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쯧쯧.」
늦은 저녁을 마친 뒤 TV를 보고 있던 남편이 한심한 듯 혀를 찼다. 짐작대로 화면에는 두 손이나 옷깃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웅크린 남녀들이 경찰서 보호실 한구석에 몰려 있는 모습이 여러 각도에서 잡혀 있었다, 도박인가 싶었으나 비밀 댄스홀이었다, 대낮인데도 어둑한 조명 아래서 춤을 추다가 끌려왔다는 것인데, 아나운서는「춤추다」라는 말 대신 남녀가 몸을 부비고 있었다고 표현함으로써 분위기를 더욱 부도덕하고 선정적(煽情的)인 것으로 이끌고 있었다.
「도대체가 우리 시대는 너무 쉽게 익명(匿名)이 될 수 있어서 탈이야.」
남편이 그걸 보며 개탄조로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인가 들은 말이어서 그 뒤는 듣지 않아도 어림잡을 만했다. 도회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로부터 버스 정류소 하나 정도만 벗어나도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지고 만다. 그런데 손쉽게 자기를 감출 수 있다는 것, 즉 익명성(匿名性)의 획득은 사람들을 대담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도덕적 타락, 특히 여자들의 성적(性的) 부패를 부추기는 요인이다…….남편은 대게 이런 식으로 몰고 가다가 결론은 그가 자란 고향의 동족부락(同族部落)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맺곤 했다.
「면(面) 전체가 서로 서로를 물 밑 들여다보듯 아는 사이지. 그것도 태반은 멀건 가깝건 혈연으로 묶여 있어. 여자들의 탈선이란 여간한 각오 없이는 엄두도 못 낼 일이야. 가끔씩 가까운 읍내를 이용해 보지만 그것도 이르든 늦든 알려지게 되어 있어……. 」
하지만 그런 남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내게는 무슨 반발처럼이나 떠오르는 옛일이 하나 있다. 마땅히 남편에게 죄스러워 하고, 어쩌면 스스로도 부끄럽게 여겨야 하지만, 지금은 물론 그때조차도 그저 아득하기만 하던 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 해 이른 봄 갓 교육대학을 졸업한 나는 굳이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어느 시골국민학교에 첫 부임을 하게 되었다. 군청 소재지에서 육십 리 가까이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것도, 그 너머에는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높고 험한 재를 두 개나 넘어야 되는 산골이었다.
약간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버스 정류소에 처음 내렸을 때 나는 한동안 막막한 기분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높은 산들은 일평생 나를 가두어 둘 거대한 감옥의별처럼 느껴졌고, 저만치 보이는 백여 호(戶) 정도의 마을도 사람이 모두 떠나버린 폐촌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산그늘에라도 묻힌 것인지 내가 찾아가야 할 학교가 아무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사이 함께 내린 두어 명의 승객도 모두 어디론가 가버린 후여서 나는 가까운 가겟집에나 물어볼 양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너 발짝이나 옮겼을까, 나는 피부를 찔러 오는 날카로운 빛 같은 것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 앞을 살폈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겟집 툇마루에 앉아 몽롱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어떤 사내였다. 때 묻고 해진 아랫도리는 원래의 천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이 안 갈 정도였고 물들인 군용 점퍼도 소매가 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나는 좀 전의 그 강렬한 빛 같은 것의 정체를 궁금히 여기며 자신도 모르게 그 사내의 얼굴을 살폈다. 검고 깡마른 얼굴에 우뚝 솟은 코와 광대뼈 ━ 그런데 그때였다. 나는 다시 피부를 찔러 오는 것 같은 그 빛을 느꼈다. 이내 몽롱한 狂氣 속으로 숨어들어 버렸지만 분명 그의 두 눈에서 쏘아져 나온 빛이었다.
