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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리벌마라톤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톱10(남국종)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산악 마라톤- 키나발루 참가기 TM 제21회 마운트 키나발루 국제 마라톤대회는 말레이시아에서 2007년 8월 25~26일 열렸다. ***대회 개요*** 동남아시아의 최고봉 키나발루 산을 끼고 있는 키나발루 공원은 2000년 12월에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키나발루 국제 산악 마라톤은 그 보다 역사가 깊어 올 해로 21회 째를 맞고 있습니다. 역시 올해도 정상을 향한 흥미진진한 경주가 될 것입니다. 이 연례 등반 경주는 스페인, 안도라, 영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한국, 일본, 독일, 싱가폴, 필리핀 등 전 세계 산 정상을 달리는 러너들에게 굉장히 매력 있는 행사입니다. 한국에서는 심재덕(거제 촌놈)이 단독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인은 보통 이틀이 소요된다는 동남아시아의 최고봉(해발 4095.2M)의 정복을 산악 마라토너들은 불과 3시간도 안 걸려 완주 합니다. 이 대회에서는 고지대 스포츠의 7대 시리즈를 주관하는 산악스포츠 협회(FSA)주관 고산지대 경주인 스카이 러닝 세계대회 챔피언쉽의 진정한 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올 해에도 TM(말레이시아 통신회사)은 이번 산악 마라톤의 성공을 위하여 충분한 금액을 공식후원사로서 지원을 하였다. 이 산악마라톤 등반대회는 1987년 사바(관할 주, 말레이시아의 주는 우리나라의 도 급으로 보면 됨)파크의 프로젝트로 시작 되었는데 이는 산악 구조팀의 부상당한 등반가들을 신속하게 하산시키기 위한 기술을 독려하기 위해서 개최된 행사로 진행되다가 1995년 사바 관청에서 이 행사의 주최를 넘겨받았습니다. 여성 마라토너와 베테랑(40세 이상)남자 경주는 8월 25일(토요일)에 개최되며 제한시간은 6시간 30분이다. 남자 OPEN 전문 경주는 26일에 동시 07시에 출발을 합니다. 대회 진행은 완주 시간을 예상하여 일찍 출발을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오후가 되면 안개와 비로인해 사고의 위험이 따르므로 4시간의 제한시간을 정해놓았다(정상까지 2시간 30분이요, 하산길이 1시간30분이다) . 참가 인원은 키나발루산 국립공원법에 의거, 입산자는 일일 150명으로 한정되어져 있으므로 총 300명이며 대회일 동안에는 일반인의 입산은 금지됩니다. 미네랄워터의 급수대는 코스 12개소(왕복24개소)에 설치되어 있다. 의료 스테이션은 16개소(왕복32개소)가 설치되어 있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대회 운영은 짜임새 있게 하고 있었다. 러너의 체크포인트는 정상반환점을 포함한 8개소(총 15개소)가 설치되어 있고 경사도가 40도에 달하는 3500M 부근 및 정상 인근의 산세가 험한 지형에서는 총 50명의 구조대원이 각 지점에 대기, 위급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1. 왜 가야만 했는가!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레이스라는 매력이 그곳을 동경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이런 대회가 있다는 것을 5년 전쯤 본 대회를 두 번이나 다녀온 진천의 최 명석 고수님으로부터 들었고, “여행춘추” 여행사에서 여행상품으로 지난해 내 놓은 것을 확인함으로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산 사나이의 열정이 불타올랐기 때문이었다. 대회 홈 페이지를 열어보고 영어는 잘 알지 못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바위산의 매력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또 다른 매력덩어리로 나의 체질에 잘 맞을 거라는 기대와 지난해 대회에 참가했던 선수들의 복장과 현지의 날씨 및 대회 분위기를 눈으로 읽고 그에 어울리는 산악코스 연습은 계속해온 상태여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멋진 한판 승부가 될 거라는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이 말씀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하는 열정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나에게 이 산은 얼마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가? 세상에는 아름답고 험한 레이스가 얼마나 많은지? 