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 시인의 시집 [굿모닝 강아지풀] 이
2009년 8월, 동학사에서 나왔다.
한희정 시인은
제주 서귀포에서 출생하여
2005년 {시조21}로 등단하였고
제주작가회의 회원, 수요동인 등으로 활동중이다.
'시인의 말' 일부를 옮겨 둔다.
"...굽이굽이 길을 걸어 그간 써온 시편들을 추스르고 보니
지나온 시간들이 알싸하게 스쳐간다. 시인이라는 이름에 맞추려 애를 쓸수록
갈증은 더했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잠시 쉼터가 되어주는 옹달샘과 나무등걸이 나를 일어나 걷게 하였다.
마침내 나의 여정의 첫 도착지에 [굿모닝 강아지풀]이라는 향긋한 나무 팻말 하나를 걸어둔다...."
다음은 '꿈꾸는 들꽃의 노래, 혹은 자아의 발견'이라는 민병도 시인의 작품해설에서
발췌하였다.
"...
진정한 시쓰기란 자신이 상대에게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서로가 동등해야 하고 서로에게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훈련의 하나일 뿐이다.
시를 쓰는 마음은 좋은 시를 써서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이 되겠다는 방편이 아니다.
단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 시간이 허용하는 세상을,
나와 하나의 의미로 사랑하는 연습일 뿐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운 꽃을 아름답다고 해야 하고 아름답지 못한 꽃을 아름답지 못하다고 말해야 한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몸이며 자신의 생각이며 자신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 한 편의 좋은 시가 지닌 효능은 어떤 것일까......결국은
시인의 자기만족이나 자기발견, 또는 진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자면
결국은 자기를 넘어서야 하고 시대적 소명(召命)에 부응하는 역할이 전제된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주관이 서야 하고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주관과 철학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깊이 자신을 응시하고 차별화된 생각을 도출해 내기 위해
오랜 사유 속에 젖기도 한다. 자신을 긴장시키지 않고 깊은 사유에 들기가 어렵다고 본다면
시인은 언제나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자신과 대립해야 한다. 어떤 절실함을 지니지 못하면 결코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절실함에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독자들이 겪은 체험 속에서 공감할 수 있어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서 읽은 한희정의 시가 모두 독백이나 자기발견으로만 일관하고 있다면
신인이 낸 여느 시집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 작업을 주목하는 까닭은
그의 많은 시편들에서 시대적 소명이나 역할에 따른 간절함이나 절실함이 묻어 있고
나름대로 그 절실함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
첫눈 / 한희정
새처럼 발소리 죽이며
새벽녘에 당도한 자
어느 발목 시린
노숙의 밤을 넘기고
저토록 눈부신 산이
내게 한발 다가와
늦잠결 아름 가득
안겨 받은 꽃다발처럼
처음 보는 사람 앞에
쏟아 부은 넋두리처럼
빙점에 피워 올리는
복수초의 안간힘처럼
무수히 침엽에 찔린
너와 나 상처를 덮고
문 앞에 쌓인 눈만큼
면죄부를 받아낸
뒤따라 내려온 아침이
초인종을 누른다.
*******************************
협죽도 / 한희정
이쯤에서 이별이라니
이쯤에서 이별이라니,
연일 불볕더위 공항길이 낮술에 타고
끝끝내 독설을 참으며
꽃이 떼로
붉어라.
********************************
겨울꽃 / 한희정
오죽 말을 아꼈으면 영하권에 꽃 피울까
칼날 바람 앞에 태우다 만 한지조각
<빈녀음> 난설헌 시구(詩句)가 눈꽃보다 차갑다.
슬픔이 깊어지면 햇볕에도 눈물을 짠다
한 뼘 광목천 밖 애기무덤 둘을 두고
숙이고 말을 더듬는 수선화는 피어서.
허균 오라비가 역모 죄로 끌려간 뒤
하얗게 등골이 휜 청상의 긴 겨울밤 같은
일어나 수(繡)실을 잇던 그 여인을 여기서 보네.
********************************
서귀포 이야기 2 / 한희정
"이어도
이어도 사나"
미역밭을 건너와서
열 길 물 속
저승길
절로 드는 숨비소리
만삭의 칠십 리 바다가
눈에 가득
고이네.
*************************
서귀포 이야기 8 / 한희정
서귀포에 핀 꽃에선
꽃술마다 파도가 친다
여태껏 입술이 푸른
더 아파라, 해녀의 바다
어젯밤 눈물 다 씻고
달개비꽃 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