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홍성의 코오롱 공단 유치는 한편의 드라마.
96년 10월 10일 홍주문화회관. 1천여명의 홍성군민이 웅성거리며 이완구의원과 코오롱 그룹 관계자들이 단상에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뜨거운 박수속에 등단한 이완구 의원의 목소리는 흥분돼 있었다.
"드디어 홍성에 코오롱 공단을 유치 했습니다. 이제 홍성경제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코오롱 공단 유치는 확정 됐던 것이다.
코오롱 그룹의 이웅렬 회장은 이완구의원과는 막역한 관계다. 대기업 회장과 막역한 관게이다 보니 국회의원에 출마하면 지역주민들로부터 취직부터 시작해서 각종 사업하는데 부탁이 많이 들어오나 유일하게 코오롱에는 어떤 청탁도 하지 않는다는게 철칙이었다.
이런뜻을 이해하는데는 몇 개월의 시간이 필요 했다. 이완구 의원이 당선되고 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누군가를 끊임없이 만난다는 것을 얼핏 눈치는 채고 있었다. 96년 4월 11일 총선에서 당선된 이완구 의원은 이웅렬 회장을 만나 홍성에 코오롱 공장을 짓자고 때론 떼를 쓰고 때론 설득하길 30여차례 끝에 그렇게도 바라던 승낙을 받아 냈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코오롱 그룹 임원들의 반대는 심했다고 한다. 이렇게 발표한 코오롱 공단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될줄 알았다, 곳곳에 커다란 산과 강이란 암초가 가로막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고 생각 할수도 없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행정 개혁을 하네 하면서 ONE-STOP 서비스를 통해 민원인들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게 사회적 분위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참으로 어린아이 같은 생각임을 깨닫는데는 불과 몇일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홍성에 코오롱 공단을 유치 했다는 소식이 다음날 청양에 소문이 쫙 버진 것,
청양신문의 복영수 차장이 전화를 걸어와 격앙된 목소리로 "청양에 한 발짜국도 들여 놓지 말라는 것"이다. 청양에도 대기업을 유치한다고 하고 홍성에 코오롱 공단을 가져 왔으니 청양에 대기업을 유치하지 않고는 절대로 오지도 말라는 것,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 의원님과 전화 통화해야 할 것 같아 바꾸어 주었다. 복영수 차장은 "지금 인쇄기 앞에서 전화 하는 것이니 청양에 대기업을 유치한다고 대답하면 이완구 의원 청양에 오지 말라는 기사를 빼고 그렇지 않으면 인쇄해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자 이완구 의원은 "한달후에 답하겠다, 한달간 기사를 유보해 주고 만족한 답이 안되면 기사를 써도 좋다"고 말했던 것.
이렇게 해서 청양에도 코오롱 공단을 유치하게 됐는데 경제성을 가장 많이 계산하는 기업주가 사실 청양에 공장을 지을 경우 인력을 확보 할수 있을런지 물류비용은 또 어떤지 각종 계산을 하고 결정해야 하나 이완구 의원의 설득에 또 넘어 갔던 것이다.
97년 2월 22일 코오롱과 공단 입주 협약서를 정식 체결했다. 그리고 97년 6월 토지매입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광천 신진리에 공장을 짓기로 하고 토지감정 평가를 의뢰 했다. 그후 군에서는 세차례에 걸쳐 38명의 토지주에 토지매각 동의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17명은 매각 거부 의사를 밝혔고 매각 동의를 한 어떤 주민은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렀다.
대기업이 온다니 이 참에 한목 잡아보겠다는 심사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자칫 토지 매입 때문에 상당히 지체될지 모를 2차 위기 였다. 이때 광천 벽계리에 있는 공군부대가 철수하자 공군부대 부지를 매입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대전 계룡대를 방문해 부지 문제를 협의해보니 각종 절차를 밟아 처리하면 아무리 정상적이라 하더라도 2년이 필요 했다.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부지선정 문제로 난항을 겪던 코오롱공단은 현재의 은하면 장척리로 잠정 결정하고 97년 8월 1일 홍성군 각 실과에서 타당성 조사를 하고 그해 9월 7일 충남도에 현지 실사 요청을 거쳐 97년 10월 18일 공장 건축에 문제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지 선정에만 1년이란 세월이 필요 했던 것이다.