다 가보고 싶고 그런 대회에서 나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도 해 보고 싶었고 다음 더 험한 대회를 찾아간다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키나발루를 가야한다는 심정을 비로소 올 해 소원을 풀게 되었지만 준비과정과 참가 1주일 전까지 피 말리는 구애(현지 가이드 섭외등) 작전은 해외원정의 어려움을 또 한번 느꼈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사 모든 일정을 감당하게 되어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만 되뇌었다. 2. 준비 과정 2007년 해외 원정을 상반기에 벌써 세 번(동경마라톤,사쿠라미찌 네이쳐런, WS 100마일)이나 다녀온 상태였고 가고픈 대회는 많지만 가을엔 꼭 한 대회만 더 가자고 사랑하는 아내와 약속을 했다. 말이 약속이지 사실은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랬다. 마음은 그리스 스파르타슬론도 가고 싶었지만 같은 날에 대회가 있는 줄로 착각을 했다. 왜냐하면 두 대회모두 지금껏 9월 마지막 주에 열렸고 올 해에도 같은 날 대회가 열릴 것으로 알고 그리스 스파르타슬론은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키나발루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키나발루 산악 마라톤 대회는 어찌된 일인지 2007년도에는 8월 25~26일에 열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올 해 5월 13일 계족산 선양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여행춘추 정동창 사장님을 만났다. 정 사장님도 본 대회를 꼭 참가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대회 참가회원 모집이 되지 않으면 단 둘이서라도 참가하자고 약속을 하셨지만 사업상 바쁘셔서 동행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난감한 상태가 되었다. 이유는 그곳까지 가는 길과 언어의 장벽은 아직 넘지 못 한 안타까운 장애물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각 사람에게 많은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셨음에 감사하고 혼자서도 자유로이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건만 대회를 다녀온 후 영어 공부의 마음이 퇴색되는 건 아직도 절실하지 않다는 증거이겠지. 지금까지 해외 원정길에 함께 동행 했던 분들의 많은 도움이 절실히 그리워지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다음으로 미룰 수만은 없었다. 이제는 어떻게든 혼자 루트를 개척하고 찾아가는 길만 남았다. 일단 대회 신청은 방글라데시에 있는 여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대회 디렉터에게 E-Mail을 보내 대회 참가할 수 있느냐? 의사타진을 하였고(물론 흔쾌한 허락을 받았다) 홈 페이지에 나와 있는 참가 신청 양식을 다운받아 한글로 번역하여 메일로 받고 한글로 작성하여 그것을 동생에게 보냈다. 동생은 그것을 다시 영문으로 작성해서 대회 신청을 하게 되었고 몇 일이 지난 후 대회 참가가 접수 되었다는 연락이 대회 본부로부터 왔다. 참가비는 현지 대회장에서 지불하는 것으로 하되 미화로 35불이었다 - 외국인은 현지인들보다 할인해 줘 좀 저렴한 비용을 받는다. 이제는 어떻게든 가이드가 필요했다. 혼자 가게 될 경우 막내 동생이 동행해 주기로 했는데 공교롭게도 막내 동생마저 방글라데시 언니에게로 2개월 여행을 가게 되어 귀국 예약 날이 나의 귀국일정 다음 날이라서 말레이시아로 왔다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같이 동행하게 된다면 동생의 일정을 바꿔야하고 항공료도 백만원 이상 추가 지불한다기에 서로 힘들게 하지 말고 어찌되었든 혼자 다녀오는 방법 밖에 없었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아쉬워 할 것도 없다. 나의 가는 길에 주님이 함께하시면 어려움이 없으리라는 기도의 제목을 두고 백방으로 뛰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형 여행사를 통하면 쉽게 문제를 풀고 고민하지 않았을 것인데 다녀온 후 생각해 보니 남에게 많이 의지하려고 했던 그런 모습이 비춰진다. 그래도 그곳에 다녀온 최명석 고수님께 모든 부탁을 드리기로 했다. (대회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이나 그곳 상황을 너무 잘 알려주셨고 잘 다녀올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형님(최명석)께 현지 가이드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지만 형님도 속 시원하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항공권은 인터넷 예약으로 결제 시한을 넘겨 자동 소멸된 상태로 출국일자 6일 전까지 답보 상태에 있었다. 