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00년 0월 0일오늘은 철수와 싸웠다. 나쁜 자식, 지가 뭔데, 나를 놀려. 철수가 때린 주먹에 내가 먼저 한 대 맞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내가 실컷 패주었다. 결국 철수가 코피를 흘리면서 울고 불고, 선생님께서 오셔서 나는 교장실까지 불려 갔지만, 기분은 좋다. 내가 더 때렸으니까. 다시는 여자라고 놀리지 않겠지. 한번만 더 그랬다간 봐라. 위에 있는 그림을 보면 뭐 이런 일기가 생각이 나시지 않습니까? 이 그림은 우리가 살아 오면서 한 번쯤은 보았거나 경험했을 것 같은 일을 그려서 굳이 미술평론가가 나서서 심각한 이론을 들먹이며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만 보면 그림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그런 그림입니다. 이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쉽고 가볍게 보이는 기법으로 그린 화가가 미국의 놀만 록웰(Norman Rockwell, 1894-1978)입니다. (아래에 있는 그림은 록웰이 그린 이른바 삼중 자화상입니다. 거울에 비친 실제 얼굴과 그림에 그려진 얼굴을 비교해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록웰은 1894년 뉴욕 시티에서 태어났는데 일찌감치 그림에 재능을 보여 채 20세가 되기도 전에 잡지사의 삽화를 그리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통해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Saturday Evening Post 라는 잡지의 표지 그림으로 그렸던 300 여장의 그림들이 유명합니다. 그것때문에 록웰을 정통 화가가 아니라 삽화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상업적으로 대량 제작된 복사품이 아닌 그의 오리지널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구나 그 평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록웰의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그 속에 사람 냄새가 나고 우리의 일상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보아도 이해하기 쉽고 또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할 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같이 이 그림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구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보는 사람 대부분의 마음에 따듯함을 주는 그런 그림을 남긴 사람을 삽화가니 화가니 하고 구분하는 것 조차 무의미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요?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면 예술은 결국 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런 의미에서 록웰 역시 훌륭한 예술가의 한 사람입니다. 1962 년 경에 록웰 자신도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만일 삽화(illustraion)를 예술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삽화가) 스스로 자신을 예술가라고 여기지 않는데서 생겨난 일이다. 나는 우리가 "나는 삽화가가 아니라, 예술가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믿는다. "
1923년 이미 삽화가로서 자리를 잡은 록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예술 활동에 점점 자신감을 읽어 가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열정이 사그라들고 자신의 모습과 예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겠지요. 그래서 록웰은 예술의 수도 파리로 가서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파리에서 본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도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지는 못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록웰은 오히려 더 의기소침해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어느 날 록웰은 갑작스러운 발견을 합니다. 늘 보는 일상적인 풍경과 사람들이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우리가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그 일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장면(Scene)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viewpoint)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서야 나는 내 작품 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내 근처에 존재하고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터에서 파리를 잡으려 뛰어다니는 꼬마들, 현관 계단에 앉아 공기 놀이를 하는 소녀들,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노인들 ... 이 모든 것이 나의 (예술적인) 감수성(feeling) 을 불러일으킨다. "
그 이후 록웰은 더욱더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이제는 사라져 버린 20세기 초반 미국 중산층의 모습을 그림으로 전합니다. 록웰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그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보는 사람 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실 수도 있구요. 록웰의 그림을 몇 편 감상해 보시지요.
1954년 작품 "거울 앞의 소녀(Girl at Mirror)" 입니다. 가지고 놀던 인형도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거울앞에 앉은 소녀의 무릎에는 잡지가 한 권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그 잡지 속에서는 화려한 여배우의 사진이 있습니다. 아마도 아름다운 여배우의 사진을 보며 소녀는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을 꿈꾸나 봅니다. 소녀의 발치에는 화장품과 빗 등이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사진 속의 배우처럼 화장하는 흉내를 내보았던 걸까요? 제가 보기에는 사진 속의 영화배우 보다도 소녀가 더 아름답습니다.
