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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 예수님께 경배 성령님께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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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예배 스크랩 8월 15일 금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경진자매 추천 0 조회 112 09.03.26 11: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 

 2008년 8월 15일 금요일
[(백)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은총을 받으신 것을 경축하는 대축일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4대 의무축일 중 하나에 해당하는 축일인 만큼

중요하고 의미가 깊은 축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초대

             1 독   서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1,19ㄱ; 12,1-6ㄱ.10ㄱㄴ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둔 여인>
                2 독   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5,20-27ㄱ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복      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56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 위 내용은 성서 또는 매일미사를 참고 하세요)

 † 오늘의 성인 ( 총 4 성인 )

                 ▶   마리아   ◀  

                     성 인 명  :        마리아(Mary)

                     성인구분 :        성녀

                     신      분 :        예수의 어머니

                     활동지역 :        

                     활동연도 :        + 1 세기

                     같은이름 :        메리, 미리암

          

 김옥덕 한국화전, 한지에 수묵담채, 49x59cm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복되신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로 공경 받으시고 신도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루가 1,48-49) 하신 마리아의 예언대로 특히 에페수스 공의회(Council of Ephesus) 이후로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모방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이 같은 마리아 공경이 비록 온전히 독특한 것이긴 하나, 혈육을 취하신 말씀인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함께 받으시는 흠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 흠숭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는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부께서 성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골로 1,15-16), 성자 안에 모든 충만함이 머물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골로 1,19;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66).

   성모 마리아에 관한 축일은 다음과 같다. 성모 승천 대축일: 8월 15일(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선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12월 8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3월 2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8월 22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1월 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11월 21일, 주님 봉헌 축일: 2월 2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9월 15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5월 31일, 루르드(Lourdes)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2월 11일, 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7월 16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0월 7일, 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8월 5일.

                                       

            성지를 돌아보다    

 

     광주 대교구 나주 성당(무학당 순교자 기념경당)  

 간략설명     무학당 순교자들로부터 이어져 오는 신앙의 전통
 
 주      소     전라남도 나주시 산정동 18 
전화번호

   

  (061)334-2123

 

 홈페이지   http://muhakdang.netian.com/
 관련기관    나주 성당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나주시 산정동 18 소재. 1935년 5월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로사리오의 성모. 관할 구역은 나주시 송월동, 남외동, 남내동, 중앙동, 성북동, 금성동, 토계동, 교통, 과원동, 산정동, 서내동, 금계동, 죽림동, 보산동, 석현동, 청동, 송촌동, 경현동, 대호동, 나주군 금천면. 

설립과 발전


1872년 나주 무학당(武學堂)에서 순교한 강영원(바오로), 유치성(안드레아), 유문보(안드레아) 등 세 사람의 순교로 나주와 천주교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순교는 이웃에의 전교로 이어지지 못했고, 그 후 나주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유학자였던 손정우(孫禎佑, 베드로)였다. 어느 날 친척집에서 한문으로 된 성서를 보게 된 손정우는 3-4년 동안 홀로 성서를 연구하다가 계량 본당(현 나주군 노안 본당)의 카닥스(Cadars, 姜達淳) 신부와 박재수(朴在秀, 요한) 신부에게 교리를 배워 1927년 영세하였다. 그는 계량 본당의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계량 본당의 신자들과 교리 토론회를 갖기도 하였다.

 

나주 지역의 본격적인 전교는 1933년 5월 나주에 설립된 십팔은행(十八銀行)의 지점장 임태길(任太吉, 마태오)의 부인 이 루시아와 계량 본당의 복사 이응범(李應範, 아우구스티노)에 의해서였다. 이 루시아의 공소 설립 제안에 이응범이 계량 본당의 박재수 신부와 나주 공소 설립을 의논, 1933년 9월 임태길의 사택에 나주 공소를 개설하였다. 그 후 열심한 전교활동으로 공소 시작 당시 17명이었던 신자수가 2년 후 1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어 1935년 골롬반 외방전교회에서 나주읍 박정리(현 성당 자리)에 3,000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50평 규모의 성당과 사제관, 35평의 교사를 신축하였다. 이로써 나주 성당은 골롬반 외방전교회가 한국에서 건립한 첫 성당이 되었다. 1937년 신자수의 증가로 성당 부지 500여 평을 추가 매입하여 80평의 콘크리트 성당을 건립하였다. 또한 함평군 함평읍 내교리 340번지에 500평의 교회 부지를 마련, 1938년 함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시켰다.