어떤 무성한 숲길에 들었을 때, 그 잎새에서 뱀을 보면 그것은 그 숲길을 다 지날 때까지 하나의 공포이다. 그러나 그 공포는 단순한 두려움의 감정과는 다른, 신선한 충격 또는 묘한 기대와도 같은 것으로서, 무사히 그 숲길을 빠져나오고 나면 일종의 허전함이나 아쉬움이 되기도 한다. 사내의 두 눈에서 언뜻 비쳤던 그 빛도 그러하였다.
그런데 내 그런 느낌을 일순의 착각으로 만들어 준 것은 갑자기 가게 문을 열고 나온 주인 남자였다.
「 깨철이 이 노마야, 리어카부터 거기 앉아 뭐하노? 」
주인 남자는 자기보다 대여섯은 위로 보이는 그 사내에게 서슴없이 말을 낮췄다. 그걸로 보아 그 사내는 떠도는 걸인이 아니라 그 마을에 붙어사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깨철이란 그 사내는 들은 척도 않고 여전히 몽롱한 눈길로 나만 쳐다보았다. 이미 말한 대로 징그럽다기보다는 까닭 없이 섬뜩해지는 눈길이었다.
「일마가 귀가 먹었나? 일나라.」
주인 남자가 그에게 다가가 제법 소리 나게 등짝을 후려치면서 머뭇머뭇 다가가는 내게 물었다.
「어서 오소. 뭘 찾십니까?」
그제서야 나는 내 몸에 끈적끈적 묻어나는 듯한 그 사내의 눈길을 떼어내기라도 하듯 야멸차게 말했다.
「○○국민학교가 어디죠?」
「하, 그러고 보이 새로 오신다는 여선생님인 모양이구만. 가만있 자.......」
주인 남자는 갑자기 친절이 넘치는 얼굴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가게 뒤에서 여남은 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하나 나왔다.
「야, 니여 좀 온나 보자.」
「도곡아재 왜요?」
「새로 오신 선생님인갑다. 학교까지 좀 모시고 가라.」
그리고 내게 공연히 미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학교란 게 코딱지만한 주제에 조쪽 산자락에 숨어 있어서.....」
순순히 앞장서는 소년을 따라 나서려는데 여전히 깨철이란 사내의 눈길은 나를 쫓고 있었다. 그 사이 평온을 회복한 나는 짐짓 매서운 눈길로 그를 쏘아주고는 자리를 떴다.
소년과 함께 학교를 찾아가면서 얼핏 알게 된 그 마을의 인적(人的)구성은 좀 독특했다. 소년은 만나는 사람마다 꾸벅꾸벅 인사를 했는데 그게 모두 아재요 무슨 할배였다. 도회지에서 자랐고 친척이라면 1년에 한두 번씩 드나드는 큰집 작은집밖에 모르는 내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현상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급의 절반이 같은 성씨였고, 또 성이 달라도 고종이니 하는 식으로 얽혀 있었다. 드물게 보존된 동족부락(同族部落)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남북으로 지나가는 실낱같은 국도(國道) 외에는 사방이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데다가 이렇다 할 특산물도 없어 타성(他姓)들의 유입(流入)이 별로 없는 탓이었다.
첫인상의 기묘함에도 불구하고 그 뒤 나는 한참동안 깨철이란 사내를 잊고 지냈다. 물론 그는 언제나 일 없이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쪽이었고,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초라한 몰골과 몽롱한 눈길을 대하곤 했지만, 그런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새로 시작한 내 생활이 너무 바쁘고 고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내게 첫 부임지인데다 그곳에서의 생활 또한 내가 처음으로 하게 된 타향살이 였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마음도 여유를 갖게 되자 나는 차츰 주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깨철이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출신이었다. 그는 고장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곳 누구의 피붙이거나 인척도 아니었다. 어느 핸가 우연히 흘러들어와 사십이 넘은 그때까지 어른에게도 깨철이요, 아이에게도 깨철이로 살아왔다.
그 다음 이상한 것은 그의 생계였다. 나는 처음 잡일이나 막일로 지내는 줄 알았으나 나중에 보니 전혀 하는 일 없이 매일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어렵지 않게 하루 세 끼의 밥과 저녁에 누울 잠자리를 그 마을에서 얻고 있었다.
