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통신학교(올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
사연인 즉슨 이렇다.~
때는 12.12(박통 시해사건)가 일어나기 전, 1979년 6월 청운의 푸른꿈을 안고 (그랬나?) 진주역에서 논산훈련소 가는 입영열차에 몸을 싣고 머리휘날리며,(대부분 머리를 빡빡깍고 입영열차를 타는데, 난 머리를 깍지 않았고, 그때 유행하던 약간의 장발 이었음, 너무 장발은 아니었음, 왜냐하면, 그때 내가 당시 체신부 공무원(KT의 전신) 신분 이었으니까) 나름대로 폼(약간은 샌치멘탈한 느낌 비스무리하게~ㅋㅋ)을 잡고 입영열차 차창에 기대어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였음.(이 대목에서 "입영열차"라는 노래가 나와야 하는뎅, 누구 할줄 아는 사람 노래 함 넣어줘봐~~), 그런데 후회는 얼마 가지않아서 절로 하게 되더군, 나중에 훈련소에서 강제로 머리를 깍이는데 죽는줄 알았다. 진즉에 머리를 깍고 올걸 하고 후회막급 이었거든, 왜냐면? 반은 뽑아버리고 반은 쥐어뜯어버리고~~우와 ㅋㅋㅋㅋ더이상 말이 필요없음, 지금 내머리가 약간 숯이 적은것이 그때 넘 많이 뽑혀서 그런걸꺼야 틀림없이~(지금이라도 인권위원회에다 진정을 해봐????????? 이런건 않될까???ㅋㅋ)
하연간(Any Way)~ 어찌어찌하여 훈련소를 졸업하게 되어 주특기(병과)와 자대배치 를 받게 되는데(군인간 남자들은 다들 잘알것임), 모두다 논산역에서 다시 열차를 타고 군악대의 웅장한(?) 환송를 받으며 3년간 뺑이칠 각자의 소속 부대로 출발하게 된다.
여기서 부터 논산 훈련소에서 같이 훈련은 받은 동기들의 자대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이열차가 강원도 까지 가면서 각자의 부대마다 떨어 뜨려줌) 열차가 출발하니 군복을 빳빳하게 다려입고, 옛날 시골 우물에서 물퍼는 바가지를 쓴 넘이 소위 말하는 군기를 잡기 시작하는거야~에구 첨으로 군대맛을 살짝본거 같아...열차에 앉아서 목이 터저라고 노래(군가)를 부르며 가는데, 조금 가다간 목소리가 적다는 핑게(순전히 핑게임)로 차려, 쉬어, 일어서, 앉아, 의자밑으로 들어가,등등 지랄발광을 하면서 가고 있는데 어느듯 서대전역에 도착했는데, 이거머야~ 나보고 내리라는거야 "군번12982928 윤종삼 이병 내릴준비 햇" 이러는 거야~ 이것이 지랄발광을 하다가 미쳤나? 난 재미쪼매 들라고 하는데 왜 나보고 내리래? 글고 다들 군인가면 강원도 꼴짜기나 철책선에서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왜 대전에서 내리래? (그때 분명히 이런생각을 했음) 라고 생각 하면서, 그래도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하니까(이건 순전히 내생각임. 아마도 철저한 애국지사 였나봐 그치??~~~에잉 갑자기 이기 무신소리고?????ㅎㅎㅎㅎ) 어쩔수 없이 내려야 했던거야~
어라? 열차가 서대전역에 정차를 하고 내가 내리고 나니까 몇넘이 줄줄이 사탕으로 내리더만, 그러더니 어떤 또다른 우물바가지가 와서 우릴 데리고 가는데 따라 가보니, 얼쑤~ 이건 분위기 쥑이는 거야~ "야 이거 땡잡았다. 난 이제 3년 군대생활 넘넘 편하게 하는가 보다" 퍼뜩 내 명석한(?) 뇌리에서 이런생각이 드는거였어~~ 우물바가지 말하는거 부터가 이건 머 군인도 아닌거 같아, 요~렇게. "여러부~운 우리 통신학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이기 머꼬~~~ 이기 군대가???????? " 이렇게 하여 대전통신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여기서 잠깐, 대전통신학교는 육,해,공,해병,전경등 모든 군인들의 통신주특기(전화,무전,문서,암호등 통신병과의 통칭) 병과 교육을 받는 학교인데 이교육을 후반기 교육이라고 함.
여기서 유선배와의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는데, 아마도 지금쯤 이대목에서 머리회전 빠른 칭구는 눈치챘을것이여~
난 빛나는 짝대기 하나 이등병이고, 당시 유선배는 귀신도 울고간다는 하사관 학교를 졸업한 까꾸래이 하나 하사님 이셨다.
크아~ 여기서 난 고향,선배,후배 이런것들에 열광하는 맛(?)을 또한번 느끼게 된다.