 

1953년 휴전 후 유치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4월에는 영산포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시켰다. 그리고 김창현(金昌鉉) 신부 재임 중 남평에 공소 건물과 부지 1,000평을 매입하고 전교사를 파견하였으며, 나주읍 대호리에 665평의 교회 묘지를 조성하였다. 1956년 까리따스 수녀회 분원을 개설하고, 1958년 2월 12일 산포면 덕례리에 공소 건물과 사제관을 마련하였으며, 이듬해 7월 13일 나주시 청동 81번지에 3,120평의 교회 묘지를 조성하였다.


1961년 3월 성당을 증축하였고, 1970년 5월 헨리 대주교의 후원으로 ‘현해 도서관’을 개관하였으며, 1971년 5월 강당을 신축하고 성당 조경 공사를 하였다. 또한 가톨릭 구제회의 원조로 공동 하수도 공사를 하고, 가난한 교우 12세대에 돈사(豚舍) 12동을 만들어 주었으며, 농수로 공사를 보조하였다. 그 해 12월 5일 남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 분리시켰고, 1974년 5월 사제관을 보수하고 성당 앞 보도 블록 공사를 하였으며, 1982년 12월 사제관을 신축하고, 1984년 12월 성당 이층의 칸막이 공사를 하였다. 이천수(李淺水) 신부 재임 중 무학당 성지 개발을 추진하였고, 1994년 말 현재 교육관 건립을 계획 중이다.

 

믿음의 고향을 찾아서 - 광주대교구 나주 성당

무덤 모양 순교자 기념경당 '눈길'

 

(사진설명)
1.  나주 성당 전경. 성당 내부는 창조차 맨 유리일만큼 단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2.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 1934년에 지어진 나주 지역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물이다. 원내는 하롤드 대주교.

3-4.  복원된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과 내부. 1956년 한국에 진출해 나주 성당에 처음으로 자리잡은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본원을 복원, 당시 수녀들의 생활상을 전시해 놓고 있다.

5.  나주 무학당 순교자 기념 경당. 돌에 쳐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장엄한 죽음을 상징해 무덤 모양의 경당 입구에 거석이 서 있다.

 

 

전라남도 중심부에 자리잡은 천년의 고도 '나주'. 영산강을 젖줄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선사시대 때부터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한축을 이끌어 왔던 나주에 지난 5월, 신앙의 명소가 탄생했다. 나주 본당(주임 송홍철 신부)이 본당설립 70주년(2005년 5월)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를 추진, 성당 내에 '나주 무학당 순교자 기념 경당'과 초대본당 주임 '헨리 하롤드(제5대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기념관' 그리고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을 조성 또는 복원해 놓은 것.

 

안뜰에 때이른 코스모스가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한옥(수녀원)과 야트막한 언덕 위에 지어진 서양식 벽돌조 건물(기념관)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와 토담길 사이로 펼쳐져 있는 대나무밭, 넉넉한 잔디 정원이 잘 단장돼 있다.

 

지난 5월 이 모든 것을 꾸며 한 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운 성당으로 새단장을 한 나주 성당은 두 달 남짓한 사이에 순례객 1000여명이 다녀갈 만큼 나주지역 신앙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주 무학당 순교터 인근에 있는 나주 성당은 본당 역사가 만 70돌이 채 되지 않지만 첫 대규모 박해인 신유박해(1801년)부터 마지막 대박해인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신앙 선조들의 피와 신앙혼이 서려 있고, 일제 강점기 땐 사학을 통해 민족혼을 일깨웠던 간단찮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창해처럼 푸르른 나주평야를 가로질러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파노라마처럼 시원스레 펼쳐진 3500여평의 넓은 대지가 순례자의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를 돋게 한다.

