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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7일 노령의 일본인 환경운동가 한 사람이 한국을 방문하여 에너지전환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일본의 시민태양광발전운동을 소개하는 작은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는 약 30여명의 회원이 참석했다. 그는 전형적인 일본 노인의 아담한 풍모를 가진 츠즈쿠 켄(都筑 建, 65)이다. 츠즈쿠 켄씨는 현재 PV-Net(Photovoltaic Owner Network)의 사무국장이자, <일본재생가능에너지촉진포럼 : REPP>의 이사장이다. 그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끈 이유는 그 스스로 강연 서두에 밝힌 특별한 이력 때문이다.
츠즈쿠 켄씨는 강의 서두에 세계정세, 일본 국내정세, 시민환경운동 정황, 재생에너지관련 제도변화, 자신의 활동을 비교한 표를 보여주며 자신의 특별한 이력과 활동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츠즈쿠 켄씨는 1942년 중국 내 몽골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3년 나가사키로 부모를 따라 이주했다. 1945년 바로 그곳에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였다. 그는 자신이 나가사키 출신이라는 점이 현재 환경운동을 하게된 원점(原点)이라고 밝혔다. 츠즈쿠 켄씨는 1960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해서 전기를 전공했다. 대학에서 연극부활동을 했던 그는 연기만 잘했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환경운동가가 못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다행히 연기를 못했다고 한다.
중국 내 몽골지역에서 태어나 원폭 투하된 나가사키로 이주하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던 1960년은 전학련(全學連, 전국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이 주도한 이른바 ‘안보반대투쟁’으로 일본 정국이 소란스러웠던 때이다. ‘안보반대투쟁’은 불평등한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여 일어났다. 이후 전학련의 분열 이후 전공투(全學共鬪會議)를 중심으로 재결집한 학생운동권은1964년은 동경대, 와세다대, 교토오대, 니혼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에서 학내분쟁을 시작하였고, 이러한 분쟁은 미일안보재개정 운동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츠즈쿠 켄씨는 1960년 대 급진적인 일본 학생운동의 대명사가 된 전학련, 전공투의 주요 거점이었던 와세대 대학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것이다. 그는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굳이 자신의 대학시절 안보반대투쟁을 이야기하므로써 자신이 전공투 세대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와세다대에서 전학련, 전공투 격랑 속에 지내다.
대학을 졸업하고 츠즈쿠 켄은 1968년 일본 유수의 전자회사였던 도시바에 입사하여 비디오와 컴퓨터 부문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했다. 1971년부터 그는 도시바에서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1974년 그는 노동자생활운동으로서 이른바 ‘비누운동(石鹸運動)’을 벌이기도 했다. 그가 노조활동을 하던 당시 일본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게된다. 1973년 1차, 1979년 2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일본은 본격적으로 원자력발전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또 한편으로는 1974년에 재생가능에너지를 기존 전력선과 연계하는 계통연계구상이 제안되기도 했다. 츠즈쿠 켄씨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한편으로 1979년부터 반핵운동을 전개했다.
츠즈쿠 켄씨가 일하던 도시바는 그가 참여한 강력한 노조의 활동으로 폐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츠즈쿠 켄을 비롯한 노조활동가들은 노동자자주관리를 시작했다. 노조는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약 8년간 공장을 점거하여 노동자자주관리를 했는데 그때 당시 최첨단의 제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노동자자주관리를 하고 있던 도시바는 츠즈쿠 켄씨의 주도로 ‘방사능측정기’를 만들었다. 츠즈쿠 켄씨는 이 측정기를 일본 전역 핵발전소 지역의 활동가들에게 8만 엔에 배포하고 이들을 네트워크로 묶었다. 이때 만들어진 조직이 ‘R-DAN’이다. 그는 ‘R-DAN’을 통해 수집된 객관적인 데이터를 무기로 반핵운동을 할 수 있었다. 이 당시 그는 체르노빌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의 원전을 조사했다.
도시바 엔지니어에서 노동운동가로 노동자자주관리 운동과 반핵운동을 전개하다.
도시바에서 8년간의 노동자자주관리를 마감한 이듬해인 1993년 츠즈쿠 켄씨는 노동자생산공동체인 와카즈에코텍(Worker’s Ecotech)이란 회사를 만들고 대표로 취임했다. 와카즈에코텍은 고용과 피고용 구분이 없는 노동자생산공동체로 기업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제품생산 제안을 할 수 있었고 구성원을 납득할 수 있다면 그 제품을 생산하는 체제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그들은 납득제품 또는 자주상품이라고 불렀다. 이때 츠즈쿠 켄씨가 제안하여 만든 자주상품 중에 태양광측정기가 있었고 이것을 계기로 태양광 설비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스로 만든 태양광 시설을 일본 최초로 주택지붕에 설치했고, 일본 전역에 걸쳐 400여 곳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했다.
