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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光 大師 嘉言錄
<화두놓고 염불하세 : 김지수 옮김>을 보면서...
1.
정토법문은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께서 세우시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중생들을 귀의하도록 지도했소.
또 마명보살과 용수보살이 크게 떨치고,
광려 천태 청량 영명 연지 우익 등의 대사들이 힘써 수행하고 전파하셨소.
이는 지혜로운 성현이나 어리석은 범부 할 것 없이 모든 중생에게 두루 권장하기 위함이오.
미혹과 업장을 끊지 못함에도 부처의 후보 자리에 함께 참여할 수 있고,
금생 한 번의 수행으로 사바 윤회의 울타리를 틀림없이 벗어날 수 있소.
정말 단박에 이루면서도 지극히 원만하고 지극히 간단하며 쉬운 길이오.
선종 교종 율종을 두루 하나로 포괄하면서
그들을 훨씬 초월하고 얕으면서도 깊고 권의 방편이면서 실상자체라오.
이렇듯 아주 특수한 천연의 미묘법문이기 때문에 정토 법문을 전하신 것이오. - 88쪽 -
2.
우익대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소.
"왕생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믿음과 발원의 유무에 달려 있으며,
품위의 우열 고하는 전적으로 명호 염송의 깊이에 달려있다."
이는 천불이 세상에 나오셔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철칙이오.
평생에 믿음과 발원이 전혀 없는 사람은 본인이 왕생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영접인도를 받을 수 없는 것이오.
그러므로 임종에 반드시 서방극락에 왕생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평소 굳게 지녀야 하오.
이와 같이 확고부동하게 결정되어야만,
자기의 믿음과 발원과 수행(염불)이 비로소 부처님의 서원에 감응을 얻고
부처님께 거두어질 수 있다오.
감응의 길이 서로 트이고 부처님의 영접 인도를 받으면
곧장 구품연화에 올라 윤회 고해를 영원히 벗어나게 되오.
사바고해를 벗어나기는 마치 죄수가 감옥을 벗어나기 바라는 것처럼 간절히 원하고
극락에 왕생하기는 곤궁에 빠진 아들이 고향의 부모에게 되돌아가기를 생각하는 듯이 절실히 원해야 하오. - 110~114쪽 -
3.
염불수행이 있어도 믿음과 발원이 없으면 왕생할 수 없고,
반대로 믿음과 발원만 가지고 염불수행을 안하면 역시 왕생할 수 없소.
믿음과 발원과 염불수행 세 요건이 솥발처럼 빠짐없이 함께 갖추어져야
극락왕생이 틀림없이 결정되오.
왕생할 수 있는 지 여부는 온전히 믿음과 발원의 유무에 달려있고,
연화의 품위 고하는 전적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염송한 깊이에 달려 있소.
염불의 기본 수행은 각자 자기의 신분에 따라 정하며,
어떤 특정의 방법 하나에 집착해서는 안되오.
자신에게 특별한 일이나 부담이 없는 사람 같으면
마땅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시 저녁부터 아침까지
앉고 눕고 서고 말하고 옷 입고 밥 먹고 대소변 보건 간에
모든 때와 모든 장소에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한 구절 위대하고 거룩한 명호를
항상 마음과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염송하라는 것이오.
손과 입을 깨끗이 씻고 의복을 단정히 입었으며 장소가 청결하기만 하면
소리 내어 낭송하든 조용히 묵송하든 어떻게 해도 괜찮소.
부처님이 안계시면 서쪽을 향해 정중히 문안드린 다음 염불하면 되오.
그러나 잠자리에 들었거나 옷을 벗고 있거나 목욕하거나
또는 대소변 보는 때 및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서는 소리 내어서는 안되고
단지 묵송하는 것이 좋소.
이런 경우에 묵송해도 염불 공덕은 한가지이며,
소리를 내면 부처님께 공경하지 못한게 되오.
그렇지만 이러한 때와 장소에서는 염불할 수 없다고 생각해선 안되오.
단지 소리 내어 염불할 수 없다는 것임을 염두에 두시오.
특히 잠자리에 들어 소리를 낼 것 같으면
단지 공경스럽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를 손상시킬 수 있으니 꼭 유념해야 하오.
또 염불은 장기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하오. - 122쪽 -
4.
