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iN에서 이런 질문을 받아서 제가 한번 적어 보았습니다. 내용이 관찮아 여기서도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작성자 : 가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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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일본의 스이코 천황(推古, suiko, 재위 6세기말 ~ 7세기초)
일본의 유명한 여왕을 든다면 단연히 조선을 정벌했다(?)고 전해지는 "진구황후(神功皇后)"가 있지만 "임나일본부설"의 존재성까지 인정되지 않는 시점에서 다분히 신화적인 특색이 강하여, 일본의 아스카시대를 연 "스이코 천황"을 "No. 5"로 선정하고 싶네요.
물론 셋쇼(섭정)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shotokutaisi 574∼622 )와 함께 호류지(法隆寺) 건립, 다이카카이신(大化改新)과 율령반포 등의 업적이 있지만 한국의 선덕여왕을 제치고 단연히 등장한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작은 부족국가의 연합체인 일본이 하나의 통일국가로 만든 장본인이지요. 실질적으로 일본역사시대를 연 인물입니다. 그 이전만 하더라도 일본 역사는 신화적인 측면이 강하며, 천황의 역사가 곧 일본의 역사라고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유명한 "진구황후 히미코"만 하더라도 큐슈의 소국 "야마타이국"의 역사이지 일본 전체의 역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임나일본부"가 부정되는 근본 이유가 될 수 있지요. 스이코는 실질적인 일본국의 건국자인 셈입니다. 아마 이 "스이코덴노"가 없었다면 해상강국 일본도 존재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릅니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다양한 종족과 문화, 언어를 가진 다민족 연합체로서의 일본으로 남았을런지 모릅니다.
물론 "니혼쇼키(일본서기)"와 일본 천황의 만세일계 및 일본의 가나문자가 이 시대에 만들어 집니다. 한국의 "단군+세종대왕" 정도의 인물로 보시면 됩니다.
[4위] 영국의 엘리자벧 1세 - 굳이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3위] 베트남의 여왕 징측(徵側)
중국 후한(後漢) 건무(建武) 16년(A.D. 40), "복파장군"으로 알려진 "마원"장군이 남방 교지국(交趾)에 강력한 자매 징측(徵側), 징이(徵貳)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병 1만을 거느리고 3년 동안 고전하여 간신히 진압한 기사가 있습니다. 기세는 대단하였고 "징측"은 왕이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교지국은 "교남(嶠南)"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베트남의 북부지역 정도 됩니다.
그렇게 많은 사료도 없고, 소국의 여자 추장 정도로 볼수 있는데 과연 영국의 엘리자벧 여왕을 누르고 "넘버 3"가 될 수 있을지 좀 의문스럽지만 대강 이런 이유에서 "징측 여왕"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전설적인 명장 마원장군을 곤혹스럽게 하였으며, 베트남의 실질적인 건국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강력한 제국에 맞서 "약소국"의 자존심을 유감없이 발휘한 (기록된) 역사 최초의 인물이며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제국의 왕으로 태어나 한 세상을 풍미하는 건 쉬워도, 그런 제국과 맞서 몸을 불사를 정도의 호기와 투지를 갖기는 어렵습니다.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베트남의 입장에서는 독립과 항쟁이지만 중국(후한)의 입장에서는 "반란"입니다. 헌데 중국 역사에서조차도 그 반란자를 상당히 사납다고 표현할 만큼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반란이 성공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것도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한제국에 맞선다는 것 자체가 짚을 안고 불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과 같지요. 그리고 실패할 경우의 말로는 참혹하기 그지 없죠.
산채로 벌거벗겨져 죽을 때가지 살갖이 도려내어지는 해형(解刑)을 당하던가, 산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형벌, 그리고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 선 보였던 거열형(일명 능지처참형)을 당하게 되며 일족은 완전히 몰살 당합니다. 심지어는 그 근거지 마져 파헤쳐지고 그 이름 글자는 후세에 영원히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각오를 하고 당당히 맞선 여왕이니 과연 엘리자벧 여왕과 어깨를 견줄수 있지 않을까요?
[2위] 영국의 빅토리아여왕( Victoria, Queen)
영국의 엘리자벧 1세를 누르고 여왕 넘버2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말하고 싶네요. '군림(君臨)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주의의 전통을 세운 분으로 아마 일본이나 태국 등 소위 왕을 모시고 있는 국가들의 본이 된 임금입니다. 더구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세운 엘리자벧 임금 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현재에도 53개국의 상징적인 군주로서의 군림하고 있는 영국왕의 전통을 세웠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소위 영국연방[ 英國聯邦 , Commonwealth of Nations ]이라고 하는데, 과거 식민지를 지배했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이들 53개국은 영국여왕을 상징적인 군주로 하여 단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해가 지지 않았으면 무엇합니까? 그것이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가 더 중요한데, 빅토리아 여왕의 그림자는 아직도 현재 전세계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과연 이 보다 더 위대한 여왕이 있을까요?
더구나 이 시대에 현재 가장 보편적인 정치형태인 민주주의가 영국에서 확립된 시기입니다. 아마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황제로 군림하는 분일지도 모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백과사전을 참조하시길>
[1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Ekaterina II) 일명 예카테리나 대제(재위 1762~1796)
러시아의 계몽군주 피요트로대제을 이어 러시아에서는 두 명의 걸출한 여황제를 배출합니다. 물론 선황제인 예카테리나1세 또한 만만치 않은 인물입니다. 이 분(예카테리나 2세)은 현재 북독일 지역인 프로이센에서 귀족의 딸로 출생하여 1745년 표트르3세에 출가하게 됩니다. 1762년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대제(大帝)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 분도 선황제 "피요트르 대제(일명 피터 대제)" 처럼 계몽주의 사상에 감화 받아, 볼테르나 수학자 오일러 등과 같은 인물과 교유하면서 러시아를 황금시대로 이끕니다. 문화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러시아가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을 제공합니다.
18C 두 차례의 러투전쟁(러시아 vs 투르크)을 통해 당시 유럽의 맹주였던 투르크를 몰락시키고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실질적인 맹주가 됩니다. 그리고 동으로는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고 서로는 알래스카를 합병하는 등 러시아 역사상 최대판도를 자랑하게 됩니다. 가히 러시아의 "건륭제"이며 "광개토대왕+세종대왕" 정도의 인물이지요. 13여개국으로 분리독립하기 이전의 구소련의 최대판도에 알래스카까지 합한 영토가 당시 예카테리나 대제의 판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론 만년의 이런 지나친 정복사업(外政)으로 "계몽군주"로서의 이미지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러시아 역사 뿐만 아니라 오늘날 초강대국으로 "러시아"의 이미지를 만든 장본인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이 분은 성균관대 대학원장인 임용순씨가 쓴 '역사를 바꾼 여성 통치자들'(나무와 숲 펴냄)에서 여왕으로서는 영국의 엘리자벧 1세와 함께 "7명의 세계사를 바꾼 여성"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