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이면 병자호란이 1636년12월14일에서 1637년1월30일 45일간의 남한산성전투가 생각나 올해도 어김없이 들러보았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태종한테 무릎을 끓는 일이 발생. 아직도 잠실쪽에 그비석이 남아있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는 남쪽 방어산성이다. 백제의 왕도였다는 견해도 있으나 최근 발굴에서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쌓은 주장성일 가능성이 매우 큰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성내는 4대문과 16개의 암문과 125개의 군포(병사숙소)가 있었으며 5개의 장터도 있었다.
성내에는 1000여 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규모가 컸었다.
남문(지화문)
수어장대:지휘와 관측을 위한목적으로 누각이며 인조2년(1624년)에 단축으로 축조 서장대라 하였으나.영조 27년(1751년) 2층누각으로 다시 쌓고 수어장대라 했다.
청량당: 인조2년(1624년) 남한산성 축조시 공사 맡은 이희가 공사비 횡령으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고 부인 송씨는 한강에 투신 자살하여 그를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서문 : 우익문
국청사 : 인조3년(1625년) 각성대사가 건립. 그후 병자호란 같은 수모를 격지않기 위해 성내 9개의 사찰을 짓고 승군훈련.군기.
화약.군량미 비축 그중 하나가 국청사이다.
옹성
북문(전승문)
연무관 :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무술연마 하던 곳으로 인조2년(1624년) 남한산성 축조시 건립으로 추정
현절사 : 병자호란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던 홍익한. 오달제.윤집등 삼학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그들은 청으로 끌려가 1637년 참살을 당했다. 숙종14년(1688년)에 완공 숙종 19년에 현절사라 칭했다.
남한산성 천주교회 : 남한산성은 천주교 순교성지이기도 하다.신해박해(1791년).신유박해(1801년).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를 당했으며 신유박해부터 순교자 발생 300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순교자 현양비
남한산성 역사관
지수당
동문(좌익문)
수문
시구문 천주교 순교자 시신을 이문을 통해 버려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사진자료 감사합니다
멍텅구리 인조...광해군이 명과 금나라 양쪽 외교에 잘했는데 .. 구테나 일으켜 왕이 되더니 삼전도에서 무릎끓고, .. 백성들만 고생했네. 결국 삼학사와 소현세자까지 죽게하고 요즘 세상 보는것 같아 기분이 꿀꿀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