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외국어 교육과 문화의 관련
1. 언어적 소통의 관점 변화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언어적 소통은 기본의미를 바탕으로 한다. 기본의미는 일종의 지시적 의미를 뜻한다. 그러나 조금만 수준이 높아지면 일차적 의미보다는 언어의 감정가치와 간접적 가치, 나아가서 상징적 가치를 더욱 많이 활용하게 된다.
모든 언어소통은 간접화된 상징표현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일상적 소통에서 일차적 의미로만 이야기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일차적인 의미로 소통되는 제한을 벗어나기 위해 比喩가 사용된다. 비유는 의미를 모호하게 하거나 간접화하는 특징이 있다. 언어의 모호성을 감수하면서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는 이유는 표현의 구체성을 확보하고 상대방을 움직이는 설득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상징이 활용될 때, 언어를 운용하는 주체는 개인 차원을 벗어난다. 상징은 어느 언어권 안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성숙된 의미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과 집단적 의미를 공유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할 때 그 집단의 삶의 방식이라든지 사고방식 등에 익숙해져 있어야 소통이 원활하게 된다. 다음 예를 보기로 하자. 결혼하여 아직 신혼의 꿈이 가시지 않은 젊은 부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신혼살림이 깨가 쏟아지겠네.”
이는 농본사회의 생활습관과 정서를 반영한 관용적 표현이다. 참깨를 털면서 깨알이 쏟아지는 짜릿짜릿하게 손끝으로 전달되는 느낌과 농사짓는 보람을 느껴본 사람이 아니면 이 말을 실감으로 수용할 수 없다. 신혼살림의 재미가 쾌적한 길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는 기분이나 느낌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그 언어권의 문화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삶의 양식과 질을 함께 반영하는 것이다.
“게으른 서생 책장 넘기듯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글을 읽으면서, 앞으로 읽어야 할 책장이 몇 면이나 남았는지, 남은 데를 확인하느라고 글을 읽어 나가는 일이 천연(遷延)되는 경우에 이런 말을 쓴다. 이는 서생들이 공부하는 방식을 잘 알지 않으면 소통이 잘 안 된다. 언어 표현이 문화 맥락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언어의 소통에 문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처럼 언어의 소통은 [話者 → 傳言 → 聽者] 식으로, 단일 주체의 단절적 의미전달과 수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어적 소통은 일차적으로 대화적 속성을 지닌다. 아울러 의미공유를 목표로 하는 집단적 속성을 고려해야 제대로 설명이 된다. 소통의 과정이 집단화되고, 집단화된 소통에는 문화개념이 개입한다. 이러한 양상은 외국어를 가르치는 데도 꼭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이른바 文化間 疏通(cross cultural communication)은 이처럼 문화맥락을 고려한 소통이 된다.
문화간 소통의 양상을 매우 잘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문학이다. 특히 소설은 대화적 맥락에서 미세한 감정의 표현과 그 수용의 세목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는 소설이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서사양식의 근대적 변용이다. 따라서 서사의 기본 원리인 이야기의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 서사의 기본 구조이다. 또한 현대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설은 현대의 문화적 소통의 전범을 제시한다. 소설 가운데는 소통 그 자체를 문제삼은 경우도 있다. 이는 소통현상이 문화 내용을 구성한다는 뜻도 된다.
2. 문화적 소통에서 문화의 속성
문화를 규정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문화라는 말이 지시하는 내용 또한 몇 가지 다른 층위를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문화’라는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세 층위를 상정하게 된다.
① 어떤 문화권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가운데 다른 집단(문화권)과 대비되는 특징이 집약된 경우.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친족관계를 유지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친족 사이의 부르고 가리키는 말은 같지 않다. 우리말에서 촌수를 따지는 말과 서양의 촌수를 따지는 말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에서 위아래를 분명히 가려 말하는 존대법은 우리 언어문화가 다른 나라와 변별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측면은 생활과 예술 각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이다.
② 다른 문화권과 구별되는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의 특징 속에서 빚어진 문물을 가리키는 경우. 어느 언어든지 시를 안 쓰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시조’는 우리나라의 특징적 장르이다. 이는 일본의 하이구(和歌)나 중국의 각종 양식으로 나타나는 한시와 비교하면 나라마다 문물로서 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의 경우 우리나라의 농민소설은 일본이나 러시아의 그것과 변별되는 특징이 있다. 구체적 문물의 특징을 가리키는 말로 문화를 사용할 때는 이처럼 문화활동의 결과물을 상정하게 된다.
