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박사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놀란다. 우선 그의 외양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의 나이 쉰둘, 그러나 보이기로는 고작 마흔 안팎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몸에 밴 그의 친절과 상대에 대한 섬세한 마음 씀씀이도 그렇다. 웬만한 여자는 그의 스마트한 배려에 혼란을 느끼기 십상이다. 그래서일까? 그에게는 항상 염문설이 따라다닌다.
사실 그는 10년 전, 신성일 엄앵란, 최무룡 김지미 결혼만큼이나 온갖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당시 최고의 스타 이미숙과 결혼을 했다. 그의 ‘플레이보이’ 이미지는 그때 생겨났다.
“헤어숍에서 머리를 커트하는데 스스럼 없으니까 원장이 물어와요. 누구누구하고 사귄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게 사실이냐? 그냥 웃죠. 한때는 H하고 사귄다고 소문이 나돌더니 그녀가 결혼을 하니까 쑥 들어가고, R하고 그런다 그러다가도 그녀의 남자친구가 연예인 K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제 그런 소문이 있었냐는 둣이 사그라들고... 아무튼 그 당시 최고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미녀 스타들과 그렇게 소문이 나요. 절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니 어떻게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필원이 엄마가 좀 뜨니까 반대로 별거설이 도네요”
‘별거설’을 확인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리가 참 별난 부부인 모양’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그는 의외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수긍했다. 요즘 이미숙이 드라마 ‘퀸’에 이어 ‘남의 속도 모르고’ 등에 나오면서 한창 뜨고 있기 때문에 소문이 나돌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미숙의 인기가 상종가를 치면 그들 부부는 어김없이 온갖 소문에 휩싸이곤 한다는 것. 그런 소문에 자기 자신도 가끔은 착각에 빠지기까지 한다고 털어놓으며 그는 반문했다.
“이미숙씨에게 남자가 생겼나, 가끔 생각해보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그 사람 성미로 봐서 진짜 애인이 생겼다면 제게 당당하게 얘기할 겁니다. ‘나, 애인 생겼어요. 우리 이만 헤어져요’라고 말이에요. 그렇다면 내가 남는데… 솔직히 가끔은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러나 그건 보통 남자들이 한두 번쯤 상상해보는 그런 수준이죠”
서로가 자극하고 격려해주며 각자의 영역 간섭하지 않고 산다
사실 그들 부부에게 ‘별거설’이 나돈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번째 별거설은 지난 93년, 둘째 유진이를 낳은 이듬해에 이미숙씨가 1년간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 번졌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갓 돌이 지난 딸을 놔두고 혼자 유학을 가는 아내나 이를 용인하는 남편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려면 왜 결혼했지, 저 부부는 왜 그러나 하고. 그리고 그 다음해에 이미숙이 남편 혼자 독수공방하게 놔두고 아들 딸 데리고 하와이에 3년 동안 유학을 갔을 때는 이미 헤어졌다는 파경설이 파다했다.
왜 이들 홍성호·이미숙 부부에게는 끊임없이 별거설, 파경설이 나도는 것일까? 사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헤아린다면 그들 부부가 사는 방식은 아주 특별하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되 침범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병원을 어떻게 운영하든, 누구를 만나든 그건 성형외과 의사인 남편의 몫이다. 반대로 그의 아내가 무슨 역할을 맡아 어떻게 연기하든, 어떤 남자배우와 함께 공연을 하든 배우인 아내의 몫이다.
가령 이렇다. 그는 요즘 아내 이미숙을 보기도 힘들다. 드라마 녹화하느라 지방에 가 있거나 바빠서 밖에서 자기 일쑤다. 이미숙은 뭐에 한 번 빠지면 끝장을 보는 프로다. 지금은 아내가 연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남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솔직히 그런 아내에게 섭섭하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아이들이나 저나 챙겨주지 않으니까 불편할 때도 많아요. 그렇지만 그게 스타 아녜요?”
그는 이미숙이 자신의 아내이고, 두 아이의 어머니이지만 그 이전에 연기자 이미숙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산다. 그는 ‘연기자 이미숙’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인정한다. 인간적으로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도 감정이 여린 남자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귀가시간이 늦다거나 외박을 한다고 괘념하기보다는 차라리 편리하게 ‘외박’할 수 있도록 아내에게 밴을 사주는 남자다.