예를 들어 끼니 같으면 이렇게 해결됐다. 저녁나절 밥상에 둘러앉았을 시간이 되면 그는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간다.
「밥 좀 다오.」
누구도 그에게 말을 올리지 않는 것처럼 그 또한 누구에게도 존대를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인의 반응이었다. 대개는 그런 깨철이의 요구를 귀찮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다.
「등신이라도 먹어야 살제. 여 밥 한 그릇 말아줘라.」
그러면 주인 아낙은 큰 보시기나 양푼에 밥, 국, 김치 할 것 없이 한꺼번에 말아 내밀고 그걸 받아든 그는 멍석 귀퉁이나 마루 끝에 앉아 후룩후룩 마시고 가는 것이었다.
「잘 먹고 간다.」
「고맙다 꼬는 안카나?」
「내 밥 내 먹고 가는데 무신 소리.」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나가면 그 뒤 두어 달은 그 집에 얼씬도 않아다. 내가 가만히 헤아려 보니 그 날수가 대개 마을 호수(戶數)와 비슷했다.
잠자리도 마찬가지였다. 대개는 정자나 동방(洞房)을 빌어 자는데 그도 날이 좀 춥거나 미처 군불이나 나무를 준비하지 못한 날이면 어김없이 마을을 돌았다.
「너 집에 좀 자자.」
「목욕하고 오믄 재워주마.」
「이불 필요 없다. 니는 너 마누라한테 가서 엎어지면 될꺼 아이가?」
대개 그렇게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러고 보면 그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는 확실히 묘한 데가 있었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반편이나 미치광이 취급을 했지만, 그 뒤에는 어딘가 그가 정말은 그렇지 않을는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애써 감추려는 어떤 꾸밈이나 과장 같은 것이 엿보였다. 여자들도 그를 반편이나 미치광이 취급하는 것은 남자들과 다름없었지만, 그런 그녀들을 지배하는 심리 뒤에는 단순한 동정 이상 어떤 보호 본능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알 수 있는 이유였다.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요, 무슨 남 안 가진 기술이 있지도 않았으며, 재담이나 익살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내 의문에 희미한 암시 같은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그곳에 부임한 지 여섯 달인가 일곱 달쯤 되는 어느 날, 나는 퇴근길에 하숙집 앞 공터에서 큰 소동이 일어난 것을 보았다. 어떤 젊은 남자가 말 그대로 깨철이를 짓뭉개고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때리는 쪽도 맞는 쪽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일이었다. 젊은 남자는 지게작대기든 장작개비든 손에 잡히는 대로 말없이 개철이를 후려치기만 했고, 깨철이는 또 깨철이대로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린 채 이따금씩 짧은 신음만을 토할 뿐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보고 있는 사이에 여기저기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 무자비한 폭행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 화천이, 이무슨 못난 짓고? 우리가 집안끼리 모두 서로 보고 있는데 설마 그런 일이야 있었을라꼬.」
「화천아재, 진정하소. 이 빙신이 무슨 짓을 하겠능교?」
「맞다 화천이 니 낯 깎이고 집안 우세다. 우리 문중이 여기 삼백 년 세거(世居)해 왔지만 서방질로 쫓기난 며눌네는 없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말렸는데, 내게는 어쩐지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같이 들렸다.
「보소 화천 양반요. 화천댁 체면도 좀 생각해 주소. 세상에 어디 남자가 없어 저런 빙신하고 뭔 일을 벌이겠능교.」
「맞지러. 화천아지뱀 같은 멀쩡한 신랑 놔두고 뭣때매 저런 병신과 ......... 생가람 잡지 마소.」
「억지라도 유분수제. 마흔이 넘도록 색시 얻을 꿈도 안 꾸는 고자보고.....」
좀 나이가 지긋한 여자들도 대게 그렇게 말렸는데, 그 말투는 그가 병신이라는 것이 마치 그를 구해줄 무슨 영험한 부적이라도 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더욱 이상한 것은 아직 나서서 말릴 처지가 못 되는 좀 젊은 아낙네들이었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성난 눈길로 깨철이가 아니라 장작개비를 휘두르는 젊은 남자 쪽을 보고 있었다.
