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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간의 존엄성
2학년 야간 배시창 에발도
1.서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 27).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는 하나의 實在이다. 즉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그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은 단순한 존재도 아니고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이며 볼 수 있는 피조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可視的 세계와 불가시적 하느님 사이에 만물을 다스리지만 언제 나 초월적 하느님 아래 서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성서에 바탕을 두고 볼 때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있어서 극치를 이룬다. 먼저 창세기 2.3장을 보면 인간은 피조물 가운데서 맨 마지막으로 창조 되었는데 사람에 앞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다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 졌다. 즉 사람이 창조되기 위하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과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여건이 다 마련되어야 했다.
다른 피조물은 한 마디 말로 이루어졌으나 인간만은 하느님 결의에 의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 하느님의 결의가 있었지만 인간의 존재를 크게 돋보이게 하거니와 더 의미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습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할 때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우리 안에 하느님이 現存한 다는 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은 사람을 버릴 수 있어도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을 지닌 사람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면 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는지 생각해 보자.
우선 사람은 그 존재의 원리로 영혼을 갖고 있다. 이 영혼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이 영혼은 우리의 정신적(靈的) 행위의 원천으로 우리로 하여금 알고 사랑하는 등 다른 동물이 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한다. 우리의 지식과 사랑은 한이 없고 심지어는 조물주인 하느님까지도 알고 사랑할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러한 행위를 선택할 자유마저 주어져 있다. 인간은 무한한 지식의 소유자와 영원한 사랑인 하느님의 증거자이지만 이 증거자의 역할을 부인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자유가 부여되었기에 사람은 자기 행동 하나하나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랑을 하고 知的, 意志的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구분을 지어주는 요소이다.
하느님은 자기의 혼백을 피조물인 우리에게 박아준 것이다. 사람이 생육과 번성의 축복은 다른 동물들과 공통으로 받았지만 다른 동물이 받지 못한 생명의 숨결은 사람을 다른 모든 생명체와 구별할 수 있는 축복받은 특전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는 피조물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과 직접 대화를 한다. 인간은 땅을 정복하고 모든 동물을 다스리라는 통치권을 위탁받아 이 권한을 실제로 행사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창세기에 나타나는 인간상의 한 면을 보았다. 즉 사람은 창조사업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갖고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에 그 뿌리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시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들어 놓고 매우 만족하시어 기뻐하셨기에 이 소중한 생명의 객체는 하느님소유이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다. 더욱이 하느님 소유이기에 하느님을 사랑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생명이 하느님의 분신이기에 주어진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책임도 있다. 자신의 소유라고 생명을 함부로 대하거나 남용해서도 아니 되며 자신의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남의 생명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이다. 인간들 서로가 공감대를 형성하여 함께 생각하고 서로 사랑하고 지켜주면서 살아가라는 것으로 설명될 수가 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는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내에서 지켜야 할 규범까지 예비해 주셨다. 인간은 어떠한 행동이나 행위를 할 때 창조질서와 구원질서에 의하여 자신의 완성을 실현시켜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하시었다.
2,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생명은 일회적인 것, 내면적인 것, 영혼이 깃들어있는 것, 역동적인 것 그리고 체험에 의해서만 이해 될 수 있는 것 등 다면적이고 초 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사고나 수학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사고만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정서적인 느낌을 통해 간접적으로 겨우 이해 할 수 있을 뿐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생명에 관해 많은 정의를 내렸지만 새로운 것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생명의 의미는 明證的이며 본질적 직관에 의해 이해될 뿐이다. 생명은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은 본질은 신비에 가득차 있다. 그 누구도 생명의 신비를 다 파헤칠 수 없다. 인격이나 정신활동이 개념이 정의가 될 수 없듯이 생명은 개념정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생명을 의미 있고 가치가 충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생명에 손상을 입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을 바람직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정상적인 사람은 생명의 가치를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생명을 존귀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생명의 존귀함을 이해하고 생명을 어떻게 고양 시킬 것인가 물어야 할 것이다. 생명을 존귀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3.생명에 따른 규약
인간을 제외한 모든 미물들은 하느님께서 제시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일생을 살다 죽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은 미물들과 같지 않다는 인간 본성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주신 것만으로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인간이 살아 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또 자유의지를 주시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까지 제시 하셨다. 이것이 인간이 지켜야 할 하느님의 법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 안에서 하느님의 자유 의사결정을 통하여 많은 가능성들로부터 하나의 확고한 존재의 질서와 그로인한 도덕적 의무의 질서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들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게 하시고 옳고 그름을 양심이라는 주관적인 의향에 따라 판단하게 하시어 양심을 판단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반성하고 회개하게 하신다. 그리고 양심 속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고려되어진 것이다.
4.생명의 가치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사고하고 자신을 조정하고 자신의 교유한 삶을 스스로 규정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체이다. 이러한 능력이 인간의 존엄성을 결정짓는다. 인간존재와 인간생명의 존엄성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자유로이 자기 자신의 일을 결정 할 수 있고 다른 누구도 그 사람을 마음대로 처리 할 수 없는데 있다. 그것은 인간이 향유 할 수 있는 자유와 자아 설정이라는 테두리 내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존재의 근거로 고찰되어질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주위의 강압에 의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이 자신의 삶을 진실로 충만 시켜주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추구 할 때에만 가능하다. 인간생명 가치의 근거는 하느님과 영생에로의 부르심에 관한 신앙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따라서 자신이 하느님께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으며 영생에로의 부르심을 믿는다. 생명의 가치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근원적으로 설정되어진다.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가치를 평가하느냐 아니면 인간에 대한 더 심오한 정의를 믿느냐 하는 것부터 결정해야한다.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물질적으로 단정하고 성취능력과 삶을 즐기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인간의 가치는 하잘 것 없는 것이 된다.