 

나주 성당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하롤드 대주교가 본당 초대주임 시절(1935~1942)인 1937년에 지은 성당은 일자형 콘크리트 건물로, 제단과 성당 벽면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 14처 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어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제단도 중앙에 십자고상과 제대 왼편에 성모자상을 둔 것 외에는 어떤 꾸밈도 없다. 감실조차 성당 오른쪽 벽면을 터서 만들어놓은 성체조배실에 옮겨놓았다.

 

지나칠 만큼 단순 소박한 것이 나주 성당의 매력이다. 눈을 현혹시키는 분심거리가 없어 전례에 집중할 수 있다. 또 성당 바닥은 아직 마루여서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더 정감있다.

 

성당 왼쪽 언덕 위에는 고풍스런 단층 적벽돌 건물 하나가 서 있다. 바로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이다. 1934년 나주에서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벽돌 건물로 원래 사제관이었으나 2002년부터 대대적으로 수리해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는 본당은 전국에서 서울 중림동 본당과 강원도 횡성 풍수원 성당, 원주 용소막 성당 등 몇 안된다. 이처럼 나주 본당이 초대 주임신부 기념관을 운영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곳에 전시된 수십점의 하롤드 대주교 유품들 또한 예사롭게 보고 지나쳐서는 안될 것들이다.

 

일제 강점기가 극에 달하던 1935년, 나주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미국인 하롤드 대주교는 이곳에서 7년간 사목하면서 선교는 물론 성당 안에 해성학교를 설립, 청소년들에게 한글과 우리말, 우리 역사를 가르치며 민족혼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에는 대주교가 본당 초대주임 시절에 쓰던 타자기를 비롯해 기도서, 십자가, 성합, 제의,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우리 민족의 구원을 위해 쏟았던 하롤드 대주교의 땀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유품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흐트러진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게 한다.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을 둘러본 후 십자가의 길을 따라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나주 무학당 순교자 기념 경당이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71년 나주 무학당에서 순교한 이춘화(베드로) · 강영원(바오로) · 유치성(안드레아) · 유문보(바오로)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경당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빈무덤' 형태로 꾸며져 있다.

 

경당 입구에 서 있는 60톤의 거석은 '석침사'(石針死)를 당한 무학당 순교자들의 용맹을, 사방이 막혀 캄캄한 경당 내부는 순교자들의 고난을, 관 모양의 제대는 순교자들의 장엄한 죽음을, 경당 안쪽 천장이 없는 회랑은 순교자들의 부활과 영광을 상징한다. 또 무학당 주춧돌로 추정되는 10개의 돌을 성당으로 옮겨와 그 위에다 무학당을 상징하는 구조물을 세워놓았다.

 

경당을 나와 대나무밭과 토담길을 따라 내려오면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이었던 한옥 기와집이 복원돼 있다. 1934년에 건립돼 1956년부터 1959년까지 까리따스 수녀회 본원이었던 이 한옥은 안채와 행랑채로 구분돼 있으며, 올해 5월에 완전 복원돼 당시 수녀들이 사용했던 각종 유품들을 전시했다. 또 수녀원 안뜰에는 초창기 지원자들이 직접 만든 성모동굴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나주본당은 올해 5월 순교자현양회를 조직, 순례자들을 위해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 순례 문의: 나주본당 사무실(061-334-2123) [평화신문, 제785호(2004년 8월 15일), 리길재 기자]

 

   

 

   소식 란

 

전 재산 기증하고 세상 떠난 조선대 이강오 교수

평생 독신으로 살며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했던

이강오 교수.

아름다운 마음, 세상을 비추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50대 여교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5억 원대의 전 재산을 어려운 이웃과 제자들을 위해 기증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7월 27일 향년 54세의 일기로 삶을 마감한 조선대 간호학과 이강오(이레네.54) 교수다.

8년 전 발병했던 유방암이 재발해 힘겹게 투병해오던 이교수는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유언’을 통해 자신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로 환원했다.

전체 5억 원 중 현금 자산 2억 원은 모교인 조선대에 장학기금으로 내놓았고, 자신이 살던 중형 아파트는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에 기증했다.