다행이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갑작스런 소동을 통해 막연하게나마 깨철이의 존재가 마을 사람들에게 묵인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모두가 모두에게 혈연이나 인척이라는 것은 동시에 모두가 모두의 감시자, 특히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감시자란 뜻도 되었다. 깨철이의 존재는 거기서 오는 그 마을의 폐쇄성 중에서 특히 성적인 것과 어떤 연관을 가졌음에 틀림없었다.
나의 그런 추측은 언젠가 개울가에서 무심코 엿듣게 된 그 동네 아낙네들의 수군거림을 통해서 뚜렷해졌다, 그 날은 무더운 여름밤이었는데 발이라도 식히려고 개울가에 나갔던 나는 수면의 반사작용 덕인지 꽤 먼 곳의 수군거림까지 들을 수 있었다.
「영곡댁 알라(애기) 깨철이 닮은 것 안 같더나?」
「형님, 그 카지 마소. 또 애매한 깨철이 초죽음시킬라꼬.」
「내가 뭐라카나? 그냥 해 본 소리다.」
「그래도.... 깨철이는 갈 데 없는 빙신 아입니꺼?」
「글체, 빙신이제. 깨철이는 빙신이라.」
그녀들은 마치 서로 다짐하듯 그렇게 끝을 맺었는데 그 어조에는 어딘가 공법 자끼리의 은근함이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철이의 숨겨진 무서운 면을 본 느낌과 함께 마을 아낙네들이 가장 경멸스럽게 그를 얘기할 때조차도 그 뒤에서는 이상한 보호 본능 같은 것이 느껴지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깨철이가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하루 세 끼 밥과 누울 잠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절반 이상이 그런 아낙네들에 힘입은 것이리라. 그러나 나머지 절반, 즉 남자들이 그와 같은 꺠철이의 존재를 묵인하는 데 대해서는 여전히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단조로운 생황과 그 무료함에 자극된 까닭모를 호기심으로 제법 세밀하게 마을과 깨철이를 관찰한 결과였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통틀어 여섯 학급, 그나마 정원이 차지 않는 반도 있을 정도인데다, 워낙이 산골이라 감사나 시찰 같은 것도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학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더 이상 깨철이나 그 마을을 관찰하고 있을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그 해 여름 방학을 집에서 보내던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해수욕을 갔다가 당시 대학교 4학년이던 지금의 남편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인가 싶었으나 차츰 우리 둘은 뜨겁게 발전했다. 그가 나와 한 도시에 산다는 것 외에도 취미나 성격상의 닮은 점이 우리사이를 생각보다 빨리 가깝게 만든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2학기에 그 마을로 돌아가서부터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그의 편지를 읽는 것과 거기에 꼬박꼬박 답장하는 것만으로도 밤이 짧을 지경이었다. 내 머리는 언제나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차고 상상은 또한 언제나 그가 있는 도시를 맴돌았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도무지 내 흥미를 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해의 나머지가 가고 다시 이듬해 봄이 왔다. 다행이 양쪽 집에서 모두 크게 반대가 없어 졸업과 함께 나와 약혼한 남편은 이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렵을 전후하여 나는 이미 남자를 깊이 하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겨울방학 때도 이미 사흘간의 여행을 남편과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특히 약혼 후에 맞은 학년말 휴가는 거의 입대를 앞둔 남편과 함께 보낸 셈이었다.
