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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을 쳤는데도 방안이 훤해서 도무지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다. 아까부터 훤했으니 7시는 되었지 싶어서 일어났는데 아직 여섯 시도 채 안 되었다. 우리보다 해가 좀 일찍 뜨는 것일까? 아침 온천욕을 하고--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온천욕을 자주 하는 것은 안 좋다고 한다. 급성00 앓듯이 급성 온천욕증후군이 있단다.-- 밥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였다. 어젯밤에 갔던 족욕탕과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한산하기 이를 데 없이 고요하고 깨끗한 거리 곳곳에 베고니아 화분이 층층이 놓여 있다. 청소부인 듯한 한 여인이 인도에 떨어진 꽃잎을 일일이 주워 담고 있었다. 아, 일본의 깨끗함은 바로 저런 손길에 의해서 가능하구나. 그녀의 구부린 등 위로 투명한 햇살이 나비처럼 가볍게 내려앉는다. 군데군데 동네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주 깨끗하고 상세하다. 기본기가 좋아야 새로운 기술 습득력도 뛰어나고 성과도 좋은 운동처럼 현재 ‘일본’이라는 브랜드를 일구어낸 바탕엔 저런 기본기가 탄탄하게 다져져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도야 호수를 향해 가는 길은 어디를 보아도 초록 숲이다. 북쪽 지방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를 많이 보았다. 하얀 수피가 빛나는 자작나무는 어딘지 모르게 고귀한 기품이 배어나온다. 사람으로 치자면 영혼을 팔지 않는 귀족적인 풍모다. 산은 높고 골은 깊은 듯 산간도로는 구불구불 이어진다. 몇 개의 터널을 지난다. 농촌마을은 고랭지 농사를 주로 짓는 우리나라 평창이나 횡계를 지나는 느낌이다. 감자밭과 옥수수밭이 이어진다. 가끔씩 해바라기밭도 펼쳐져 있고 작은 주택 앞엔 어김없이 꽃들이 심어져 있다. 집들은 모두 커튼을 내리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집 마당 한 귀퉁이엔 경차 한 대씩 서 있는데 도무지 사람들이 안 보인다. 그래서 그만 생동감을 잃어버린다. 갑자기 이 고요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평정의 손길이 아니라 벽걸이용 그림 속의 만들어진 풍경 같다. 박제된 고요, 사람들은 모두들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하긴 어딘가에서 이 고요를 즐기며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담소하거나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자동화된 기계들을 점검하고 있겠지. 7월 뜨거운 햇살 아래서 허리 구부리고 땀 흘리며 일하는 농업은 이제 한 세대 전의 유물 아니던가.-- 셋째 날 갔던 삿포로 맥주공장에서도 거의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자동화 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가리비 정식을 먹었다. 조개류를 싫어하는데도 아주 맛있었다. 대나무 그릇에 쪄서 나온, 연한 쑥색을 띠는 찰밥은 입에 착착 달라붙고 된장국도 구수했다. 점심 후에 한 시간 가까이 유람선을 기다리며 호수 주변을 맴돌았다.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놓았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서 하염없이 물결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도무지 자리가 나지 않았다. 머리를 맞댄 저 연인--부부?--들은 어제부터 자주 만난다.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여유로워 보인다. 그런 여유로움은 단지 경제적 풍요가 만들어낸 것만은 아니다. 삶에서 풍겨 나오는 전체적인 분위기이다. 그악스럽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을 때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느낌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도야호수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유람선을 탈 때 한국어로 설명이 나왔지만--자막이 나왔던가?-- 듣지 못했다.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이 어여쁘다. 우리나라 다도해에서 보는 섬들은 바위섬이 많은데 이 섬은 완전히 나무숲섬이다. 그러나 섬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채 그저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휘이 돌아오는 일은 참 시시했다. 문득 거제 앞바다 외도가 떠올랐다. 아, 외도에 가고 싶다. 나무와 꽃이 한데 어우러진 그 곳은 어제 본 동화의 나라 오타루의 오르골보다 유리장식들보다 더 환상적이고 순정한 마음의 행로를 따라가게 한다. 유람선에서 내리며 투덜거리는 사람들의 불평들이 호수의 아름다운 잔물결을 덮어버릴 듯하다. ‘에이, 이게 뭐람!’, 정말 그랬다. ‘뭐 이런 배 하나 타자고 여기까지 왔담’. 나도 투덜거렸다.
아직도 산에서 연기가 나는 곳을 멀리서 바라본 후 버스는 또 산길을 달려 00--메모하지 않아서 모른다. ㅎㅎ--에 우리들을 내려놓았다. 이 곳은 화산 작용에 의해 산봉우리 하나가 융기된 곳이란다. 융기 과정을 일일이 일기 쓰듯 기록하고 스케치해 둔 미 마을 우체국장 이야기를 들었다. 기록의 중요성, 그것도 삶의 기본기에 속한다. 그런데 나는 기록을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후 잠시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창고는 텅 비고 만다. 이제는 비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기본기가 약한데 무엇을 이루겠는가.