염불이 잘 안될 때는 오직 죽을 死자를 이마 위에 붙여 눈썹까지 드리워지게 하고 마음으로 늘 이렇게 생각하시오.
나 아무개는 시작도 없는 옛날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지은 악업이 끝없고 수없이 많아서 그 악업이 실체와 형상이 있다면 아마 시방 허공조차도 다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숙세에 무슨 복덕을 지었기에 금생에 다행히도 사람 몸 받고 태어나 불법까지 듣게 되었을까? 만약 지금 일심으로 염불하여 극락 왕생을 구하지 않는다면 숨 한번 들어오지 않고 멈출 때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져 끊는 가마나 칼 산, 칼 나무의 고통을 받으며, 오랜 겁이 지나도록 빠져 나올 줄 모를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면서 위에서 말 한대로 염불하여 극락왕생을 구하면 그 자리에서 소원을 이루어 낼 것이오. - 124~125쪽 -
5.
염불할 때 마음이 하나로 잘 집중되지 않으면 마땅히 마음을 추스리고 생각을 절실하게 하오. 그러면 마음이 저절로 통일될 것이오. 마음을 추스리는 방법은 지성과 간절보다 더 나은 게 없소. 마음이 지성스럽지 않으면 추스리려 해도 별 도리가 없소. 지성을 다하는데도 마음이 순수히 통일되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 잘 듣도록 하시오. 소리를 내든 내지 않든 염불은 모두 모름지기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 소리가 입으로 나오고 그 소리가 다시 귀로 들어가야 하오. 묵송의 경우 비록 입을 움직이지는 않지만 생각의 차원에서는 이미 그 소리의 모습이 있기 마련이오.
마음과 입으로 또렷또렷하게 염송하고 귀로 또렷또렷하게 듣는다면 마음이 오롯이 추스려지면서 잡념 망상이 저절로 사라지게 되오. 그런데 더러 망상의 물결이 용솟음쳐 오르거든 십념법으로 횟수를 세어 보시오. 이렇게 온 마음의 힘을 고스란히 부처님 명호 염송하는 소리 하나에 갖다 바치면 비록 망상을 일으키고 싶어도 여력이 없을 것이오. 이것이 마음을 추스려 염불하는 궁극의 미묘법문이오.
여러번 시험하여 여러 번 효험을 확인한 결과 드리는 말씀이니 근거없이 가볍게 지껄이는 추측으로 여기지 마오. 천하 후세의 우둔한 근기들이 나와 같은 방법으로 염불하여 만 사람이 수행하면 만 사람 모두 극락 왕생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따름이오.
여기의 십념법은 첫번 염불하면서 마음속으로 첫번째 인줄 알고 열번 염불하면서는 마음 속으로 열번째인 줄 알기만 하면 되오. 첫번째부터 열번째까지 염송한 뒤 다시 첫번째 열번째까지 염송을 되풀이 하기만 하면 설사 하루에 수만번을 반복하더라도 전혀 상관없소.
불당 안을 돌면서 염불할 때는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순종과 수희의 방향이 되오. - 126~127쪽 -
6.
전념수행이란 몸은 예경에 집중하고(身業專禮), 입은 지송에 집중하며(口業專稱), 뜻은 사념에 집중하는 것이오(意業專念). 이와같이 수행하면 만 사람 가운데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오.
가령 마음으로 생각할지라도 몸으로 예경하지 않고 입으로 지송하지 않으면 진실한 이익을 얻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오. 세간에서 사람들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옮길 때에도 오히려 모두 한 소리를 내어 힘을 집중시키고 서로 돕지 않소? 하물며 마음을 추스려 삼매를 증득하려는 염불 수행이야 오죽하겠소? 그래서 대집경에서는 크게 염불하면 큰 부처님을 보고 작게 염불하면 작은 부처님을 본다고 말씀하셨소. - 131쪽 -
7.
그대가 수행을 하고자 한다면 일체의 외부경계와 인연이 모두 숙세의 업장으로 초래되는 현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오. 또한 지성으로 염불하면 그 업장을 되돌릴 수 있음도 알아야 하오.
더구나 지금 세상은 말법시대로 온갖 환난과 재앙이 속출하고 있으니 염불 외에 관세음보살 명호의 염송을 함께 하시오. 그 결과 숙세 업장이 숨거나 피할 틈도 없이 눈앞에 닥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오. - 157쪽, 160쪽 -
혹시라도 한 부처님을 부르며 생각하는 염불이 수많은 부처님을 부르며 생각하는 공덕만큼 크지 못하다고 생각지 마시오.
