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어거스틴의 참회록은 그가 히포에서 주교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바로 집필한(A.D. 397 - 401) 책이다. 본 책에서의 참회록은 두부분으로 나뉘는데 제 1권에서 9권까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회상으로 인간의 죄와 그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관용에 대해 서술하고 제 10권에서는 현재의 자신의 영적 상태를 묘사해 준다. 참회록은 성 어거스틴의 개인적인 인생담에 얽힌 시련과 승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기독교인이 걸어가야 할 삶의 여정이라는 교훈을 준다. 여기서 나는 어거스틴의 일생을 잠깐 언급하고 그의 일생을 통한 죄와 은혜를 살펴 봄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거스틴의 일생
어거스틴은 작은 마을 타가스테에서 서기 354년 11월 13일 베르베르 원주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집과 약간의 토지는 있었으나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였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열열한 기독교인이었으나 아버지는 이교도로서 370년 죽기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타가스테에서 초급교육과정을 마치고 10살때에 마다우라 지방으로 문법과 고전문학을 배우기 위해 유학했다. 370년에 고향에 돌아와 있던중 타가스테의 부자 로마니아누스의 도움으로 수사학을 공부하게 된다. 학문에 뛰어난 그는 곧 교사가 되어 타가스테에 문법학교를 세우고 383년까지 키르타고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성녀로 불리우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어려서부터 그를 신앙으로 양육해 왔으나 그는 신앙에 별로 관심이 갖지 않은 듯 하다.
수년동안 그는 어느 소녀와 동거해 오던중 372년에는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그 다음해 그는 마니교에 입교했고 대략 9년 동안 충실한 마니교 신도가 되었다. 학문적인 열정에 불타던 그는 유명한 마니교 감독 파우스투스를 만나 마니교 교리의 철학적 교훈을 듣고자 했으나 실망하고 오히려 마니교 감독을 자신의 제자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로부터 그는 마니교에 실망과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보다 깊은 학문을 위해 로마로 가지만 그만 병을 앓게 되고 수사학 교사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이때 그는 마니교와 완전히 결별한 상태였고 잠시지만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384년 말에 로마의 수사학교사에 합격하면서 밀라노에 머무르게 된다. 밀라노에서 경제적 안정을 찾은 그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초청하여 함께 살게 되었고, 로마 카톨릭 주교인 성 안부로시우스와 사제인 심플리키아누스와 만나 절친해 지면서 서서히 기독교를 깨우쳐 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는 386년 수사학 교사직을 포기한채 카톨릭 교회로부터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다. 387년 성 암부로시우스는 아데오타투스와 알리피우스와 함께 세례를 베풀었다. 그해 늦은 봄날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을 겪게 된다.
아데오타투스,알리피우스,에보디우스와 함께 그는 타가스테로 돌아온다. 그는 거기에다 일종의 수도원을 세운다. 391년 여행도중 히포에서 사제의 서품을 받는다. 이때부터 그의 성직자의 삶은 시작된다. 396년 그는 히포의 감독이 된다. 그는 성직자로서 명성과 인격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5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니교 교리와 도나티즘(교회분리론자들) 비판에 관한 강연과 저술을 하였고 이때 그의 중요한 논문들이 대부분 저술되었다. 본서 역시 이때 기록되었다. (400년) 또한 400년에서 416년 사이에 15권의 방대한 삼위일체론이 기록되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창세기에 관한 문자적 주석이 집필되었고 413년 그 유명한 신국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426년에 22권의 작품을 완성 하였다. 한편, 당시 로마는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제국은 분열되었고, 방탕과 부패가 성행했다. 끊임없는 전쟁은 제국전체를 불안으로 몰아갔다. 이런상황속에 430년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 했을 때 그는 이미 노장으로 병들어 있었고 마침내 430년 8월 28일 운명하였다.
성 어거스틴에 대한 개인적 관심=========================
어거스틴의 이름을 들은것은..책을 통해서 였어요..
우리의 신앙생활과 경건생활에 성경 다음으로 유익을 주는 책들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성도들에의해 읽혀진 고전 셋을 들자면...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고 존 번연의 천로역정 이라고들 하더군요..
제가 지금도 다른 두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성 어거스틴의 책은 읽어버렸어요...그러다 인터넷안에서 사역자 성경공부 하는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다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예전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것을 발견하고 있어요...
아예 공부를 이곳 CCF에서 하려구 자료를 심어 놓은거예요..다음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와 천로역정에 대하여서도 올릴 생각이예요...
계속 글을 읽어가며 리플도 달고..보충도 하구여...^^
이런 공부를 하려는 이유는...
어거스틴의 글을 읽으면서 발견한 두가지의 면이 나 자신에게 어필이 되었기 때문이예요..
첫째, 어거스틴은 '시간과 영원'에 대하여 깨닫기를 소망하고 갈구한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는 창조 이전의 시간은 없다고 잘라서 말하고 있어요. 또한 창조 되기 이전에는 확실히 아무것도 창조된 것이 없다라고 말을 하구요.
하나님께서 창조되기 이 전의 시간에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어거스틴은 그의 생각을 들어내지요.
저도 이것이 궁금해요~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시기 이전의 그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 때"라는 개념 또한 시간적인 개념이기에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지 않으셨는데 "그 때"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다음으로 어거스틴은 시간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시간이란 "비존재로 흘러 지나가는 것으로만 '있는 것'이다"라고 하지요. 어거스틴의 표현을 빌려서 이 말을 설명하면 과거는 지나가서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오지 않아서 아직 존재하지 않기에 존재하는 시간은 없고 단지 "흘러 지나가는 것만으로 있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죠. 어거스틴은 시간을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어요. 현재와 과거와 미래. 우선 그는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미 흘러가버린 존재인 과거와 오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가? 어떤 면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어요.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은 과거나 미래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으로 존재한다고 그는 말하는 거죠.
그럼 이 과거나 미래의 시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과연 알 수 있는가? 어거스틴은 하나님께 자신이 이 문제를 알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죠.
그러나 어거스틴은 고백하기를 자신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미래나 과거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라 해요.
그는 이 말을 다른 말로 정정하며 말하기를 과거는 "과거의 일의 현재" 미래는 "미래의 일의 현재" 라고 표현을 해야 정확하다고 말하고 있지요.
즉, 과거 일의 현재는 기억이며 현재 일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 일의 현재는 기대라고 표현 하는 것이죠.
그리고 또한 어거스틴은 시간의 길이를 재는 방법중의 하나를 물체의 운동을 통해서 시간을 재는 방법을 이야기 하기도 하죠.
이 모든것은 공부를 더하면서 올릴께요...^^
또 하나는...같은 시기에 자신을 죄성 안에서와 은혜 안에서 관찰했다는 점이예요...
참~ 이 정도의 내적능력이면..궁금해지죠...^^
이 모든것을 통해 제가 보는것은...
어거스틴의 관점이 다분히 문화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저로서는 가까워지고 싶은 또하나의 이유가 되는군요..
철학에서는 루소가...
문학에서는 헤르만 헷세의 지와 사랑에서..골드문트..
그리고..여러 신앙인 가운데에서 어거스틴이..
그들을 대할때..저로하여금 공감대를 가지게 하네여..
이런 저런 주장을 펴기 전에..어거스틴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그래서 그의 글들을 오려 보게 되었지요.
우리도 성경부터 봐야 말이 되듯이...
그리고...공부 잖아여...
교과서는 필요 한거예요...
공부는 하다보면..
답이 없을수도 있는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