긴원피스를 입었어도 발목 부분이 가렵다. 도야호수에서부터 잔디밭을 많이 걸어서일까. 일종의 풀독 같은 것! 팔은 햇빛 알레르기로 가렵고 발목은 풀독으로 가렵고 컨디션이 점점 나빠진다. 잠시 의자에 길게 누워서 쉬었다. ‘소프트아이스크림, 제비뽑기’ 등 한국어로 호객을 하는 매점들이 더러 눈에 띈다. 이 지역 체리가 맛있다 하기에 작은 내 주먹으로 두 주먹 정도 샀는데 무려 9천원이나 한다. 짙은 자주색이 아니라 연한 주황색인데 정말 맛있어서 먹고 나니 비싸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늘은 일정이 여유롭다. 해 떨어지기 전에 다시 도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어제 호텔보다 크고 침대방이다. 커튼을 들추니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노천탕에서도 바로 코앞이 호수다. 불꽃놀이는 8시 45분부터라고 한다. 저녁을 먹고 일찍 들어와 잠시 눈을 붙이고 쉬는데 어딘선가 귀에 익은 노랫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서 어깨숄을 걸치고 나갔다. 내 귀엔 그 노래가 꼭 우리나라 노래처럼 들렸다. 축제의 시작인가 보다. 옆 호텔의 높은 무대에서 장정 두 사람이 커다란 북을 두드리고 무대 아래는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춤사위는 어찌나 움직임이 단순하고 적은지 조리를 신은 일본인에게 딱 맞는 동작 같았다. 주변 호텔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와 춤추는 원은 점점 커지고 단조롭지만 가슴을 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점점 고조되어간다. 저 춤추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나도 춤을 추어볼까? 20년 전쯤에 대학로에서 저렇게 사람들 틈에 끼어서 춤을 춘 적이 있었다. 10여 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몰입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았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러면 내게도 신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갑다.
불꽃놀이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동네를 걸었다. 어제 묵었던 동네보다 크다. 여기저기 나무 공방이 많았다. 빼빼 마른 공예가가 나무로 무엇인가를 깎고 있다. 팔찌를 하나 사고 싶었는데 손목이 너무 가늘어서 마땅한 게 없고, 목걸이는 집에도 몇 개 비슷한 모양들이 있으니 사서 뭐하랴 싶었다. 두 번째 들른 공방에서 부엉이를 샀다. 일본에서는 부엉이가 행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부엉이도 가지각색인데 얼추 부엉이 형체만 알 수 있는 모양으로 샀다. 그 부엉이가 첫눈에 들었다. 물건도 이렇게 첫눈에 드는 것이 있듯이 사람도 그렇겠지. 첫눈에 든 물건은 대체로 후회하지 않는데 사람도 그럴까. 사람을 향한 이 첫눈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나이쯤 되면 사람 보는 눈이 그 정도는 정확해야 할 텐데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 내가 말이야, 사람 좀 볼 줄 아는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하다.
형형색색의 불꽃은 하늘에서 쏟아지다가 물 위에서 솟아오르기를 반복하며 호수를 누볐다. 탄성이 쏟아졌다. 불꽃을 쏘아 올리는 배를 따라서 호숫가 산책로를 걸었다. 수많은 불꽃 모양 중에서도 공중에서 불꽃이 터지면서 낭창거리는 수양버들가지로 흔들리며 호수로 내려앉는 것은 황홀하게 아름다워 잠시 미세한 통증으로 가슴이 뻐근해졌다. 저렇게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잃어버린 별들과 별들의 강 은하수를 재현해내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도심의 온갖 문명 속에서도 결코 자연을 잊고 살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자연을 재생하며 숨통을 조이는 현대적 삶에서 오아시스를 만들어 간다. 룸메이트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오늘도 어디선가 뒤풀이가 이어질 것이다. 억지로 잡아끌지 않는 그녀의 센스가 참 고맙다.
이른 아침이다. 룸메이트 깰까봐 살금살금 움직였다. 아침을 먹고 돌아와 창문을 커튼을 들췄다. 아~. 얼 하나 없는 하늘과 잔잔한 초록 호수가 그림엽서 속 풍경이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셋째 날 일정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리들의 불만과 저녁 삿포로 시내 공원에서의 맥주축제 구경이다. 에도 시대 공원, 아이누족 민속촌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둘 중 하나를 생략했으면 오후 반나절을 자유롭게 삿포르 시내도 구경하고 재래시장에도 가고 1,000엔 숍에도 들러서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을 가까이서 좀 들여다보고 한 발 떨어져서 흘끔거리기도 하는 즐거움이 있었을 텐데, 그리하지 못했으니 이번 여행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단체관광 같이 되고 말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9시 무렵 맥주축제가 열리는 공원을 걸었다. 공원길이 1Km는 족히 되어 보인다. 왁자껄한 술판은 우리와 다른 점이 없는데 어디에도 깽판을 부리는 사람들이 안 보인다. 그래서 축제의 즐거움이 단지 구경꾼인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 일행은 너무 배가 불러서 맥주를 마시자는 말을 아무도 안 한다. 아쉬운데 금세 안내 방송이 나왔다. 9시, 이제 축제를 종료합니다. 술을 더 이상 팔지 않습니다. 뭐 그런 내용이라 한다. 일본은 그러면 정말 그 시간부터는 술을 팔지 않는다 한다. 우리는 어떨까? 밤새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아무데서나 소변보고 여기저기서 멱살잡이하고 쓰레기로 넘쳐나겠지. 화끈하게 놀 줄 아는 민족이라고 좋게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일본인들의 성향에 더 가까운지 덜 화끈한 게 좋다. 라면 골목을 걸어서 시내 유흥가를 구경하며 숙소로 돌아오는데 거리마다 불꽃놀이 축제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역시 여행에 사람 구경이 빠져서는 안 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광이 아닌 여행을 하는 기분에 살짝 들떴다.
첫댓글 3일째 이어지는 여행기는 마치 미루님의 시선속에 제가 들어 앉아 여기저기 곳곳을 응시하는 완벽한 일체의 체험기 같습니다.
코난님 같은 멋쟁이 젊은이가 응시한다니 아주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