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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통한 실존모색의 시학
-고재복 시집 『전원일기』에 대하여
강 경 호
(시인, 문학평론가)
“시는 자연을 모방한다”는 오래된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이 자연을 정복대상으로 삼아 물질적 가치로 환산해왔지만 그 결과는 오늘날 자연이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며 보복하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거늘 자연을 소유의 대상으로 여겨온 인간은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과 상생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서정시는 자연을 발견하고 자연을 닮으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러한 노력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에 전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시점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고재복 시인의 생각의 중심에는 자연이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 그의 자연은 자신의 사고의 기준이 되며 척도가 되는데 그것은 그의 시에도 적용이 된다. 그가 바라보는 자연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원형이며,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지닌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의 가슴 속에서 자라는 자연은 건강해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베어버릴 수 없는 뿌리깊은 나무이다. 이 나무를 고재복 시인은 평생 동안 잘 키워왔지만 시인 자신은 이 나무에게 미안하다. 자신이 나무를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 즉 자연을 닮으려는 노력을 그의 시를 통해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가슴 속 깊이 자라는 나무는 그의 자아이며 양심이며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가 지향하는 세계인 것이다.
고재복 시인의 시에는 수많은 자연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나무’를 비롯한 식물성 이미지이다. ‘단풍나무’, ‘천일홍’, ‘토란’, ‘모란꽃’, ‘매화’, ‘민들레’, ‘등나무’, ‘동백꽃’ 등 수많은 식물성 이미지가 그의 시적 대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풀벌레’, ‘고추잠자리’, ‘돌’, ‘바위’, ‘새’ 등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이 출현한다. 이처럼 그의 시에 자연이 자주 출현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사군자를 좋아했던 것처럼 자연이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도 자연을 마치 스승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는 동일성을 추구하는 서정시의 원리와 맞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자연은 어떠한 시련에도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존재이다. 또한 불화를 시도하지 않는 특성을 보여준다. 폭설이 내려도 그것을 뒤집어 쓴 채로 인내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척박한 환경에서도 끝내는 자신의 꽃을 피워내는 의지가 인간에게 귀감이 되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자연은 어느 누구에게도 불편을 주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이렇듯 자연은 불만을 토로하지 않으며 타자와의 상생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며 오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고재복 시인의 시는 건강한 자연을 통해 인간의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낸다. 반면교사라는 말처럼 자연을 통해 자신과 인간에게 통찰과 성찰의 메시지를 보낸다. 뿐만 아니라 자연을 통해 생명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주기도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고재복 시인의 시세계를 살펴보자.