입대 후에도 남편의 홍수 같은 편지는 계속 되었고 오히려 전보다 더욱 달아 오른 나는 그 답장에 열중했다. 마을 어디선가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살피는 그 눈길에 가끔씩 섬뜩해 할 때가 있긴 해도 깨철이는 여전히 나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다가 깨철이가 느닷없는 충격으로 나에게 덮쳐 오게 된 것은 남편에게 닥친 뜻밖의 변화 때문이었다. 입대한 지 다섯 달인가 여섯 달 만에 남편이 월남 전선으로 차출된 일이었다. 3년만 조용히 기다리면 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처음 그 소식을 듣자 정신이 아뜩하였다. 그때만 해도 월남에 가는 것은 곧 죽을 땅으로 가는 것처럼 여기던 때라 나는 거의 절망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공포는 이내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불타올랐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뜨겁게 타오르게 하는 세찬 그리움의 불꽃이었다.
나는 아무런 부끄럼 없이 남편에게 썼다. 단 한번,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다시 한번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무슨 수를 쓰든 꼭 한 번 다녀가 달라고. 남편의 답장은 곧 왔다. 그것은 반갑게도 파병 전에 1주일 정도의 휴가가 있으리라는 것과 그 기간 중 며칠을 빼내 나를 만나러 오리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남편이 오기로 되어 있는 그 1주일을 나는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보냈다. 그러나 남편은 끝내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것이지만, 그때 남편은 친구들과 어울려 지나치게 마신 바람에 나에게서 보내려고 비워둔 이틀을 앓아 누워버린 탓이었다.
남편이 올 수 있는 마지막 날, 오후 5시 막차까지 그냥 지나가 버리자 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허탈한 심경이었다. 결근이라도 하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 못한 것이 그제서야 뼈저리게 후회되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은 그런 허탈한 가운데서도 식을 줄 모르고 달아오르는 내 몸이었다. 아니, 그 이상, 남편의 품에 안길 것을 상상하며 보내 온 지난 1주일보다 그가 이제는 올 수 없다는 것을 뚜렷이 알게 되면서부터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허탈감 못지않게 내 몸을 사로잡는 그 묘한 열기에 취해 거의 몽롱한 기분으로 버스 정류소를 떠났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소나기에 언뜻 정신이 든 것은 버스 정류소와 하숙집의 중간쯤 되는 길 위에서였다. 이미 초가을에 접어들고 있었음에도 장대 같은 소낙비였다. 얼결에 주위를 둘러본 나는 길가에 있는 조그만 창고를 발견하고 그리로 뛰어갔다. 처음 나는 그 처마에나 붙어 서서 비를 긋고 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워낙 빗발이 세고 바람가지 일어 차츰 빗장이 질려 있지 않은 함석 문께로 밀리게 되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빗발은 점점 세어져━이윽고 나는 함석 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 비료 같은 것들을 쌓아 두는 그 창고는 그날따라 텅 비고 조용하였다. 혹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그 지나친 고요에 차근히 창고 안을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열려진 문틈으로 쏟아지는 소낙비만 망연히 바라보았다. 지나친 방심이라기보다는 작은 벌레들처럼 스멀거리며 내 몸을 돌고 있는 그 묘한 열기에서 깨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어쨌든 창고 안을 자세히 살피지 않은 것은 큰 실수였다. 튀는 빗발을 피해 내 몸이 완전히 창고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어둠 한 구석에서 누군가가 재빨리 달려 나와 창고 문을 닫고 빗장을 질렀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누구예요? 문 열어. 소리 지를 테야.」
나는 그 갑작스런 사태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떠들어야 소용없어, 소나기 오는 들에 사람 다니는 것 봤나?」
약간 쉰 목소리와 함께 집게 같은 손이 내 팔목을 죄었다. 처음 그림자가 퍼뜩할 때의 직감대로 깨철이었다. 그가 누구인 것을 알자 이상하게도 나를 사로잡고 있던 공포가 일순에 사라졌다.
「깨철이지? 이거 못 놔? 」
나는 제법 마을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러나 그는 대신 창고바닥에 깔린 짚 덤불 위에 나를 쓰러뜨리더니 내 치맛자락을 거칠게 감아쥐었다.