아미타불은 法界藏身으로 시방 법계의 모든 부처님들의 공덕이 아미타불 한분께 전부 원만히 갖추어져 있음을 모름지기 알아야하오. 마치 제망주에서 천 구슬이 한 구슬에 포섭되고 한 구슬이 천 구슬에 두루 나투어지는 것처럼 아미타불 한 분만 입에 올려도 모든 부처님이 빠짐없고 남김없이 전부 포함된다오. - 178쪽 -
8.
명호를 지송하는 염불법이야말로 구체적인 일이자 추상적인 이치이며 얕으면서도 깊고 수행의 과정이자 성품 자체이며 범부의 마음이면서 부처님의 마음인 최고 위대한 법문이라오. - 183쪽 -
9.
염불하면서도 염불함이 없고 염불함이 없으면서도 염불하는 이는 염불이 상호 감응하는 때에 이름이라 비록 항상 염불하면서도 마음을 움직이거나 생각을 일으키는 모습이 전혀 없다오. 이것은 염송과 염송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때인 것으로 이러한 경지는 얻기가 결코 쉽지 않으므로 함부로 망상이나 오해를 해서는 안되오. - 184쪽 -
10.
그러다가 날숨 한번 다시 들어오지 않는 때에는 다시 이러한 지름길 법문을 듣고 싶어도 결코 요행스런 기회가 없을 것이오. - 194쪽 -
11.
그러나 부처님께서 설하신 정토법문을 믿고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염송하여 극락왕생을 구한다면 업력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모두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해 왕생할 수 있소.
비유하자면 한톨의 모래알은 제아무리 작고 가벼워도 물에 넣으면 곧장 가라앉고 마오. 그러나 설령 수천 근이나 나가는 무거운 암석이라도 큰 배에 실으면 물 속에 가라앉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먼 곳까지 운반하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소. 암석은 중생의 업력이 몹시 크고 무거움을 비유하고 큰 배는 아미타불의 자비력이 매우 크고 넓음을 비유하오.
만약 염불하지 않고 자기의 수행력에 의지해서 생사를 해탈하려 든다면 모름지기 업장이 다 소멸되고 감정이 텅 빈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오. 그렇지 못하고 번뇌나 미혹이 터럭 끝만큼만 남아 있어도 생사고해를 벗어날 수 없소. 마치 제아무리 미세하고 가벼운 흙먼지라도 반드시 물 속에 가라앉으며 결코 물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오. - 211쪽 -
12.
그러나 모든 세상 인연을 놓아버리지 못하고 그저 낫기만 바란다면, 병이 호전되지 못하는 경우 틀림없이 극락왕생도 못할 것이오. 왜냐하면 가장 긴요한 임종에 왕생을 발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러한 도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을 받아 의지할 수 있겠소?
그러니 질병이 위독할수록 환자에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극락왕생을 구하도록 간곡히 권해야 한다오. 그래야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은 경우 왕생을 구하는 간절한 염불 덕분에 질병이 재빨리 나을 수 있다오. 염불하는 마음이 하도 지성스러워 부처님의 자비 가피력을 듬뿍 얻기 때문이오. - 212쪽 -
13.
사람이 임종에 닥치면, 오직 한 목소리로 염불해 주는 것이 유익하오. 만약 마음의식이 아직 완전히 떠나가기 이전에 시신을 목욕시키고 통곡 따위를 하면 아주 큰 장애가 된다오. 자녀들이 심성이 효성스럽고 순박하다면, 반드시 모두 머리카락에 붙은 불을 끄는 심정으로 항상 나무 아미타불을 지송할 것이오.
부모님의 임종 때는 온 가족이 울지 않고 함께 염불할 수 있으면 가장 유익하오. 그리고 그 시간은 짧아도 세 시간 동안은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게 계속하며, 통곡이나 시신 접촉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명심하시오.
임종 때 삐쩍 여위고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것은 아마도 틀림없이 오랜 겁 동안 지어 온 업장 탓이오. 본디 나중에 더욱 무겁게 받아야 할 과보가 독실한 염불 수행 덕분에 현재에 가벼운 과보로 앞당겨져 나타나는 것이오. 결국에는 수명이 남아 있다면 병이 나을 것이고 수명이 다하였다면 곧바로 극락에 왕생할 것이오.