생산자 협동조합과 자연에너지사업협동조합의 대표가 되다.
츠즈쿠 켄씨가 와카즈에코텍을 만들던 1993년을 전후로 일본은 1992년에 리우환경회의가 개최되었고 일본에서는 주택에 설치된 태양광의 잉여전기를 판매할 수 있는 여유전력판매제가 도입되었다. 1993년 일본정부는 대안에너지 개발을 위한 선샤인 계획을 수립했다. 1994년에는 주택용태양광주택에 대한 보조제도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다시 츠즈쿠 켄은 와카즈에코텍과 별도로 1994년에 자연에너지사업협동조합인 REXTA를 설립하여 대표가 되었다.
1997년 쿄토기후협약으로 유명한 교토회의가 개최되었는데 츠즈쿠 켄을 포함한 일본의 시민운동세력은 리우회의와 교토회의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포럼2.1’을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이때 동경전력이 일련의 획기적인 제안을 한다. 매년 1억엔씩 3년간 에너지분야 시민운동을 지원한다는 제안이었다. 원자력발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동경전력이 자연에너지를 주장해온 시민운동을 지원한다는 제안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긴장과 협력을 함께하는 ‘대립적협력’이란 개념하에 시민단체들은 이를 받아들였고, 동경전력의 지원하에 ‘녹색가격제에 대한 연구조사’와 시민단체 주도의 ‘태양광주택보급사업’을 전개했다. 단, 지원은 받되 사업은 철저히 시민단체가 자주적으로 전개한다는 합의하에 진행되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시민포럼이 1997년에 만든 단체가 <일본재생가능에너지촉진포럼 : REPP>이다. 츠즈쿠 켄씨는 현재 이 단체의 비상임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REPP의 이사장, PV-NET의 사무국장이 되어 시민태양광발전 운동에 뛰어들다
REPP의 활동은 현재 일본이 30만 주택에 태양광을 보급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한 사람들이 개별화되어있는 상태를 타개하고 태양광발전을 설치한 시민들을 조직하기 위해 2003년 츠즈쿠 켄이 주도하여 만든 단체가 PV-NET이다. 현재 PV-NET에는 1622여명의 회원들이 가입되어 있고, 이들이 소유한 태양광발전소가 1540곳이 된다. 또한 회원공동출자로 만든 시민공동발전소가 80곳에 이른다. 현재 츠즈쿠 켄은 PV-Net의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츠즈쿠 켄 자신이 들려준 그의 특별한 이력이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원폭이 투하된 나가사키에서 자랐다. 1960년대 급진적인 학생운동이었던 전공투 세대로 격랑의 대학시절을 보냈다. 그는 일본 유수의 하이테크 전자회사의 엔지니어가 된 후 본격적인 강력한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또한 노동자자주관리운동 뿐 아니라 생산자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하여 아직도 그 이상을 실현하고 있고, 반핵운동을 거쳐 지금은 태양광발전을 중심으로 한 자연에너지운동과 환경운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그의 65년 인생 기간 동안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시대의 주요한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였고 운동적 긴장을 놓치지 않고 살아왔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각 시기의 운동들은 줄곧 단절되어 있지 않고 맥을 이루며 연결되어 있다. 아직 그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않지만 그에 대한 나의 관심은 더욱 커가고 있고 좀더 그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아래 내용은 에너지전환 간사들과 츠즈크 켄씨의 대담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대담내용은 강연내용과 유사하고 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어 강연내용을 대신한다.
에:PV-NET 건설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켄: 일본은 30만 세대의 지붕에 태양광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30만 세대까지 확대된 데는 기업이나 정부보다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다. 시민단체의 활동은 1997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리우회의와 교토회의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운동진영은 ‘시민포럼2.1’을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이때 동경전력이 매년 1억엔씩 3년간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해 시민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을 시민단체들이 받아들였다. 이것은 일본 NGO에 있어 큰 사건이었다.
일본 NGO들은 기본적으로 반정부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동경전력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당시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논쟁도 많았다. 그동안 에너지에 관해 정부와 기업, NGO들은 반목해왔따. 물론 현재도 그렇다. 그렇게 세 영역이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97년에 처음 서로 협력하여 일하게 된 것이다. 원자력에 대해서 전력회사와 NGO들은 명확한 이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자연(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서는 서로 동의할 수 있었다. 정부, 기업, NGO 세 집단이 어울릴 때는 언제라도 헤어질 수 있어야 하고, 비제도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했다. 동경전력은 NGO들을 지원하지만 활동에 관여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NGO들은 지원을 전제로 위탁받은 사업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동경전력으로부터 나온 지원금을 가지고 사업을 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REPP이다. 물론 이렇게 동경전력을 대신하여 위탁사업을 하는 데 많은 혼란과 반대가 있었다.
