀에 꼽아 잡념과 잡소리를 차단함
산행기
작년 여름 혼자 지리산 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를 할 때 좋은 친구(김영철님)를 만났다. 그분의 소개로 지리산 3대 종주 카페를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지난 6월에 지리산 왕복 종주를 18시간에 마쳤다. 그런데 태극종주가 있는 한 그냥 외면할 수 없어 마음에서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하다가 드디어 기회가 와서 대담하게 도전을 했다.
일산에서 출발 전 산청군 어천의 “쉴만한 물가” 안병두님에게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를 받고 남서울 터미널에서 출발 원지에 도착하여 택시로 어천을 가니 저녁식사 때가 되었다.
때마침 어느 교회 수련회가 있어 쉴만한 물가 안병두님의 배려로 저녁을 삼겹살로 풍성하게 먹고 내일 산행을 위하여 일찍 자리에 누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간단히 준비하고 안병두님의 자세한 안내를 받은 후 03:10에 산행이 시작 되었다. 웅석봉을 오르막길은 장마 끝이라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새벽안개를 헤치고 웅석봉 정산에 오르니 표지판이 아니면 사방을 가늠하기 어렵다. 표지석을 사진에 담고 왕등재를 향해 가는데 등산로는 잘 나있다. 왕등재에 도착하니 09:03시 여기서 아침을 먹었다
외고개를 지나서 윗새제를 향하는데 왼쪽으로 갈림길이 있고 꼬리표가 줄줄이 붙어 있다.
아래로는 건물들이 보이는데 이 길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오케이 마운틴 카페의 지리산 3대 종주의 배병만 방장님께 전화를 하니 역시 그 길은 아니라 곧장 앞으로 독바위를 향해서 가라는 것이다. 이때가 한참 더운 때요 여기서부터 등산로가 협소하고 키 큰 산죽과 억새가
얼굴을 스쳐서 힘들게 한다. 정상에 오르니 12:00시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는데 윗새재 계곡 상부에서 물을 보충하고 나니 등산로가 애매하다. 이럴 때는 감으로 찾아서 계곡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하봉으로 향하고 있다. 하봉에 도착하니 오후2시가 되었다.
지리산 하봉,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 올라가 본 것은 아니다마는 하봉에서 둘러본 지리산 전경은 금강산이나 설악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절경이다.
지리산의 하봉에서 중봉을 거쳐 그 아름다운 절경과 이름 모르는 야생화를 디카에 담아가며 천왕봉에 도착하니 오후 3시 15분이 되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15분을 휴식했다.
아! 지리산...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한국 8경의 하나이고 5대 명산 중 하나로, 웅장하고 경치가 뛰어나다. 그 범위가 3도 5개 군 15개면에 걸쳐 있으며 4백 84㎢ (1억3천만 평)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남한 제2의 고봉 천왕봉(1,915m)은 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는 1백리 능선에 주능선에 만도 반야봉(1,751m),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개나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정상에서 남원, 진주, 곡성, 구례, 함양 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나는 낙동강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개천인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개의 하천이 있으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한국의 산하에서 퍼온 글)
천왕봉을 출발 장터목에 도착하여 여기서 간식과 식수를 충분히 보충하고 주능선을 했다. 지리산 주능선은 여섯 번이나 지나가 봤기에 이제 눈을 감고도 대충은 길을 알 것 같다.
주능선 코스는 간간히 대피소가 있다. 이 구간은 야간 산행이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벽소령 대피소가 마음에 걸린다. 세석대피소를 지나는데 아직 어둡지 않다. 서둘러 가면 벽소령대피소도 어둡기 전에 지나갈 것 같다. 예상대로 벽소령대피소를 아무런 통제가 없이 지나고 여기서부터 불이 없으면 더 전진할 수 없다. 그래서 헤드램프를 머리에 부착하고 가는데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어둡기 시작하면서 안개인지 구름인지 주능선을 덮고 있어 가시거리가 3m도 보이지 않는다. 길은 미끄럽지, 불빛은 안개로 흐리고 길은 잘 보이지 않아서 때로는 더듬어서 발을 떼어 놓는다. 연하천대피소를 지나고 뱀사골대피소를 지나서야 길을 방해하던 안개가 사라졌다. 안개 거친 후 지리산 주능선 위에 떠 있는 달을 보니 아낙네가 실수로 떨어트려 한쪽이 떨어져나간 쟁반의 모습이나 어쩌면 그렇게도 아름답고 휘영청 맑은지...
