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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이혼 그리고 재혼
♣ 두 번째 상황 - 목사 아내가 떠나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상황 역시 결혼, 이혼 그리고 재혼의 주제를 연구하도록 내게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복음 사역자인 어떤 목사님이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도망치는 바람에 다섯 아이들과 함께 남게 되었다. 그녀는 전에도 두 번이나 그런 짓을 했지만, 남편이 다시 받아 주었다. 내 생각에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마침내 떠났고 돌아올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다섯 아이들과 함께 남겨지게 되었다.
장남이 열두 살쯤 되고, 막내는 18개월쯤 되었다. 그가 재혼하지 않는 한, 그는 용인이 되어서 그의 교단에서 계속 목회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35세에서 40세 사이의 나이에 다섯 아이들을 둔 남자는 아내가 필요하다. 그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필요했다. 그래서 재혼을 했다.
그런데 그는 재혼했기 때문에 목회하던 교회를 사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순복음 교단 소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목사 회원증을 포기해야만 했다. 더 이상 다른 목사님들과의 교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를 설교자로 부르셨었다. 그는 고등학교 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수백 명의 교인들을 모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서 그는 그 도시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를 목회하게 되었다.
순복음 교회 목사님들 중 대다수를 그를 비난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을 축복하실 수 있는가? 그는 간음 중에 살고 있는데 말이야."
같은 순복음 교단 소속의 목사 한 분이 내게 말했다.
"그의 아내가 세 번째 떠나서 다른 남자와 줄행랑친 후에, 내가 가능한 도움을 주고 싶어 잠깐 들렸지요. 그의 차는 집 앞 진입로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앞문을 노크했더니, 아무 대답이 없었어요. 18개월 된 막내를 제외하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 있었죠. 나는 그가 틀림없이 집에 있으리라는 걸 알았죠. 왜냐하면 그의 차가 진입로에 서 있었으니까요. 그내서 내가 뒤도 돌아갔죠. 그가 뒤쪽 현관에서 그 어린 것을 두 팔로 안고 있는 걸 보았는데, 막 울고 있더라고요."
이 목사님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목사님을 결코 비난할 수 없었어요. 그 아이들에게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알았거든요. 그에게는 아내가 필요했어요. 나는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의 재혼은 내가 여태까지 받았던 가르침과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었죠. 하지만 나는 그를 비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순복음 바이블 컨퍼런스가 열렸다.
우리 주에서 대표 되시는 분이 설교를 했다. 그는 설교 가운데 재혼했던 이 목사님을 언급했다. 그가 이 목사님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가 누구에 대해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이틀간의 이 바이블 컨퍼런스가 끝나자, 우리 교회 교인 중 몇 사람이 그 문제에 대해 내게 질문을 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그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주의 대표 되시는 목사님이 말한 것을 그대로 반복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목사님은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젊은 사람입니다. 나는 선배들과 함께 갈 뿐입니다."
그러고서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주간 주말에, 나의 장인 장모님께서 아내와 나를 방문하러 내려오셨다. 그리고 주일 저녁 예배가 끝난 후에, 아내와 두 아이들은 그들과 함께 외가로 갔다. 나는 수요일 저녁 예배 후에 처갓집으로 갈 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두 아이들이 처갓집에 있는 동안 목사관에 혼자 있었다. 밤 10시 15분에, 나는 손을 뻗어 전등을 껐다. 과거 1940년대에는 방 한가운데에 전등이 달려 있었다.
그 다음, 나는 침대 머리맡에서 무릎을 꿇었다. 왜냐하면 바로 잠자리에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등을 끄자 방안은 아주 깜깜했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여전히 사물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겨우 한두 마디를 했을 뿐인데, 갑자기 방 안에 불이 켜지는데 전등을 켜놓았을 때보다 더 환해졌다.
나는 방 안의 가구 하나하나를 다 볼 수 있었다. 한낮의 태양보다 더 밝았다! 방 전체가 환해졌는데, 나는 이런 음성을 듣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종을 비난하는 너는 누구냐?"
