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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열 시평]
고적한 내면의 빛을
호쾌한 화살로 변용(變容)하는 시인의 힘
한 기 홍
(갯벌문학회장)
1. 백터(vector) 시인 양재열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 1844~1900)는 그의 역저(力著)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초인(超人)을 이야기 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전지전능한 그야말로 초범입성(超凡入聖)한 인간이 아니다.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미래지향적인 과녁에 쏘아대는 불굴의 향상심(向上心)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런 의지의 인물들은 확실하게 정해놓은 임무(mission), 불타는 열정(passion)에 덧붙여 끊임없이 자신을 북돋우는 긴장(high tention)을 자기최면처럼 걸고서 앞으로 나아간다. 니체의 말을 인용해보자.
누구든지 자신의 미래를 향한 꿈들을 계발하며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성취에 연연하지 말고, 또한 작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이의 영향을 걱정하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주춤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양재열 시인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시인과 처음 상면한 때가 10년쯤 되었을까. 당시 시인은 출신 문예지 행사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는 날이었다. 교류문인들과의 만찬식당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시인의 옆에는 영화배우처럼 메이크업한 동반인들이 있었다. 소개를 들으니, 국악을 함께하는 예인(藝人)들이란다. 시인의 직업이 공무원임을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장착되어 있는 여러 가지 끼를 묵히지 않고 치열하게 다방면에 걸쳐 계발해가는 의지의 인물을 마주한 느낌에 감탄한 것이다.
시인과의 인연은 그날로부터 이어졌다. 갯벌문학회에 입회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돈독한 문학의 길을 동행하였고, 문학회 발전을 위한 열정과 헌신은 소속작가들의 표상이 되어왔다. 시인이 서울시청의 수만 명 공직자 중에서 동호인 연합회장으로, 시 소속 공직자 국악사랑회 회장으로서 활약한 업적과 활동역량도 경이롭지만, 대개 수박 겉 핡기 식으로 취미수준의 활동으로 끝나는 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시인의‘천착의지’는 대단한 바가 있다.
바로‘과녁을 향해 의지를 갖고 화살을 쏘는’니체의 초인사상의 올바른 구현자로서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웅변하는 과녁을 쏘는 화살의 이미지는 방향성과 질량을 지닌 벡터(vector)라고 할 수 있다. 벡터란 파이 크기만을 가진 스칼라(Scalar)와는 달리 크기와 방향성을 다 가진 물리량이라 할 수 있다. 가속도와 힘, 운동량, 전기파장 등을 표기할 때 화살표로서 그 방향을 나타낸다. 결국 니체가 말하는 화살은 역동성을 갖고 미래의 이상을 향해 날아가는 의지를 일컬음이다. 양시인은 바로 이런 의지를 가진 벡터시인이라고 감히 언급해 본다.
갯벌문학회 총무이사로 맹활약하고 있는 시인의 사회적 활동을 대하는 열정은 또 어떠한가. 소속작가들의 관리와 연락, 대소 행사의 원활한 진행과 마무리를 위한 솔선수범 자세는‘열정맨’으로서 정평이 나있다. 시인 역시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이건만, 질박한 풍모에 호쾌무비한 추진력이 청년을 보는 듯 하다. 이점은 반평생을 공직에 종사하면서 부지런히 서울시 시정(市政)을 수행한 공복으로서의 소명의식과 성실한 자세에서 기인된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역시 타고난 근면성과 곧은 의지, 평정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한국 국악계의 대금산조 명인인 이생강 선생의 대금산조 이수자로서도 왕성한 국악연주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시인은, 뜻한 바 있어 최근 공직을 명예퇴직하고 문화예술 방면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현과정에 있다. 시인의 초인의지에 경의를 표하며 그의 서정적인 시세계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2. 도저(到底)한 그리움이 씻기지 않는 애잔(哀殘)으로 남아 빛나고
양시인의 시세계를 몇 개의 단어로서 축약할 수는 없다. 아니 모든 시인의 시세계가 그렇다. 시인들의 내면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서정시를 주로 쓰는 시인이 어느 날, 내면의 파동에 못 이겨 비판적인 경향시를 썼는데 그 한편이 매스컴을 탔다고 해서 그 시인이 경향시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시인의 시세계를 조망해 본 소회를 이렇게 다소 축약된 서술로서 적어본다.
“뜻밖에도 시인의 시적 지향은 과거를 참구(參究)함으로서, 현재와 미래의 역동성에 낀 혹여 자만할지 모르는 인자(因子)들을 다독이는 작법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낙조의 붉은 깃만 강상(江上)을 채우는’도저(到底)한 그리움이 씻기지 않는 애잔(哀殘)으로 남아 빛나고 있다.”