동경전력의 지원 하에 추진한 위탁사업은 두 가지 이다. 첫 번째 사업은 ‘그린전력제도 도입에 관한 연구’였다. 두 번째는 동경전력의 지원금을 가지고 시민단체(REPP)가 주도하여 ‘태양광주택보조사업’을 전개하는 사업이었다. 이때 300채의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었다. ‘그린전력제도 연구’의 성과는 이후 주요 전력회사가 그린전력제도를 도입하는 데 기초가 되었다.
REPP는 정부와 다르게 태양광주택보조사업을 추진했다. 정부는 강도든 도둑이든 누구에게라도 태양광을 주택에 설치하겠다고 하면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REPP는 환경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보조를 했다. 태양광 설치업체를 선정할 때도 환경의식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 보조한 300세대가 30만 태양광주택 보급의 기초가 되었다. REPP가 그렇게 한 것은 단순히 보조만을 받아 태양광을 설치한 사람들은 환경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환경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보조사업을 펼치기만 했다면 그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환경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태양광을 주택에 설치하면 그 후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태양광발전을 알렸다. 국가가 30%를 보조할 때 REPP는 35%를 지원했다. 나중에는 정부보조와 REPP 보조를 합쳐서 60~65%까지 지원했다.
에:환경의식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가?
켄: 환경의식을 평가할 때 우리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보조금을 주기 전에 A4 한 장 분량의 환경과 에너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 그리고 REPP가 주최하는 행사와 강연을 최소 두세 번 이상 참석한 사람을 선정대상으로 삼았다.
에:REPP에 대한 이야기 잘 들었다. 그럼 PV-NET의 설립배경에 대해 설명해달라.
켄: REPP의 활동을 통해 주택태양광 보급 실적이 늘었다. 그러나, 둘러보니 태양광 설치자들은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교류의 필요성을 느꼈다. 일본에서는 태양광발전을 설치해봤자 돈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제도 하에서는 20년이 되야 기껏 2천 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에:한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마 그렇다면 투자 않할 것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금융이자가 높고 수익성 높은 금융상품도 많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꺼졌지만 아직도 한국은 부동산 거품 속에 있다. 부동산을 통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이니 태양광발전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적다.
켄: 일본에서 태양광을 설치한 사람들은 이윤보다는 환경을 이유로 없는 돈을 낸 것이다. 그분들은 그런 맘을 가지고 설치했지만 설치하고 보니 남는 건 덩그라니 지붕 위의 태양전지 뿐이었다. 그들은 주위 반응도 없이 고립된 상태였다. 그런 사람들은 서로 만나서 교류하고픈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PV-NET이 만들어진 것이다.
에:PV-NET의 회원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켄: PV-NET의 회원은 1650명 정도인데 98%가 개인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한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태양광발전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지자체가 포함되어 있다.
에:일본의 경우 더 이상 주택태양광설치를 보조하지 않는가? 요즘도 개인 주택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리고 가구당 설치용량 제한은 있는가?
켄: 일본은 금년부터 주택태양광보조가 중단되었다. 그 이후 조금씩 설치건수가 줄고 있다. 가구당 설치용량 제한은 없다. 그렇지만 10kW까지만 정부가 설치비용을 보조했다.
태양광을 개인이 설치하기에는 부담이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정부보조는 필요하다. 1993년도 kW당 태양광 설치비용은 260만엔 정도였고 정부가 약 50%를 지원했다. 2002년에는 kW당 설치비용은 49만엔 정도였고 정부가 약 30%정도 지원했다. 현재 kW당 설치비는 40만엔 정도 수준이다. 정부 보조는 지속적으로 줄었지만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에:한국은 자가용 태양광시설 설치의 경우 태양광에서 발전한 전력과 계통이용 전력을 상계처리하고, 사업용 태양광시설의 경우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높은 가격에 정부가 구매해주고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켄: 일본의 경우 주택에 태양광발전을 설치한 경우 자기소비하고 남은 잉여전기를 전력회사에 판매할 수 있다. 약 kW당 20엔 정도이다. 소비자전력요금이 kW당 20엔에 기본금을 더한 정도 금액이다. 즉, 전력회사에 내는 전력요금 수준으로 잉여전기를 팔 수 있다. 반대로 기업들의 경우는 누진제를 적용한다. 일본에는 10개 전력회사가 있고 전력요금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는 전기를 많이 쓸수록 전력요금이 낮아진다. 만약 전기를 많이 써서 낮은 전력요금을 내고 있다면 태양광 잉여전기를 팔 때에도 그 만큼 낮은 금액으로 팔아야 한다. 즉 이걸 물물교환 방식이라는 건데 전력구매금액과 판매금액이 1:1이 되도록 하고 있다.
