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루정양식은 서구는 물론 중국, 일본과 그 형성배경과 건축양식, 공간특성을 달리 하며 독특하게 발전해왔지만 전란과 사회 문화적 요인들로 인해 많이 소실되었고 현존하고 있는 누정(樓亭)들도아주 오래 되었다고 하여도 200∼300년 정도밖에 되지않는데 사실 이렇게 오래된 누정도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게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 누정양식은 그 자체가 아름답거나 감탄할 만한 훌륭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장소 선택의 의도와 동기, 그리고 그 정자를 이룩하고 즐기던 사람의 마음,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우리를 형이상학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더구나 이런 정자는 한반도 어디를 가나 있고 어느 시대에도 실존했었고 뭇사람들의 정서를 순화시켜 준 벗으로서 우리 민족과는 각별히 친근했던 까닭에 의의가 더욱 크겠다 하겠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동안 종합한 자료를 중심으로 정자와 루의 의미와 형식,종류,사상적 배경등 여러가지 면에서 접근하여 상세히 다루어 보았다.
Ⅰ.자의(字義)고찰
한국의 옥외공간 문화는 그 매체를 목조 건물에 두고있기 때문에 목조 건물의 단명성(短命性)으로 인하여 역사적인 양식을 연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연구범위 설정과 판단 근거 마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그 한자의 말뜻(字義)에 나타난 양식적 형태적 의미 분석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1.루·정 양식의 양식적, 형태적 의미
1)정(亭)
정(亭)이란 글자의 형태를 보면 정자의 형태적 특징을 조금은 알 수 있는데 높은 곳 위에 세운 집이 정(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자는 살림하기 위한 집이 아닌 일종의 집회를 위해 지은 외따로 떨어져 있는 다락집을 의미한다. 특히 굽이쳐 흐르는 냇가나 훌륭한 경관에 그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지어진 집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조망범위가 넓은 물 옆일수록 적합하며 또한 이용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자연성을 풍부하게 내포하고 있는 곳이면 좋고 건립방법에 있어서는 지형에 합치되기만 하면 된다.
문헌상으로 보면 설문해자에는 백성들이 포괄적으로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 정의되어 있고 후한지나 석명에서는 도적을 막는 기능이나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 하고, 한나라 사고에서는 여행 중 숙식을 하는 곳이라 했다. 이처럼 이들은 각각 정자의 기능적인 측면만을 설명하고 있어 형태적 의미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정자에 대한 주례(周禮)의 거시공간구조적 정의와 이규보의 정자 공간 자체에 대한 정의는 특이하게 되어 있다. 주례에 의하면 10리에 장정(長亭), 5리에 단정(短亭) 하나씩을 두어 나그네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였다. 한편 이규보의 「사륜정기」에서는 정자는 개방된 공간을 갖도록 만들어 졌기 때문에 안으로는 공간이 비워져 있으며 밖으로는 공간이 열려져 있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되어 있는 것이라 하고, 또한 비슷한 구조인 사(舍)와 루(樓)와는 다르다고 구별했다.
2)루(樓)
설문해자에서 루란 겹쳐있는 집이라 뜻하였고 고려 말 이규보에 의하면 집위에 집이 있는 구조라 하여 2층으로 된 형태의 건물, 즉 아래에 사람이 있을 수 있거나 혹은 통행할 수 있는 건물의 형태가 루라 정의하였고 따라서 마루가 사람의 키보다 높은 고상식으로 발달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이 루는 조영자가 주로 현감, 군수등 그 고을 수령이 대부분이었고 기단, 기둥, 공포, 기와, 단청 등에서 정자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3)대(臺)
여러 고문에서 대란 사방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이라 정의되어 있다. 원림의 대는 돌을 쌓아올려 높게하고 상면은 평평하거나 혹은 나무를 높게 걸쳐 놓으며 판은 평평하게 지붕이 없는 것이거나 또는 루각의 앞이 일보 빠져나오고 개방된 것을 말한다.
4)각(閣)
각이란 글자는 루의 접미사로 쓰이는데 이 때 누각이란 말의 양식적 형태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루는 2층으로 된 것이고 각은 문을 정지시키도록 한 것이니 누각이란 2층으로 된 건물의 일층에 문이 달린 계단을 통해서 오르는 높은 건축을 말한다.
5)당(堂)
택명에서는 '당당함으로 뚜렷하고 밝은 자세이다'라고 하며 '옛날에는 당을 만듦에 있어 전반을 공터로 한 것을 당이라 하고 후반에 실(實)을 얻는 것을 실(室)이라 한다. 당은 '바르고 태양을 향해 똑바로 보는 집이다' 즉, 당은 작고 정정당당하다는 뜻으로서 높게 성토한 후 세워지는 건물을 말하고 또한 발음상 "아다루"를 의미하기도 한다.