뜰의 돌들 사이에도 저희만의 사회가 있다
공사현장에서 발파되어
모 나고 깨진 자국을
석공의 정 솜씨로 교묘하게 감추고
철쭉꽃 향을 즐기면서
격 있는 소나무와 교제하며
거들먹거리는 돌도 있고
오랜 세월 흐르는 물에 마음을 씻고
이끼서리도록 몸을 다듬어
먼 계곡에서 트럭에 실려 와
땅의 이치에 순응하며
제 할 일 묵묵히 하는 돌도 있다
마음에 없는 말 잘하고
정원사 비위 잘 맞추는 돌이
윗자리에 있다
- 「뜰의 돌」 전문
고재복 시인은 단순하게 자연을 노래하지 않는다. 시니피앙 이면에 그가 하고 싶은 의미를 숨겨놓는다. 광물질인 ‘돌’을 의인화시킨 「뜰의 돌」에서 다양한 돌들의 성격을 살펴본다. ① “공사현장에서 발파되어/ 모나고 깨진 자국을/ 석공의 정 솜씨로 교묘하게 감추고/ 철쭉꽃 향을 즐기면서/ 격있는 소나무와 교제하며/ 거들먹거리는 돌”, ②“오랜 세월 흐르는 물에 마음을 씻고/ 이끼 서리도록 몸을 다듬어/ 먼 계곡에서 트럭에 실려와/ 땅의 이치에 순응하며/ 제 할 일 묵묵히 하는 돌”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①의 돌은 외형적인 겉치레를 좋아하는 돌이며 ②의 돌은 품성이 갖춰진 돌이다. 실제로 이러한 돌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돌을 의인화시켰는지를 생각해보면 시인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즉 시인은 돌을 통해 인간 세계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 중에는 “모나고 깨진 자국을” 지닌 거친 성격을 지닌 채 부족함을 숨기고 품위 있는 체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마디로 겉치레를 좋아하는 위선자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②처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면서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세상은 “마음을 씻고” “땅의 이치에 순응하며” “제 할 일 묵묵히 하는” ‘사람’이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연을 통해 인간세상을 비유하여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시인은 말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고재복 시인은 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통해 생명성과 희망을 노래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첫 뉴스의
건조주의보
산불 소식
갈등 난 시심(詩心)처럼
가뭄에 목말라하는 나무들
삶에 쪼들린 뿌리들
보라,
단단한 벽을 뚫고 나오는
연푸른 싹
혹독한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꿈꾸지 않았다면
긴 겨울밤의 절망 속에서도
가슴 가득 희망을 품지 않았다면
저렇듯 힘차게 나올 수 없으리라
- 「꿈꾸지 않았다면」 전문
“건조주의보”가 내리고 “산불 소식”이 톱뉴스가 되는 때 “가뭄에 목말라하는 나무들/ 삶에 쪼들린 뿌리들”이 있다. 이들은 그러한 불모지대에서 “연푸른 싹”이 “단단한 벽을 뚫고 나오”고 있다.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은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도 꿈꾸”었으며 “긴 겨울밤의 절망 속에서도/ 가슴 가득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자는 희망은 시련을 극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의미역을 지닌 작품으로는 「매화」가 있다. 매화는 우리 선조들이 사군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쳤다. 눈 속에서도 꽃을 피워 올리는 매화에서 고결하고 인내심 많은 정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재복 시인의 마음도 옛 선비의 마음가짐과 같았을 것이다.
모란 움이 펴다 다시 움츠리는
봄을 멈추게 하는
꽃샘추위
고언영색(巧言令色) 모르는
매화
추위 속에
도도하게
홀로
막 핀 꽃잎 몇 개
세찬 바람에 떨어졌다
땅바닥에서도
고고하게 향을 풍긴다.
-「매화」 전문
매화는 모든 꽃 중에서 가장 이른 계절에 피는 꽃이다. 그래서 추위를 견디고 피는 꽃답게 그 향기가 매우 그윽하다. 그런 매화가 “모란 움이 펴다 다시 움츠리는/ 봄을 멈추게 하는/ 꽃샘추위” 무렵 꽃을 피워 올렸다. 남에게 아첨을 하지 못하는 매화는 매우 강인하여 “추위 속에/ 도도하게/ 홀로” 피워있는 것이다. 그런데 꽃샘추위의 “세찬 바람에” “막 핀 꽃잎 몇 개” “떨어졌다” 그러나 꽃샘추위의 차디찬 바람이 매화꽃잎을 떨어뜨릴 수는 있지만, 매화꽃잎은 “땅바닥에서도/ 고고하게 향을 풍”기는 군자의 기품을 보여준다.