③ 실제적인 삶과 직결되지 않는 인문ㆍ예술 양식으로 구체화된 사물을 가리키는 경우. 이는 주로 예술작품이나 정신적 노작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과 변별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인공을 가함으로써 생겨나는 정신적 가치를 문화개념에 포함하기 때문에 저급한 수준의 것은 배제하게 되고 문화를 과도한 이념성으로 몰고갈 위험이 있기도 하다.
문화는 이처럼 층위에 따라 다양한 내포를 지니고 있다. 문화를 어느 圈域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삶의 방식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일종의 규약과 같은 것이다. 문화는 제도나 법보다는 정형화가 덜 되어 있으나, 그 문화권 사람들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보이지 않는 규칙으로 작용한다. 특히 직접적인 작용을 하는 규칙이라기보다는 상징적 교섭작용을 매개하는 규칙이 된다. 문화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실제적 교섭작용이나 행동은 물질적 규칙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위에서 정리한 문화개념 가운데 어느 하나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이거나 경제적인 규칙의 영향을 받는 행동은 실제성이 더 짙게 마련이다. 따라서 문화 영역에 포함할 경우, 개념의 혼란이 올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경우를 생활문화라 하여 넓은 의미의 문화로 수용하는 경우가 없는 바는 아니다.
상징적 교섭행위로 규정되는 문화 가운데 하나가 文學이다. 문학은 그 자체가 자산이 되거나 경제적 이윤을 높이는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을 통해 넓은 의미의 소통작용을 도모하는 것이다. 언어를 통한 의미소통 가운데 가운데 문학은 독특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상징적인 언어소통의 문화가 문학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여러 장르 가운데 언어적 소통의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로 소설을 들 수 있다. 소설은 언어적 소통의 구조가 이중으로 되어 있다. 소설은 ‘이야기’를 전달․소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중적인 언어적 소통의 양상을 보여준다. 소설은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이야기는 스토리에 해당하고 뒤에 이야기하는 것은 서술 즉 내레이션에에 해당한다. 이야기라고 하는 작중현실은 언어적 소통의 한 범례가 된다. 작중인물들 사이의 언어적 교섭으로 이루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작중인물들은 어떤 행동을 하면서, 한편으로 인물들끼리 끊임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가공하여 소통하게 하는 소설의 외적 구조 또한 소통의 전형적인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는 서술자의 서술로 구현되는 것인데, 액자소설에서 ‘외화’라고 불리는 겉이야기가 소통의 외부구조를 이룬다.
나아가서 소설이 소통되는 현실 공간은 언어적 소통의 거대체계를 이룬다. 이는 문화적 실천의 구체적 양상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작가라는 집단이 소설이라는 담론체를 만들어 독자 집단에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문학적 소통의 거대구조 틀이다. 이러한 소통을 구조화하면 [ 作家 - 作品 - 讀者 ]의 도식이 된다. 소통의 방향은 양방향적이다. 그러나 소설적 소통의 언어적 측면의 특징을 살피기 위해서는 이 구조 전체를 포괄하기보다는 독자편에 중점을 두어 소통양상을 살피는 것이 생산적이다. 작가와 작품의 요소는 소통현상에서는 잠재적 요소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류의 독자가 어떤 유형의 소설을 선호하는가, 소설을 읽은 결과를 어떻게 공유하는가, 공유한 의식을 어떤 양식으로 외현하는가 하는 데 따라 소통의 양상이 달라진다. 이렇게 변별되는 그 자체가 문화양태를 이루는 것이다. 소통 양식이 사회 문화적으로 규제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소통은 문화의 향유와 지향이라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문화는 어느 시대 사람들이 선택한 최선의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화자체의 변화가 요청되는 시점에서는 문화의 변화를 주체적으로 모색하는 윤리감각이 싹튼다. 이러한 기제를 추동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문화가 정태적 개념이 아니라 지향성을 지닌다는 점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문화의 교육작용과 연관되는 것일 터이다. 문화는 주체의 향유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가 지향하는 이념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아마도 인간이 지닌 自省的 思惟의 힘이 그 근원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지향성이 교양의 이념과 연관되는 것은 물론이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형성하려는 존재라는 뜻이다.
한국어교육에서도 문화의 이러한 지향성은 고려되어야 한다. 한국인들이 어떤 문화문법 안에서 산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나아가 그들은 무엇을 삶의 이상으로 내세우는가, 무엇을 삶의 지표로 삼는가 하는 점을 이해하고, 언어적 소통에 그러한 요인이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문화적 이해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다. 남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소통 방식이 언어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알게 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과정이 된다.
