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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제4단계 1과 - 5과 참고도서
참고도서: “다시 쓰는 평신도를 깨운다”
출 판 사: 국제제자훈련원
저 자: 옥 한 흠
제자훈련 제 4단계 1과 - 5과의 참고도서인 “다시쓰는 평신도를 깨운다”의 저자(옥한흠목사)는 이 책을 통해 한국교회가 부패하고, 성장의 곡선이 아니라 하강의 곡선을 타는 현상을 깊이 연구해 본 결과 그 문제는 바로 교회의 99%를 차지하는 평신도가 잠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있다. 즉 물량주의를 내세웠던 대형교회의 문제점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무책임한 모습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지금까지도 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흐름에 따라 주목받고 있는 책으로 손꼽히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앞서가는 저자의 실천과 확고한 목회철학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부흥은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평신도 각자가 제자로서의 삶을 살므로 말미암아 제자화 되어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처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흥의 모습이이라고 생각한다.'
평신도가 살아야 그 교회는 역동하는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주장한다. '오늘날 잠자고 있는 무수한 자본들인 평신도들을 깨워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평신도를 깨워야 하는가?'
세상은 갈수록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모습으로 타락해져 가고 있다. 한국교회는 현재 4만 교회를 넘어섰고 교인 수 또한 1천만을 육박하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10대 대형교회가 한국에 서너 개 있을 정도로 급속하게 복음화 되었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점 타락하고 부패해져 간다. 99%의 평신도들은 1%의 목회자들의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했다. 99%의 평신도들의 눈은 감겨 있고, 귀는 막혀 있고, 손과 발은 놀고 있다. 교인 수 1천만을 육박하고 있어도 세상은 더욱 타락해져만 간다. 교회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여러 가지 문제점만을 안겨다주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교회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교회는 조직이나 프로그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남자에서 여자로, 대그룹에서 소그룹으로, 목회자 중심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변화의 주체가 바로 평신도인 것이다. 여기서 평신도를 깨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 시대가 그것을 요구한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제 소그룹으로, 여자 그리고 평신도 중심의 선교사역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는 언제나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아닌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서 아시아의 어떤 선교 전략가가 말하기를 '왜? 아시아가 선교에 이렇게 발전을 못 보았느냐고 하면서 그 이유를 아시아에서는 선교의 자본을 동결시켰기 때문이라고 한 바 있다.' 이 선교의 자본이란 곧 평신도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교역자 중심의 선교에서 평신도 중심의 선교로 바꾸어야하겠고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교 참여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오늘의 선교에 있어서도 교회의 선교구조가 평신도 중심으로 개조되어야 한다는 말을 늘 듣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교를 위한 교회의 훈련과 보다 새롭게 진취적인 방법을 개발해야 하는 일이 아울러 요청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가는 인구와, 도시화, 산업화, 분업화하면서 사회가 다양해져가며 주일에 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특수 직장인들도 많아져 다는 오늘의 특수한 상황에 또한 내 교회 하나만을 아는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세계의 일터를 내보내면서 보다 넓게 그리고 보다 멀리까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선교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 심각한 영적인 부패와 타락 속에 빠져 가는 세상에 평신도는 복음의 빛과 소금을 가지고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세상을 회복키고, 정화시켜야 한다. 즉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참 다운 그리스도의 문화를 이룰 수 있도록 평신도는 소명을 받은 것이다.
이를 위해 선교의 사명을 받은 평신도 제자 훈련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잠자고 있는 평신도를 깨울 수 있는 방법이다. 즉 평신도의 자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교육을 시키고, 본래의 의미인 평신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경적인 훈련을 시켜야 한다.
평신도의 진정한 자아상은 어떠한 모습인가?
평신도를 가리키는 헬라어 라이코스(laikos)는 '백성', '백성의 무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평신도라고 하면 그 본래의 의미가 주님을 모신 선택받은 자 또는 믿는 자의 공동체인 전 교회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평신도이며 그리스도 몸이라는 의미이다. 오늘날 우리들 각자가 개인적으로 사역을 행하거나 회중을 구성하여 집단적인 사역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새 언약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누구든 하나님과의 긴밀한 친교 가운데 변화를 체험하고 예수님의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다.