사람이 그립다. 지리산 동부능선에서 한 사람도 못 보다가 천왕봉에서야 사람들을 보았고 벽소령대피소를 지나서 한 사람도 못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야심한 밤에 지리산 주능선을 홀로 걷고 있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지,.. 드디어 노고단에 도착하니 02:10이다.
노고단대피소에서 희미해진 헤드램프 건전지를 바꾸고 다리를 쭉 펴고 바닥에 누워본다.
하늘의 별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30분쯤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얼마를 내려왔는데 왠 사람들이 올라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친구분이 주차장 입구에서 가다린다”는 것이다. 누군지 짐작이 갔다. 내리막길이라서 무릎에 충격이 있기에 서서히 내려오다가 친구가 기다린다니 뛰다시피 내려와 보니 역시 광주에서 여기까지 그것도 남들이 다 잠들어 있을 02시경에 내가 무엇인데 나를 위하여 여러 가지 간식을 준비하여 광주에서 성상재가지 멀다하지 않고 달려와 준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내가 산에 접어든지 24시간이 지난 이때가 가장 힘들 때요 또 무엇이든 가장 먹고 싶을 때인데 친구가 여기서 나를 도와주다니... 광주의 서목사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친구와 싸온 간식을 먹고 쌓고 이제 지리산 서부능선 성삼재에서 인원까지 마지막 코스를 향하여 출발하니 04:00시가 되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산악회 회원 일행이 나보다 조금 앞서 출발했다. 그들을 제치고 만복대를 넘고 정령치에 도착하여 여기서 아침을 먹었다.
정령치에서부터 바래봉까지는 지난봄에 일산에 있는 “고양시 우정산악회”를 통해서 다녀간 적이 있다. 그 때는 가볍고 쉽게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지친 몸이라서인지 바래봉이 왜 이렇게 멀고 힘든지... 이번 지리산 무박 태극종주 코스 중에 제일 힘들게 느껴진 코스이다.
바래봉은 1,165m나 되는데도 밑에서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숲이 없어서 뙤약볕을 다 받으며 오르는 길이라 더욱 힘들었다. 바래봉을 지나니 이제 다 온 것 같은데 아니다. 작은 봉을 넘고 넘어도 인월은 보이지 않는다. 힘들고 지루한 마지막 코스는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코스였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누가 이런 등산로를 내 놓았으며 길을 놓치게 될 쯤에는 누군가 종종 꼬리표를 달아놓았기에 그 분들에게 감사하다.
마지막 노송이 우거지 산길을 빠져나와 얼마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구인월의 마을 회관이 있고 옥상에 태극기가 높이 메여있다. 어천에서 태극기를 보고 출발하여 인월에서 태극기를 다시 본 나는 단독으로 지리산 무박 태극종주를 무사히 마치고 나니 내 나름대로의 감회가 깊고 무엇인가 성취감을 느꼈다. 그리고 큰일을 앞에 두고 자신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리산 태극종주를 무박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산행이라면 나는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리산 태극종주를 무박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하는 전용물이 아니라 정신력이 있고 약간의 훈련만 있으면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지리산 태극종주를 무박으로 34시간에 무탈하게 마치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산행에 많은 도움을 주신 배병만 방장님과 “쉴만한 물가”의 안병두님, 그리고 나를 위하여 밤잠을 설치고 성삼재까지 나와서 격려해 주신 서목사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