문화간에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차적 의미의 소통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문화집단은 어떤 정서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 삶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이해의 영역으로 포괄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삶의 양태는 역사와 분리될 수 없으며, 미래 지향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간 이해를 위해서는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3. 문화와 문학의 관련성
우리는 문화를 상징적 교섭작용으로 규정하고 출발하였다. 쉽게 말해서 문학은 현실적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시나 소설을 읽는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적 삶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밥만으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의 만족감을 형성하는 요인과 구조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밥과 문화를 맞세워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식주 외에 인간이 향유하는 정신문화로서 문학은 인간의 가능성 확장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문학은 질서잡히지 않고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 삶에 형태를 부여하고 삶의 방향을 모색하게 하는 정신의 용광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모습을 점검하고, 인간의 심리가 행동으로 구체화되는 양상을 확인하는 일을 해내는 것이 소설이다. 이른바 리얼리즘 소설은 삶의 모습을 치밀하게 그려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들은 인간의 심리와 언어의 문제를 自省的으로 살피는 데 주력한다. 그런가하면 소설에서도 인간 삶의 이념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 매우 심중한 고려를 한다. 이는 인간이 희망을 갖고 사는 존재,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 현실을 초극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사는 존재라는 전제와 연관된 사항이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볼 때라야 현실의 문제점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비판의 틀이 없을 때 현실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념으로 얼룩진 현실이 현실 그 자체인 것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처럼 문학은 인간 삶의 양상에서 정신의 높이까지 문화전반과 연계된다.
한국어의 수준 높은 이해를 위해 한국문학작품을 폭넓게 읽는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국인의 경우에도 오랜 기간의 교육을 거쳐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한국어를 익혀야하는 현실적 요구를 그런 방식으로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어 학습을 위해 문학작품을 동원할 경우 학습자의 수준,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 학습효과 등을 고려하여, 작품을 한국어 교재 편성의 원리에 따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소설을 낮은 수준의 한국어 해득자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소설 자체를 가르치기보다는 소설을 통해 언어를, 문화를 가르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과제가 된다.
소설이 삶의 맥락과 연관되고, 그것이 문화의 구체상인 문학과 연관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과 그 문학의 맥락을 고려한 언어 표현과 이해를 위해서 어떤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가가 과제로 부각된다. 언어적 소통, 문화적 조건, 문화와 문학의 연계, 문학 가운데 소설이 지닌 특성으로 인해 언어적 소통을 증진할 수 있는 요소 등의 순서로, 한국어교육이라는 전체 구조 속에서 위계화하는 것은 문학을 통해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모색에서 기본적인 과업이라 해야 할 사항이다.
II. 소설문학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기여
1. 풍속과 관습의 이해자료
소설이 삶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을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설 속에는 개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나타나 있기도 하고, 어느 시대 사람들의 삶이 특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방식 가운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유형화한 문화적 형태를 風俗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출생하여 성장하고 세상을 마감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각종의 儀式과 절차로 풍속은 구체화된다. 설과 추석을 어떻게 지내는가, 출생은 어떻게 축하하고 결혼은 어떻게 치르는가, 회갑을 기념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한 마을의 축제는 어떻게 행하는가 하는 등이 풍속 가운데 대표적인 예들이다. 풍속은 일정한 규제력을 지니고 있다. 풍속에 어긋나는 행동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풍속을 해치는 이를 ‘풍속사범’이라고 하여 벌칙을 과하는 것도 풍속이 삶의 양태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예이다. 개인을 강조하더라도 풍속을 완전히 벗어나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풍속 가운데 작용 방향이 개인 차원으로 定向된 것을 관습이라 한다. 관습은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풍속 가운데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 관습인 셈이다. 관습은 삶의 규범으로서 반성적 작용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관습이 반성 없이 개인의 행동을 규제할 경우 그것은 행동을 구속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관습은 때로 弊習이란 의미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관습이 폐습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다. 관습은 일반 생활인의 삶을 안내하는 거대규범이기 때문에 삶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필수적 요건이 된다. 관습의 변화가 요청되는 시기에 변화를 수용하지 못할 경우는 폐습이 되지만, 관습은 삶의 지속기켜 주는 일상의 원리가 된다.