지금까지 연습 해 놓은 것이 아까워 키나발루를 못가면 어찌하나 맘은 많이도 멍든 상태에 있었고 올 해 못가면 내년에 다시 가면 된다,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러면 대회 디렉터에게 한국인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나쁜 인상을 심어줘 다음 누군가가 그곳을 가려할 때 어려움이 있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고민도 들었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을 용납하기가 싫었다. 점점 희망은 멀어지는데 꼭 가야 한다는 의지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명석형님이 백방으로 뛰어서 어렵게 가이드를 구했다. 현지어와 영어를 할 수 있는 분이고 비용도 그리 많지 않은 (3일간 차량과 숙식을 포함하여) 60만원에 연결이 되었다. 사실 여럿이 함께 간다면 가이드 비용을 나눌 수 있는데 혼자 부담을 해야 하니 뜀박질 여행치곤 제법 비쌌지만 별다른 묘책이 없어서 모두 감수해야 했다. 이제 속전속결로 모든 준비를 해야 한다. 항공권도 다시 예약을 했고(그 사이 비용은 5만원이 더 올랐다.) 현지 가이드와 전화를 통해 동행하는 길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이드에게 나의 생명과 전부를 맡긴 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저 모든 것 주님이 인도 하시는 대로 순종 하겠나이다,하고 말레이시아 입성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3. 훈련과정 평소 단련된 몸 상태는 내 능력의 정상의 위치에 항상 있다. 그러나 나의 대회 전략은 맞춤 훈련을 통해서 대회에 임하는 ‘자신감을 먼저 갖는다’는 신조는 변하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았다면 참가하지 않는 것이 더 났다. 호랑이가 한 마리의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 하듯이 나 역시 후회 없는 한판 승부를 위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훈련은 100% 소화시켜 냈다. 봄에는 풀코스 대회참가로 몸은 스피드가 붙어 있었고, 주말이면 산악 장거리를 통해서 산에서의 적응을 위한 끊임없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코스는 산악 21KM이지만 출발 지점과 정상에 이르기까지 고지대여서 특히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르는 연습 또한 만족할 만큼 소화해 냈다. 레이스 작전은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리고 그다음 속보로 걸으면서 다시 회복을 하면 또다시 달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다. 거제도 옥녀봉을 오르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 그중에 가장 가파른 길은 이진암으로 오르는 길이고 경사도가 심한 곳은 40도를 넘는 가파른 곳이다. 그곳은 암반과 자갈길 나무계단으로 현지 사정에 잘 어울리는 연습코스였다. 아래 지점에서 정상까지 쉬지 않고 뛰어오르면 23분이 걸렸다. 속도감은 덜 하지만 쉬지 않고 오른다는 것이 신기하기만하다. 이정도로 달려 올라갈 수 있다면 본 무대에서도 통하리라는 기대를 갖기는 충분했다. 그러나 한가지 고지대 연습은 우리나라에서 할 수가 없다. 설악산이나 한라산이 겨우 2천고지도 안되는데 그것이 약점이다. 고산지대에서 나의 몸은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는 없지만 잘 될 것이라 생각하고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굵은 땀방울을 많이도 흘렸다.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어렵게 가는 길 후회 없는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한다며 출국 전까지 소유할 수 있는 모든 무기(연습)는 다 준비를 했다. 마지막 1주일 남겨놓고 체중 감량을 통해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여 효율적인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드는데 여름휴가 때 보다 5kg이나 줄였다. 단순하게 살 빼는 방법은 적게 먹고 많은 운동을 하면 되는데 이 기간 동안 운동량은 줄이는 대신 빠르고 짧게 연습하며 음식으로 조절을 했다. 즐겨먹던 간식을 먹지 않고 저녁은 과일로 대신했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먹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음식을 먹는 타이밍을 통해서 체력의 유지 및 보강을 잘 할 수 있다면 많이 먹지 않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필요한 양만큼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출국준비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나? 필요한 것은 모두 빠짐없이 챙겨야하는데 회사의 일과 마무리 연습으로 마음의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달리는 거리가 짧은 하프 코스이기에 휴대 용품은 계산도 단순하고 많은 양이 아니기에 그나마 다행 이였다. 