평신도의 영성은 '세상'이나 '침투', '도구화'라는 말로 정의 내릴 수 없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만이 평신도의 영성이 될 수 있다. 평신도들은 교회 공동체의 풍성한 신비와 역동성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은 세상에 봉사하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세상을 위한 성례전의 주체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드러낸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사람이며 공동체이다. 평신도들은 교회의 기초이자 교회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수동적인 평신도란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교회의 시명을 감당하는 살아있는 도구이다. 모든 세례 교인은 교회 공동체의 내적인 삶과 조직화에 기여할 권리와 책임 뿐 아니라 협력하여 세상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수행할 권리와 책임을 갖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교회의 삶에 폭넓은 기여를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평신도들의 일상적인 가치들을 기초로 하여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교회의 본질은 사도성이다. 평신도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교회의 본질인 사도성을 지닌 자이다.
평신도들은 주님과 맺은 언약의 당사자로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삶을 공유하며 세상에 대한 주님의 사명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세상에 대한 평신도의 사명에는 복음전도, 자선활동, 세상사에 대하여 그리스도교적인 정신을 불어넣는 것, 가정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 사회적인 변화와 진보를 촉진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모든 지역교회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사역을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도록 평신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 잠자는 평신도를 깨워야 하는 이유는 저자가 강력히 주장하는 바대로 바로 평신도의 재발견이야말로 한국교회가 다시 자연스럽게 꾸준히 건강한 교회 체질로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의견에 동의한다. 지금껏 한국교회의 평신도는 교역자를 섬겨야하고 말없이 순종만 해야 하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평신도 스스로가 자신들의 특권과 소명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체계적인 평신도 교육이 없었다. 그러나 평신도가 살면 교회도 다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흥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교회는 이제껏 지나치게 양적인 성장, 부흥만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은 질적인 성장과 함께 부흥되어야 한다. 질적인 성장이란 바로 평신도가 바른 신앙을 갖는 것, 예수님의 제자답게 교회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바로 질적인 성장이다. 평신도가 단지 양적으로만 늘어나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 아니라는 것은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번째 평신도를 깨워야 하는 이유는 교회 성장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진정한 부흥을 이룰 수 있는 평신도 교육을 위한 한가지 대안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의 교회에서 수년간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 제자훈련이다. 저자는 사랑의 교회가 성장 할 수 있던 비결이 바로 제자훈련이라고 한다. 제자훈련은 한 마디로 평신도를 예수님을 닮아 가는 제자로서 키우는 성경적인 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제자훈련이 성경적인 것은 예수님의 제자 훈련을 근거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단순히 교회의 교인으로의 삶이 아닌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영성(靈性)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 그리고 사고를 닮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을 소유하는 가장 적합한 길이다. 제자훈련은 가르침과 실천이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 평신도훈련은 교회 안에서 평신도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성도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신앙 인격과 삶을 말씀으로 바로 세워주고 동시에 소명 받은 예수의 제자로 각 분야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목회프로그램 일체를 말한다.
신약성경에서 '제자'라는 말이 나오는 곳은 사복음서와 사도행전뿐인데, 약 250회 가량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마가복음에서만 12제자에게 '제자'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에서는 '제자'라는 이름을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교회의 품으로 들어오는 모든 신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제자의 의미를 고려해 볼 때, 인격적 위탁(눅14:26-27), 증인(행1:8), 종(눅22:27 하) 의 요소를 갖춘 자를 제자라고 부른다.
제자훈련은 새신자가 그리스도인으로 양육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전도인이 되어 재생산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며 참된 교사가 되는 훈련으로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회복시키기 위한 교회 부흥 운동이다. 교회가 해야 하는 두 가지 큰 역할은 전도해서 새 신자를 만드는 것과 전도 받은 새 신자가 교회에서 제공하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성숙함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엡4:12)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고 훈련시켜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는 것과 함께 자신이 가진 은사대로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봉사와 헌신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교회는 계속적으로 평신도에 대한 양육과 훈련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평신도 교육인 일차적으로 교역자들에 위해서 이루어지지만 차후에는 평신도들에 의해서 양육되는 평신도 교육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적인 프로그램인 제자훈련을 전통적인 사고와 구조, 즉 지금의 한국교회상황에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그 체질개선은 바로 평신도의 의식구조를 개선시켜야 하고, 보호목회에서 훈련 목회로, 조직에서 유기체적 통합으로, 교역자 중심에서 평신도 중심으로, 재정을 교회확장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고의 체질개선은 평신도의 자아상을 회복시키는 것이라면 구조의 개선을 위해서는 저자는 소그룹구조를 제안한다.