6)간(幹)
원래는 간의 좌석위에 설치한 덮개를 가리켰던 것이지만 건축의 처마끝의 말단도 '간'이라는 자가 사용되게 되고 간단한 건축의 명칭으로 되었다.
7)제(齊)
몸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수양한다는 의미로부터 그와 같은 장소를 제라고 하게 되었다.
8)사(舍)
시가에 있는 객사라고 하는 의미로부터 휴식의 장소를 가리키게 되었다.
9)사(謝)
일반적으로 수변에 세워지는 방형의 건물 또는 장방의 정을 수사라고 한다. 수변에 주위를 돌로써 짜 맞추고 그 위에 세우는 건축을 가리킨다.
10)관(觀)
택명에 "관아란 위에서 관망하는 것이다." 라고 전해지며 후세에는 불교에서 사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관'의 자를 사용한다.
지금까지 글자가 가지고 있는 양식적, 형태적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보았으나 현재로서는 모든게 딱 부러지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역사적 경관을 대한다면 훨씬 혼돈이 줄어들 것이다.
Ⅱ.정자의 기원
정자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지어졌는가는 정확히 단정할 수 없으나 형태상의 특징으로 보아 그 연원을 고구려의 「부경」이라는 소창(小倉)과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원두막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삼국사기」권27 '백제본기(百濟本記)' 중 의자왕조(義慈王條)의 '의자왕15년(655)에 태자궁을 지극히 화려하게 수리하고 왕궁 남쪽에 망해정을 세웠다.'는 기록이 최초이다. 그러나 정자보다 규모나 법식에 있어서 상위에 있는 누에 대해서는 이보다 앞선 무왕 37년 (636)에 망해루에서 군신에게 잔치를 베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라에서는 망해정을 지은 같은 해인 655년 월성내에 고루(鼓樓)를 세움으로서 삼국시대에는 궁원에 루와 정자의 축조가 이미 일반화되었으며 주로 연회의 장소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 동궁 내의 원지(苑池)인 안압지는 못가에 신선이 산다는 무산 12봉을 조산(造山)하고 못속에 삼신도를 조성함으로써 신선사상을 배경으로 천상의 세계를 니타내고 있다.
안압지의 누는 서쪽 호안 높은 곳에 위치하여 선경을 즐기도록 하였으며 이러한 축경식 기법은 정자의 조원에도 많이 이용된 수법이다. 고려시대에도 정자는 세부 기법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지언정 전체적인 기법은 별 차이 없이 계승되고 있다.
고려 의종11년에 이궁(離宮)으로 만든 수덕궁 안에 대평정,관란정,양이정,양화정 등 여러 정자를 짓고 아름답고 특이한 꽃과 나무를 심었으며 진기하고 아름다운 돌들을 정자 좌우에 배열하였음이 [고려사]에 나타나 있다. 이렇듯 정자는 풍류를 즐기고 경치를 완상하고 놀이를 하는 장소로 활용되었고, 지배층의 문화적 단편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조원기법과 장식적인 치목기술에서 선조들의 빼어난 미적감각을 느낄 수 있다.
Ⅲ.정자의 분류
1.경관적 정자와 정원적 정자
정자는 필요하다면 어디든 세울 수 있어서 일반 건축물의 풍수지리적인 입지적 제약을 그다지 받지 않았으며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궁궐,주택,별서,향교,서원과 같은 건축에 있어서 정원의 일부로 혹은 성이나 사찰의 문루(門樓)로서 세워지는 정원적 정자와 강가 높은 언덕,산기슭,바닷가 등 경치가 빼어난 곳에 외따로 세워지는 경관적 정자로 나눌 수 있다.
정원의 한 구성요소로 세워지는 정원적 정자는 주로 인위적으로 조성한 연당(蓮塘)이나 방지(方池)와 함께 세워지는 수정(水亭)및 원림(園林)의 자연적, 인공적 계류구(溪流區)의 계정(溪亭)이 대부분으로서 일일이 그 예를 열거할 수 없다.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가장 아름다운 정자가 남아있는 곳은 비원으로서 태평정, 부용정, 애련정, 숭재정, 농숙정 등이 있고 七官의 냉천정(冷泉亭), 경복궁의 사원정(舍遠亭), 주합루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적 정자보다 강,언덕,바닷가,벼랑 등 절경속에 화룡점정처럼 서있는 정자는 우리나라 특유의 것이다.