언어를 매개로 작용하는 관습의 이해는 문화이해 차원으로 격상될 수 있다. 소설을 통해 관습을 이해하고 풍속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소설이 허구의 양식이기는 하지만, 삶의 세부적 모습을 그려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삶의 실상을 떠날 수 없고 삶의 실상이라는 것은, 문학 측에서 보자면 그 자체가 소설로 포착된 것이다. 삶의 실상을 묘사하는 가운데 내가 사는 삶의 실상을 명징한 형태로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소설의 일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상적 현실을 창조하기보다는 현실의 방향성을 잡아내되 미래를 크게 예측하지 않는 것이 소설의 한 규칙이다. 염상섭의 <만세전>은 식민지 한국의 풍속을 잘 그리고 있다. 그리고 가문을 유지하는 관습적 방법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박경수의 <동토>에는 전통사회에서 한 개인이 성장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박경리의 <토지>도 전통사회의 변화 시기에 나타나는 풍속과 관습의 변화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
소설에서 풍속만 그린다면 개인의 내면적 가치는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를 이해하기 위해 풍속을 고려하는 것은 한국어가 운용되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데는 다른 작품을 통해 경로를 전환하면 아무 이상이 없을 것이다. 한국어를 문화 차원에서 이해하는 데 소설을 이용할 수 있는 근거는 한국의 풍습과 관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인간행동의 이해
언어적 소통은 결국 인간 행동의 이해를 지향하게 된다. 언어행동 자체가 다양한 인간의 행동 가운데 한 하위 영역이다. 인간의 언어행동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나 의미를 받아들여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언어행동은 복합적으로 수행된다. 언어행동 가운데는 언표적 행위, 수반적 행위, 수행적 행위 등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오스틴으로 대표되는 언어행위론자들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너는 무슨 공부를 밤을 새우면서 하느냐?” 하고 아버지가 이야기했다고 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무슨 공부인가 하는 물음, 건강을 해칠까 두려우지 그렇게 하지 말라는 명령, 또는 적절히 하라는 권유 등이 기본의미 외에 부가될 수 있는 것, 혹은 그러한 행동이 하나의 발화 안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어행동을 통해 인간의 의사소통을 이해하는 것은 말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점에 대한 이해와 상통한다. 직설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간접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표현효과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말을 외둘러 하는 경우도 있고, 반어법으로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절차와 방법을 통해 수행되는 소통행위를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곧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되는 까닭은 이것이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라는 단편에는 이인국이라는 처세에 아주 능한 의사가 나온다. 그 의사의 행동 자체로는 지탄의 표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인간의 어떤 유형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곧 인간의 이해로 연계된다. 이상의 <날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데 대한 답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소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사고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에는 어떤 말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말이 쓰이는 자리가 다른 상황보다 적절하게 통제되어 있게 마련이다. 인간행동의 이해가 언어의 이해로 연결되는 첩경이 소설 안에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소설에 나타나는 대화는 맥락이 적절히 통제된 언어 수행의 모범이 될 만하다. 소설의 대화를 이용한 맥락의 형성과 그 운용에 대한 연구는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3. 문화적 원형의 이해
일정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동안 상징으로 굳어지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 의미로 인식되는 상징물들이 있다. 강이나 바다는 여성을 떠올리게 한다. 화염은 분노와 정화를 뜻한다. 물은 정화와 재생을 뜻한다. 이처럼 의미의 보편성을 보증하는 상징물을 원형이라 한다. 원형(상징)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머리에 보편성을 지닌 어떤 의미를 환기한다. 이렇게 환기되는 의미는 인류 보편성을 바탕으로 해석되는 사항이다. 그러한 상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의미가 인류 보편의 것인가 여부를 자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시각으로 보았을 때, 보편성이 확인되는 경우는 원형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로 기록되어 있는 <공무도하가>는 원형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公無渡河/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그 뜻은 대체로 이렇다.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그예 물 속으로 들어가셨네/ 원통해라 물 속에 빠져 죽은 님/ 아아 저 님을 언제 다시 만날 꼬 여기 옮긴 것은 시이지만, 이 시를 거느리고 있는 설화는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장면에 물이 개입되어 있다. 물, 강, 강 건너기, 죽음, 재생 등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의미체계이다. 이처럼 물이 죽음과 이별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세계 보편적 현상이다. 이렇게 상징이 보편적 의미를 지닌 때 이를 원형이라 한다.