"오고 가고(Going and Coming)" 라는 1947년 작품입니다. 아마 가족끼리 여름 휴가를 떠났나 봅니다. 두 장의 그림을 같이 두고 보면 휴가 떠날 때와 돌아올 때가 확실히 구분이 되지요? 휴가가는 기쁨에 들떠 차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개구장이 아이들과 신이 난 듯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불어오는 바람에 혀를 낼름거리는 강아지까지 모두가 들떠 있는 것 같습니다. 뒷자석에 근엄하게 앉아 계신 할머니만 빼구요. 그나저나 개들은 왜 차만 타면 차 밖으로 코를 내밀고 킁킁거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비해 올 적의 차안은 조용합니다. 심지어 딸이 불고 있는 풍선껌이 부풀어 오른 크기조차 줄어들었군요.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억지로 졸음을 참으며 운전을 아버지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한 사람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두 그림에서 사람들 이외에도 달라진 것들이 있는데 한 번 찾아 보시겠습니까?
록웰의 그림 속에서는 전통적인 미국 사회에 등장하는 새로운 20세기 문명의 모습들이 들어있습니다. 1949년 작 "새로운 텔레비전 안테나(New Television Antenna)"도 그러한 미국 사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케이블 채널이 보편적인 요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텔레비전 안테나를 보신 기억이 있으시지요. 한 사람은 지붕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조정을 하고 있고 집 안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잘 나오는지 살피고 있다가 "됐어 이제 잘 나와. 그대로 안테나 고정시켜." 하는 그 순간의 장면을 그림에서 포착하고 있습니다.
"있지. 이거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어." 라면서 시작되는 소문은 결코 비밀일 수가 없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아는 비밀이 아닌 비밀이 되어 버리는데요. 그러다가 최초에 발설한 사람과 소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양자 대면을 하게되면 어떻게 될까요? 1949년 작품인 '소문(Gossip)'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듯 왼쪽 상단에부터 읽어(보아) 가시면 됩니다.
까만 장갑을 낀 할머니가 진주 목걸이를 한 할머니에게 소근소근 소문을 전합니다. 그러면 진주 목걸이를 한 할머니는 검은 모자를 쓴 할머니에게 그 다음은 파이프 담뱃대를 문 할아버지에게 점점 소문은 퍼져갑니다. "정말? 그게 사실이야? 하하하. 정말 웃긴다. " 등등의 대사가 들려오죠? 그러다가 마지막 회색 모자를 쓴 아저씨-- 손가락 모양으로 보아 소문의 당사자 입니다.-- 에게 소문이 들려오고 그 아저씨는 용케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 사람을 찾아 따집니다. 한 번 이 그림에 캡션을 달아 보면 어떨까요?
1947년 작 베이비시터에서는 대략 난감한 상황에 빠진 어린 베이비시터의 모습이 보입니다. 우는 애기를 달래려고 별 수를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고 이제는 베이비 시터 안내서를 들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럴 수록 아이는 더 울고 베이비시터의 머리를 잡아 당기며 발악(?)을 합니다. 이 베이비 시터는 아마 아이가 조용하면 숙제를 할려고 했는지 소파 의자에는 미국 역사 책과 연필이 그리고 스탠드 아래 책상에서 수학책이 놓여있습니다. 시간은 이제 자정이 되어 가는데 아이 부모는 아직 돌아 오지 않았고 곰인형 조차도 남감한지 머리를 긁적이고 있습니다. ^^
위의 그림과 같은 장면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산부인과 대기실'이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아마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겠지요? 1946년 작 "산부인과 대기실( Maternity Waiting Room) 입니다. 아마 안에서 한 부인의 비명이 들 려왔나 봅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젊은 남편의 "Oh My God!" 하는 표정이 보이시지요? 그리고 가운데 아예 고개를 돌려 버린 남편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운데 앉은 붉은 양말의 대머리 아저씨는 경험이 많나 봅니다. 그 와중에서도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려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열심히 책에 코를 박고 있는 남편의 모습도 보이는데요. 글쎄요 책이 눈에 들어 올런지...
예전에 그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항구마다 울고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 사실이 아니겠지만 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항구마다 한사람씩의 연인을 두고 있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요. 1944년에 록웰이 그린 "문신하는 사람(Tattoist)"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 것도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형은 한 사람 뿐이라는 사실이지요. 여인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고 있는 이 수병의 우람한 팔에는 Rosietta, Ming Fu, Mimi, Olga 등등 다양한 국적의 여인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지워졌습니다. 대충 이 친구가 돌아다닌 항구들을 알 수 있겠군요. 이제 마지막으로 베티의 이름이 새겨지는 것을 보니 미국으로 돌아왔나 봅니다.
