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K미팅(잠실역)
2018년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7월의 두 번째 토요일, MK미팅 장소는 ‘잠실역’이다. 올해 기획한 MK미팅은 2호선을 중심으로 자주 찾지 않던 장소를 방문하면서 서울의 숨어있는 장소를 발견하는 재미를 추구한다. 서울이라는 관념적 익숙함과 구체적인 기억이 없는 장소에서 발견하는 낯섬을 통해 장소와 공간의 의미를 확인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삶의 흔적은 실제적인 행위를 통해서 형성되며 또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기억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방문지는 낯선 곳이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한 장소이다. 잠실은 서울의 문화와 상업적 욕망이 집결되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겐 누군가와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낭만을 즐기던 석촌 호수가 있던 곳이며 그 주변에 마련되어 있던 ‘서울놀이마당’은 80년대 전통문화 공연이 수시로 열리던 연희무대였다. 잠실은 거대한 아파트들의 잠식이 진행되었음에도 이러한 문화적이고 낭만적인 시설은 빈부와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유혹하였다.
1989년에 개장한 롯데월드는 잠실의 분위기를 완전히 새롭게 탄생시켰다. 화려한 건물과 놀이시설은 석촌호수의 낭만을 완전히 상업적으로 변모시켰다. 수많은 가족과 연인들의 필수적인 방문지로 전국 어느 곳에서도 ‘롯데월드’는 언젠가 한번은 꼭 가야만하는 특별한 장소로 바뀐 것이다. 롯데월드의 명성은 200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상품으로 높아졌다. 특별한 인공적 테마파크를 갖추지 못한 중국인이나 동남아시인들에게 롯데월드는 완전한 신세계를 선사했던 것이다.
2016년 잠실은 또한번 주목을 받게 된다. 우여곡절을 통해 제2 롯데월드, 즉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된 것이다. 높이 555m 지상 123층의 대한민국 최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건물이 잠실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버렸다. 서울 어느 곳에서든지 날씨만 좋으면 볼 수 있는 거대한 타워는 잠실이 상업적 중심지임을 선포한 것이다. 롯데월드타워는 하늘의 창공을 찌르면서 모든 것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잠실의 욕망과 잠실을 찾는 사람들의 욕망을 결합시키고 있다.
뜨거운 토요일 M과 만남을 약속한 것은 사실 이 거대한 탑을 보기위한 것은 아니었다. 오래전 잠실역 근처 절에 위패가 모셔졌다는 한 친구의 흔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987년 7월 스카우트 활동의 지도교사로 참여했던 Y는 사고로 잠실 ‘불광사’라는 절에 위패가 봉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시각 다른 장소로 스카우트 지도교사로 참여했던 내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모든 것이 다 마무리되어 있었다. 장례식도 봉안식도 다 끝난 상태였던 것이다. 30년이 지난 후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위패봉안은 10년 단위로 계약되었으며 지금은 친구의 이름은 없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비록 철저하지 못했지만 Y의 흔적을 찾으려는 작업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했고 결국 아무런 흔적도 없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석촌호수를 한 바퀴 걸은 후,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해가 기울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호수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연인들이 호수를 바라보면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모습 또한 눈에 들어왔다. 호수는 연인의 장소이다. 과거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걸으면서 사랑을 맹세하기도 고백하기도 하였다. 이 곳은 사랑의 상처로 가슴 아파했던 사람들의 쓸쓸함이 배어있는 장소이면서 위대한 사랑(?)의 성공을 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과거의 소박함과 자연적인 분위기는 사라졌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너무도 많은 상업성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래도 석촌호수의 매력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호숫가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맥주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태양이 질 때 호수는 더욱 화려하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사라지는 것은 아름다워야 한다. 사라지는 과정이 누군가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고 욕망의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불행하다. 사라지는 것은 담백함과 사라짐 자체의 숭고함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아니 기억될 필요도 없다. 다만 사라짐이 호수의 일몰처럼 욕심을 내려놓는 느낌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러한 소멸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소멸의 성격은 결국 살아오는 과정에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 석양의 아름다움은 뜨거운 태양의 정열에서 파생된 것이다. 우리의 삶도 뜨거운 과정을 통해서만 사라짐의 의미를 부여받을 것이다.