오늘날 유약한 현대인은 쉽게 좌절하고 절망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온갖 말로 아첨을 하며 이익과 출세를 지향한다. 이러한 시대에 시인은 조선 선비의 기품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한편 고재복 시인은 연륜이 깊어지면서 지금껏 보이지 않던 것을 바라보는 눈을 지닌다. 살아있는 것들과 생명의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내일부터 또 장맛비가 온다지만 오늘은 뭉게구름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지나 간다. 앞밭도 뒷밭도 흙이 질어 들어갈 수가 없어 헌 보도블럭으로 깔아놓은 사이 길을 따라 돌아보기만 하는데, 길 가에 아내의 봉선화는 꽃이 한창이고 조그만 채송화들이 수없이 돋아나며 성질 급한 놈은 벌써 꽃을 달고 있다. 감나무에서 풋감 하나 내 모자위에 노크하듯 톡 떨어진다. 감나무아래 땅바닥에 떨어진 열매도 부지기수지만 아직도 나무마다 엄청 많은 풋감들이 달라붙어 있고 느티나무 그늘에 부대끼면서도 사과나무의 열매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토마토와 오이는 세워진 지주가 짧아 하늘을 가늠하고 있으며 욕심쟁이 고추나무는 제 열매의 무게를 힘들어하고 있고 더덕 줄기에 감겨 부대끼면서도 핀 청보라 도라지꽃은 더욱 곱다. 온통 푸르다 장맛비는 산천을 더욱 짙푸르게 칠했고 푸른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들, 녹음 아닌 것이 없다.
- 「살아있는 것들」 전문
근대를 통해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 눈을 뜬 인간 사고의 중심에는 ‘근대’가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는 자연과의 불화를 일으켜 끊임없이 자연과 충돌하고 있다. 이는 인간도 하나의 자연이라는 겸손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인간은 이제 자연 앞에 겸허해질 일이다.
이에 문학적 대응방식으로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환경과 생명성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서정시의 역할 중 하나로 크게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고재복 시인의 관심은 이에 무관하지 않다. 「살아있는 것들」에서 화자는 길을 가며 시선을 주변에 둔다. “길가에 아내의 봉선화”가 “한창이고 조그만 채송화들이 수없이 돋아나”고 있다. “감나무에서 풋감 하나 내 모자 위에 노크하듯 톡 떨어진다.” “느티나무 그늘에 부대끼면서도 사과나무의 열매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토마토와 고추나무는 제 열매의 무게를 힘들어하고 더덕 줄기에 감겨 부대끼면서도 핀 청보라 도라지꽃은 더욱 곱다.” “온통 푸른” 세상인 것이다. 이렇듯 생기발양한 “푸른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화자는 살아있는 것들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 시는 시인의 생명성에 대한 투철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렇듯 시인의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이번 시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은 이번 시집 제목을 아예 『전원일기』라고 한 데에서 고재복 시인의 시적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전원일기 -1」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아침 뜰을 그렸다. “이슬 머금은 잔디”, “초록향이 금방 떨어질 듯”한 아침, “공기조차 푸”른 아침에서 “까닭 없는 기쁨”을 느낀다. 생명이 충만한 초록의 세계를 “행복의 빛깔”이라고 탄성을 지른다. 「전원일기 -2」에서도 화자는 “수많은 작은 생명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행복하다”고 고백한다. 시인은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생명에 대해서, 살아있음에 대해서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다.
고재복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의인법이 많이 구사되고 있다. 의인법은 죽은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뿐만 아니라 영혼을 부여하고 대상을 인격체로 대해준다. 이번 시집이 생태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것을 보다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고재복 시인의 생명성 탐구의 시학은 필연적으로 의인법이라는 비유를 차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고재복 시인은 의인화를 통해 자연, 특히 나무를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존재방식에 대해 사색한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외로움조차 홀로 끌어안는 나무는
그늘만큼 속이 넓다
두서없이 중얼거려도
오해 없고
격하게 내뱉는 분노도
끄덕이며 들어주고
했던 말 또 해도
끝까지 들어준다
설득하려 신경 쓸 일 없고
강조하느라 힘 뺄 거 없다
끼어들거나
반박하지 않는다
들은 말
결코 옮기지 않는다.