내가 말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종을 비난하지 않았는데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개 목사님에 대해 네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느냐?"
주님께서는 그를 "목사님"이라고 부르셨다.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저는 정말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개 목사님의 말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그가 말한 것을 그대로 반복했을뿐인데요."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말한 것을 네가 반복했을 때, 그것은 네가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방어조로 말씀드렸다.
"주님! 아시다시피, 그는 재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의 종을 비난하는 너는 누구냐?"
내가 말했다. "주님, 그가 잘못한 게 아닙니까? 제 말은 그게 아무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고, 또 그게 우리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란 뜻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의 종을 비난하는 너는 누구냐?"
주님은 내 질문에 답변도 하지 않으시고 다시 물으셨다.
"그는 너의 종이냐, 아니면 내 종이냐?"
내가 대답했다.
"만일 그를 어떤 사람의 종이라 한다면, 그는 주님의 종이죠. 그는 명백히 저의 종은 아닙니다!"
"만일 그가 나의 종이라면, 다른 사람의 종을 비난하는 너는 누구냐? 만일 그가 나의 종이라면, 나는 그를 세울 수 있으며, 나는 그를 세울 것이다."(주님은 성경 로마서 14:4의 말씀에 근거하여 실제로 나를 바로잡아 주고 계셨다.)
내가 말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자 불이 꺼졌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내 입을 봉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나로 하여금 결혼, 이혼 그리고 재혼의 주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주제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교단의 어떤 지도자들에게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서 말한 뜻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몰라요"라고 그들은 대답하곤 했다.
"아니,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라고 나는 말하곤 했다.
나는 고린도전서 7장을 내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목사님이나 사역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그 당시 지도자급 성경 교사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그것을 내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뒤로 빼면서, "나는 몰라요"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모를까?'
그래서 나는 결혼, 이혼 그리고 재혼에 관해 다시 말씀을 파고 들었다. 나는 내내 이 한 가지 주제만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주일 오전, 주일 밤, 수요일 저녁에 설교를 해야만 했다.
나는 또한 다른 영역의 주제들도 연구하고 다른 일들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분의 시간만 있으면, 나는 이 주제를 연구하곤 했다.
♣ 세 번째 상황 - 여동생 남편이 떠나다
그러던 중 진짜로 해답을 찾아내도록 나를 촉발시킨 세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여동생의 남편이 아내를 떠나버린 것이다. 전에 내가 이 문제로 매제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매제가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고, 도박에다, 음주에다 행실이 나쁜 것을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돌봐야할 가족이 있었다.
그가 내 누이를 떠나 다른 여자에게로 가고 난 후에, 나는 서부 텍사스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550킬로 이상 된 거리를 달렸다. 그 당시에는 고속도로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밤새도록 운전해 가서 그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는 세일즈맨이었다. 그가 사업장에서 나올 때, 내가 말했다.
"덕,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나는 다정하게 그에게 말했는데 눈물이 글썽거렸다.
"주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보내셨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어."
그는 울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더 많이 울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그의 두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가 말했다. "난 그 말씀을 믿어요. 내가 목사님을 알잖아요. 나는 수년간 목사님을 따랐어요. 나는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을 믿어요."
내가 말했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며 나보고 가서 자네에게 말하라고 하셨네."
나는 그에게 구원을 받도록 이야기했다. 그가 말했다.
"목사님 말씀이 옳아요. 목사님이 옳다는 걸 나는 알아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 좋아. 덕, 그러면 이제 다른 각도에서 자네에게 말하겠네. 만이 자네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만일 자네가 하나님을 섬기고 싶지 않다면, 적어도 자네 자식들을 위해서 마음을 바꾸어주게. 자네 어린 아이들을 생각하게나. 나는 깨진 가정 출신이네. 나는 그 비참함을 잘 알아. 나는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사람들이 나에게 침을 뱉고, 발로 차고, 나를 두들겨 팼어. 나는 온 세상을 향해 분노했지."