호수에서 한 잔의 맥주, 어둠이 내린 카페에서의 또 한 잔의 맥주, 술은 항상 그 어떤 것보다 의미를 고민하게 만든다. 잠실에서의 밤은 소중했다. 많은 것을 떠나보냈고 많은 것을 포기했고 또한 새로운 것들의 가능성을 생각하였다. 허망하지만 허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와 술을 나누는 것은 혼자만의 고민보다 더 큰 의미를 생산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렇기에 잠실의 밤은 오래된 새로움이었다.
첫댓글 잠실, 차가 막히는 곳! 하남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서울 진입 1번 길. 좌석버스로도 모자라 2층 대형 좌석버스가 투입되어 쉴새없이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잠실, 서울 강동지역 상업중심지로 이제 국제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잠실 1-4단지 재건축으로 고층아파트군을 형성하고, 앞으로 잠실 5단지, 장미, 라이프, 올림픽 아파트 등의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을 이끌어가는 중요 관심 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학때부터 잠실 석촌 호수 둘레를 전전하며 살아왔던 곳이니... 나무도 작고 주변 건물들도 낮아서 황량한 데이트 코스였던 곳, 결혼 후 풍납동(물이 들어 가장 집값이 쌌던 곳)을 시작으로 삼전동, 석촌동, 성내동으로 이사하며 살았던 곳. 석촌 호수와 올림픽 공원의 환경 속에서 딸 아이들을 키웠던 곳(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빠와 같이 걷고 놀았던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 장소로 선택했던 곳, 아이들이 아빠의 마음을 기억이나 할지.......) 월세, 전세로 시작하여 연립 주택과 작은 아파트로.......
결혼할 때, 잠실 주공A 전세가 200만, 거래가 500-600만원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돈이 없어 구리에서 보증금 30만원 월세 4만원을 시작으로 풍납동 전세 방 하나 120, 200, 600, 방 2개 800, 1,200만원으로 올려주며 살았으니.... 나만 그런게 아니었고 우리들 모두가 대부분 그렇게 살았던 시기였지. 그야말로 잠실은 전세일지라도 돈 있는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 잠실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유층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가 전세나 아예 아파트를 사줘야 결혼할 생각을 한다니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부의 편중은 더 심해질 것 같고...
지금이나 40년 전 옛날이나 평범한 사람이 평생 땀흘려 일해도 잠실 아파트 한채를 보유하고 살기는 쉽지 않다. 뛰는 아파트 값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좋을 듯... 대규모 상업 지역과 대형 병원, 백화점, 종합 운동장, 큰 공원.... 경부, 중부, 도시 외곽 고속도로, 올림픽 대로 등의 교툥 요지.... 분당, 하남, 광주, 구리, 판교 등의 위성도시들을 거느리고..... 점점 더 그 위세를 떨치지 않을까?
오죽하면 강동 2호선 역 이름을 모두 잠실~로 바꾸어 달라고 하는 시대이다. '잠실' 이라는 이름이 부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정착되고 있다. 강남과 쌍벽을 이루며 서울 최고를 지향하고 있는 곳. 앞으로 주변의 위례, 고덕, 상일, 감일 지구 대규모 아파트 재개발로 잠실역으로의 쏠림은 더욱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서울 도심보다 더 복잡한 부심 지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중된 도시 발달을 보면서 착잡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견된 장소의 발달과 퇴보할 수밖에 없는 지역의 방치...
잠실 지역의 너무 빠른 변화에 추억보다는 혼란스럽다는 느낌으로 다가가게 된다. 가능하면 가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도 어쩔 수없이 갈 수밖에 없는 잠실이니.... 이게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종이에 쓰여 있는 문구일 뿐. 자본의 위력은 헌법 질서 정신보다 더 쎄다. 각 지역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한 정책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