만일 어리석게도 오직 병 낫기만 바란다면 병이 빨리 낫기는 커녕, 오히려 병을 더욱 악화시키게 되오. 또 수명이 다했다면 극락 왕생하지 못하고 업장에 끌려 사바 고해를 끊임없이 표류할 것이오.
장례와 제사 때 음식은 모름지기 완전히 채식을 써야 하오. 세속의 관행에 따라 술과 고기를 써서는 절대 안되오. 단지 지성으로 염불하고 그 밖의 다른 불사는 벌이지 마시오. - 214,216,218,220,223 쪽-
14.
제 8식은 신령스러워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수태될 때에 맨 먼저 찾아온다오. 그래서 어머니 뱃속에 자리 잡은 태아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라오. 사람이 숨이 끊어져 죽은 다음에는 곧장 떠나가지 않고 반드시 온몸이 다 차갑게 식기를 기다려 따듯한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뒤 비로소 이 제 8식이 떠나간다오. 제 8식이 떠나간 다음에는 터럭끝 만큼도 지각이 없소.
그래서 만약 몸에 한 곳이라도 따듯한 기운이 조금만 있어도 제8식은 아직 떠나가지 않은 것이오. 이때 몸을 만지고 움직이면 그 고통을 알아 느끼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히거나 손발을 펴고 굽히거나 몸을 옮기는 따위의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되오. 불경을 찾아보면 목숨과 따뜻한 기운과 인식 이 세가지는 항상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적혀있소. 만약 사람 몸에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 있다면 인식도 존재한다는 뜻이고, 인식이 존재하면 목숨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오, 옛 부터 죽었다가 사흘 또는 닷새나 지나 다시 살아난 사람이 많은데 바로 이 까닭이오. 오직 임종인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놓아버리고 한마음으로 염불에 집중하여 극락왕생을 발원하도록 권해야 마땅하오.
숨이 끊어지고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정신 의식이 완전히 떠나가기를 기다린 후, 다시 두어 시간은 지나야 바야흐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힐 수 있소. 만약 몸이 싸늘해져 딱딱하게 굳은 경우에는 뜨거운 물로 씻기고 뜨거운 수건을 팔이나 무릎관절에 덮어 씌우면 한참 지나 다시 부드러워진다오. 그때 관에 안치해도 늦지 않소.
사람이 죽은 후에 나타나는 좋고 나쁜 모습과 감응은 원래 사실상의 근거가 있소. 좋은 곳에 나는 사람은 몸의 열기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오. 그리고 나쁜 곳에 떨어진 사람은 열기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오. 온몸이 다 식은 뒤 마지막 열기가 모이는 곳에 따라 그 태어나는 곳이 결정되는 것이오. 그것을 大集經의 臨終徵驗偈에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소.
정수리는 성인에, 눈은 천상에 태어나고 ,
사람은 심장에, 아귀는 배에 모여든다.
축생은 무릎을 통해 떠나가고,
지옥은 발바닥으로 빠져 나간다.
頂聖眼天生 人心餓鬼腹 畜生膝蓋離 地獄脚板出 - 224,225,226,227,228 쪽 -
15.
태어남은 산 거북이의 등가죽을 벗기는 것과 같고, 죽음은 산 게를 끊는 물에 집어넣는 것과 같다오. 여덟가지 괴로움이 한꺼번에 번갈아 지지고 볶아댈 때 그 아픔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소? - 226쪽 -
16.
경전 독송은 오직 공경을 다해야 바야흐로 이익을 얻을 수 있소. 만약 공경스럽지 못하면 설령 이익을 얻더라도 자구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이익에 불과하게 되오.
금강경에 보면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곧 부처님이나 존귀한 제자가 계신 것과 같다. 어느 곳이나 이 경전이 있으면 일체 세간의 천상, 인간, 아수라 등이 마땅히 공경해야 한다. 이곳이 바로 탑이므로 모두 공경스럽게 예배드리고 주위를 돌며 온갖 꽃과 향을 뿌려야 하리라."는 등의 말씀이 여러 번 나오지 않소? 왜 이와 같이 하도록 말씀 하셨겠소? 일체의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라오. - 242, 246쪽 -
17.
