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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가 도래하였습니다. 여름을 맞이한 나뭇잎들은 크기나 무성함에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어린 새싹이 아닙니다. 십이운성의 관대(冠帶)를 연상시키듯 어엿한 그 모습에 장정의 늠름한 기상이 솟구쳐 오릅니다. 어리고 연한 잎들은 이제 성숙함을 더하여 완연한 모습을 갖추었고 여름날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 열매를 위해 영양분을 공급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소만이 되었습니다. 여름의 달아오른 화기(火氣)가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5월의 햇살은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나무는 이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적합한 시기를 맞은 듯 합니다. 성냥머리만큼 내밀었던 작은 방울들이 점차 커지더니 앞다투어 노오란 감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뿌리에서 올라온 수분과 잎에서 공급하는 영양분이 더해져 혼신의 힘과 정성을 기울여 피워낸 아름다운 꽃입니다. 한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꽃들은 점차 요염함마저 갖추어 벌나비를 유혹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작은 꽃이지만 생명의 잉태를 위한 도화살을 한껏 뿜어내는 모습이 세상에 유혹하지 못할 벌나비는 없을 듯 합니다. 이제 성하(盛夏)의 절기인 망종을 맞이하였습니다. 여름의 열기가 더욱 짙어진 한 낮에 생명을 잉태하느라 피로에 지친 나무에서는 나른함마저 느껴집니다. 도화살 풍기던 노오란 꽃들은 잉태의 배아를 나무에게 맡긴 채 어느 새 땅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제 튼실한 열매를 키워낼 임무는 온전히 나무에게 맡겨졌습니다. 절기는 어느 새 일년 중 양기가 극에 이르는 하지입니다.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를 온 몸으로 감내하며 나무는 마지막 한 줌의 양기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극도로 무성한 가지를 한 껏 늘어뜨려 성장을 위한 마지막 진통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극심한 산고를 겪은 나무에 드디어 작고 깜찍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이 작은 감나무의 대를 이어 종족을 보존해 나갈 2세들입니다. 생명의 신비로움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여름의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는 소서입니다. 사람도 뭇 짐승들도 극에 이른 여름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그늘을 찾아드는 시기가 이 무렵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더워도 그늘을 찾아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 자신이 그늘을 만들어 다른 생명들에게 내어주어야 합니다. 찌는 듯한 더위를 온 몸으로 받으며 감내해야 하는 것은 순전히 나무의 몫입니다. 타는 듯 이글거리는 한 여름 태양의 열기를 견디며 나무는 성숙이라는 위대함을 완성해 냅니다.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결과는 탐스러운 열매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법 모양을 갖춘 이름하여 작은 풋감들이 나뭇잎 아래 숨어 점점 자라나고 있습니다. 드디어 어찌 할 수 없는 더위가 마지막 기성을 부리는 대서가 되었습니다. 날씨는 찌다 못해 아예 타는 듯 하여 뜨겁기가 그지 없습니다. 여름 내내 더위에 시달려 온 나무는 타는 듯한 마지막 더위를 버티어 낼 의지조차 고갈되어 그저 본능에 의지할 뿐 힘겨워 보입니다. 마치 굶주린 어머니가 칭얼거리는 아이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젖을 짜내듯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이 더위에 지친 나무에서 느껴집니다. 어미의 고갈된 젖꼭지를 물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대던 열매들은 이제 충분히 공급받은 영양으로 인해 나무에서 떨어질 채비를 해야 합니다. 이제 나의 작은 감나무와 그의 2세들은 한여름의 열기를 벗어나 찬란한 영광의 결실을 맺을 가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때 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가 '릴케의 가을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감나무의 다음 이야기는 입추절에서 계속됩니다. |
첫댓글 제법 나뭇잎이 무성하고 탐스런운 열매도 주렁주렁 맺었습니다~^^
화기를 품은 여름답게 한껏 모양을 낸 무성함이 돋보입니다.
감나무 열매의 成長과 成熟의 과정을 사진으로 잘 담아내신 것 같습니다. 甲木 열매의 성장과 함께 주변 乙木들의 生命力도 아울러 느낄 수 있습니다. 찌는 듯한 열기를 피해서 그럼 立秋節로 가볼까요.^^
댓글에서 마치 함께 관찰하는 느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