이런 내막을 알리 없는 주민들은 “이완구는 거짓말 쟁이다” “이완구 의원이 사기친 것이다” “코오롱 공단 물건너 갔다” “언제 코오롱이 들어오냐”며 불만 섞인 목소리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 했다. 다급하기 시작 했다. 장척지구에 공장을 짓는데 행정적인 절차가 있어서 그렇지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1977년 온양의 김모씨와 은하면의 박명희씨가 공동으로 장척지구 일대 450만평에 대해 운모광석에 대한 광업권을 설정해 놓은 것이 문제 였다. 다행히 은하의 박명희씨는 우리 고향에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협조해야 한다면서 흔쾌히 광업권 사용 승낙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문제는 온양의 김모씨 였다. 먼저 군청 담당직원들이 찾아가 사정 설명을 하고 사용승낙을 해달라고 여러차례 간청을 들였으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이완구 의원이 온양으로 찾아가 몇시간 동안 온갖 성의를 보였으면서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허락 할 수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이러다가는 다른 지구로 부지를 바꾸어야 할지도 모를 위기 였다. 그러면 다시 일년이란 허송 세월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김모씨를 설득 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연락해도 만나주질 않았다. 이렇게 하길 6개월 광천에 있는 다방에서 김모씨를 어렵게 다시 만났다. 두시간 동안 설득에 설득을 하는 시간은 20년 같이 긴시간이었던 것 같다. 결론은 그냥 승낙할 순 없고 2천만원을 달라는 것. 그것도 한시간내에 계약금으로 5백만원을 가져 오란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코오롱에 전화하여 우선 승낙을 받는데 30분이 걸렸다, 남은 시간내에 5백을 구해야 하는데 다행히도 홍성신문의 윤두영 전무님이 5백만원을 가지고 뛰어와 주어 다방에서 코오롱을 대신해 계약서를 쓸수 있었다. 눈물이 벌컥 나올 것 같았다.
이것이 98년 5월 11일이다. 토지 감정을 거쳐 본격적인 부지 매입 작업이 들어 갔다. 예상 했던 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상의 선산이라 팔수 없다는 사람부터 가격이 맞지 않아 도저히 팔수 없다는 사람 첩첩 산중이었다.
군에만 맞겨 놓을 일이 아님을 판단한 이완구 의원이 토지주들의 집으로 직접 방문해 설득해도 요지부동이다. 당시 여름이라서 개고기를 사주고 맥주를 사주고 하루종일 설득하다보니 저녁때쯤에서 모두가 술취해 있기까지 했다.
이렇듯 험란한 터널을 통과하고서 이젠 본격적인 행정적인 절차가 남았다. 토지 형질변경부터 시작해 농업진흥지역 변경등 크고 작은 행정절차가 왜 이리도 많은지 ONE-STOP 서비스는 모두가 공염불이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충남도로부터 은하농공단지 지정승인을 받은 것이 98년 12월 28일이었다. 그리고 홍성군에서 군보에 농공단지 지정고시를 한 것이 99년 1월 15일. 은하농공단지개발 실시계획 승인 및 고시가 99년 6월 25일. 그후 농공단지 부지 조성을 담당할 공사 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 공고, 입찰을 거쳐 천안의 조흥공영이 시공업자로 결정됐다. 이제 착공식이 남아 있었다.
순조롭게 진행될줄 알았던 착공식은 군수가 걸림돌이었다. 지방신문 6개 신문사에 6백만원씩 광고를 내야 하니 3천6백만원을 가져오지 않으면 할수 없다는 것. 난감한 일이었다.
코오롱이 홍성군과 협약서를 체결은 했지만 분양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하농공단지 실제 소유주는 홍성군으로서 코오롱측에서 광고비를 지출할 이유가 전혀 없는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다. 이완구 의원은 군수를 설득했다. 예전에는 어떤 협의사항이 있으면 군수가 의원 사무실로 찾아오는 것이 예의고 상식으로 인식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홍성군수는 한번도 의원사무실로 찾아 오지 않았고 협의사항이 있을때마다 이완구 의원이 군수실을 방문 했다. 착공식 협의때도 그랬다. 그러나 군수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리를 피하니 답답한 줄다리기가 시작 된 것. 일요일 새벽 6시 30분에 군수 관사를 전격적으로 방문해 설득 했지만 해결 되지 않았다.