별도로 소유하고 있던 소형 아파트도 ‘광주 엠마우스 복지관’에 전달했다.

천주의 성 요한 수도회 측은 기증받은 아파트를 매각해 정신지체 장애인 치료시설 등을 지을 계획이며, 이 시설명은 이교수의 세례명을 따 ‘이레네’(Irene)로 붙일 예정이다.

고인은 살아생전 ‘광주 엠마우스 복지관’에서 제자들과 12년 동안 의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 인연으로 복지관에 여러 차례 후원금을 전달했고, 마지막 선물로 아파트 한 채를 남겼다.

복지관 측은 “고인의 사랑과 숭고한 뜻을 기억하며 우리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우들의 복지공간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고인은 특히 제자 사랑에 각별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선뜻 등록금을 내줬고, 제자들과 함께 수시로 봉사활동도 펼쳤다. 조선대에 현금을 기부한 것은 장학기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안타까워해서다.

모교인 조선대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전남 순천 출신인 이교수는 순천여고와 조선대 간호학과를 나와 1977년부터 모교에서만 30년 동안 근무했다. 교수로 재직할 때도 학교발전기금 772만원을 내놨고, 시한부 통고를 받은 후에는 2000만 원을 채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병상에서 1300만 원을 추가로 기탁했다.

고인의 언니 이강순(엘리사벳.59)씨는 “동생은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재산의 사회환원을 꿈꾸며 구체적인 기부 계획을 세웠다”며 “특히 독신으로 살면서 제자들을 자식처럼 생각했고 각별한 사랑을 드러냈다”고 회고했다.

남동생 이강우(49)씨는 “누나는 어려서부터도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걱정하고 도우며 수도자 같은 삶을 꿈꿔왔다”며 “누나의 이번 선행으로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곽승한 기자
paulo@catholictimes.org

 

 
 
     오늘의  묵상    
 
성모님의 승천은 성모님께서 곧바로 천국에 가셨음을 의미합니다.
마리아께서는 그만한 삶을 사신 분이시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성모님의 생애를 평탄한 생애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요셉 성인과 아기 예수님께서 함께 사셨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으셨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가장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셨으니 고통도 고뇌도 없고,
 마음 상하는 일이나 말썽도 없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성가정을 단순하게 아무런 문제도 없고 다툼도
없는 가정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강한 개성과 고집을 지닌 분들이 사셨기에 어쩌면
남모르는 아픔이 더 많으셨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분들은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철저하게 따르며 사셨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가정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성모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산 사람에게 내려지는 축복의 예표입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살면 주님께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성모님께서 함께 계신 초대 교회에는
하느님의 힘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곁에도 수많은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성모님을 닮아
또 다른 마리아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마산교구 삼천포 본당 주임 신은근 바오로 신부님의 묵상말씀입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이시며
성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육신을 그 영혼과 함께 천상 영광에 불러들이셨으니,
저희도 언제나 주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
 
              한편의 글              
 
         주님, 당신께선      
 

주님!

당신을 이 세상에 오실 수 있게 하신 분은

당신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이셨습니다.

 

당신이 나신 날 밤

목자들이 당신을 찾아 뵈었을 때

바로 거기에 당신 어머니 마리아가 계셨습니다.

 

당신이 자라실 때

마리아는 성요셉과 더불어 모든 것을 보살펴주셨습니다.

마리아는 당신 곁에 계시면서

모든 어려움을 같이 겪으셨고

당신의 순종과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주님의 첫 기적은

어머니 마리아의 간청을 들어주신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복된지

척 보고 금방 깨닫고, 말 안 해도 다 아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했을 겁니다.
늘 보던 얼굴이 별다른 표정을 하면 무슨 일이 있다는 것 정도도 그렇고요.
학교 과목에 없고 이런 것 전공하는 데 없어도 아는 눈치 기능이 있습니다.

연륜으로 알거나 경험이나 반복으로 아는 확신 기능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느낀 엘리사벳과 마리아 두 사람은 같은 느낌이 있었지요.
얼마나 복된지, 태아까지 복된 것, 복이 무엇인지를 함께 느꼈겠지요.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
 

 

 ♥ 행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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