소그룹 구조는 치료와 훈련을 겸한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하향식 의사전달과정, 훈련, 유기체적 통합, 인격적 교육, 평신도 교육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다. 평신도 사역이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하는데 소그룹 사역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인격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평신도 제자훈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건강한 소그룹은 기독교 신앙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적용을 개인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또한 서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해주며, 상호 협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 준다. 뿐만 아니라 갈등이나 변화 그리고 결정사항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 관심을 갖도록 도와주며 평신도 리더십을 계발해 주고, 영적 은사들을 발견하고 계발시켜 준다. 끝으로 경배와 찬양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소그룹은 교회의 질적 성장을 이루기에 용이하다. 인격적인 만남이 가능하고 관계가 중요시되어 동역자로서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진정한 형제애를 가지고 사랑을 몸소 실천할 수 있으며, 은사계발을 통해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교회와 사람을 섬길 수 있고, 깊이 있는 성경연구를 통해 삶과 말씀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치될 수 있다. 즉 지속적으로 말씀을 삶 가운데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 상향적인 구조로 교회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가 인정될 수 있다. 그리고 풍성한 교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이나 조직보다도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그룹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함께 사역을 할 수 있다.
정리하면 건강한 소그룹 사역은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다. 대그룹 운영방식으로는 교회성장에 한계가 있음은 자명하다. 또한 현재 운영하고 있는 소그룹의 형태 즉 장년의 경우 구역이나 여전도회, 남선교회 형태의 소그룹으로는 성장에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그 중에서도 첫 번째로 평신도와 교역자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이제껏 나의 사고 속에는 이원론적으로 교역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분리되고 구별되어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교역자와 평신도는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본질상 전혀 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교역자와 평신도를 구별짓는 것 자체가 벌써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교인들의 머리 속에는 교역자와 평신도는 구별되어져 있다. 이제는 우리의 선입견을 벗어버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평신도와 교역자는 둘 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평등하다. 오히려 교역자가 그 역할 상 평신도를 섬겨야 한다. 따라서 많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닌 평신도를 다시 회복시켜 평신도를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세상으로 내 보내야 한다. 그래서 목회 철학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목회자와 평신도 관계는 목회자는 전 교인의 성격과 재능을 조사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전 교인이 교회 일에 다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오늘의 교역자는 평신도를 가르치고 훈련 시켜야 한다. 목회자는 교사들의 교사이다. 평신도를 훈련하며 그들로 하여금 전 교인을 교육하고 훈련하도록 시범교육도 실시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평신도 하나 하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예수는 자기를 목자라고 했고 제자들은 양이라고 했다. 선한 목자는 양무리 전체의 목자인 동시에 그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 한 마리 개개의 양의 목자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리의 양이 우리에 없을 때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에게 관심을 두고 찾으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선한 목자는 유력한 다수의 양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극소수인 한 마리의 양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이와 같이 목회자는 양들의 문제를 조사 연구하여 치료와 건강을 위한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교회의 진정한 본질은 세상으로 보냄 받은 교회라는 점이다. 이제껏 한국교회는 모이는 교회에만 주력해 왔지, 흩어지는 교회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 당시 디아스포라가 생겨난 것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끼리 안에서 뭉쳐있는 것을 즐겨하시지 않는다. 우리의 본분은 땅 끝까지 흩어져서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자가 단지 선교사의 사명뿐이겠는가? 이 복음 전파의 핵심자가 바로 평신도임을 주목해야 한다. 평신도야말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자본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평신도야말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효과적으로 전할 자는 없다.
세 번째로 제자훈련에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즉 평신도 한 사람이 한사람이 제자가 되어 12제자처럼 제자훈련을 받는 제자훈련이 왜 많은 교회에서는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헌신을 하지 않고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잘못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의 많은 평신도들이 이러한 헌신의 길을 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교회는 평신도들을 훈련시키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평신도 중에 숨은 일꾼인 리더를 양육할 수 있도록 리더훈련을 도입하여 각 분야에 리더가 되어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한다. 교회 내에는 항상 교육받은 교사들,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야의 직업별, 연령, 성별 인적자원이 있는데 그들을 적극개발 활용하는 것은 많은 평신도들에게 사회교육의 기회를 준다.