에:한국은 가정용 전기에 대해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켄: 그렇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다른 점을 말하기 전 일본의 경우도 사업용 발전에 대한 보조제도가 있다. 나는 한국에서 자가용 태양광 설치를 보조할 때 지원비를 설치 당사자가 아닌 설치업자에게 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는 태양광설비 설치가 다 끝난 후 전력회사와 계약이 끝난 후 주택태양광 설치자 개인에게 직접 지원비를 준다. 태양광 설치업자는 단지 설치업자일 뿐이다.
에:PV-NET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켄: PV-NET의 대표적인 활동 중에 하나는 ‘피해사례상담소’ 운영이다. 일본의 경우도 태양광발전 설치회사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주로 이들은 방문판매 방식으로 태양광을 설치할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 데 결국 여기에 투여되는 영업비는 태양광설치 비용을 증가시킨다. 또한 이들은 환경의식이 없고 태양광발전량 등에 대하여 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발전량이 다른 데 이를 과장한다. 또는 질 나쁜 장비를 설치하기도 하고 몇 년이 지나면 A/S를 회사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피해사례를 접수 받아 상담해주고 있다.
다음으로 ‘태양광발전 건강진단’ 사업이다. 회원들은 웹이나 전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매월 발전량을 보고한다. 우리는 이를 집계하여 자체의 프로그램을 통해 예측발전량을 추정한다. 예측발전량과 실제 발전량이 10% 이상 차이가 나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또한 전력회사가 집계한 발전량과 실제발전량과 차이가 있을 때 우리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전력회사와 협의한다.
세 번째, PV-NET은 회원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포럼, 교육, 견학회 등을 조직한다. 때로 설치업자들이나 전력회사 사람들도 우리의 교육을 받기도 하고 이들은 우리들의 교육내용을 알고 있다.
네 번째, PV-NET이 하고 있는 주요한 사업은 ‘PV그린증서 발급’ 사업이다. 태양광발전 설치자가 잉여전기를 팔고자 할 때 녹색전기를 구매할 사람을 중계한다. 또한 녹색전기를 구매하는 소비기업이나 기관, 개인에게 ‘PV그린증서’를 발급한다. 일본에는 ‘그린증서’를 발급하는 3개 기관이 있다. 이중에 개인 태양광발전 사업자들의 잉여전기를 가지고 ‘그린증서’를 발급하는 기관은 PV-NET뿐이다. PV-NET의 ‘PV그린증서’ 발급을 통해 얻은 수익의 25%를 수수료로 받는다. 나머지는 태양광발전사업자에게 준다. 현재 이러한 사업을 사가현청(佐賀縣庁)에 대해 실시하고 있다.
에:'PV그린증서'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다. ‘PV그린증서’와 관련해서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은 물리적인 전기는 이미 전력회사를 통해 판매한다. ‘PV그린증서’를 발급받는 소비자, 예를 들어 사가현청(佐賀縣庁)의 경우 이미 물리적인 전기요금은 전력회사에 지불한다. 그렇다면 사가현청(佐賀縣庁)에 PV-NET이 발급한 ‘PV그린증서’ 요금은 사실상 전기요금이라기 보다는 태양광전기에 대한 기부금의 성격이 크다. 소비기관 또는 소비자가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 ‘PV그린증서’를 발급받는 것은 친환경적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발전 사업자들도 물리적 전기는 이미 전력회사에 판매했기 때문에 ‘그린증서’ 제도를 통해 얻는 이익은 사실상 그들이 자연에너지를 생산하는 행위에 대한 기부금을 받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정확한가?
켄: 그렇다. 물리적 전기는 이미 태양광을 발전하는 개인과 전력회사 간에 거래가 끝난다. 사가현청(佐賀縣庁)과 같은 곳도 이미 전기요금은 전력회사에 지불한 것이다. ‘PV그린증서’는 상징적인 제도로 기부금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태양광발전기로부터 발생한 잉여전기를 제3의 기관으로부터 인증 받고 PV-NET은 인증 받은 잉여전기 만큼만 ‘PV그린증서’를 발급한다. 즉, 자연에너지에 대한 상징적인 거래인 셈이다. 우리는 이후 ‘PV그린증서’를 녹색전기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아직 일본에 그린증서를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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