5. 생명 가치의 문제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주신 귀중한 생명이다. 십계명에서도 살인을 금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이나 남의 생명이나 다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정당방위로 살해되어지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러나 전통 그리스도교에서나 현세에서 살인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생명 경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명과 생명에 관한 문제(전쟁터) 또는 자유나 신앙과 같이 생명보다 높은 가치들이 직접 위협을 받을 경우에는 살인이 허용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살인, 낙태 안락사 등이 있다. 낙태, 안락사 등에 관한 무책임한 생명의 가치가 위협 받는 사례도 있다. 낙태는 그리스도 전통아래서 금지되어온 것이다.
사회와 교회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 그것은 교회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있지마는 무지보다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고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삶의 편이성 때문에 낙태를 한다.
이러한 갈등에서는 외적인 힘으로 행동을 저지 할 수 없으며 어떤 행위가 외부에 의해 금지되어있고 처벌되어지기 때문에 낙태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더 큰 사회적인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이런 문제점들의 해결은 어렵고 미묘한 것이다. 교회에서 적극적이고 끈질긴 방법으로 교화시켜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작금에도 처벌하는 법은 있으나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생명의 가치는 잘못된 행위로 처벌하는 위협이 아니라 이러한 행위의 부당성을 간파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를 단념 할 능력을 갖도록 도와줌으로 보호되어져야 할 것이다. 낙태와 같이 생명을 거스르는 행위의 유혹을 줄이고 갈등의 상황을 만들기보다 긍정적인 방법들이 동원되어져야 한다. 인간 생명의 적극적인 보호와 유지를 위한 노력은 형법보다도 교회의 본질을 계승하려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6.생명의 시작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은 인간 생명의 시작문제를 매우 분명하게 가르친다. 곧 낙태와 유아 살해는 중대한 죄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은 임신의 순간부터 각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 했다. 생명시작은 분할, 착상, 수정 후 40-70일 사이에 거의 완성되는 뇌피질의 발달, 출생, 지적인 행위 시작 그리고 유전자형의 시작 순서로 시작된다.
생명은 시간의 경과에 따른 형상으로 나타난다. 생명체는 자신의 특성을 어느 순간 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흐름 속에 나타난다. 이때 생명체는 동시에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인간들도 태아의 형상으로 시작해서 출산하여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단계를 거친다. 이 모든 과정들은 인간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실재에 속한다. 따라서 인간의 시작은 인간 생명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수태의 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7.태아 진단의 중요한 목적
인간생명의 시작은 수태로 시작된다. 태아진단의 목적은 태중에 수태한 생명에게 손상이 있을 경우 태아를 한 생명으로 간주하여 그 생명을 살리는데 목적이 있다. 이미 태아에게 영혼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두 번째 전제조건은 태아 생명 역시 생존의 권리를 가진다는 윤리적 원칙에서 출발해야한다. 현대의 윤리신학자들 소견으로 예외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태아결손으로 인하여 임산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경우에만 임신 중절 수술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아의 살해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거슬리는 행위가 아니라 바로 인간생명의 존중에서 산모의 생명을 구하려는 시도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8.죄악시 하는 낙태
성서에는 낙태에 대한 판단이나 입장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고대 희랍에서도 유기에 의한 유아 살해와 함께 낙태가 널리 행해진 관행이었다. 낙태란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아직 혼자서 생존 할 능력이 없는 태아를 의도적으로 모체의 자궁 밖으로 축출하는 행위, 태아를 직접 살해하는 행위를 말하고
두 번째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병적유산도 낙태행위에 속한다. 두 가지 중에 죄악시하는 것은 첫 번째에 국한된다. 오늘날 낙태에 관해 세 가지 관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낙태가 추구 할 일은 아니지만 윤리의 문제로 이해한다거나 죄로 인정하지 않을 만큼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 번째 견해는 낙태를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세 번째는 입장은 의학적인 이유에서다. 교회는 초기부터 낙태를 분명하게 거부 해왔으며 오늘날에도 의학적인 이유를 제외한 모든 낙태를 죄악시하고 있다.
9.인간의 존엄성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느님의 신분이 존엄한 것처럼 그분의 모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생명 또한 존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다. 이 생명은 단 일회성의 것으로 같은 생명으로 다시 태어 날 수가 없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생명의 존귀함을 인식해야 한다.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우리는 하느님의 법을 지키며 공감대를 형성하여 같이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지켜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 참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그분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일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만인이 理性을 갖춘 영혼을 가지고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어 같은 本性과 같은 원천을 가졌으며, 그리스도께 구원되고 같은 목적에로 함께 불리었으므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 平等은 더욱 명백히 긍정되어야 한다. 물론 육체적 능력이 다르고 지성적 내지 윤리적 역량이 다르므로 모든 사람이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기본권에 관한 모든 차별 대우는 그것이 사회적 차별이든지, 문화적 차별이든지, 혹은 성별, 인종, 피부색, 지위, 언어, 종교 등에 기인한 차별이든지, 그것은 모두 다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극복되어야하고 제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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