예를 들어, 의사나 간호사, 한의사는 응급처치나 생활에 필요한 의료교육을 가르칠 수 있고, 변호사는 법에 대해서, 교사는 전문적인 교회교사가 될 수 있도록 교육적인 방법론을 가르쳐주고, 가수나 찬양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새 찬양을 가르쳐주거나 악기를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리고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은 정보화시대에 발맞추어 나갈 수 있게 인터넷이나 멀티미디어, 홈페이지를 가르쳐 줄 수 있고, 그 외에도 지도력개발, 인간관계 훈련, 대인관계 등을 그 분야의 사람이 가르쳐 주며, 미용사는 피부에 대해서, 생태학자는 오염되어 있는 환경을 보호키 위해 예방책이나 치료책을 가르쳐 주고,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은 전문적으로 말씀에 대해서 심도 깊은 교회사, 배경사 등을 가르쳐 주어 다양하게 정보를 취득 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사회봉사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한다. 고아원 방문, 바자회, 경로당 방문, 길 청소하기, 휴지 줍기, 나무 심기, 교통정리... 등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활성화하여 지역사회 내에 있는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 내 다른 단체나 조직들을 연대하여 지역주민들의 자아실현을 도모하여 그 교육기능을 확대하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코자 하는 운동을 한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독거 노인, 소년 소녀 가장, 독신자들을 위하여 서로 짝을 지어 주어 가족을 만든다. 그래서 서로 서로 도와주고 감싸주며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또한 선교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한다. 2-3달에 한 번 선교사를 초청하여 현재 선교 근황과 진행사항을 알아보고 우리는 어떻게 작은 선교사가 될 수 있는지 배워보며, 전도폭발, 1:1 양육 훈련을 배우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 세미나를 자주 열어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관심 있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평신도교육의 문제가 목회자들의 책임에만 너무 쏠리게 된 경향이 있음에 반대한다. 잠자는 평신도의 모습이 목회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평신도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만인제사장으로서 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스스로의 특권을 포기해버린 모습은 평신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낡은 부대를 버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교역자의 패러다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평신도들의 자아상을 회복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신도의 자아상은 바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권과 세상 땅 끝까지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소명자이다. 확실한 것은 평신도야말로 가장 숨은 일꾼이다. 이제 이 숨은 일꾼들을 훈련시키고 교육시켜 하나님의 구원에 역사에 동참시켜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의 평신도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이제 일이나 조직보다도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평신도 교육에 많은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삶의 자리를 분명히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평신도들, 자기가 해야 할 책임을 느끼는 못하는 평신도들,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기를 원하는 평신도들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들이 목회자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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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가 일빠 ~ 음 ... 오늘에 예시는 길군요~ 책을 꾸역꾸역 다읽었는대 밀려오는 한사람에 헌신과 성경에서 말하는 집중해야 될것들에 생명을 살리는것이 어떤것인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할 우리에 과제와 성경에 말씀이 우리에게 부르짖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한번 주님을 향한 나에 열정에 방향성에 괘도수정이 필요하며 걸러내야할것들에 대해 다시금 되짚어 봅니다 나는 다름사람이 제자 되고 싶을 만큼 주님앞에 바로 선 제자였나 ...
평신도가 교회를 위해 일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예배할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현교회의 모습에 적지 않은 불만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평신도들의 일상적인 가치들을 기초로 하여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전의 생각들로 보게되면 역시 교회의 부족함을 탓할수 있게지만, 분명한건 나의 삶이라는것, 내 삶속에 선택하고 행동하는 모든 움직임들이 교회가 된다는 생각에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일상적인 나의 삶의 가치관... 커다란 성공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주안에서 생활해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솔직히 이전에 제가 교육을 받은 것을 기억해보면 교역자들에겐 무조건 순종이었습니다. 교역자분들을 통해 이런 글을 읽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목회자, 평신도의 책임을 떠나, 말씀하셨듯이 만인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맡겨주신 사명과 부르심에 최선을 다하리라는 각오를 하게됩니다.
정말 저하나만 깨어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우리 한국교회가 변화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조건 순종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만 끝나는게 아니라 교회에 봉사하고 세상밖으로 당당히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