여기서‘뜻밖에도’란 표현은 시인의 진취적인 초인의지에 빗댄 것이다. 시인이 발표한 여러 시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제는‘고적(孤寂)한 그리움’이다. 이 고적한 소회는 시인의 또 다른 얼굴, 국악 대금이수자로서의 시안(詩眼)을 보이며 극명하게 토로된다.
천근의 무게로 짓눌린 밤
지붕을 타고 찾아 와
내 귓가에 앉은 이는 누군가
베란다에 나가니 덩그런 달빛
아무래도 그의 방문이 수상하다
때론 잰 걸음으로
어느 때는 느릿하게
들쭉날쭉 운신도 출중하다
마당으로 내려가 보자
아파트 앞산에서 내려온 손님인지
야윈 가슴을 가진 이의
한숨인지는 몰라도
그날 나는 몰래 울어야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던 대금의 선율
야음 섞인 그 칠흑의 밤이
못내 고적(孤寂)했으니까
- ‘대금(大笒) 소리’ 전문
이 시에서는 시인의 여러 모습이 투영된다. 국악인으로서 대금연주에 입문하게 된 과정의 심득(心得)을 그리면서도, 시인의 원초적 자아실현에 대한 숙명적이랄 수 있는 접근방식을 묘사하고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단장의 퉁소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이끌려나가는 도취적인 유인보다는, 아득한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왔던‘소리에 젖고 싶었던 욕망’의 아찔한 실현에 전율하는 화자의 각성(覺醒)이 의미심장하게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날 나는 몰래 울어야 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던 대금의 선율/ 야음 섞인 그 칠흑의 밤이/ 못내 고적(孤寂)했으니까”
이토록 자신이 그리워하던 마음 속의 지향에 대한 고백이 어디에 있는가. 결국 시인은 그간 고적했던 인생경로의 여러 질곡들을 대금소리를 통해서 해원(解冤)하면서, 시인이 바라는 소슬하면서도‘제자리를 마침내 찾은’대금과의 운명적 조우를 “그날 나는 몰래 울어야 했다”라는 감격적인 장면으로 승화하고 있다. 결국 칠흑 같은 야밤의 세월들은 시인의 고적한 끼와 소슬한 내면세계를 붙들어 맬 수 없었음이다. 시인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의 호쾌하고 활달한 호걸풍 면모에 경탄하고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러나 시인의 내면에 얇은 안개처럼 맺혀있는 고적한 심상(心象)의 정체를 안다면 시인이 얼마나 외유내강한 사내인지를 깨닫게 되리라.
시인은 아직 시집을 상재하지 않고 있다. 예의 활발한 공직생활의 영위와 문화예술계에서의 다당면에 걸친 관여와 행사참여 등으로 진즉한 창작활동에 전념치 못하는 점도 이유다. 그래서 발표된 작품도 양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시인의 발표된 작품 중에서 상술한‘대금소리’를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필자는 시인의 내밀한 시적 자기고백이 드러나 있고, 대금을 통해 해원하는 삶의 진적(眞跡)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수작으로서 평가한다.
도심의 강물이 봄에 젖는 걸
벌써 서른 해가 넘게 보고 살았다
코 밑이 검실거리던 무렵
고향을 떠나와 새 둥지를 튼 뒤로
그 때 강은 언제나 부어있었다
객지에서의 인정에 허기져하던
내 파리한 가슴만큼이나
애틋한 물살로 모래를 허덕대고 있었다
봄이면 지금의 개나리꽃 대신에
버드나무 꽃씨를 폴폴 날려댔었다
한여름 벌거숭이 꼬마들이 멱을 감던 물
고작 하늘을 품에 담곤 했었지
어느새 강 위에는 유람선이 흐르고
칠색의 분수가 교각에 수를 놓는
삼십년이 넘도록 넘나든 계절이여
낙조의 붉은 깃만 강상(江上)을 채운다
- ‘한강’ 전문
이 시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싯귀는 마지막 행 “낙조의 붉은 깃만 강상(江上)을 채운다”이다. 전체적인 시 구성은 어릴 적 체감한 한강의 모습을 유추하면서, 현재의 오색찬란한 꾸밈이 있는 문명에 대한 회의로 맺고 있다. 어릴 적 보았던 수수한 한강 모습은 동심 속에 자리한‘촌스러우면서도 정직하며 그리운 서정이 일렁이는”마음의 고향 같은 푸근한 정경이다. 그러나 현대문명의 장식들은 편리함과 함께 시각예술의 구현이라는 치장들을 시도하여 순수성을 도외시하고 있는데, 이 현상에 대한 시인의 아쉬움이 짙게 배어 나온다.