그가 말했다.
"목사님 말씀이 옳다는 것, 나는 알아요. 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덕, 만일 자네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자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관대함과 배려를 보여주게. 적어도 관대한 인간이 되어 주게. 적어도 사람이 되어 주게. 이 나라의 모든 여자들과 놀아나지는 말게."
그는 펄쩍 뛰었다! 내가 채찍으로 그를 갈긴 듯이 그가 펄쩍 뛰었다. 그러더니 그가 울고 흐느끼며 말했다.
"목사님이 옳다는 것, 알아요. 나는 개 같은 놈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대로 지낼 겁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어요."
그러자 내가 말했다.
"나는 내가 할 도리를 다 했네.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하신 일을 나는 다 했어."
그는 울면서 떠나갔다.
나는 내 집회 장소로 돌아왔다.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나는 교회 본당의 바닥에 누워 그를 이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서 일어나라."
나는 일어나서 말했다.
"왜요?"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를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마라."
"주님!" 내가 말했다.
"그는 잃어버린 자예요. 그는 지옥에 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알아."
"그렇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지 마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는 그의 우상들과 연합이 되어 있다. 너는 구약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말한 '에브라임을 버려두라'(호4:17을 보라)는 말씀을 읽어 보았느냐? 네가 아무리 장수한다하더라도 그를 위해 그런 기도를 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는 곧 죽어 지옥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아시는가? 내가 믿기로는, 하나님은 우리가 과거를 아는 것보다 미래를 더 잘 아신다. 나의 전 매제인 덕이 이른 나이에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은 것이 나는 이해가 된다.
한편, 내 여동생은 다섯 아이들과 함께 남겨졌다. 그녀는 그들을 부양하려고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덕은 그녀를 돕게 되어 있었지만, 제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동전 한 닢 지원하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위해 많이 도와줬는데, 드디어 내 여동생은 멋진 신사를 만나 결혼을 했다. 우리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시다시피 그녀는 재혼을 하면 안 되었다. 교회는 그녀가 불륜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쯤에 결혼을 했다. 그들이 우리를 방문하러 왔다. 크리스마스와 신년 사이에 그들은 우리 교회 예배에 우리와 함께 참석했다. 새해 첫 주일에 내가 설교했다. 내 여동생이 한때는 교회에 다녔지만, 그녀가 겪은 그 모든 풍상 때문에 교회를 떠났고 다니지를 않았다. 그녀는 영적인 교제가 낮은 상태에 있었다.
한편, 나는 이러한 성령의 나타남을 내 65년 사역 중에 딱 세 번 목도하였다. 내가 막 설교를 마칠 때쯤에 갑자기 빛이 번쩍하였다. 건물들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지만, 마치 거대한 플래시 전구가 터진 것 같았으며, 모든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게, 무엇인가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는 만큼 빠르게 벌어진 일이었다. 갑자기 제단에 너댓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거기에 왔을까? 우리는 도저히 그걸 헤아리지 못했다.
내 여동생은 세 번째 회중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통로 곁이 아닌, 회중석 한가운데에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회중석에서 나오려면, 다른 사람의 무릎을 스쳐 지나가야만 한다. 만일 누가 당신을 지나치게 되면,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내 여동생은 즉시 제단 앞으로 나온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녀는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제단의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방언을 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녀를 교제하도록 회복시켜 주셨을 뿐 아니라, 또한 성령 충만도 주셨다.
교회에 의하면, 그녀는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을 할 수 없어야 마땅했다. 교회에 의하면, 주님께서 그녀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 교회에 의하면, 그녀는 간음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 일은 실제로 결혼, 이혼 그리고 재혼의 주제를 좀 더 많이 연구하도록 나를 촉발시켰다. 내 여동생은 1946년 첫날에 주님께로 돌아왔다. 내가 해답을 얻는 데는 3년이 걸렸고, 나는 1949년에 그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