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과 변천 1) 창교자와 창교과정 밤빌리아교회(추수꾼 훈련원)는 서울신학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허영만 목사가 1978년 자택에서 대한기독교성결교회소속의 영광교회를 개척하면서 시작되었다. 허영만 목사는 1980년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불광동에서 방앗간을 17년간 경영하기도 했었다. 2) 변천과정 허영만 목사는 1985년 교인들의 영성화훈련을 위해 이선아(여 당시 37세 1995년 사망)를 영입하였다. 당시 이선아는 아동문학가이자 크리스천문인협회 회원이었으며 80년대 초반 자신의 집이었던 서울 구로구 개봉동 제일 아파트 2동 102호에서 영성화훈련 모임을 진행하다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기도 과천으로 옮겨 주사랑교회란 이름으로 모임을 가져왔고 피어선신학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있던 박영규 목사와 함께 ‘영성훈련’을 전개해 왔다. 이선아와 박영규 목사를 영입한 허영만 목사는 영성화훈련이 문제가 되어 소속교단인 대한기독교성결교회에서 1987년 2월 12일 파직, 출교처분을 받게 되었고 이에 반발하여 교단을 탈퇴하고 대한기독교연합교회 총회를 조직하는 한편 교회명을 밤빌리아 교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영규 목사는 1938년 4월 18일생으로 경북 문경군 농암면 농암리 출신으로 집안이 3대 째 장로교회에 다니는 가정에서 성장하여 대구 계성 중·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 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신학생 때부터 연동교회에서 전도사, 강도사, 목사안수를 받은 후 잠시 새문안교회에 시무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감리교 계통의 아일리프 신학교와 장로교 계통의 매코믹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신학석사,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교리와 활동상황 영성 치료를 통해 인간이 완전해 진다고 한다. 영성치료는 6단계로 1-변질(감가단계), 2-변덕(감정의 단계), 3-변혁(확인의 단계), 4-변신(확신의 단계), 5-변형(신뢰의 단계), 6-변화(침묵의 단계)다. 특히 4차원 즉 변신 이후의 단계가 영을 통한 교통의 단계로 보는데 6차원에 이르면 온전해 지는 단계로 여기까지 오면 침묵으로도 투명인식이 가능한 단계요 호수처럼 맑은 단계라고 한다. 성경은 온전하지 못한 책으로 영이 온전해지면 성서 주석이나 설교를 기록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훈련은 심리학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최면사태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되어 졸리거나 멍해지는 현상이 나타나며 사리분별을 할 수 없도록 세뇌된다.
기타사항 ① 1989년 5월까지 집단 생활을 하며 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 375번지로 주민등록을 옮긴 사람만도 45명이나 되었다. 이 단체의 핵심멤버는 이선아(사망), 박영규 목사, 음재룡 목사, 허영만 목사 등이다. ② 이선아는 평신도는 물론 목사들로부터 고해성사(가라지 내놓는 일)를 받고는 자신이 죄사함을 선포한다. ③ 틀을 깨러 왔다는데 그 내용은 가정의 틀, 교회의 틀로서 그 말처럼 가정도 파괴하고 교회도 파괴하고 도덕도 파괴하는 일이 일어나 논란이 되었다. 1990년 5월 29일 조선, 중앙일보등 각 방송에서 허영만 목사의 아들 허윤혁 군 감금사건이 일제히 보도되었다. 이 사건의 내용은 90년 5월 26일 4개월간 밀폐된 교회 종탑 밀실에 갇혀있던 허영만 목사의 아들 허윤혁 군을 동생 허연실 양이 친구들과 함께 들어가 구출한 사건이다. 밤빌리아 교회에서 이탈한 심만섭 씨가 광명시에 이선아, 음재룡, 이준달, 이광섭을 감금폭행죄로 고소한바 있고, 이 집단에서 이탈한 심만석 목사는 ‘팜풀리아 팜풀리아’ 라는 소책자로 실체를 폭로한바 있다. 밤빌리아 추수꾼 훈련원은 예장 총회(통합) 제 75차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현재는 과거에 있었던 일로 인해 자신들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탈피하기 위하여 표면적으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박영규 목사의 주장은 아직도 계속되고 생계를 위해 평택 에바다 장애인 복지회관 관장을 맡아보기도 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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