산에 대한 관념이 나라마다, 언어권마다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땅에 대한 심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인데, 지리적 심성(geo-mentality)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풍수지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어교육에 풍수지리를 아무 가감 없이 그대로 이끌어들인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그러한 이론이 원형성을 띤다는 점에서 인간이 대상을 이해하는 보편적 방법이라는 점은 의미 있는 사항이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은 한국 근대사의 이야기이지만 달리 보면 지리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승원의 일련의 작품은 바다가 원형상징성을 띠고 나타난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에 나타날 수 있는 땅에 대한 관념, 하늘에 대한 관념, 바다에 대한 태도 등을 주의하여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형을 문화 차원에서 이해하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소설에서는 하늘에 대한 관념과 지하세계에 대한 관념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III. 소설문학의 언어차원
1. 소설언어 소통의 구조
소설의 언어는 독특한 기호학적 구조(semiotic structure)를 이루고 있다. 근본적으로 소설의 언어적 구조는 이중성을 띠는데, 소설의 소통구조가 이중적이라는 점은 앞에서 밝힌 대로이다. 소설의 언어구조가 서사 일반의 언어구조와 상통하는 점에서 기인하는 특징이다.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술자’가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남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시간적으로 과거에 이루어진 일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사건을 겪은 나와 그 이야기를 하는 나는 다른 나이다. 사건을 겪은 나는 경험주체이고 그 내용을 이야기하는 나는 서술주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서술하는(이야기하는) 일은 이중적이다. 서술되는 이야기가 있고, 서술하는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최수철의 <화두, 기록, 화석>이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앞으로 장황하게 이어져나갈 이 글은 박창도라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박창도라는 사내의 행적이 있고, 나는 그것을 글로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만 서론적으로 몇 마디 나의 말을 늘어놓을 것이고, 나머지 부분은 직접 그가 쓴 글들로 대치할 것이다.” 이처럼 소설의 서술은 이야기가 다중적으로 얽히게 마련이다.
서술되는 이야기는 그 나름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해서 이야기를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면 사건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이야기를 이룬다. 작중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이야기를 이루는 기본항들이다. 인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은 행동과 대화로 채워진다. 그 행동은 서술자가 묘사하거나 설명하고, 대화는 대화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문면에 드러난다. 대화는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소설을 진행하게 하는 하나의 중심축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서술구조로 감싸서 전달하는 것이 소설의 언어적 소통구조의 특징이다. 이를 소설론에서는 이야기와 담론이라는 두 층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소설언어의 기호학적 구조에 대해서는 구조주의 이론가들의 설명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언어의 조직 방식이 이렇게 독특하기 때문에 언어적 소통의 구조와 방법이 매우 복합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소설만한 자료가 없다. 소설 담론 조직의 이러한 특수성을 기초로 해서 인간의 언어전달이나 소통의 일반 원리를 깨닫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의 의미작용에 대한 감각을 훈련하는 데도 소설텍스트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2. 전달화법의 언어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처럼, 소설언어는 이중화된 기호학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자연스럽게 소설의 언어는 전달화법의 언어가 된다. 전달화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정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의미 있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지속하기는 매우 어렵다.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 전라도 진도땅에 뽕할머니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단다.”
“누가 그러는데요?”
“진도에 갔다가, 거기 수련원 원장한테 들었어.”
옛날 진도에 호환이 심했다는 것, 그래서 마을 사람들 전체가 이주를 할 정도였다는 것, 혼자 남은 여인이 살붙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마다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를 산신이 들어 주었다는 것, 그러나 결말은 비극으로 끝났다는 것 등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누가 누군가에게 전할 때,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전달되고 소통되는 언어의 경우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전달화법은 전달 상황이 복합되면서 중층적인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야기는 전달된 것을 다시 전달하고, 다시 전달하기를 계속하는 맥락에 자리잡게 된다.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라 남이 겪은 일을 전한 것을 자신의 말로 전하고, 그 내용을 다른 사람이 다시 전달하는 간접화는 이론상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앞에서 예를 든 ‘진도 뽕할머니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의도와 전체 이야기 맥락의 변조에 따라 이야기는 조금씩 변형되면서 다른 이야기로 발전해 갈 것이다. 더구나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고 여러 가닥으로 얽힌 경우는 그 양상이 더욱 복잡해진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는 나환자촌의 장로와 원장 사이에 중층적인 의미실현의 대화가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전달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視角이 복합적으로 된다는 점이다. 시각의 복합화는 의식의 다면화를 가능하게 해 준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관점의 전환은 다양한 사고의 전형을 이룬다. 이는 소설언어가 발전시켜온 예술적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항인데, 대화의 원칙을 지향하는 장편소설의 언어가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물론 모든 장편소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장편소설은 의식의 다면성을 위해 대화의 원칙을 지향한다는 것이 바흐찐 등이 주장하는 소설언어의 특징이다.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단지 기본 의미만을 전달하는 것일 수 없다. 시각이나 관점이 의미를 규제한다는 점 또한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시각이나 관점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한다는 점을 알게 됨으로써 언어주체의 태도가 의사소통에 영향을 행사한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다음과 같은 예를 보기로 하자.
