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사에 다녀왔습니다. 고승대덕을 많이 배출했다거나 특별히 문화재가 많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근래 우담바라덕에 많이 알려진 곳입니다. 그럼 사진 몇 장 보시겠습니다.
청계산 해발 618미터의 청계산은 많은 시민들이 즐겨찾는 산이다. 푸른 용이 산허리를 뚫고 나와 흰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어 청룡산이라고도 했으며 관악산과 더불어 서울을 지키는 좌청룡, 우백호로 알려져 있다. 과천방향에서는 매봉을 많이 오르며 의왕쪽에서는 국사봉이나 이수봉을 찾기도 한다. 인덕원을 지나 청계동쪽으로 갈 때는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 5백원. 명목은 폐기물처리수수료. 청계사(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호) 청계산(淸溪山)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 충렬왕(忠烈王)10년(1284)에 크게 중창되다었고 전한다. 조선 연산군(燕山君)이 도성 내에 있는 사찰을 폐쇄했을 때 봉은사를 대신하여 선종의 본산으로 정해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 현재에 사찰 모습은 1955년 이후 역대 주지 스님들이 중수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전체 규모와 가람의 배치는 조선시대에 틀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청계사 전경. 문화재청 사진
사찰 내에는 극락보전과 칠성각·봉향각·삼성각·요사 등의 건물이 있다. 극락보전은 이익공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석재의 가공과 목재의 치목이 정교하며 화려한 단청이 돋보인다. 또한 지붕에는 취두·용두·이수 등 고급의 장식물을 올려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고급스럽게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절 아래에는 사찰의 내력을 적은 사적비(寺跡碑) 2기가 있는데 이 중 하나는 숙종(肅宗) 15년(1689)에 조성된 것이다. 종각에는 숙종 27년에 만들어진 동종(銅鐘)이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당시에는 청계산을 청룡산(靑龍山)이라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담바라 핀 청계사. 우담바라는 우둠바라라는 말에서 연유한 것으로 3천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우담화라고도 하며 여래나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 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이 꽃이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매우 상서로운 징조라고 한다. 신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매우 복된 일일 것이고, 관심없는 이에게는 그저 풀잠자리알이겠지요.
사찰에 올라가기 전 오른쪽으로 여러 비석이 있습니다. 대개 일별도 않고 지나가지만 그래도 절에서 부도밭이나 비석군을 만나 그것을 보는 일도 재미있답니다. 비석에 나오는 조인규는 어릴적부터 매우 똑똑하여 국비장학생으로 원나라에 유학을 하고 그때 만난 충렬왕의 훌륭한 부하가 되었답니다. 충선왕의 장인(국구)이 되었다가 충선왕이 퇴위하자 함께 유배되었는데 후일 복권하였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조금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보면 사천왕상을 만납니다. 일주문, 불이문, 사천왕문 모두 없습니다.
사천왕을 지나면 청계사 안내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룡팔부가 지키는 계단을 올라가면 청계사의 주건물인 극락보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닥에 대리석을 깔아서 밖에서도 절을 할 수 있답니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신는 곳입니다. 무량수전, 아미타전으로도 불리는데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이 유명한 건물입니다.
사인비구는 종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 모두를 한데 묶어 보물 11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종들은 여러 곳에 나뉘어 있는데 통도사, 청룡사, 화계사 등에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강화동종일 듯 합니다.
이 사진은 문화재청 사진. 동종 옆으로 거대한 와불이 있고 위쪽으로 삼성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좀 독특한 것으로는 12지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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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러 생각 원문보기 글쓴이: 머털
첫댓글 화순 운주사에서 와불상을 봤는데 청계사에도 있네요! 가까운 곳인데도 가보지 못했답니다.
다음에 답사 기회를 만들어서 함 가보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