“한여름 벌거숭이 꼬마들이 멱을 감던 물/ 고작 하늘을 품에 담곤 했었지”. 여기서 ‘고작’이라는 묘한 부사로서의 시어차용은 시맥(詩脈) 구축상 절묘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푸르른 한강물이 어찌 하늘만을 담고 있었을까. 개구쟁이 소년들의 벌거숭이 몸이나, 한강다리 교각들도 비추었을 테고 디테일하게 보면 고추잠자리도 담았을 터다. 그러나 시인의 시안에는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순수했던 시대에 머물고 싶은 그리움이 강렬하다. 그래서‘모든 것을 투영하고 싶은’의지를 반어법으로 치환하여‘고작 하늘을 품는’다는 절묘한 시어로 맺은 것이다.
시‘한강’은 주제나 내용면으로는 평이한 느낌의 서정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술한 두행의 탁월한 시어차용과 배치에서 도도한 시인의 시적 성숙도를 느낄 수 있으며, 시인의 심안에 자리한 서사(敍事)의 농축도를 짐작할 수 있어 즐거운 마음이 든다. 특히 “낙조의 붉은 깃만 강상(江上)을 채운다”는 절묘하고 무게감 있는 결구(結句)는 시인의 시어채용 능력이 탁월한 것임을 웅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큰둥한 마음이 찾아가던 곳
참새 몇 마리 풀씨를 뒤적대던
터덜터덜 황톳길 엎드린 초집마을
대장간 둘째 딸도 대처로 유학간 뒤
수몰로 찾지 못했던 고향이라
도심에서의 재회로 다시 세운 간이역
하지만 그도 내 복은 아니었나 보다
가을비 추적거리는 어느 시월에
망치로 철로를 때리는 소릴 들어야 했다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보던 실루엣
그녀는 기어이 병동으로 숨어 들어가
꽃잎만 하늘하늘 보내 주었다
뇌수를 휘젓던 현기증으로
바들바들 오열하던 실핏줄의 경련
뚜렷이 기억한다
겁 없이 내게 퍼주기만 하던 사랑
두 번째의 고향도 잃어버린 나는
이제 또 어디로 갈까
- “실향(失鄕)” 전문
‘실향’은 시인의 젊은 시절 연정을 품었던 소녀에 대한 아픈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 “뇌수를 휘젓던 현기증으로/ 바들바들 오열하던 실핏줄의 경련”만큼이나 처절하고도 깊은 애상(哀傷)이 점철된 사랑의 흔적을 아프게 서술했다. 시 전편에 흐르고 있는 비장미(悲壯美)나 슬픈 애린(愛隣)의 완곡한 표현들은 시적 형상을 넘어서 마치 젊은 날의 초상에 대한 장편소설(掌篇小說~손바닥 소설)을 보는 듯하다. 얼마나 아팠으면 “망치로 철로를 때리는 소릴 들어야 했다”라는 절규가 있을까. 이제는 수몰되어 형체도 없는 마을의 대장간집이 있었던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피지도 못하고 꺾여버린 한 소녀의 환영에 눈물짓는 시인의 가슴에는, 피안 저 너머에서 잃어버린 고향이 손짓하는 걸 쫒는 유형(流刑)의 눈길이 있다.
이런 서정과 서사의 일치는 요즘 시단의 형이상학적 흉내나 말장난으로 그치는 일부 시 쓰기 풍조에 대한 경종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진솔한 내면의 토로와 아픔을‘처연한 용서와 화해’로 스스로 승화시키는 노력이야말로 시인들이 가져야할 진정한 시안(詩眼)이 아닐까. 양재열 시인이야말로 서정과 서사를 정직하게 풀어내는 시안을 가졌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ery)가 말한 "사람은 오로지 가슴으로만 올바로 볼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It is only with the heart that one can see rightly,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는 말은 양시인의 시세계를 잘 설명해 주는 명언으로 볼 수 있다.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펜을 들기 전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경구이기도 하다.
3. 곧은 의지로 풀어내는 문향, 그 사변(思辨)을 감싸는 신념은?
양재열 시인은 공직자 출신으로서 곧은 국가관과 정론(正論)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혹자는 공직자들을 고지식함을 대명사로 달고 있는 유형으로 치부하고, 특히 일반행정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영혼이 없는 부류(部類)’로 매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 본인들이 제기한 민원이나 사익을 규율하는 법령에 의해 억제를 받았던 사람들의 불만이 시니컬하게 표출된 사례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그러나 공직자 출신의 인물들이 과연 그러한가? 일부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고지식하고 영혼이 없는 부류의 인간들이 공직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일반사회 여러 계층의 통계학적 수치보다 훨씬 적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무원은 국민이 만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다. 법을 마음대로 유권해석하여 자가당착적인 행정을 펴는 자는 국민이 당장 용납하지 않는다. 필자를 비롯한 공직자 출신 문인들의 사고는 열려 있다고 감히 자부한다. 양재열 시인의 경우도 현직에 종사할 때, 서울시공무원 취미동호회 연합회장과 국악사랑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예인(藝人) 기질이 탁월했던 공직자였고, 열린 마음으로 사계의 여러 전문가들과 막힘없이 소통했던 등단 시인이었다.