“아니,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야. 반드시 될 수 있어. 되도록 할 거야. 그러지 않고는 내 인생이 억울해서 어떻게 살겠니. 내 나이 마흔이 코 앞이야.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니?”
남편의 마지막 말은 거의 웅변과 같았다. 윤영은 남편의 눈에서 불꽃이라도 퉁겨낼 듯한 열기를 보았다.
김인숙의 <당신>에서
남편의 이야기는 사실 단순하다. 이 나이에 좌절할 수 없다, 다른 일을 시도하겠다, 그러니 당신(아내)은 남편의 결정을 인정하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웅변’을 읽어내고, 눈에서 불꽃과 같은 ‘열기’를 부수되는 의미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도 서술자의 시각으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접화된 의미의 다층성을 보여준다.
전달화법은 의미를 규제하는 관점을 좌우한다. 이처럼 어떤 사실(이야기)를 남에게 전달할 때 관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적극 고려할 사항이다. 소설문학에서 개발한 이론 가운데 규칙성이 치밀한 것이 시점의 이론이다. 소설에서 개발한 시점의 이론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소통이란 측면에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3. 대화를 지향하는 언어
소설의 언어 특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對話를 지향하는 언어라는 점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동질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말하기는 대화가 아니다. 이념적으로, 지향에 있어서, 이해득실에 있어서 동질적이지 않은 사람이 언어적 경합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거나 상대방의 의사를 수용하는 데서 둘이 처한 상황을 한 단계 뛰어넘는 것이 대화의 진정한 의미이다. 소설 가운데서도 장편소설은 언어의 이러한 속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장르이다. 이는 소설의 장르 특성에서 연유하는 점이기도 하다.
소설은 현재 형성 중인 장르이고, 아직 완결성을 지니지 않은 채 완결을 향해 진행되는 轉移的 장르라는 것이다. 소설언어의 이러한 특징은 소설의 세계 파악 방식이 다른 장르와 달리 主客의 相互轉化를 이상으로 하는 세계관과 연관된다. 언뜻 생각하면 드라마가 가장 대화적인 장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화의 생성적 특성이 드라마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의 대본을 배우가 자신이 맡은 배역의 성격에 따라 대화 형식으로 말을 주고받을 뿐이다. 극의 형식은 완결성을 지닌 것이다. 거기 비하면 소설은 구성 자체가 전이적이고 생성적이기 때문에 완결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 결말이 개방성을 띤다. 극이 사건의 완결성을 지향한다면 소설은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점을 바탕으로 세계의 전체성을 작품으로 현상화하고자 하는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흐찐이 주장하는 장편소설 언어의 대화성은 소설 장르가 다성적(폴리포닉) 장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증거가 된다. 이는 소설의 언어가 단지 대상을 묘사하고 성격을 부여하는 데서 나아가 이념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증명한다. 염상섭의 <삼대>를 보면 처음부터 인물들의 복합적인 시선으로 대화관계를 유지하려는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당대 사회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과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주의자들의 행동이 펼쳐진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 엇갈리는 언어가 하나의 작품 안에 통합적으로 문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소설의 대화성이 모든 소설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화성을 지향하는 것이 소설언어의 본질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여러 자료를 통해 학인할 수 있다. 대화성을 지향하는 소설을 통해 인간의 언어소통이 이념과 연관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대화성을 잘 드러내는 소설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의미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IV. 소설언어의 구체적 활용가능성
1. 한국어 기본어휘 목록 자료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체(담론)는 삶의 다양한 국면을 그리고 있다. 이는 소설의 소재가 얼마나 다양한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소설언어의 다양성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소재가 다양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소설의 언어가 그만큼 풍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설에서는 각각 다른 계층의 인간들이 갈등하고 화합하며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경합하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가운데, 언어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소설언어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구체적으로 부여된 맥락 가운데 수행되는 언어라는 점이다. 사전을 편찬하면서 소설에서 많은 용례를 찾아 예시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어떤 어휘가 사용되는 맥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섬세한 맥락적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어휘든지 절대적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운용되는 맥락이 더욱 막강한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비’라는 단어는 “‘아버지’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아비가 쓰인 속담 “아비만한 자식이 없다.”를 예로 들고, “자식이 아무리 훌륭하게 되었더라도 그 아버지만은 못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삼성출판사 판) 이러한 설명을 가지고 그 쓰임까지를 외국인이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소설에서 이러한 말이 쓰인 예를 찾는다면 그 맥락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소설은 한국어의 기본어휘를 추출할 수 있는 자료 구실을 할 것이다. 소설텍스트가 기본어휘와 기초어휘를 추출하는 모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만으로 한국어 어휘를 추출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한국어 사용의 구체적인 예를 보이는 데는 소설텍스트만한 자료가 없을 것이다.