여기도 군대 인지라 밤에 보초를 서는데, 어느날 밤에 보초를 서기 위해서 나가서 집합(보초를 2시간씩 서는데 한곳에 집합을하여 분대장(하사)이 인솔하여 각자 보초서는 위치까지 데리고 가서 교대함)을 하고 졸리는 눈으로 껌뻑이고 있는데 어라?????
분대장이 낮익은 넘인거야? 이거봐라? 어디서 본얼굴인디? 퍼떡 생각이 나야재...에구야 이기 누꼬...유선배를 거기서 운명적(?)으로 만난거지~~ㅋㅋㅋㅋㅋ 이렇게 하여 난 유선배가 사주는 티도 얻어묵고(학교는 어느 사회든 좋은가봐 티를 파는곳도 있었음)나중에 낮에 일욜날 만나서 잼있는 이바구도 하고 지냈음.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은 천하의 쫄병인데 고기서 유선배(그래도 분대장님인디)를 만났으니 월매나 어깨가 으쓱했겠냐구~~~ㅎㅎ ~~ 니들 다 죽었어~~ㅋㅋㅋ ..유선배 그땐 증말 고마웠어요(이제사 정식으로 인사함~~빨리도 한다.ㅋㅋㅋㅋ) 근데 유선배 아직 궁금한거 하나 있는데, 유선배는 주특기가 머였어요?(아마도 그때 머라고 한거 같은디 , 에구 나이들면 죽어야재 이넘의 대가리는 ~~~)
난 고기서 머했냐구? 타자 배웠지롱~~ 내 주특기는 타자병 이었으니까~~
이렇게 하여 후반기 교육(12주)도 무사히 마치고, 졸업시험(어디가나 학교는 분위기는 쥑이는데 이넘의 시험...시험...에구야~~~)을 보는데, 당근 타자 치는거지머, 얼마나 빨리,정학하게 치느냐 하는거~~ 에구야 이거라면 자신이 있었지롱~~
그래서 어케됬냐구? 당근 일등이징~~ 졸업식장에서 일등했다고 학교장상에다가 메달까지 목에걸고 의기 양양하게 보무도 당당하게 졸업을 했징.(내가 군대가길 잘했다고 첨이자 마지막으로 느낌~~ㅎㅎㅎ) 그래서 어케 됐냐구? 에구 성질도 급하셔잉~~
다시 우린 자대를 배치 받아서 각자의 증말로 3년간 좆뺑이칠 부대로 가는거지머~~근데 난 2군사령부(대구에 있음)로 명령을 받았지(아마도 졸업시 일등한 보람이 아닌가 생각함) 덕분에 군번으로 앞넘과 뒷넘이 나랑같이 셋이서 2군사령부로 발령받음(이넘들이야 말로 나 덕분에 군대생활 땡잡은거지~~헐~ 그래도 지들이 잘나서 그런줄 알더만~~ 나쁜넘들, 제대할 무렵에 술한잔 사드라 그래도 기특한 자슥들~ㅋㅋㅋ .그래도 제대하고 오랬동안 연락하면서 지냈음)
대전역에서 다시 열차를 타고 가는데, 모두들 상행선을 타는데 우리셋은 하행선을 타라고 하대? 그래서 대구로 와서 동대구역(TMO)에서 쪼매 눈부치고, 일어나니까 몇시까지 어느부대로 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우리셋은 시내로 나와서 신나게 놀았지 그리고 오후 5시경 부대로 들어갔던거야...
그런데 여기서 잠깐(또? 와~ ! ~????), 내가 졸업식을 하는 전날이었을거 같다. 비보가 날아든거지, 머냐고???? 바로 박통 몸에 총알이 박혔다고 비상~, 비상~, 비상~...난리 부르스를 치는거지 머야~~~에구 이게 군대구나~~~당시엔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인 내 머리도 퍼뜩 이런생각이 들었던게지~ 에구야 이런때 북한넘들이 전쟁일으키는거 아냐? 이론 이대로 강원도로 끌려가 총앞받이가 되는거 아냐? 왜냐면, 천하의 졸병임으로 ~~하여간 별의별 생각을 다했음~
그래서 대구 2군사령부에 가니까 난리가 난거지 머~ 전 부대에 비상이 걸려서 완전무장하고 근무를 하고 있었던거야~
어쩌면 나에겐 행운(이론 매국노 아냐? 이거..~~ㅋㅋ)이었는지도 모르지, 왜냐고? 아마도 군인간 남친들은 모두다 알것이여, 자대배치 받아서 첨에 가면 하루정도는 죽을 고생하는거 거든, 소위군기 잡는다고 바로 한기수 윗넘들이 얼차레, 줄빳다, 화장실 병기청소등등~ 소위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는데(왜냐면, 그래야 앞으로 제대 할때까정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는대나 머 어쩐다나~)난 부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생략한거지머~ 헐~룰루 랄라~~~~~~
이렇게 하야 찬란한 군대 생활이 시작되었고, 하는일이 타자치는 일이라 당시 2군 사령부에는 여군대대가 있었는데, 여군 하사들은 사령관 부관실(비서)과 타자병으로 근무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여군들과 같이 근무하였음. 여기서 찬란한 나의 군대 생활은 담에 기회봐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 아쉽지만 줄여야 겠음.