불상을 보고 진짜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불경과 조사어록을 보면서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직접 눈앞에서 자기에게 설법해 주신다고 생각하면서 소홀함이나 태만함 없이 공경과 정성만 다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오. 그러면 온 종일 부처님과 보살 조사 선지식들을 친견하고 설법을 듣는 셈이니 사리나 총림을 따로 말할 필요가 있겠소? - 242쪽 -
18.
물이나 허공, 물속에서 기고 날고 헤엄치는 모든 중생들이 똑같이 영명한 지각과 의식을 갖추었으나 단지 숙세의 업장이 몹시도 깊고 무거워 우리와 다른 모습의 몸을 받은 걸 우리는 알아야 하오. 비록 그들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먹을 것을 찾고 죽기 싫어 피하는 꼴을 보면 그들 역시 우리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달을 수 있지 않소?
불행히 전생의 악업으로 축생에 떨어졌으니 정말 더욱 큰 자비심과 연민의 정을 보여야 하지 않겠소?
아무것도 모르는 속인들은 오랜 습속에 젖어 살생으로 육식하는 것을 식도락으로 즐기면서 도살되는 짐승들의 고통과 원한이 얼마만한지는 전혀 생각지도 않는구려.
지금 잡혀 요리 되기를 기다리는 목숨을 구해준다면 숙세의 업장을 덜어내고 착한 복덕의 뿌리를 심어 기를 수 있으며 나아가 살해의 원인을 영원히 끊어버려 함께 무궁토록 장수하는 과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 281 쪽 -
19.
경전에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하고, 중생은 결과를 두려워한다(菩薩畏因 衆生畏果)."는 말씀이 있소. 보살은 악한 결과를 초래할까 두려워, 미리 악한 원인을 끊기 때문에, 악한 결과가 생겨날 수가 없소. 그런데 중생들은 다투어 악한 원인을 짓기 때문에, 악한 결과를 받게 되오. 그래도 과거의 악업을 참회할 줄은 모르고, 도리어 다른 악업을 새로이 지어 대응하기 일쑤라오. 그래서 원한의 앙갚음이 오랜겁토록 그치지 않고 서로 되풀이 되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고 두렵지 않을 수 있겠소? - 290쪽 -
20.
정토 염불 법문을 수행함에는 마땅히 믿음과 발원과 실행(信願行)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오.
믿음이란 부처님 힘(佛力)을 독실하게 믿는 걸 뜻하오. 아미타 여래께서 원인 자리(因地)에 계실 때 48대 서원을 발하여 매 서원마다 중생을 제도하기로 다짐하셨소.
그 가운데 “나의 명호를 염송하고도 나의 국토에 생겨나지 못하는 중생이 있다면 나는 결코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서원이 있소. 이제 그 원인 수행이 원만하여 그 과보로 아미타불이 되셨으니 우리가 지금 아미타불을 염송한다면 반드시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소.
다음으로 부처님께서 자비력으로 중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자비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것과 같음을 믿어야 하오. 자식이 어머니만 그리워한다면 어머니는 늘 자식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 품안에 받아들일 것이오.
그 다음으로 정토법문을 믿어야 하오. 영명 선사께서 사료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토법문과 다른 법문이 그 크기나 난이도 및 이해득실에서 얼마만큼 차이 나는지 분명히 알고, 비록 다른 스승들이 다른 법문을 몹시 칭찬한다고 할지라도 동요되지 말며, 설령 여러 부처님들이 눈 앞에 나타나서 다른 법문을 닦으라고 권하신다 할지라도 이끌려 가지 않아야만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소.
서원이란 바로 이 생애에 틀림없이 서방정토에 왕생하고 이 혼탁한 사바세계에서 더 이상 여러 생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오. 머리(목숨)가 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면 할수록 미혹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이오.
아울러 서방정토에 왕생한 뒤 다시 사바고해에 되돌아 나와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겠다는 발원도 함께 가져야 하오.
실행(行)이란 가르침에 따라 진실하게 행동해 나가는 것이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섯 글자 한 구절을 매 구절 매 글자마다 입안에서 또렷또렷(明明白白) 염송하면서 마음속으로도 또렷또렷 염송하고 그 염송소리를 귓속에서도 또렷또렷 듣는 것이오.