가까운 중국, 일본의 정자는 대부분 특정인 소유인 정원의 구조물이고, 서구의 원정(園亭)들 역시 성이나 담, 총림(BOSCO)등으로써 둘러싸인 정원의 축선상이나 주축과 부축이 교차되는 곳, 비스타(VISTA)의 종점 등에 세워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만은 담 안에 한정되지 않고 경승지에 단독으로 서기도 한다.
따라서 구정행위(構亭行爲)는 여사(余事)이되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공적으로는 풍수지리상 도읍의 비보(裨補)를 위해 연못을 파거나 정자를 짓기도 하고, 백성과 사대부들의 노일(勞逸)을 조절하거나 길손과 사신등 손님을 맞기 위해, 혹은 가고 오는 계절을 맞이 할 목적으로 짓게 되며 이러한 정자들은 고을의 랜드마크이자 옥외 사랑방 역할을 겸하고 있다.
2.위치에 따른 분류
1)수정(水亭)
강가나 산 기슭, 바닷가 등에 단독으로 세워지는 경관적 정자에 비해 이것은 담으로 위요되거나 인위적으로 조산(造山)한 얕으막한 동산(東山)등으로 둘러 싸이면서 연당(蓮糖),방지(方池)등과 짝이 지워진다.
2)강정(.江亭)
큰 강이 굽이도는 기암괴석상이나 높은 언덕에 세워지는 정자로 멀리서 보면 마치 정자는 강물에 에워싸여 있는 것과 같은 입지(立地)를 취한다. 또 강정은 강물이 정자를 돌아 흐르게 하고 높낮은 연봉(蓮峯)들이 MACRO 한 위요요소가 되는 입지를 세심히 택하고 흐르는 강, 모래벌판, 넓은 들과 마을 등을 중경(中景)과 조경(造景)으로 삼아 전체적으로는 파노라믹한 경관이 전개되고 정자 좌우는 언덕, 숲으로나 바위 등으로 가려지므로 정자 안에서는 사방을 자유로이 바라볼 수 있으되 외부에서는 정루(亭樓)의 지붕선만 보인다.
그러므로 정루(亭樓)에서의 사대부의 흥취는 더욱 높을 수 있었고, 전시(戰時)에는 작전지휘소라든가 전황을 살피는 장소로, 농사철에는 왕(王)이 농사작황을 살피는 전략적인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3)해정(海亭)
바닷가의 높은 절벽 벼랑끝에 세워진 것들이다. 정자에서의 조망은 아득한 수평선까지 펼쳐지고 강정(江亭)이나 기타 정자만큼 공간의 위요성은 적다.
4)계정(溪亭)
계정이란 냇가 바위 위나 혹은 시냇물에 걸치거나 기둥이 물속에 잠기면서 서 있는 형태이다. 이러한 계정은 경승지에 홀로 세워지는 경우보다 대체적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정원으로서 정원내에 자연적인 수원(水源)으로서 시냇물이 있을 때 이를 이용하고 있다. 담 밖의 시냇가에 세울 경우 우리나라와 같이 홍수가 심한 곳에서는 그 유지관리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또 마을 근처 크고 작은 강이나 언덕에서 넓고 트인 조망을 구하고자 했으므로 이 유형의 정자는 대체로 별서(別墅), 이궁(離宮) 등에 흔한 것이 된다.
5)산정(山亭)
산 기슭, 연봉(蓮峰)들이 이어져 흐르는 능선의 일부나 산정상,숲속 혹은 별당의 후원,사대부 저택에 속한 후원 뒷동산 등에 입지한다. 이와같은 산정(山亭)들은 안정되고 차분하며 번잡스럽지 않고 유현한데 머문다는데 뜻이 있다.
이 밖에도 위치, 환경에 따라 지정(池亭), 암정(岩亭), 동정(洞亭)등이 있다.
3.기능에 따른 분류
1)공공적 누정(樓亭)
①관청의 누정
관청의 누정에서 관청의 범위는 공해건물과 객사건물을 지칭한다. "공해건물은 한성부(漢城府)의 문무직 공서와 각 부,목,군,현의 동헌, 훈련원 등이며 3사 건물은 공해에 속하지 않는다. 객사란 임금이 여기에 계시다라는 의미로 비치하는 궐비(闕碑)를 안치하기 위하여 지어졌다." 공루 동정기에 큰 고을에는 반드시 영춘정(迎春亭)과 영객정(迎客亭)이 있다고 했다.
②군사용 누정
군사용 누정은 -사정으로 연회장으로, 시각을 알리고 비상을 알리는 고정(顧亭)으로 쓰이는 등 용도가 복합되기도 하고, 단일성을 가진 것도 있었던 듯하다. -전시에 지휘소로, 굴루로, 망루로 각기 사용되었으며 평시에는 연회,유희 장소로 쓰였다. 따라서 군사적 누정은 국방과 풍류를 함께하는 건물의 성격을 띤다.