일을 할때는 국회의원 체면을 따지지 않고 무섭게 추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아무리 일도 중요하지만 일요일 새벽에 군수관사 현관문을 힘없이 열고 나오는 의원님의 뒷모습은 참으로 처량해 보였다.
다음날 의원님은 미국에 있는 아들 문제로 잠시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국제전화로 매일같이 진행상황을 체크 했다. 실무자들끼리 광고 문제를 조율하길 수십차례 끝에 흔쾌하지는 않지만 묵인 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나서야 마침내 99년 9월8일 착공식을 할수 있었다. 코오롱 공단 유치 발표부터 부지 조성을 위한 착공식까지만 최선을 다해 달려 왔건만 무려 2년 9개월 정도가 걸린 것이다.
오전에 홍성에서 착공식을 마치고 오후에는 청양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청양은 홍성보다는 일하기가 한결 쉬웠던 것이다. 착공식을 끝내고 저녁에 허허벌판뿐인 은하농공단지에 소주 한병을 사들고 갔다. 벌컼벌컥 소주를 들이키고 하늘을 보니 온통 세상은 어두웠다. 갑자기 주체할 시간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울 수밖에 없었다. 착공식까지 순탄하게 진행된 것이 한번도 없었다. 상대 후보측에서는 코오롱은 이완구 의원의 사기다. 홍성군은 빚만 지게 되는 것이다. 어디 되는지 두고봐라는등 온갖 방해 공작이 극을 달했다. 그때마다 의원님은 속상해서 그런지 화풀이를 나에게 다 했다. 때론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숱검벙이 가슴이 다 돼버린 의원님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나 아니면 누구에게 화풀이를 다 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견뎌내온 시간이 아니었던가.
사실 의원님을 모시면서 낚시를 배우게 됐다. 너무 혼나고 힘들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모두 때려 치우자"고 무작정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길가에서 팔고 있는 낚시대를 하나 사서 안성에 있는 저수지에서 좌대를 얻어 3일을 지냈다. 이때 낚시를 배운 것이다. 3일 만에 나타난 나를 보고 의원님은 "잘 쉬었느냐 이제 다시 열심히 해야지" 하는 한마디에 눈시울을 붉힐수 밖에 없었다.
(2009.4.8 시골촌놈)
다음편을 ...
첫댓글 세상에 거져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훌륭하신 지사님과 몸을 던져 보필한 보좌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고생들 하셨네요.
어렵고 힘들고 가슴에 멍이 들어도 꿋꿋이 지켜주세요^^
모든일이 쉬운일은 없죠...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뚝심있게 묵묵히 전진하는 모습에 존경합니다. 1+1=2가 아니라 하나죠!!!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 지사님..
"불패의 영웅"에게도 피눈물 나는 시절이 있었다 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존경합니다! 지사님!
힘든 모든 과정을 이겨 내시는분들의 미래는 언제나 밝고 기쁨이 보장되지요. 지사님의 훌륭하심과 보좌하시는 분들의 노고로 좋은 일들이 가득할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지내요, 그때 군수는 뉘였어요,복수가 아닌고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군수가 자격미달이네요. 힘든 역경을 격으니 지금이 있지요, 얼마전 호수가에 집을지으려는데 허가만 1년이 걸렸는데 공단은 말할수 없겠지요. 고생했습니다.
저는 지사님께서 청양.홍성 국회의원하실때,지사님이 지역발전을 위한 활동량과 성과,열정,그리고 국회의원 비서관님들 수고 많으셨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말 대단하신 지사님 이십니다.
" 잘 쉬었느냐 이제 다시 열심히 해야지 " 하는 한마디에 눈시울을 붉힐 수
밖에 없었다.
감동~감동~감동~감동~감동~감동~감동~감동~감동~감동~감동
OK님도 시골촌놈님도 두분 다 멋지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