교육용 어휘를 추출하기 위해 전적으로 소설에 기댈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에서 맥락이 구체적으로 갖추어진 어휘를 찾아 정리한다면 어휘를 체계화하는 데에 한결 손쉬운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휘의 맥락적 활용을 익히는 데 소설텍스트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풍부하게 잠재되어 있다.
2. 한국어 문형을 추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는 한국어의 기본문형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말하기는 물론이고 작문을 가르치는 데에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말하기의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서는 명사문으로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다. 상점에 가서 옷가지를 산다고 할 경우, 아무런 외적 정보 없이 상점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상점이 무엇을 파는 상점인지는 알고 들어갈 것이고, 어떤 종류의 옷을 살 것인가 하는 것도 그런 옷을 파는 코너를 찾으면 해결된다. 옷값을 깎는다든지, 아니면 잘 어울리는지 어떤지 수다를 떤다든지 하면 몰라도 옷을 사는 일에 말이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찰제를 하는 경우라면 대화는 더욱 단순해진다. ‘이거’, ‘얼마’, ‘다른 것’, ‘있어요’, ‘없어요’, ‘좋아요’, ‘싫어요’ 등 몇 가지 단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작문의 경우는 기본 문형을 제시하고 그 문형에 따라 문형 연습을 하는 일이 필요해진다. 이러할 때 기본문형을 추출하고 그 예를 들 수 있는 자료를 소설에서 찾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는 각종의 서술양식이 다양하게 동원된다. 그리고 각종 문형이 사용된다. 여기서 기본문형의 예를 찾아 쓰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본 문형은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실제성을 지니는가 하는 데는 이따금 이의가 제기되곤 한다. 이른바 非文이라는 것이 예문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언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예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용성이 있는 예문을 찾아 문형을 정리하고 훈련을 위한 자료를 소설을 이용하여 찾아 정리한다면 그러한 무리는 없을 것이다.
소설에서 기본 문형을 추출하고 그 변형을 유형화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한국어 작문을 위한 전범을 마련하는 데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문장 서술 양식 전반이 포함되어 있고, 앞에서 설명한 대로 맥락이 정확히 조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장수련을 위한 문형을 추출하는 모밭이 될 수 있다.
3. 한국어 화법의 전형
소설은 인간의 다양한 삶을 그리기 때문에 다양한 층의 사람들과 갖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한 대로 구체적인 상황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화법의 전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소설에서 찾아 전범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흔한 것처럼 그렇게 사랑의 대화를 흔히 찾기는 쉽지 않다. 소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찾아 사랑의 화법의 전형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에는 갈등이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부모에게 반항하는 청소년의 투정과 부모의 설득을 가공으로 만들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그러한 예를 다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장사꾼이 고객과 거래를 하는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모델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익힐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군인이나 정치가의 연설이 나오기도 하고, 편지글이 소설 담론을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화법은 환경이 적절히 통제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언어행동이라는 점에서 화법의 전범이 될 것이다. 소설은 화법의 전형을 찾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형적 상황을 설정하고 소설의 인물들이 하는 말을 모범으로 화법을 실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소설의 언어는 작가의 의식이 작용하고 서술자의 서술방법으로 인해 독특한 시각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달화법으로 되어 있다는 점 또한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설의 언어를 직설법의 언어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인물의 성격이란 점 또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성격 특징으로 인해 화법이 달라진다. 따라서 소설의 화법을 일반인의 화법으로 전환할 때는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4. 문체효과의 교육 자료
거듭하거니와 언어적 소통은 일차적 의미의 소통으로 충분치 못하다. 문체효과를 통해 소통이 완결성을 지니게 된다. 아울러 문체효과는 소통의 구체성을 보장해 주며, 소통의 완결성을 지원해 주는 의미변별력을 지닌 것이다.