③문루(門樓)건물
문루는 현존하는 것이 비교적 많다. 여기서 문루는 정자의 형식을 갖추어진 것으로 국한한다. 궁문,성문,지방관청의 바깥문 등의 위에 지은 다락집, 초루라고도 한다.
②독립된 누정은 공동의 힘으로 다수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전라지방에 산재하는 초정은 동네가구수에 따라 크기도 다양하게 각 동네에 1개 이상씩 건립되었다. 이들은 무명정자로서 유명정자는 상기 것과 달리 동기가 있어 건립된 경우이다.
③사찰의 정자는 일반 누정과 용도나 기능이 근본적으로 다르나 형식은 동일하다. 누정 밑으로 출입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Ⅳ. 건축양식의 지향성과 위계성
누정 건축물의 양식적 맥락을 파악하는 뜻에서 양식분류기준에 의해 민가에서 궁궐건축물까지 선상으로 나열하면 다음 그림과 같다.
분류기준이 되었던 것은 우선 지향성에 따라서 거주,경관,정치로 나누었다. 그 다음 건축양식별로 위계성을 주어 도식화한 것이다. 먼저 거주 지향성이 가장 강한 민가건축은 제일 좌측에 위치시켰으며 정치적 성격이 가장 강한 궁궐건축은 제일 우측에 위치시켰다. 이 두양식은 기단,기둥,공포,기와,단청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민가건축물 등 당(堂),헌(軒),제(濟)는 이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나 건축물의 구조를 보나 상위에 해당하므로 민가 양식의 우측에 위치시켰다. 거주지향성에서 경관지향성의 성격을 띤 양식이 누각과 정자이다. 따라서 경관 지향성 바로 밑에 두 양식을 위치시켰다. 이들 두 양식은 궁궐건축만은 못하지만 경관지향적으로 고상식(高床式)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정사(精舍)는 정자개념이 내포된 양식이면서 또한 교육, 학문적인 성격을 많이 띠고 있기 때문에 정자 바로 좌측에 위치시켰다. 루와 정자의 위치가 같은 경관 지향적임에도 불구하고 루가 우측에 오는 까닭은 조영자나 공간규모,건축양식,공간성격등으로 보아서 정치 지향성을 더 많이 띠고 있기 때문이다.
Ⅴ.사상적 배경
우리 나라의 문화가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여 발달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 정원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신선설에 입각한 풍경식 정원이 궁중에 만들어졌으며 중세에 들어서면서 건축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고, 이조시대로 내려오면서 비로소 한국적인 색채가 농후한 정원양식이 성립되었다고 추측된다.
한반도에 있어서 고유의 전통정원문화로서 위치를 굳혀왔던 정자도 그 예외일 수 없어 대자연의 섭리에 묵묵히 순응하는 중국대륙의 유장한 철학사상이 우리나라 누정 양식에 큰영향을 미쳤으리라 사료되므로 아래에서 각각의 사상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신선사상
신선사상이란 고대중국, 즉 춘추전국시대를 비롯하여 한대에 크게 유행했던 사상으로 삼신산과 27계급 신선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불로장생을 갈구했던 사상이다. 그런데 이 신선사상이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국 누정건축에 큰 발전을 가져온 요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백제의 무왕이 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그 속에 섬을 만들어 방장(方丈)의 선산(仙山)을 모방한 것은 중국 신선사상의 영향이며 못주위에 정자를 짓는 것도 신선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남원의 광한루를 비롯하여 완월루,방장정,영주각등이 그러한 예에 드는 누정이다. 하지만, 연못에 섬을 만들고 정자를 짓는 사례가 전체 정자수에 비해 소수임을 보더라도 신선사상만이 루정양식의 사상적 배경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2.주역과 음양오행사상
조선초 경복궁의 정사,연회,행사의 중심적인 장인 경회루는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에 의해 지어졌다. 경회루 36궁지도와 현재의 경회루 평면도는 일치하며 경회루 평면은 가운데 8기둥이 있는 부분이 제일 높아 임금이 위치하던 곳으로 추측된다. 이 곳의 8기둥 8괘는 천지만물의 온갖 현상과 형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역(易)의 처음이요 근본인 것이다. 따라서 임금이 위치하는 공간성격과 매우 일치한다. 그 다음 12기둥이 있는 부분은 중궁(中宮)보다 조금낮은 곳으로 1월부터 12월을 상징하며 그 다음 24기둥이 있는 부분은 평면중 제일 낮은 곳으로 24절기를 상징한다.