비자는 따로 발급받을 일이 없어서 여권만 있으면 되었다. 지난번 미국 때와 같이 공항 도착 후 포도 쥬스가 쏟아지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액체류는 단단히 지퍼팩에 넣고 단단히 밀봉을 했다. 계절은 8월이지만 날씨가 추울 것을 대비해 타이즈와 점퍼도 챙겼고 음식이 맞지 않을까싶어 마른 빵과 냉동시켜 놓은 떡으로 식사를 대체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선물은 이번에도 한국의 이미지에 잘 맞는 전통 부채와 한복 입은 인형을 대회 디렉터 및 친분이 있는 선수, 혹시 은혜를 입은 분들에게 전해주기위해 준비를 했다. 어느 대회를 참가하든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5. 출국 8월 23일 목요일부터 27일 월요일까지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코타키나발루 마라톤 여행은 시작되었다. 주 5일제 근무로 대회참가의 부담은 많이 덜었지만 회사의 일하는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눈치는 보이지만 어떻든 3일 동안 년차 휴가를 냈다. 출국당일 아침은 트랙에서 간단하게 30분 동안 조깅하며 마지막 점검을 했다. 어젯밤 자정까지 짐을 꾸리며 늦게 잠이 들어 아침은 피곤했지만 대회일까지 휴식을 취한다면 오히려 지금의 피곤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떠나는 마음은 홀가분했다. 비행기는 오후 6시 20분에 이륙을 하므로 시간적 여유가 많아 거제도에서 당일 버스로 서울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갔다. 막바지 휴가철이라 공항은 북새통을 이뤘지만 항공권 발권과 짐을 붙이고 대기실에서 모처럼 여유를 갖으며 키나발루의 새로운 역사를 쓰자며 일정에 대한 생각만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남으로 남으로 날아갔다. 어느새 망망대해 바다만 보이더니 날이 어두워졌다. 4시간 40분을 날아 현지시간으로 10시 30분에 말레이시아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린 시차를 두고 있으며 남쪽나라 특유의 끈적한 느낌을 공항에서부터 받았다. 비행기 앞좌석에 앉아서 일찍 입국 수속을 마쳤는데 화물이 늦게나오는 바람에 30분을 지체하고 11시가 넘어서 출구를 나올 수 있었다. 이제 가이드를 만나서 동행해야 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났다. 출국장 입구에 “심재덕“이라고 쓴 이름을 들고 있는 가이드를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가운지, 이제 안심이다. 이곳에서의 일정은 그분에게 다 맡기고 나는 시간 약속만 잘 지키면 된다. 처음부터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며 현지인(봉고 차량운전-한국 가이드는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슴) 가이드와 셋이서 내가 묶을 호텔로 이동을 한다. 10분 쯤 달려간 곳은 공항에서 조금 벗어난 “베버리 호텔”이였다. 10층 규모의 호화스럽지 않은 호텔은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었으며 822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먼저 부피가 큰 보따리를 가이드에게 선물로 드리고 나니 짐이 홀가분해 졌다. 한국에서 출국 전에 가이드와의 통화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더니 라면과 구이 김이 제일 그립다고 했다. 객실은 방음이 잘 되지 않았다. 이 호텔은 두 개의 방을 가족끼리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객실과 객실 벽 사이에 출입문이 있어 서로 왕래가 가능했다. 오늘 이웃을 잘못 만나 옆방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재잘거리는지 쉬 잠이 들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의 첫날밤을 그렇게 시끄러운 가운데서 보냈다. 6. 대회장을 향하여 (8월 24일 금요일) 코타키나발루의 아침은 흐림이었다. 커튼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니 멀리 바닷가 쪽은 잘 정돈된 조경과 아늑한 리조트가 보이고 휴양지의 평화로움과 낭만적인 풍경은 말레이시아의 관광자원은 천혜의 조건을 갖춘 모습으로 비춰진 반면 호텔의 바로 아래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양철지붕의 판자촌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빈민촌과 호텔을 가로지르는 강줄기를 따라 오염된 물이 흐르고 개발이 한참인 공사장의 모습으로 어수선했지만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아름다운 해변과 연결될 희망적인 모습을 그리려볼 수 있었다. 07시 아침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빵으로 해결하였고, 이곳을 찾은 한국 관광객들과 신혼여행 온 새내기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10시 현지 한국인 가이드와 로비에서 미팅으로 하루의 일정을 시작했다. 