문체론은 두 방향으로 진전되어 나간다. 하나는 어느 시대 어느 언어권의 언어가 사용되는 체계성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할 때 문체는 언어 운용의 집단적 성격, 언어 운용의 규범적 성격이 탐구의 표적이 된다. 다른 하나는 문체를 개인들의 정신적 발원체가 언어적 개성으로 드러난 구조와 심리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서는 작가의 개성이 강조된다. 전자는 언어학적 문체론이라 하고 후자는 문학적 문체론이라고 하기도 한다.
소설의 문체를 연구하는 방법은 앞에 언급한 두 가지 방법이 함께 적용된다. 그런데 소설은 문학 영역으로 국한하는 방법에서는 주로 작가의 개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된다. 작가의 개성은 어휘, 통사, 의미, 화용 차원에서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는 소설의 경우 서술주체의 의식과 작중인물의 의식이 엇갈리는 가운데 서술되어 나가기 때문에 담론의 규칙을 문체 분석의 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내용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간결체로 서술하는 경우와 만연체로 서술하는 경우는 그 효과가 같지 않다. 그리고 같은 대상을 바라보더라도 낙관적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과 비관적 입장을 가진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차이가 문체효과를 규제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고 언어주체가 어떤 용어를 선택하는가 하는 데 따라 문체효과가 달라진다. 어휘력이 사회적 능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울러 어휘의 자질이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지체를 표현해 주는 것이라는 점 또한 고려할 사항이다. 천박한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은 고상한 어휘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지체가 낮은 것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그러한 점에서는 어휘의 질적 수준이 사회 문화적 평가의 지표가 된다는 점도 문체와 연관지어 고려할 사항이다.
아무튼 소설자료는 한국어의 문체를 이해하고 그 문체효과를 교육하는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의의를 지닌다.
V. 결론 - 제언
1. 교사의 소설독서
한국어교사가 한국문학에 익숙해진다면 수준높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단계에서는 일차적인 의미나 기본의미를 바탕으로 언어적 소통능력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그 이후는 문화적 감각이 살아 있어야 제대로 된 한국어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사는 한국문학을 충분히 읽어 둘 필요가 있다. 시는 물론이고 소설을 충분히 읽는 데서 한국어의 문화차원에 대한 본인의 이해를 도모하고, 그러한 감각을 바탕으로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어교사의 소설독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 바탕이 될 것이며, 문화간 소통을 지향하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소양이다.
2. 학생에 대한 지도자료
한국문학에 익숙한 한국어교사는 한국문학 작품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료를 찾는 일이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 학습에 자료가 될 만하다고 찾아 놓은 자료가 모두 지도자료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문학 작품에서 찾은 자료는 한국어학습자의 수준과 교육 내용에 따라 교재로 구성하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교재를 말하기 중심으로 할 것인가, 쓰기 중심으로 할 것인가 하는 데 따라 그 이용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아울러 한국어의 맥락 의미를 변별하는 데 필요한 교재라면 또 그 양상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소설에서 찾은 교재를 계열화하고 체계화하는 노력이 한국어교사 편에서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좀더 수준높은 한국어 교사라면, 교재를 편성하는 원리를 개발하는 주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문화교섭의 감각
외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은 문화간 의미교섭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 주는 일이다. 문화교섭은 외국어 소통의 기본적 조건이다. 문화교섭은 문화간 소통으로 구체화된다. 문화의 차이를 알고 그 문화가 표현되는 언어적 방식을 이해하는 일은 외국어 습득에서 기본적인 감각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언어의 기본의미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언어가 생활 가운데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실제 현장에서 언어의 감각을 익히는 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언어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이는 절실한 요청이 된다.
소설을 통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모색하고, 한국어 교재를 편성하며 아울러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시각을 마련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초급수준의 한국어교육에 소설을 직접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언어가 일상어의 전범이 될 수는 있지만, 소설은 문자언어로 형상화된 것이기 때문에 일상언어와는 달리 문어적 제약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소설을 교재로 전환 가공할 때, 가공의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점은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 없는 사항이다. 소설의 언어를 한국어교육의 교재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이론을 축적하는 것은 한국어교육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과 현장의 체험을 지닌 이들 사이의 협동작업을 요하는 사항이다. 따라서 이는 우리들이 해결할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