이미숙이 작년에 영화 ‘정사’를 찍었을 때 그의 마음은 묘했다. 사람들로부터 ‘이미숙과 이정재의 베드신이 충격적이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가 뭐해 같은 건물에서 치과 개업을 하고 있는 동생을 꼬드겨 함께 영화를 봤다. 이정재를 보는 아내의 눈빛이 예사스럽지가 않았다. 역시 ‘뜨거운 여자 이미숙답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영화가 어떻게 촬영되는지를 웬만큼 안다. 결혼 초 3년간 그는 아내의 촬영현장을 줄곧 따라다닌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 촬영감독, 조명기사 앞에서 전라가 되어 정염의 눈빛을 지을 수 있는 여자가 바로 그의 아내이고, 그는 바로 그런 아내를 사랑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결혼 초에는 촬영현장에 직접 따라다니며 아내의 그런 모습을 눈앞에서 보며 사랑했고, 결혼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멀리서도, 혹은 보지 않고도 이심전심으로 느끼며 사랑한다는 그 차이점뿐이다.
아내의 정사 신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연기자로서의 이미숙을 더욱 사랑한다
남편 홍성호를 보는 이미숙의 마음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그는 성형외과라는 직업상 젊은 여자들을 상대한다. 그 중에는 내로라하는 연예인도 많다. 남편은 유달리 친절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감정으로 발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미숙 역시 수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남편의 ‘스마트한 친절함’을 사랑했고, 그런 남편을 한국에 몇년씩 홀로 남겨두면서도 남편을 신뢰했다.
“드넓은 초원 위에 부부가 있어요. 남편은 목동이고 아내는 양이라고 생각해 봐요. 혹은 그 반대의 역할이거나. 처음에 목동은 고삐를 바짝 잡고 풀을 먹이겠죠. 그러다가 차츰 고삐를 놓고. 언젠가는 목동은 나무 위에 앉아 풀피리를 불고, 양은 혼자서도 언덕 너머에, 개울을 건너 무성한 풀밭을 찾아 가죠. 노련한 목동이 키우는 양일수록 혼자 더 멀리 풀을 뜯으러 갑니다. 그렇게 고삐 없이 방목되는 양이 털도 탐스럽고, 젖도 많이 나오는 법이죠. 초원 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목동이 양을 버리는 것도, 양이 목동을 잊은 것도 아니죠.”
홍성호·이미숙 커플이야말로 서로를 방목시킨 부부다.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최대한 독립적으로 사는 이들 부부의 사는 방식이 바로 오늘의 그들-작년부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연기자 이미숙이나 아직까지 톱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형외과 의사 홍성호를 있게 한 모티브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아내를 일본에 1년, 또 하와이에 3년씩이나 보내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졌던 이미숙이 ‘정사’에 나와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십 줄에 든 주부배우가 애정물의 주연배우로 나와 흥행에 성공한 것은 한국 영화 사상 이미숙이 최초인 셈이다.
“집사람이 아이 둘 낳고 난 후 다시 연기를 시작하려 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많았어요. 지고는 못사는 그 성미에 주연은 고사하고 보잘것없는 조연조차도 잘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몹시 서럽고 분해했죠. 그래서 강부자 선생님에게 의논을 하기도 했던 모양이에요. 냉엄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충고를 하시더래요. 그러나 한다면 하는 집사람 성격에 마뜩지 않았겠죠. 그래서 재충전도 하고 어학공부도 할 겸 도쿄로 보냈습니다.”
일본에 갔다 와서도 여의치가 않았다. 아내의 재기를 위해 그는 당시 ‘리미스’라는 매니지먼트 사무실을 차리기까지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다시 3년간 아내를 하와이로 유학보냈다.
이미숙에게 있어서 남편은 저 멀리서 풀피리를 불며 지켜보는 든든한 목동이다. 목동이 있기에 이미숙은 맹수 걱정하지 않고 풀을 마음껏 뜯어먹었다. 그리고 연기와 감성의 살이 토실토실 쪘고 그런 그녀를 보고 팬들은 열광했다.
그 역시 아내 이미숙 때문에 얻은 게 많다. 그가 오십이 넘은 아직까지 삼십대 못지않은 자유로운 감성과 다이내믹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내 덕이다. 성형외과 수술은 의외로 젊은 감성이 중요하다. 따라서 매너리즘에 빠지면 끝장이다. 유행도 꿰뚫고 있어야 하고, 신세대의 사고방식과도 동화되어야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오감을 끊임없이 긴장시키고 있어야 한다. 아내 이미숙은 그의 감성을, 젊음을 자극하고 강요한다.