3.풍수지리설
정자건립에 영향을 준 사상중에서 풍수지리설에 일치되도록 정자를 건립한 경우일수록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 결국 이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4.노장사상
노장사상은 춘추전국시대에 성행했던 동양사상의 기조로서 무위와 자연을 도덕의 표준으로 삼고 허무를 우주의 근원으로 파악했던 사상이다. 노장사상으로부터 인간의 생활도 천지 자연의 운행, 발생법칙인 도에 순응해야 한다는 개념을 낳게 되었으며 이에 합일함을 인간생활으로서 최고의 이상이요, 최선의 신조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5.유학사상
경남 양산군 물금면에 있는 우규동(禹奎東)의 소한정(小閒亭)에 관한 연구에서는 유학사상이 근본적 주류를 이루고 그 밖에 신선사상,음양오행설,불교,칠성신(七星神)의 신앙사상 등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우규동은 학문에 뜻을 두어 정자를 이곳에 짓고 양친을 봉양하며 학문을 가르치는 중에 여가를 얻어 유영하는 장소로 소한정을 경영하였는데 이러한 태도는 곧 유학사상에 의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의 방당원도(方塘圓島)는 중국으로부터 전래한 천원지방사상(天圓地方思想)에 따른 것이고, '天'은 양이고 '地'는 음으로 음양설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또 정원내 석불을 세웠으며 정원의 최상층위에 칠성단을 축조하고 칠성대라 명명하였는데 여기서 불교의 칠성신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이제까지 누정양식을 형성시킨 사상적 배경에 대해 종합해 보면 특정사상만이 루정양식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은 사실 무리가 뒤따른다. A.Rapoport는 건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 기후,은신처,종교,재료,경제 등의 요소라고 보는 환경결정론자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상이 큰 영향을 준 것을 정량적으로 밝혀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어떤 사상만이 누정양식을 결정했다고도 볼 수 없다. 게다가 한국의 사상적 흐름은 중국에서 사상이 들어올 때마다 과거의 것이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즉 불교, 유교, 성리학, 음양오행, 자연숭배, 풍수지리설 등이 습합되면서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미리 있던 사상에 동화되거나 혹은 융화되면서 독특한 민족문화양식을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특정한 사상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기보다는 여러 사상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또한 사상적인 것이 양식을 결정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Ⅵ.형태 구조적 특징
평면상 정자는 원형,방형,장방형,육각형,팔각형,십자형,선형(부채형),매화형,쌍팔각형,삼각형 등이 있는데 구조가 간단하고 시공이 쉬운 방형이 가장 보편적이고 장방형 정자는 대개 3간 규모로 중앙을 크게 하고 좌우를 작게 한 것으로, 산 기슭이나 게류변(溪流邊), 원림(園林)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원정(園亭)은 띠,볏짚 등으로 만든 둥근 초정으로 향간(鄕間)에 가장 많으며 팔각형,육각형도 시공이 용이하여 흔한 편이다. 십자형 정자는 중앙이 장척(長脊)모양이고 앞뒤가 이를 에워싸고 있어서 십자형 평면을 이루며 쌍원정(雙園亭),쌍방정(雙方亭),쌍육정(雙六亭),쌍팔각정(雙八角亭)은 원형,육각형,방형 등을 임의조절하여 만든다. 특이한 형태로는 17개의 기둥으로 된 수원 침미정(枕眉亭)과 같은 칠각정(七角亭)도 있고 비원에는 부채모양의 태극정도 있다.
유배정(流盃亭)이라 하여 정내(亭內)의 지면에 골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연회때 이 수로에 술잔을 띄우는 유양곡수도 있다. 정자는 단순,소박한 건물이면서 융통성은 동서고금의 어떤 건축물에 비할 바 아니다. 또 추우면 불을 지필 수 있는 온돌이 누마루와 함께 있기도 하고, 날씨에 따라 여닫을 수 있는 밀창이 있어 현대건축의 커튼월(curtain wall)보다 더 자유롭게 개폐(開閉)하며 자연에 순응했다. 뿐만 아니라 '르 꼬르비제'가 피롯티는 현대 건축의 지향할 바라 했는데 이를 아득한 우리 조상들이 이미 정자의 개념으로 도입한 셈이다.
Ⅶ. 정자의 배치와 조경
1.배 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정자의 역사성은 고문헌이나 역사 기록을 통해 살펴 볼 수 있는데 현존하는 정자들은 대부분 14세기 이후에 건립된 것이다. 옛부터 사용해 오던 양택론이 누정에도 적용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루정이 위치하는 곳이 타 건물의 위치보다 좋은 곳에 위치하였으며 그러지 못할 경우 인공조경을 함으로서 보다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누정에 있어서의 배치환경은 누정 자체와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정자의 배치는 기본 건축물에 부수된 하나의 건물로 건축하는 경우와 독립된 단일 건물로 건축하는 경우든 그 성격에 따라 배치 형태에도 차이가 있다. 정자 자체가 풍류의 장이고 정서적 휴식을 강조하는 공간이므로 자연의 경관을 고려하거나 주위경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입지 조건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소규모 건축물인 정자는 일반적으로 전망이 좋은 강가나 언덕 또는 산 골짜기의 냇가에 세우는 경우가 많고 정원시설의 일부로 배치되는 것도 있다.