- 「나무·1」 전문
세상의 흐름에 그대로 흘러가면서도 나무는 “외로움조차 홀로 끌어안”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늘만큼 속이 넓다” 그것은 “격하게 내뱉는 분노도/ 끄덕이며 들어주고/ 했던 말 또 해도/ 끝까지 들어준다” 그러므로 나무를 “설득하려 신경 쓸 일 없고/ 강조하느라 힘 뺄 거 없다” 마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인간세계의 모습을 펼쳐 보인 듯한 내용이지만 인품이 바른 사람처럼 다소곳하고 점잖은 나무의 태도는 인간세계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경들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분노 잘하고, 자신만을 앞세우며, 말을 잘 옮기는 인간의 잘못됨을 나무를 통해 우회적으로 꾸짖고 있다.
고재복 시인의 시집 『전원일기』에서 이순을 넘긴 시인의 회한과 그리움과 향수,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다양하고 깊이 투사된 작품으로 「나목」 연작시가 두드러진다.
① 상처는
피부에 덧나고
아픔은
가슴에서 도진다
- 「나목·1」 부분
② 살아갈 날들은
서두르는 겨울 햇살
쌓이는 낙엽더미에
타다만 불을
다시 지피고
- 「나목·2」 부분
③ 바람 소리도 삼키고
새소리도 삼키고
침묵조차
삼킨다.
- 「나목·4」 부분
④ 찢긴 자국도
미움도
어느새 굳은살이 되었다
- 「나목·10」 부분
「나목」 연작시 10편 중 무작위로 4편을 뽑아보았다. 모두가 나무를 의인화 시킨 작품들이다. 주지하다시피 ‘나목’은 옷을 입지 않은 나무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겨울나무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겨울’이라는 시공간은 ‘시련의 현장’을 말한다.
①, ④는 시련의 현장에서 얻은 겨울나무의 상처를 노래했다. 즉 비바람과 눈과 추위에 피부가 덧나고 찢긴 나무의 실존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은 ‘겨울나무’를 통해 인간의 고통스러운 삶을 말한다. 이에 반해 ②③은 ‘겨울’이라는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인간이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려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희망을 꿈꾸는지를 겨울나무를 통해 얘기한다. 즉 ②에서 “쌓이는 낙엽더미에/ 타다만 불을/ 다시 지”핌으로 해서 희망의 불씨를 지피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③에서는 살갗을 에이는 “바람소리”를 삼킴으로 해서 고통을 잊으려 한다. 뿐만 아니라 ③에서는 구도자의 모습도 보여주는데 “바람소리” “새소리”, 그리고 “침묵조차/ 삼”킴으로 해서 ‘말(言)’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드러낸다.
언어에 대한 고재복 시인의 인식태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새소리가 아름다운 까닭은」이 있다. 아주 짧은 작품이지만 「나목·4」에서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촌철살인 하듯 보여주고 있어 이채롭다.
고운 노래 때문이 아니다
서러운 울음 때문이 아니다
사람의 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 「새소리가 아름다운 까닭은」 전문
오늘날 인간의 언어는 너무나도 오염이 되어 순수하지가 못하다. 인간의 언어에는 이념과 욕망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이윤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미디어들의 광고는 마치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망이 투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갖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순수하지가 못하다. 이를테면 ‘계란유골’이니 ‘말 속에 비수가 숨어있다’느니 하는 것은 화자에 대한 충고와 분노의 감정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새소리는 아무런 욕망이 들어있지 않다. 분노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새소리를 들으며 ‘새가 노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기도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새소리에서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순수하지 못한 “사람의 말을 쓰지 않기 때”에 새소리가 아름다운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재복 시인의 시는 자연을 시적 대상으로 삼은 시편들이었다. 이번 시집의 시적 소재가 주로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재복 시인의 또 한 켠에는 그의 삶에서 만나는 정서적 사건들을 형상화시킨 작품들도 적지 않다. 이 작품들 역시 시적 주제는 주로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그 중심에는 인간의 실존이 놓여있다. 보다 순수하고, 인간답게 살아야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시속에 스며있는 것이다.