그의 하루하루는 타이트하다.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면 수영장으로 직행한다. 요즘 그는 수영강습을 받고 있다. 수술 스케줄에 여유가 있으면 아침 골프도 친다. 청담동 병원에는 대략 아홉시 반에서 열시 정도에 도착한다. 같은 건물에 동생이 치과를 함께 하고 있어 친구가 거의 없는 편인 그의 말벗이 되어준다. 그는 간호사들하고도 스스럼이 없다. 직원들, 특히 간호사들은 원장인 그를 무척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을 시키든지 상냥하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는 ‘부탁 좀 할까?’ ‘해주면 고맙겠어’ ‘미안해’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게 그의 매력이다.
건물 3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동생네 병원 직원들까지 합쳐 모두 열세명이 함께 점심을 먹을 때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우스갯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 요즘 아침마다 어푸~어푸~(수영할 때 호흡법) 해서 그런지 밥맛이 꿀맛이야. 조금 있으면 내 몸매 역삼각형으로 근사해지지 않겠어?”
그가 요즘 수영하는 걸 동생에게 자랑 했다.
“형, 난 배에 왕(王)자가 생겨날 지경이라구! 수영해가지고 왕자가 생겨나진 않잖수?”
“넌 뭘 모르는구나. 배에 왕자 생긴 남자는 천해 봬. 그래도 형처럼 배에 약간 살이 있는 게 섹시하지 않나? 수영복 입고 둘이 근사하게 한번 걸어가봐, 누가 눈길을 더 끄는지 말야. 그건 그렇고 언제 스키장 개장 하지? 갑자기 스키 타고 싶네.”
간호사들이 두 형제의 천진스런(?) 대화에 키득거린다. 그는 쉰둘이지만 서른일곱 살 동생보다 오히려 말하는 게 젊고 장난스럽다. 이렇게 싱싱하게 대화하고, 운동하며 젊게 사는 것도 상당부분 아내 이미숙의 덕이다.
나도 몇년 후에는 성형외과 그만두고 원래의 꿈 쫓아 영화 만들고 싶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도 아내의 덕을 크게 보고 있는 것은 어릴 적의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키워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한 3년 정도 후에 본업인 성형외과를 그만둘 생각이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다. 근사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원래 꿈이다.
“요즘에는 다들 젊어서 입봉하데요. 그러나 나이든 초짜 감독이 있는 영화판, 보기 좋지 않나요?”
그가 영화배우인 아내를 이해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밑바닥에는 이같은 어릴 적 꿈이 있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 꿈을 이뤄내기 위해 그는 지금도 꾸준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병원 일이 끝나면 대개 집으로 직행한다. 그는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한다. 그래서 보통의 남자들처럼 저녁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썩하게 놀 기회가 많지 않다. 종종 그가 회장으로 있는 서울 팝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회원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는 정도 외에는 가급적 저녁 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노래를 좋아하는 정치인, 의사, 변호사, 법조인 등 소위 명사들의 모임인 서명회의 회원은 50여 명으로 일 년에 몇 차례 발표회도 갖는다. 그는 ‘카루소’ 같은 곡을 즐겨 부른다.
집에 빨리 귀가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영화에 관한 책이나 비디오 등을 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제 열한 살로 초등학교 4학년인 필원이와 일곱 살로 1학년인 딸 유진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종종 딸 유진이와 함께 놀다가 딸의 침대에서 같이 잠이 드는 수도 있다. 아이들은 아빠를 끔찍하게 따른다. 일요일에는 아들딸 데리고 부부가 함께 골프를 치러 가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아내 이미숙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적어진 게 조금은 아쉽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부대끼고, 흠잡고, 탓하며 사는 평범한 부부생활이 종종 그립다. 그러나 그런 인지상정에 그렇게 한 번 빠져들면 감성과 열정이 녹이 슨다는 것을 그들 부부는 알고 있다. 결혼한 지 이제 13년, 그러나 아직도 그들 부부의 관계는 바짝 조여진 바이올린 현처럼 탱탱하고, 변화무쌍한 소리가 난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열기와 막 이혼서류를 접수시키고 나오는 부부의 냉기가 혼재되어 흐른다.
그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 딸이 셋 있다. 그 딸들도 아빠를 몹시 따른다. 올 봄 막내딸이 마지막으로 결혼했다. 다 전도가 유망한 사위들에게 출가를 시켰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큰딸은 벌써 아이를 낳았다. 그는 외손자를 둔 할아버지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가는 세월이 느껴졌다. 방배동 자신의 집 뒷동산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밟으며 그는 꿈꾼다. 언젠가, 어느 유명한 영화제에서 자신은 휠체어에 앉아 감독상을 받고, 아내는 백발의 머리를 한 채로 주연여우상을 받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