정자의 배치 형태를 보면 강이나 못가, 산마루나 언덕 위, 집 안에 배치되는 형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인위적인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주택 정원이나 별당 정원의 한 요소로 건립되는 경우는 인공성이 강조된 공간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배치는 그 방위성에 구애되지 않는다. 다른 건축물이 대부분 남향에 위치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정자는 특히 어느 쪽으로 위치되어야 한다는 법칙이 없다. 배경과 경관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건물이 남향으로 위치하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자가 위치한 곳에 따라 분류해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1)강이나 계곡에 있는 정자
강이나 계곡 등에 가까이 위치한 정자의 형태이다. 계곡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백사장 등의 광활함을 바라 볼 수 있으며, 특히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감상하는 등의 서정적인 공간을 이룰 수 있는 지점에 배치한다.
2)못에 세운 정자
자연적인 못이나 인공적인 연못에 설정되는 정자이다. 이런 정자는 못의 한쪽 가장자리나 중앙에 세워 물과 주변의 경관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배치한다.
3)산마루나 언덕 위에 세운 정자
산의 정상이나 중턱 또는 높직한 언덕위에 위치하여 주위의 숲과 멀고 가까운 경관을 바라보기에 좋은 위치에 배치된다. 간혹 망루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4)집 안에 세우는 정자
이 경우는 일반적인 주택보다는 별서의 성격을 나타내는 주택에 많다. 전원을 중심으로 한 생활 공간에 달아낸 경우가 많다. 주변 전원의 풍요로움을 바라본다는 의미도 있겠으나 집회 장소로의 성격도 있다.
2.조경
한국 정자의 조경은 자연적인 숲이나 주변 환경 요소인 냇물이나 강 등을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의 외부 공간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의 조경이 인위적이고 기하한적인 것과 달리 일반적으로 한국 조경은 본래의 자연 형태가 그대로 주변 조경 요소로 이용되었다. 이는 자연 숭배 사상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간혹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러한 조경 공간을 인위적 방법으로 집 안에 끌어 들이는 경우도 있으나 예로부터 정자는 위락과 조망을 위한 휴식 공간이었기 때문에 주위 경관과 주어진 자연 상태 그대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직선적이고 윤곽적인 처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한국의 조경은 그 주위를 형성하는 수목에도 많은 배려가 있었다. 수목에 인위적인 조형 처리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형태로 이끌며 사철의 변화에서 주는 자연의 색상으로 구조의 단순함을 보완하였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의하면 조경 식물은 대부분 대나무나 소나무 등의 10장청 곧 푸른 색을 띠는 사철 식물이며 여기에 계절 따라 색상이 변화하는 43가지의 수종인 장미, 백일홍, 목련, 매화 등의 식물도 그 변화를 주는 조경 식물로 삼았다고 한다.
Ⅷ. 정자의 건축 계획
1.평면
면의 유형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 기능, 수용 등의 여건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 방과 방의 연결일 경우에는 많은 제약을 받으나 정자는 단일 건물이므로 평면 구성을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로 할 수 있다. 외부의 독립 공간으로서 주위 환경과의 조화를 위해 한옥의 일반적인 평면 형태인 칸의 형식에서부터 정자형이나 아자형의 평면까지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수원의 방화수류정과 같은 다각형의 평면 구성도 있다.
일반적인 형식인 정면 1칸, 측면1칸의 형식에서부터 시작되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평면 구조에는 보통 중도리 부분에서 외목도리사이는 툇간이라는 형식으로 사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툇간이 끝나는 외부에 난간을 두어 평면의 끝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곧 외부 공간으로서의 안과 밖이라는 구분을 벽이라는 막힘을 배제한 공간 처리를 하고 있다.