“삐그덕”
어둠을 밀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아버진 그렇게 출근을 하고
통금을 경계로 집에 들어오신다
출퇴근시간은 정확하다더니
늘 아슬아슬하다.
와글와글 아우성만 가득한
울타리 안에서는
자식 놈 등록금에
공과금에 곗돈에 생활비 타령
가끔 돈 때문에 가족들에게
“내가 나가서 도둑질을 하랴”
사표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아버지
퀭한 시선으로 일찍 도솔천을 건넜다
대를 이은 나의 공직생활,
이제야 이해된다고는 했지만
어깨를 들먹이며 토하는 고백
아버지!
당신은 별이고 영웅이셨습니다.
- “공복(公僕)” 전문
시‘공복’은 시인의 직업관과 인생관, 그리고 삶의 지향점을 확연히 보여준다. 선대를 이어서 공직에 투신한 이유도 드러나 있다. 시인의 아버지가 공무원이었을 시절, 거의 대다수 국민들이 힘들게 연명해 나가던 6-70년대를 배경으로 청렴하고 강직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시인은 공직을 천직으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그 결심은 실현되어 시인을 공직자로서 대를 이어가게 했고, 필자가 알기로는 시인의 아들들까지도 공무원으로 종사하고 있다니, 3대를 이어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고 있는 공무원 가족이다.
“내가 나가서 도둑질을 하랴”/ 사표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아버지/ 퀭한 시선으로 일찍 도솔천을 건넜다”. 시인의 영웅이고 별이었던 아버지는 박봉에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강직한 성품에 집안의 버팀목으로 있다가 타계하셨다. 시인의 가슴에 아버지는 올곧은 신념의 화신으로 각인되었고, 시인의 문향에서는 그 소명(召命)이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
“대를 이은 나의 공직생활,/ 이제야 이해된다고는 했지만/ 어깨를 들먹이며 토하는 고백/
아버지!/ 당신은 별이고 영웅이셨습니다.”
양재열 시인. 그의 문학행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다. 명료한 서정의 토대 위에 건강한 서사가 어우러지는 주목할 만한 시편들의 생산이 이어질 것임을. 문인으로서 설익은 사상과 이념의 그림자를 머플러처럼 두르고, 이분법적 접근으로 편 가르기를 하는 일부‘뜨악한 문인류’의 냄새가 없이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할 수 있는 시인이 양시인이다. 또한 고상한 척하며 주변 문사들을 이류 취급하는 시건방진 빈 강정류의 필객(筆客)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위풍당당한 양시인의 배포 큰 그릇도 호감을 준다.
상재된 시 몇 편으로 시인의 심원한 시세계를 전부 조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술한 작품으로도 시인이 웅변하는 문학적 지향점을 탐구할 수 있다. 정론적인 사고와 가감 없는 서사의 전개에서 필자는 시인의 우직하면서도 올곧은 작가정신을 추출할 수 있었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성실할 수 있다."(Only the person who has faith in himself is able to be faithful to others.)고 설파했다.
4. 중석몰촉(中石沒鏃)의 기상으로 문단에 우뚝 서기를
사기(史記)에 의하면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장수 이광(李廣)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사냥길에서 호랑이가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혼신의 힘을 모아 궁시를 날려 호랑이의 가슴에 명중시켰다. 그런데 호랑이는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다가가서 살펴보니 호랑이를 닮은 바위덩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살은 바위 중앙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활을 쏘았던 자리로 가서 재차 쏘아보았으나, 다시는 바위에 꽂히지 않았다. 해내야겠다는 필생의 각오로 정곡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온 말이 중석몰촉(中石沒鏃)이다. 즉 마음을 한곳에 모으면 해낼 수 있다는 고사성어다.
양재열 시인에게는 이 중석몰촉의 기상과 당당한 추진력이 있다. 어찌 문학을 강한 정신력과 활달함으로 이룰 수 있겠냐마는, 문인에게도 필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끈기와 추진력이 없으면 불후의 장편소설이나 대하시리즈 창작이 탄생될 수 없음이다. 전술한 니체의 초인의지나 과녁을 향하는 화살의 의미와 상통하는 중석몰촉의 예다. 시인에게 더욱 절차탁마하는 문학의 길을 소망해 본다.
갯벌문학회는 2016년도 ‘갯벌작가상’ 수상자로 양재열 시인을 선정하였다. 시인의 높은 창작열과 진솔한 문체의 구현, 그리고 문학회 발전에 헌신하는 사회적 공헌도를 높이 평가했다. 시인의 문운창성과 현재 몰두하며 기획하고 있는 문예 프로그램의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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