바람이 거세어지고
어디서 날려 온 헌 비닐 한 조각
길바닥을 건너
수 없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힘겹게 빈 밭을 지나
풀끝에서 잠시 머물더니
메마른 나무 가지에 걸려 펄럭거린다
허수아비 춤을 추는가 싶더니
힘겨워 허우적거리다가
진저리를 치는 것 같기도 한데
가지 끝에서 얼마나 버틸지 불안하기만 하다
쉬엄쉬엄 유람하며 쉬고 싶은
던져버리지 못하는 여윈 갈망
이제 다시 어디로 날려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쁘지 않는 웃음을 웃으며
즐겁지 않는 춤을 추어야 할까.
- 「산다는 것은」 전문
작품제목이 말해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삶에 대해 사색하고 있다. 그 사색의 시작은 바람에 몰려다니는 “헌 비닐 한 조각”이다. 헌 비닐이 “길바닥을 건너/ 수없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힘겹게 빈 밭을 지나” “메마른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거린다” “때로는 허수아비 춤을 추는가 싶더니/ 힘겨워 허우적거리다가/ 진저리를 치는”데 “가지 끝에서” 불안하다. 불안한 현대인의 실존의 모습을 바람에 날아다니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헌 비닐로 비유하고 있다.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허수아비 춤을 추는” 존재가 오늘 우리들의 모습임을 말하기도 한다.
“헌 비닐”에서 짐작하듯 어미 세상을 많이 살아온 어떤 존재는 이제 가버린 젊은 날을 뒤로하고 “쉬엄쉬엄 유람하며 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가 없다. “이제 다시 어디로 날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삶은 “스스로의 의지로 날지 못하는 ”헌 비닐“을 통해 시인은 지금껏 자신이 살아왔던 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는 것이다. 고재복 시인이 느끼는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인간의 숙명과 한계를 고통스럽게 노래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재복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견인하려는 노력을 시 속에 투영시키고 있다. 이는 때로는 굴절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보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바라보아도 무방하다. 자연의 생태적 특성에서 교훈적인 메시지를 얻겠다는 노력이 특히 그러하다. 그런데 실제 그가 만나는 날마다의 삶에서도 그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유년시절 자신의 모습이다.
시골의 밤은 고요하기만하다
팔베개하고 잔디에 누우면
모깃불 피우고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유년의 밤하늘
북두칠성 따라 가늠해 보던
사자, 독수리, 전갈,
오랜 세월에도
그 자리에 옛 모습 그대로 반짝거린다
초롱초롱 빛나던 숱한 눈빛들이
오리온으로 반짝거리고
추억과 쓸쓸함과 그리움으로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어간 시인이
북극성이 되어
자꾸만 가슴으로 파고든다.
-「밤 하늘」 전문
화자는 유년의 밤하늘을 회상한다. 그때 “시골의 밤은 고요하기만” 했다. “팔베개하고 잔디에 누우면/ 모깃불 피우고 멍석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화자는 다시 오늘의 시점에서 밤하늘을 바라본다. “북두칠성”이 있고 그 가까운 곳에 “사자, 독수리, 전갈”, “그 자리에 옛 모습 그대로 반짝거린다” 이어서 화자는 다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을 생각한다. 지고지순한 순수를 지키다가 젊은 날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어간 시인이/ 북극성이 되어/ 자꾸만 가슴으로 파고”듦을 느낀다. 그것은 오늘 화자가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롱초롱 빛나던 숱한 눈빛”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유년의 순수를, 때 묻지 않음을 화자는 그리워하며 잃어버린 순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고재복 시인의 이번 시집 『전원일기』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 ‘순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시인이 처한 실존에 대한 대응방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첫댓글 고재복시인님, 시집 내셨나봅니다. 시가 참 좋네요. 평론도 좋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연히 검색하다 오게 되었네요.
가끔 들러 좋은 글 많이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자주 들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