아자형의 평면은 매우 특이한 평면 형식이다. 이것 역시 툇간이라는 평면을 달아 두고 있으며 단순한 4각형 평면에 변화를 주어 기하학적으로 처리한 것이다.이 밖에도 6각형, 8각형의 평면도 있으나 흔하지는 않다. 이러한 평면은 원거리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지붕 구조를 매우 특이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2.구조
정자의 초석은 격식있는 건축물에 두는 가공된 초석과는 달리 자연 암반이나 자연 초석 위에 세워지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누마루를 달아대는 상층 구조의 경우에는 가공된 장초석을 모양있게 사각이나 원형 6각형 등 그 형상을 달리하고 있다. 초석의 위치는 건축 구조상의 평면 형태 또는 건축 목적에 따른 기둥 배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축부인 기둥은 각기둥과 원형 기둥으로 지붕 구조를 받치고 있다. 이와 병행하여 기둥 하부에는 마루 구조를 형성하고 그위에 난간을 둘렀다. 기둥 머리 부분은 일반적으로 민도리 형식으로 처리했으며 규모가 큰 정자의 경우에는 기둥머리에 익공계 양식으로 하기도 했다.
정자의 가옥 구조에는 일반적으로 가구 구성의 기본이 되는 3량집의 작은 건물로부터 건물 규모에 따라 큰 량을 두고 있는 건물도 있으나 보통 5량집 구조의 정자가 가장 흔하다. 입면의 구조는 보통 창이나 문이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으나 건물의 용도와 성격에 따라 때로는 들창이라는 창문 형태로 기둥과 기둥사이를 막기도 했다. 그러나 이 들창은 모두 열었을 때 정자가 지니는 본연의 개방 공간 역할을 하는 이중성 차단막이기도 하다.
3.바닥
정자의 바닥은 마루틀인 동귀틀과 장귀틀을 짜고 그 사이에 장청판이나 단청판으로 구성하는 우물마루를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바닥은 정자의 평면 형식에 따라 여러가지이다. 따라서 6각형과 8각형, 4각형, 정방형등의 바닥은 평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분할과 단이라는 차이점을 두어 위계성을 줄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경남 함양군의 거연정 바닥은 중앙에 층을 두고 새로운 실의 구성을 두어 위계적 또는 상징적 공간을 위한 바닥공간을 구성하기도 했다.일반적으로 정자의 바닥을 두가지로 구분한다. 지면으로부터 동바리, 멍에, 장선 등으로 구성 되는 표상바닥이거나 한 층 또는 반 층 높이의 기둥을 달아 마루를 구성하는 누마루 형식이다. 정자의 바닥은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연결하는 개방된 매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어 차단된 실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열려있는 실의 단일 공간 바닥으로서의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4.천장
정자의 천장은 연등천장과 빗천장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서까래 사이를 앙토한 모양대로 두는 연등천장은 저자 건축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정자 자체가 격식을 요구하는 권위적 건축도 아니고 상징적인 건축이 아니므로 천장의 처리는 매우 간단하게 되어 있다. 우물천장 등과 같이 반자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연등천장 자체가 본래 자연과 조화되는 개방 공간이라는 정자의 성격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서까래의 노출과 부드러운 앙토의 재질이 대조를 이루어 시각적인 면에서 이상적인 결합이라 하겠다.
또한 빗천장의 경우는 일반 살림집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이다. 초정이나 누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인데 서까래와 평행되는 경사로 쪽널판지를 사용하여 구성하는 단순한 형태의 천장 처리 방법이다. 이러한 천장 구조에는 중도리 안쪽 부분을 우물천장이나 연등 상태 그대로 두는 경우가 흔히 있다.
5.난간
시각적 연속경 또는 주위의 자연 배경을 그대로 포용할 수 있는 정서와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소규모의 정자건축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조형과 개방, 연속성을 필요로 한다.
정자는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연결짓는 연결체적 구조물이므로 공간의 차단을 극도로 배제하고 있다. 그래서 난간의 설치는 막힘과 열림의 연속적인 건축 입면으로 형성되며 시각적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다. 난간이 설치되는 주공간은 성격에 따라 형태와 구조를 두가지로 대변할 수 있다. 평난간은 걷거나 움직이는 동선위주의 공간에, 계자 난간은 공간의 연속, 시각의 연속을 요구하는 정적 공간에 안정보호를 위한 시설을 부과한 형태이다. 특히 계자 난간은 움직이는 상태가 아닌 앉은 상태에서 주위공간을 포용하고 조망하기 위한 개방 중립적인 기능으로 이루어 진다.
정자의 난간은 그 구조 자체가 갖는 조형성(곡면의 난간대와 추상적 조형인 하엽, 직선의 띠장 등)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의 조형미를 이끌어 가는 부분이며 더 나아가 공간 연출에 따른 이상적인 시각예술이기도 하다.