어제 만난 봉고차를 타고 키나발루 국립공원으로 출발하며 이곳의 기후, 지형, 역사.... 알고 싶은 질문들을 쏱아 내면 하나하나 짧은 시간에 배워가며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러 유명한 이슬람 사원과 TV에서만 보던 수상가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고 조금씩 말레이시아를 적응하며 잘 정돈된 해안가의 왕복 4차로를 시원하게 달려갔다. 이렇게 깨끗한 도로는 사바주 청사를 지나 얼마가지 않아 끝이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길은 꼬불꼬불 엉망이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차가 많이 흔들렸다. 바쁜 것도 없는데 2차선도로는 갓길도 없고 수해로 파헤쳐진 곳이 많아 곳곳이 보수공사 중이고 반대편 차량을 분간할 수 없는 커브 길에서도 추월하는 운전습관은 그들의 전형적인 기질인 것 같았다. 여러 불편한 사정도 여행의 맛이라면 오래기억 잊혀 지지 않겠지만 이곳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비를 몇 번이나 만나고 피해왔다. 보편적으로 오후가 되면 매일 비가 내린다는데,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아침부터 안개와 보슬비가 오락가락 한다. 얼마를 더 달리면 그곳에는 거짓말처럼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고산지대를 올라가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데 차량들은 전조등도 켜지 않고 씽씽 잘도 달렸다. 그런데도 사고가 없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운전 습관이 있을까? 산이 많고 길도 험한데 그곳에서 터널은 한곳도 없었다. 우리 같으면 수십 군데의 터널을 뚫고 길을 내 놨을 텐데......꼬박 2시간을 달려 키나발루 국립공원 입구로 들어왔다. 일단 오늘의 일정은 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숙소를 잡아 짐을 풀어놓고 대회 출발장소까지 답사만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쯤 되었는데도 안개 때문에 키나발루 산을 볼 수가 없었다. 궁금했다.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까? 지금 지나온 길이 1200고지가 넘는 고산지대여서 4095M 되는 정상은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했다. 공원입구를 지나 15분을 더 달려 이틀을 묶을 “ZEN 가든“을 찾았다. 객실이 130개 되는 규모와 큰 식당이 있는 가든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펜션이라고 보면 되겠고 그날은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국립공원 내 대회전용 숙소를 잡지 못한 것은 주말이 끼여 있고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해서 변방으로 밀려온 것이엇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낮선 이국의 맛을 누리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점심을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먹었는데 내 입맛에 너무 짜다. 고기가 소금덩어리에 사람들은 엄청 매운 베트남 소스를 곁들어 먹는다. 그래도 야채와 과일은 좋았다. 숙소의 입구는 사방으로 나무와 꽃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바닥은 나무마루판으로 출입문 틈새로 도마뱀도 지나가는데 이들은 이것을 좋은 벌레라고 한다. (다른 나쁜 벌레들을 잡아먹는다고, 일부러 키우기도 한다고!) 창문을 열고 안개에 쌓인 북쪽을 보니 흰구름이 수시로 넘나드는데 키나발루 산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봉우리 하나가 아닌 두루뭉실하게 넓은 산으로 보였다. 그것도 잠시 안개는 태고의 신비를 곧 감춰버렸다. 짐을 풀어놓고 간단한 복장으로 키나발루 국립공원 답사를 갔다. 공원 매표소에서 가이드가 내일 산악마라톤 대회 참가자 답사왔다고하니 입장료도 내지 않고 그냥 통과를 했다.먼저 주로 상황이 어떻지 출발 지점인 “팀포혼 게이트”로 향했다. 출발 지점과 골인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마지막 스퍼트는 결사적인 스퍼트가 있어야한다. 어쩌면 중요한 승부처는 오르막이 아니라 마지막 도로 3.5KM에서 결정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골인 지점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길이고 굽이도는 길은 코너 잘라먹기에 유용한 상태였다. 