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생겼어요.
이곳에 부임한 첫 주일미사의 영성체 때에 아주 키가 작은 여자 아이(로사)가 어른들 틈에 끼어 영성체하러 나왔습니다. 자기 차례가 되자 손을 내밀었습니다. 너무 어려 보여 첫영성체 했냐고 물었더니 했다고 하여 의아해하면서도 성체를 영해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사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전임 신부님이 후임인 저를 생각하여 2학년인 로사도 미리 첫영성체 교리반에 받아들여 첫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무슨말인고 하니, 다음 해에 첫영성체할 대상은 로사 한명인데, 후임인 제가 와서 한 명을 데리고 첫영성체 교리반을 하기에는 형편이 너무 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남평의 지리적 상황은 광주의 남쪽 경계지역으로 남평에서 가장 가까운 광주 진월동과는 180번 버스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비록 100년이 넘은 남평초등학교가 있지만 몇몇 초등학생들은 진월동에 있는 학교에 버스로 통학하거나, 여유가 있는 분들은 아이들 학교 때문에 아예 진월동 부근에 집을 얻어 광주에 살면서 이곳으로 출퇴근하기도 합니다.
하여 제가 부임했을 때에 본당에 초등학생은 로사 한 명이었습니다. 어느날 로사 할머니가 ‘전에는 주일학교도 하고 어린이 미사도 있었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 미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아이들이 없어서 어쩌면 좋겠냐고 반문했습니다. 할머니가 오늘 가서 얘기 몇 명 낳아서 데리고 오시라고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모를 따라서 매주일 미사에 오는 두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최민 요한)와 4학년 여자 아이(최수빈 이레네)입니다. 그들 가족은 광주에서 살지만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이곳 남평에 살고 계시어, 아이들의 부모가 매주일 아이들을 데리고 남평성당에 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첫영성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여 이번 여름 방학이 시작할 무렵 그 부모와 상의하여 첫영성체 교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 교리 중간 쉬는 시간에 쭈쭈바를 물고 찰칵 -
본당 주보에 첫영성체 교리를 안내하고 보니 3명의 어린이가 더 늘어났습니다. 한동안 냉담하던 어느 자매님이 4월부터 다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 자매님 따라 냉담하고 있던 6학년 아들(강선호 마르치아노)과 어느날 우연히 성당에 발을 들이게 된 예비자 부부의 두 남매 아이들(김근표, 김사연)입니다.
강선호는 엄마와 약속하기를 첫영성체 할 때까지만 나오고 그 이후 토요일 저녁 학생미사에는 나오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6학년이지만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 기특했습니다.
광주에서 초빙한 교리교사의 헌신적인 수고와 봉사로 2주간에 걸쳐 5명의 아이들이 첫영성체 교리를 마치고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세례식과 첫영성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한 명이던 곳에 어느날 갑자기 5명이 늘어나 이제 6명이 되었습니다. 공소 아이들을 합하면 10명 가까이 됩니다. 이곳 남평의 지리적 상황과 신자들의 연령 상태로는 더 이상 초등학생들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제 저 아이들이 복사도 할 것이고, 복사하면서 그리고 미사 중에 떠들고 장난도 칠 것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나이 든 어른들만 있는 곳에 천방지축의 아이들로 인해 공동체가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벌써 행복한 걱정이 생겼습니다. 저 아이들을 맡아 줄 초등부 담당 교리교사가 필요해진 것입니다.
행복한 고민을 풀어줄 고마운 분이시여!
어서 오시기 바랍니다.
2008년 8월 16일.
연중 제 20주일 특전미사 후.
첫댓글 마음을 따뜻해지게 하는 신부님의 사목일기가 소박해서 좋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면 무엇이 어렵겠는가?라는 생각도 하게됩니다. 이 따뜻함이 어느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여 제가 교리교사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하고 나타나시기를 빕니다. 외지에 사는 어느 신자의 기도도 보태드립니다.
수산나님,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사 할머니 5명 이나 애기 낳아 오셨네요? 할머니의 바램이 이루어 지셨군요. 든든한 복사와 더불어 행복 하시고 신부님도 아들 딸 낳으세요! 할머니도 낳아 오셨는데... 신부님도 성령으로...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많지만, 하느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다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연이와 근표는 첫영성체 이후 계속하라는 성경쓰기 숙제를 해왔습니다. 근표는 조금 밖에 못썼다고 미안해 했습니다. 강선호는 토요일 저녁미사에 나오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