「험한 꼴로 하숙집에 돌아가기 싫거든 곱게 벗어.」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에게서 빠져나오려고 기를 썼다. 그런 나를 덮쳐누르고 있던 그가 다시 뜨거운 입김을 내 귓가에 뿜으며 중얼거렸다.
「이 깨철이 다른 건 몰라도 언제 너희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지금 네 몸은 달아 있을 대로 달아 있어.」
그 말을 듣자 이번에는 묘하게도 내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대신 잠깐 잊고 있었던 묘한 열기가 다시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내 귀에다 그가 다시 이죽거렸다.
「오후 내내 지켜보고 있었지. 정류소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기다리고 서 있을 때부터......」
그러면서 그는 능란하게 내 몸을 더듬었다. 그런 그는 이미 평소의 초라한 차림이나 추괴한 용모와는 무관한, 남자라는 하나의 추상이었다. 나는 차츰 몽환(夢幻)과도 흡사한 상태에 빠져들면서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말았다. 회상하기도 민망스럽지만 어쩌면 그때 나는 당했다기보다는 차라리 그와 한차례의 정사(情事)를 즐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남의 아내 된 여자로서 한 가지 변명을 삼을 것이 있다면, 그 절정의 순간에 내가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 다름 아닌 남편의 얼굴이었다는 것 정도일까. 그 일이 있고 난 뒤의 한동안을 나는 은근한 걱정에 잠겨 보냈다. 깨철이가 다시 내 방으로 뛰어들지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그 일이 동네방네 알려져 내 삶에 어떤 치명적인 위해(危害)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죄의식이나 도덕적인 가책으로 괴로워한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은 지금에 와서 보면 한심스럽다기보다는 기이한 느낌이 든다.
우려와는 달리, 깨철이는 그 뒤 신통하리만큼 내 주위에는 얼씬도 않았다. 나에 대한 무슨 수상한 소문이 마을을 떠도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당한 엄청나다면 엄청나달 수도 있는 그에 비해 너무도 깨끗한 뒤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간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 쉽지 않은 절제와 함구가 꺠철이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보호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그가 내가 우려하던 사태로 몰고 간다 하더라도 나만 완강하게 부인하면 결정적인 불리(不利)를 입는 것은 그 자신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을 아낙네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어쨌든 그 일로 나는 추측과 상상 속에 숨어 있던 그의 참모습을 확인함과 동시에 더욱 완전하게 그 마을 아낙네들을 이해하게 된 기분이었다. 극단으로 말한다면, 그는 모든 마을 아낙네들의 연인 또는 잠재적 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꺠철이의 존재를 묵인하는 그 마을 남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다시 얼마간의 세월이 필요했다. 계기는 그 해 겨울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오후의 텅 빈 교무실에서였다. 그 날 우연히 그 마을 출신의 남자 교원 하나와 단둘이 난로 가에 마주 앉게 된 나는 진작부터 그에게서 듣고 싶던 깨철이의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 보았다.
「그는 백칩니다. 성불구자요.」
표현은 달라도 그 남자 교원의 주장 역시 보통의 마을 남자들과 다름이 없었다. 펄쩍 뛰듯 나서는 그를 보자 나는 이상스레 심술궂은 기분이 들며 그동안 내가 관찰한 것들을 증거로 대듯 차근차근 늘어놓았다. 물론 내 자신의 이야기만은 쏙 뺀 채였다.