골인 지점이 1563M이고 출발 지점이 1866M이기에 3.5KM사이에 표고차는 303M는 경사도가 심한편이다. 아스팔트이기에 탄력만 붙으면 위험하지만 평지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길이다. 이제 차량으로는 더 이상 진행 할 수 없는 “팀포혼 게이트” 입구 앞에 다가왔다. 입산 안내판에 대략 산에 대한 설명과 페인트 글씨로 지난해 대회 입상자의 이름과 기록을 게시해 놓고 있었다. 일년 내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후 늦은 시간에는 입산을 시켜주지 않는다.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중간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내려오기 때문에 입구에는 철문을 지키는 문지기는 대장이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주로를 확인하기위해 슬라브 건물 전망대에서 멀리 보려고 했지만 안개로 인해 100M앞도 분간하지 못했다. 그래도 바닥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려고 가이드가 문지기에게 얘기를 하니 잠시 폭포 있는 곳 까지만 다녀오라며 철문을 열어주었다. 처음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되어있는 내리막이다. 비를 머금은 나무계단은 매우 미끄럽고, 장난이 아니다. 흙과 자갈길도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대회날도 이정도의 상태라면 심각한 정도의 난이도라 느끼게 되었지만 자연의 섭리 앞에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는가? 조금아래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나기에 더 내려가 보았더니 정말 숲속에 폭포가 숨어서 물을 무한정 토해내고 있었다. 이 높은 곳에 폭포라니! 폭포의 이슬비가 날려 징검다리와 암석에는 이끼가 많이 끼었고 원시림 사이로 물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여지없이 오후 내내 비가 간간히 내리고 안개 자욱한 길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내일모래 정상을 향한 LOW'S PEAK(4095M)는 끝내 보여주질 않는다. 골인지점인 대회장으로(HEADQUARTERS) 내려와 대회참가 체크를 했다. 대회 디렉터인 검은 두봉(남자가 머리에 쓰는 검은 수건을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봉이라 함)을 쓴 턱수염이 덥수룩한 Mr.Baiwant 분이 나에게 출신이 어디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반갑다고 악수를 청한다. 인터넷으로 대회신청 외에 현장 접수는 본인 인정사항과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연고자 인적사항 및 연락처를 기재하고 참가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끝냈다. 대회 용품으로는 기념 티셔츠와 안내책자, 이름이 표기된 대회 명찰, 목걸이를 주었다. 오후 5시 숙소에 돌아와 낮잠을 잤다. 피곤했던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이 깊이 들어 몸은 가뿐해 졌다. 저녁은 6시쯤 끝냈고 먼발치의 키나발루 자태를 볼 수 있었다. -그놈의 날씨 알다가도 모를 이이였다. 사진으로만 보던 꼭대기의 암석들이 훤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 암석 덩어리 어딘가로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으렸다!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 꿈을 꾸자는 다짐을 하며, 6시 30분쯤 되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두어 시간은 빨리 어두워진다. 7. 대회 전날(8월25토요일)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났으니 늦잠이다 늦잠. 내일 경기를 위해서 오늘 늦잠은 보약이다. 잠의 24주기를 적용하면, 그래 내게 주어지는 상황대로 감사하며 최선을 다 해 보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아침 조깅을 나갔다. 어느 시골의 한적한 마을 그 모습 그대로 이곳을 벗어나면 비포장 도로에 두메산골의 화전마을 연상할 만큼 깍아 지른 비탈길에 밭을 일궈 농작물을 재배하는 그런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다. 아침 공기는 시원했다. 이곳은 아열대 기후인 도심이나 해안가와는 달리 습도가 많지 않고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가을 같았다. 