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파와 기장이 분열되어 나가고 남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1959년 또다시 분열하게 되었다. 예수교 장로회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하여 호의적인 태도를 지닌 진보적 성격의 지도자와 세계복음주의 친교회(NAE)에 참여하는 보수적 성격의 지도자로 나뉘어져 있었다. NAE측에서는 WCC가 자유주의적이고 용공적인 성격을 띤다는 이유를 들어 거기에서 탈퇴할 것을 주장했다. 보수적 집단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ICCC의 회장 맥킨타이어 목사가 방한했을 때 고신파 지도자들과 NAE측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환영함으로써 두 파 사이의 긴장이 높아졌다. 1959년 제44회 총회에 파송할 총회 대표 선출 문제로 경기 노회가 갈라짐으로써 교단분열로 나아가게 되었다. 5월에 열린 경기 노회에서 뽑은 총대 선거에 부정이 있다는 이의가 제기되어 같은 해 6월에 임시 노회를 열어 새로 총대를 선출하였다. 5월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총대는 NAE측이 많았고, 임시 노회에서 선출된 총대는 WCC측이 많았다. 총회는 11월 23일 서울 승동교회에서 속개하기로 하고 정회하자는 증경 총회장들의 제안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불만을 품은 회원들은 서울의 연동교회에서 전필순의 사회로 단독 속회를 열었다. 후에 결합을 위하여 노력했지만 1960년 총회부터 완전히 서로 다른 교단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WCC측은 통합 예수교장로회(장신대학), NAE측은 합동 예수교장로회(총신대학)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분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