「정말 놀라운 관찰력이십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도 최근에야 짐작한 일이죠. 한 선생님께서 그렇게 예리하게 살피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 남자 교원은 나중에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수긍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잡아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남자 분들까지 그 사람의 존재를 묵인하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우선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하나는 얄팍한 자존심이고 다른 하나는 영악한 계산일 겁니다.」
「자존심과 계산?」
「얄팍한 자존심이란 자기가 당했을 경우에 해당됩니다. 깨철이에 대한 우월감을 지키기 위해 그 따위 인간에게 아내를 빼앗긴 것을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죠. 그보다는 멀쩡한 그를 병신이라고 우기는 편이 속 편합니다. 또 영악한 계산이란 남이 당했을 경우에 깨철이를 용서하는 방식이죠. 아시다시피 이 마을은 전부가 한 문중이고 아니면 인척들입니다. 피붙이거나 사돈끼리 배가 맞아 집안 망신을 당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뒤탈 없는 깨철이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런 합리적인 해명보다는 차라리 어떤 악마적인 것의 침해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불안을 즐기는 피학성향(被虐性向)이나, 자기들로서는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도덕과 인습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깨철이와 자기들을 동일시(同一視)함으로써 얻어지는 보상심리 같은 것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었지만, 지나친 비약 같아 대신,
「그렇다면 저번에 동네 가운데서 깨철이를 두들긴 사람은 어째서죠 ?」
「이건 제 관찰입니다만, 깨철이에게도 어떤 룰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젊은 층은 피한다든가, 같은 상대와 두 번 다시 되풀이는 않는다든가━왜냐하면 젊은 남편은 종종 앞뒤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수가 있고, 나이 지긋한 남자라도 여편네가 되풀이 그런 짓을 할 때는 참지 못하니까요. 그때도 아마 깨철이가 그런 식의 어떤 룰을 지키지 않아 생긴 소동일 겁니다.」
그러다가 그 남자 교원은 내가 타성(他姓)이고 또 아직 미혼이라는 걸 떠올렸는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어물어물 말을 맺었다.
「뭐, 이것은 순전히 제 추측입니다. 한선생님께서 이미 세밀하게 관찰하신 뒤끝이라 함부로 말해 보았읍니다만 ━ 우리가 방금 나눈 대화, 혹시라도 마을로 흘러나가 말썽이 안 되도록 각별히 유의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그는 표정까지도 흔한 그 마을의 중늙은이들을 닮아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깨철이의 전력을 물어 보았다. 그러나 그때 이미 그 남자 교원은 그 화제의 흥미를 잃고 있었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특별히 이상할 건 없죠. 다른 곳에도 그와 같이 정체 모를 섬 같은 인물들이 흔히 있으니까요.」
그 뒤 내가 그 마을을 떠난 것은 부임한 날로부터 3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다. 군에서 제대한 남편으로부터 지금의 직장에 취직이 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나는 곧 그와의 결혼식을 위해 학교에 사표를 냈다. 그런데 워낙이 머릿수를 맞춰둔 교원이라 내가 그 날로 떠나 버리면 수업을 중단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사흘이나 더 기다려 후임자와 맞교대를 하고서야 학교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그 마을을 떠나던 날이었다. 마침 대학 후배였던 내 후임자는 버스 정류소까지 나를 전송하러 나왔다. 그런데 정류소 앞가겟집 툇마루에 언제 왔는지 깨철이가 웅크리고 앉아 처음 나를 보았을 때와 똑같은 눈으로 내 후임인 여선생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그녀에게 깨철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혈연이나 인척으로 속속들이 기명화(記名化)된 그 마을에 유일하게 떠도는 익명(匿名)의 섬이었다. 만약 그녀에게도 대부분의 그 마을 아낙네들처럼 혹은2년 전 어느 날의 나처럼, 분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폐쇄되고 억제된 성(性)이 있다면, 역시 그 익명의 섬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 후임자에게 충고하는 대신 밉살맞을 만큼 끈끈하게 그녀를 살피는 깨철이를 약간 쌀쌀맞은 눈길로 쏘아 주었다. 그도 그런 내 눈길을 맞받았다. 그 때, 착각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의 눈길에서 희미한 웃음 같은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려 비탈 아래 펼쳐진 논밭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그 땅 어느 모퉁이에도 그의 것은 흙 한줌 없고, 그 집들 어디에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그가 누울 방 한 칸 없는데도, 마치 그 모든 걸 소유한 장자(長者)처럼, 도는 제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