숙소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웅장한 키나발루 덩어리가 깨끗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오전은 보편적으로 구름이 지나가더라도 산의 형태를 볼 수 있으며 오전에 만들어낸 주변의 습한 기후의 영향으로 오후는 어김없이 비가 온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졌다. 아침, 키나발루 바위덩어리 산 중턱에서 군데군데 허연 물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장마에 봇물 터지 듯 쏟아 내는 물줄기는 멀리서 봐도 신기하다. 장관이다. 가까이서는 어떤 모양으로 토해낼지 사뭇 궁금해진다.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이름 모를 산에서 쏱아 지는 폭포는 몇 곳을 볼 수 있었다. 아직 개발을 하지 않은 폭포라 하던데....가까이서보는 제주의 폭포보다 높은 물줄기는 탐스런 보물로 보였다) 비포장 도로를 20분정도 달렸다. 몸은 무겁고 호흡도 한국에서 연습할 때보다 거칠었다. 한국에서의 생활할 때보다 기압의 차이로 몸의 혈압이나 맥박의 수가 더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내일 4천고지에서 몸은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내내 궁금증은 한층 더 높아졌다. 새로운 세계에 몸을 던져본다는 것이 항상 새롭고 즐거운 일이다. 아침을 7시에 식빵에 쨈과 버터를 발라 한 조각을 먹었고 냉동시켜온 찰밥을 데워 먹으며 탄수화물 보충에 중점을 두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연습은 많이 하지 않으므로 불어날 체중을 염려하여 많이 먹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할 만큼 체력유지에 나름대로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남자 베테랑부(만 40세이상)와 여자 OPEN(전체)부 대회가 있는 날이다. 어제 오후 내내 내린 비로 쉽지 않은 레이스를 펼칠 것으로 예상한다. 다행히 아침은 언제 비가 내렸냐며 화창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숙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정상을 향하는 길이 가이드의 설명으로 알 수 있을 만큼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산세는 높이에 걸맞게 험하다는 정도는 익히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고 구름과 안개가 어떻게 이동을 하는지 멀리서 보면 볼수록 신기한 모양새다. 오늘은 첫날 경기에 결과만 지켜보고 대회장의 분위기만 파악하면 되기에 서두르지 않고 9시 30분에 대회장을 찾았다. 어제는 출발 지점을 지나 팀포혼게이트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매표소 입구에 주차를 해놓고 걸어 들어가야 한다. 10분쯤 들어가면서 대회장 방송은 시끄럽게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층 발판위로 방송 카메라는 골인지점을 향해 있었고 많은 관람객들이 골인 아치 주변과 주로를 향해 양쪽으로 늘어서 응원을 한다. 말레이시아 전통 복장을 한 남/여 악대가 연주를 하며 국기와 깃발을 흔들며 좁은 대회장 통로는 각색의 인파들로 꽉 차 있었다. 지난해 우승자의 기록보다 시간이 오버되었는데 첫 번째 러너가 나타나질 않는다. 그래 어제 많은 비로인해 주로가 미끄러워 레이스가 힘들다는 판단은 그대로 인듯하다. 드디어 베테랑 남자부 우승자가 들어온다. 지난해 우승자인 말레이시아 SARUN BIN SADI 선수로 3시간 24분 03초로 지난해보다 15분정도 늦은 기록이다. 여자부 1위는 **********3시간??분 ?초로 지난해보다 30분정도 늦은 기록으로 첫날의 우승자는 가려졌다. 1위를 한 남자 선수는 허벅지에 부상이 있는지 의무실에서 연신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대며 의무진이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한다. 3시간 50분을 넘기면서 주자들이 줄줄이 골인을 하고 한 선수는 넘어져 무릎에서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부상부위를 소독하자 따가운지 인상을 찡그린다. 누가 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질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 최선을 다하다보니 넘어질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큰 부상으로 선수의 생명을 접게 되는 러너도 있다하니 그 무엇이 좋다 해도 안전이 제일인 것이다. 여자부 1,2위는 외국인이하고 3위는 말레이시아선수가 골인하는데 대단한 환호성이다. 이곳에서도 팔은 안으로 굽어 자국민을 응원하는 모습은 어딜 가도 똑같은 모양이다. 오늘 나의 관찰 대상은 대회 유니폼과 신발이다. 우승자는 골인했을 때 땀을 흘리며 러닝 유니폼만 입었다. 정상부근은 많이 추울 텐데 유니폼만 입어도 될지? 나에게는 중요한 포인트다. 그 외의 러너들도 대부분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