"노상 장애물(roadblock)"이라는 1949년 작품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온 동네에 난리가 났습니다. 이 상황에 대한 등장 인물들의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장애물 때문에 길이 막힌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왜 하필이면 그 순간 그 자리에 서 있게 되었을까요? 그림을 좀 크게 올려 놓았습니다. 여러분의 관찰력을 테스트 해 보십시오. 아울러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을 지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앞의 글에서 소개해 드린 록웰의 그림들은 미국 사회의 일상 중에서 밝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그린 것 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듯 세상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어둡고 추한 모습들이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록웰이 살았던 20세기 초반의 세계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 이전 세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쟁과 대량 학살 그리고 그로 인해 무수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흐른 시기가 바로 20세기 초반 입니다. 물론 20세기 후반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졌다고 볼 수 는 없겠지요.
록웰이 살았던 미국은 그런 면에서는 축복받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의 대부분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치러졌고 비록 미국 역시 인적인 손실을 겪었지만 결국 그 두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지구 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로 떠 오릅니다. 록웰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여유있고 안정된 미국의 모습은 어쩌면 이러한 전쟁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안정 속에서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문제점들은 늘 존재해왔었고 그것이 50년대 말과 60년대를 거치며 나타나게 됩니다.
웬지 이거 좀 따분한 역사 강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록웰의 그림이 풍요롭고 안정된 미국의 모습만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생의 후반기에서 록웰은 그림을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한 예술가 이기도 합니다. 물론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록웰의 그림들에서, 특히 Saturday Evening Post 의 표지에서 흑인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록웰이 인종차별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잡지의 편집 방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흑인 민권 운동이 한창이던 60년대에 록웰은 그림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려나갑니다.
일반적으로 삽화가라고 하면 미리 주어진 내용에 맞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록웰은 삽화가의 수동적이고 제한적인 그림을 뛰어넘는 작품들을 남긴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즉, 남의 이야기에 그림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지요. 일상적인 상황을 그린 그림 속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는 록웰 만의 뛰어난 능력 덕분에 우리는 그의 그림 속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또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에 소개한 1959년 작 "배심원실(Juror Room)"을 보시면 배심원단들이 사건에 대해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여성이 다수의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설득(?)당하고 있는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이 그림을 본다면 이 그림은 당시 여성들의 위치를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 록웰의 의도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여성의 바로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록웰 자신인 것 같기도 합니다. 아래에는 수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한 록웰의 그림들을 몇 점 소개합니다.
1943년에 그린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는 2차 대전 동안 남자들이 떠난 공장에서 남자들이 하던 일들을 하던 여성을 그린 그림입니다. 우람한 팔뚝과 무릎 위에 놓인 묵직한 공구에서 이 여성의 힘이 느껴지십니까? 그러면서도 붉은 머리와 입술 그리고 통통한 빰에서는 여성스러움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점심을 먹고 있는 그녀의 발 아래에 놓은 것은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Mein Kampf) 입니다.
히틀러의 책을 밟고 앉아 씩씩하게 공구를 들고 일하는 여성의 모습(물론 그림에서는 점심 식사 중입니다.) 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의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전하는 메세지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이 후에도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각 종 사회 운동에서 상징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로지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인 천지 창조에서 등장하는 예언자 이사야를 모델로 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래에 보시면 분명한 공통점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41년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때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쟁 이후의 세계에 대해 말하며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라는 4 가지 자유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것은 훗날 대서양 조약의 바탕이 되는데 2차 대전 중이던 당시 미국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 생각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을 고용하였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록웰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이러한 연설에 큰 감명을 받았고 자진해서 그것들을 그림으로 옮기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에서는 록웰이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라 삽화가일 뿐이다' 라고 하며 록웰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Post 지에서는 록웰의 그러한 생각을 높이 평가하고 한시빨리 작품을 완성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결국 그 그림들은 Post 지의 표지로 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들이 정부에서 고용한 화가들의 작품들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았고 이것을 본 정부에서도 그제서야 록웰의 그림을 정부의 각종 포스트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위에 소개한 그림은 "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 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마을의 회의에 참석한 한 사람이 일어서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인데요. 이 사람의 굵은 손 마디와 입은 옷으로 보아 결코 사회의 상류층은 아닌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을의 회의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언론의 자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이 작품은 전시 공채(War Bond)를 팔기 위한 포스터에 사용되어 일반인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일깨우고 결국 미국의 전시 공채 판매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승전국으로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국가로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사회 속에 잠재된 각종의 모순들이 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나타나게 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흑인들의 민권 운동입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록웰은 자신의 생각을 그림을 통해 강하게 표현합니다. "우리 모두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문제(The Problem We All Live With)" 라는 1964년 작품은 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위의 그림은 1960년 뉴올리언즈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그림인데요, 루비 브리지스(Ruby Bridges)라는 6살 된 소녀는 정부의 학교 통합 시책에 따라 당시까지 백인들만 다니던 공립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반대하는 백인 학부모들이 학교 가는 길을 막고 데모를 합니다. 그래서 이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연방 보안관(Marshal)들이 나서서 소녀를 학교까지 호위하는 장면입니다.