조금이라도 또렷하지 않은 데가 있다면 이는 곧 진실하고 간절한 염불이 못 되며 잡념망상이 비집고 생겨나는 틈을 주게 되오. 단지 염송만 하고 귀로 듣지 않으면 잡념망상이 생기기 쉽다오.
그래서 염불은 매 구절 매 글자마다 또렷하고 분명해야 하며(의미나 논리를 따지는) 사색을 해서는 안 되오.
더러 소리 내어 염송하기도 하고 더러 소리 없이 조용히 암송하기도 하되, 끊어짐이나 잡념 망상이 없도록 하오. 반드시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나 소리가 자기 귀로 들어가면서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렷또렷 살아있고, 한 구절 한 구절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염송해야 하오.
이렇게 염불을 오래 계속하다 보면 저절로 한 덩어리가 되어, 염불삼매를 몸소 증험하고 서방 정토의 풍취를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
철오(徹悟:夢東) 선사께서 일찍이 “정말로 생사를 위해 보리심을 내고 깊은 믿음과 발원으로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라(眞爲生死, 發菩提心, 以深信願, 持佛名號).”고 가르치셨소. 이 16글자는 정말로 염불법문의 큰 강령(綱領)이요, 종지(宗旨)이오.
대보리심을 발하고 진실한 믿음과 서원을 내어, 평생토록 오직 나무 아미타불 명호만 굳게 지니고 염송하기 바라오.
염송이 지극해지면 모든 감정을 잊어버리고 염송 그 자체가 무념(無念)이 되어 선종과 교종의 미묘한 의리(義理)가 저절로 철저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오.
그러다가 임종에 이르면 부처님과 보살님이 몸소 오시어 직접 맞이해 갈 것이니, 곧장 최상의 품위에 올라 앉아 무생법인을 증득하게 되오.
오직 한 가지 비결이 있을 따름이니 정말 간절히 일러 주겠소.
정성을 다하고 공경을 다하면, 미묘하고 또 미묘하고 미묘하리로다.(竭誠盡敬, 妙 妙 妙 妙) - 310,311,314,317,330쪽 -
21.
무릇 불보살님께서 몸을 나투심에는, 일반 범부 중생과 똑같이 보이시면서, 오직 도덕으로 사람들을 교화할 뿐, 결코 신통력을 드러내시지 않는다오. 만약 신통력을 드러낸다면, 곧 더 이상 세상에 머무를 수가 없게 되오. 오직 미치광이 짓을 하는 분만이 신통력을 드러내도 무방하오. - 412쪽 -
22.
절에 나가 계율을 받지 못할 경우는 단지 부처님 앞에 지성으로 간절하게 과거의 죄업을 참회하길 일주일간 지속한 다음, 스스로 서원하고 계율을 받으면 되오.
'제자 저 아무개는 오계를 전부 받아 온전히 지키는 우바새(우바이)가 되기를 서원합니다. 이 목숨 다하도록 살생하지 않겠으며 이 목숨 다하도록 도둑질 하지 않겠으며, 이 목숨 다하도록 거짓말 하지 않겠으며, 이 목숨 다하도록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위와 같이 세 번 반복하여 서원하면, 곧 부처님한테 계율을 받는 게 되오. 단지 자신의 마음과 뜻으로 받아 지니기만 하면, 곧 그 공덕은 스님을 통해 의식을 갖추어 수계하는 것과 전혀 우열의 차이가 없소. 스스로 서원하여 계율을 받는 게 불법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되오. 이는 범망경에 나오는 여래의 거룩한 가르침이기 때문이오. - 462쪽 -
23.
정토법문은 아가타약처럼 온갖 병을 다 고칠 수 있소. 이를 모르면 얼마나 애석하고 비통하겠소? 그런데 알고도 수행하지 않거나, 또는 수행하더라도 마음과 뜻을 오롯이 집중하지 않는다면, 더군다나 얼마나 애석하고 비통하겠소? - 481쪽 -
첫댓글 염불행자는 인광대사의 글을 꼭 보시여야 합니다. 다행히 김기수님의 번역본이 잘 되여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김기수님도 번역하는데 온 힘을 기울렸다고 합니다 저도 중요부분을 간추려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법공양책을 만들었고 그것을 20여번은 본것 같습니다 소중한 법문을 올려주신 덕해보살님께 감사드림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