6.장식
정자는 소규모 건축이므로 많은 의장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는 않으나 현판이나 주련, 낙양, 난간의 하엽무늬 단청 등으로 치장하고 있다. 정자에 걸맞는 시구를 새긴 주련을 정자 기둥에 달거나 정자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정자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걸기도 한다. 이런 현판의 글은 그 정자가 주는 정취를 알 수 있는 어휘이다. 이 현판의 둘레를 당초문이나 초각 등으로 초새김하여 단조로운 가구체를 치장하기도 한다. 곡선을 연속적으로 초새김한 낙양이나 하엽 역시 직선 또는 수직, 수평적인 기둥이나 난간의 단조로움을 덜기위한 변화의 요소이다. 이런 초새김한 파련이나 연꽃 등은 시각적인 단순함을 보완해 준다. 이밖에도 단청이라는 색의 치장으로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기도 한다.
7.지붕
외관적으로 많은 의장적 요소를 주는 정자의 지붕은 초가지붕의 초정에서부터 팔모지붕, 다각지붕 등의 많은 형태가 있다. 초가지붕의 경우는 전원의 소규모 정자 건축에서 볼 수 있으며 거의 대부분이 1*1칸의 단순한 형식이다. 또 평면의 형태가 2칸, 3칸의 비교적 큰 형태의 정자는 대개 맞배 지붕보다는 팔작지붕인 경우가 많다. 이는 정자 건축의 격상을 위한 상층부의 의식적 요소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자는 그 지역의 상징적인 건물이라는 쉽게 구별되는 장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모지붕이나 육모지붕 그리고 다각지붕인 형태의 정지의 절병통라는 옹기 모양이나 쇠붙이로 만든 조형물을 지붕이 모이는 정상부에 장식하여 지붕의 의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8.누마루의 상징성
전통적인 한옥의 마루라는 공간은 누마루가 온돌과 결합된 특이한 구조이다. 그래서 전통 서민 주택 안의 마루 공간은 개방되어 있으면서 신성한 공간인 동시에 과시적인 전시 공간이기도 하다. 농촌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서민 주택에선 온돌이라는 주된 주거공간과는 이질적인 소재인 마루,더구나 상류 문화 계층의 주택에서는 마루 공간이 곧 권위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대청이라고 해서 그 주택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렇듯 대청은 주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와 기능의 공간이다. 혹 많은 사람을 대접할 일이 생기면 온돌방에서는 답답하고 또 손님이 오래 머물기에도 조심스러운 공간이므로 마땅하지 않다. 그래서 대개 대청을 이용하지만 여유가 있다면 중심적 역할과 기능을 하는 대청이 아닌 별도의 공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별도의 공간은 곧 주택 안에서는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며 마을에서는 권위와 상징성이 어우러진 과시적 기념물의 건물이 되기도 한다.
주택 안에서의 그런 공간이란 다른 방이나 마루 공간보다 돌출시키거나 높게 하여 만든 누마루다. 누마루는 주택 안에서 복잡한 동선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그 공간은 가장(家長)의 전용 공간으로서 위엄과 시의 공간이기도 하다.내부에서는 대청을 지나서 한 부분을 돌출시키고 누마루의 높이도 대청보다 한 층 높게 만들기도 한다. 또는 온돌방을 지나서 툇마루나 아궁이 또는 부엌 윗부분을 높여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누마루는 외형적으로 대단히 높게 구성된다. 전남 구례의 운조루는 대청을 연장하여 바닥을 높이고 3면이 터진 공간이 되게 만든 대표적인 누마루다. 이와 같은 누마루는 사대부의 사랑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강화의 철종 생가(용여궁)는 대청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가서 다락으로 오르듯 올라가면 3면이 터진 누마루가 있다. 더구나 누마루가 있는 부분은 대지도 높아 시야가 좋다.
이와 같은 누마루들은 조선왕조의 상류 주택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현존하는 것도 여럿 있다.
이러한 누마루는 산이나 들, 또는 불가에 있는 정자는 아니지만 상류 계층의 주택 내부에 정자의 기능을 가진 공간구조이다. 따라서 누마루는 고급공간이 되게 마련이고 그 누마루에 있는 사람 자신은 물론 보는 사람도 건축적 연출과 누마루나 정자의 의도가 어우러져 세속을 떠나 자연과 동화되는 공간인 것이다. 이처럼 누마루의 의도가 일상 주거와 격리된 자연속에 동화된 존재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건축적 연출이다.
누마루 공간 자체가 지면보다 휠씬 높아서 공중에 떠있는 기분이 된다. 더구나 연못이 앞에 있다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착각을 하게 되고 또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우월성마저 느끼게 해주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누마루 본래 의도는 그런 권위나 우월성에서 충족하자는 것은 아니다. 비록 세속에 살더라도 맑고 깨끗한 마음을 늘 지니고자 하는 차원 높은 철학과 이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자나 누마루의 기능과 역할에 공통점이 있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우리나라의 정자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에 합치되어 계층에 관계없이 독특하게 발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