벽에 쓰인 검둥이( Nigger)라는 글씨가 보이고 터져버린 토마토는 마치 누군가가 흘린 피처럼 보입니다. 일부러 얼굴을 보이지 않게 그려진 연방 보안관들 사이에서 걸어가고 있는 루비의 흰 옷과 흰 운동화 그리고 검은 피부가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흑백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록웰은 왜 루비를 네 사람의 가운데가 아니라 앞에 치우치게 그렸을까요? 그리고 왜 연방 보안관들의 얼굴을 보이지 않게 그렸을까요? 아래에는 루비 브리지스의 실제 사진입니다.
루이 브리지스의 이야기와 같은 주제의 또 다른 그림이 아래에 있는 1967년 작품 '이웃의 새로운 아이들(New Kids in the Neighborhood)" 입니다.
백인들이 사는 동네에 흑인 가족이 이사를 옵니다. 그리고 새로 이사온 흑인 남매를 동네 백인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까요? 멀찌감치 마주보고 있는 이들 사이의 간격은 흑인들과 백인들 사이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 아이들의 관계는 흑인 소녀가 들고 있는 흰 고양이와 백인 아이들이 데리고 온 검은 강아지 만큼이나 친해지기 어려운 사이였을런지도 모르겠군요.
흑인 민권 운동은 단순히 목소리 높여 연설하고 행진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는 자신들이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피와 그 가족의 눈물이 또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일전에 소개해 드린 마틴 루터 킹 목사도 그러하지만 1964년 6월 미시시피 주에서 흑인들의 선거등록 운동을 하던 3명의 민권 운동가들 역시 그와 같은 희생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미시시피 버닝' 이라는 영화로 소개되기도 했던 이 사건은 지역의 KKK 단원들이 이들 민권 운동가들을 살해한 사건인데 그 재판과정이 부당하여 또 한 번 화제가 되기도 했던 사건입니다. 1965년에 그린 록웰의 '미시시피의 살인 혹은 남부식 정의(Southern Justice or Murder in Mississippi)" 는 바로 이 사건을 주제로 한 그림입니다.
기존에 보아온 록웰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 그림에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목숨이 끊어져 바닥에 엎드린채 죽어 있는 한 사람과 피를 흘리며 동료에게 의지하고 있는 흑인, 그리고 이 흑인을 부축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살인자들을 직시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당시 남부의 흑인들이 처해 있던 상황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림자로만 그려진 살인자들의 모습이 오히려 그들의 사악함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검은 그림자들은 어두운 배경 속에서 살인자를 직시하며 서 있는 남자의 흰 셔츠와 밝게 드러난 얼굴과 대비되면서 이들 민권 운동가들이 믿고 있는 정의가 얼마나 올바른 것인지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루비의 그림과 함께 이 그림은 Look 이라는 잡지의 표지로 소개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잡지사에 협박 편지가 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그림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더욱더 생생하고 절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십 페이지의 기사보다도 이 한 장의 그림이 사실을 전달하는데 더 힘을 발휘했다는 것입니다.
록웰은 197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림들을 모두 모아 재단을 만들고 말년에 자신이 살던 메사추세츠주의 스톡브리지(Stockbridge)에 미술관을 세웁니다. 지금도 이곳에 가시면 그 미술관을 관람하실 수 있지요. 그리고 스톡브리지에 오기 전 록웰이 거주했던 버몬트 주의 알링턴(Arlington)에도 미술관이 있습니다. 혹시 록웰의 그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위의 두 곳을 방문해 보시면 좋습니다. 상업적으로 많이 퍼진 그림들이지만 원본을 보시면 예술가로서의 록웰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특히 가을에 스톡브리지의 록웰 미술관을 방문하시면 그림과 함께 뉴잉글랜드의 단풍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버몬트 주의 단풍도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아래의 사진은 스톡브리지의 록웰 미술관입니다. 대형 걸게로 걸린 리벳공 로지의 그림이 보이십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