편집자 주++ 남자들의 축구 야그와 군대 생활 야그, 남자들은 신나서 떠들어 대는데, 여자들은 하품 한담서~??~
첫댓글 좋은 추억을 만들었군! 난 진해 훈련소에서 김경규랑 서로 빵도 나나묵고 했었다. 경규는 해군에 난 해병대에 갔었는데 여기 유선배와 함께 근무하던 친구가 나랑 군대 동기였다. 군대 추억 거그 다 좋은거여~~~
ㅎㅎ 글쿠나~ 그래 마자~ 좋은추억으로 가끔씩 생각나곤해~
쌤씨 아 그때가 79년도감 ㅎㅎ 나는 78년도줄알았는데 쌤 ..머리도 좋아 어찌그리 기억력이 좋을까 나는 대강 그때만났다는는 것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나는 그때 까꾸래이 하나 더달려고 보수교육이라꼬 하는데 교육갔어서 그때나는 하사 고참이었지 75년도4월2일날 입대했으니까 그때 내주특기는 경가설 (360 )그른데 실제는 9사단 사령부에 교환선임 하사로 근무 햇었지
ㅎㅎㅎ 그랬군요. 나야머 그땐 천하의 쫄병이고, 또 12/12가 일어나서 잊을수가 없죠. 그럼 유선배는 하늘같은 고참하사였군요~~ㅎㅎㅎ그리곤 대구 2군사령부에 가자마자 또 대구문화방송국에 파견근무 했죠...계엄군으로~~~
75년도에 입대했으면 누말마따나 봉알이 뺄가를때 들어갔었네요. 그 때 유격 받으믄서 멩들은기 아직도 시커멓것네요?ㅋㅋㅋ 난 78년도에 진해훈련소를 거쳐 포항에서 근무했습니다.
야생초 니는 진해 진흙뻘에서 기었겠구나~ 무지 힘들다고들 하던데~ 고생했겠다야~
지금 일산시 풍리라는 자리인데 고양군 군청교환아까씨 들하고 농담전화 많이 하고 그랬는데 아...그때 생각하면 정말 기분 좋은데 교환 아가씨가 면회도 오고 그랬는데 쭉~~ 끈무 하다가 군 구조조정에 뺵이없어 사단에서 인사이동으로 예하부대 연대로 갔지 그래서 썽이나서 82년 4월에 직업보도 신청하여서 부산 제2병기창에서 6개월 농떙이 치다가 2개월 월급만 타먹다가 12월31일 제대 했삐지 아그때 일산에서 땅 쪼매만 사났어도 지금 은 제법부자 되어있을텐데 생각하면 아쉽다 ...
지.난.일.은~~ 생각을. 말자~~ㅎㅎㅎㅎ
모두들 군행활은 편하게들 하였군요.난 강원도 골짝에 가서 좇뱅이 쳤는데 쌈이의 문장력도 역시나 대단혀안그래 야생초 그리고 재덕 선배님
쌈씨의 문장력과 입담은 초딩시절 철봉에서 알봉(?) 깨문태진 이후로 급성장한걸세...
ㅎㅎㅎ 이건 문장이 아니고 그냥 나오는대로 끄적끄려 논것이고, 문장이란 말은 적어도 야생초 정도는 되야 같다 붙이지~ 아참 우리 시인 향순이도 있구나~
유향순.. 우리 누님 왜안들어 오는기야 ) ~~~
아- 진짜 남자들은 오데가나 군생활 이야기는 안빠지네요 그래도 아이엠쌤 께서는 군생활하시는 동안 조금씩 향기를 맡으시면서 하셨어 가끔은 ^^ 울랄라라같은 마음도 있었겠어요
ㅎㅎㅎ ~ 천방지축, 좌충우돌~~ 머 이런거 였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군생활은 일등으로 했는데~ 항상 맨앞에서 ~ 그때 나름대로 얻은 좌우명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길잡이가 된거 같네요.~~헐~~ " 피할수 없으면 즐기자" 이거~
쌤씨!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사면초과 상태의 여성한테도 이런 교훈적인 말씀이 뭭혀들어갈란가 모르겠네... 야시님의 고견은 어떠신지요?
글쎄~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잘몰건넹~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