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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귀농, 왜 그리고 어떻게?
1970년대에 무작정 상경이라는 말이 유행되었던 적이 있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오는 현상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귀농이라는 말이 점점 더 들려오고 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시골로 돌아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부와 사회단체에서도 그들을 돕고 보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경쟁과 공해가 심한 도시의 피곤한 삶을 떠나서 한적한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의 귀농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그 필요성이 어떤 이유로 대두하고 있는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복음은 인생의 문제들을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성경이 주는 교훈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 땅에 있는 가정은 하늘에 있는 가정의 표상이요, 하늘을 위하여 준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주거지를 정할 때에는 가정이 이 땅에서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은 구원받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도시의 삶은 구원이 아니라 멸망으로, 행복이 아니라 불행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우리 삶의 단순, 순결, 건강, 진정한 풍요로움을 얻기 위해서 가정이 어디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도시를 떠나야 하는 이유
도시들은 점점 혼란과 폭력과 범죄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이 세상 끝날까지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귀농은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징조로서 지진과 홍수 그리고 온역과 같은 재난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온갖 재난과 죄의 잔이 가득 채워지고 있는 사악한 도시에 언제까지 우리의 가정을 둘 것인가? 말세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한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 귀농의 목적은 부모와 자녀를 죄로 오염시키고 부도덕한 영향이 지배하지 못하는 곳에서 살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이 푸른 들, 수목과 언덕과 개울, 맑은 하늘과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 등으로 이루어진 어떤 농촌 지역으로 옮겨 간다면, 그곳에서 천국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귀농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을 의지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가게 될 것이며, 천연계에 새겨진 하나님의 창조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귀농하여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실제적인 경험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천연계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마음과 영혼과 몸은 생명을 주시는 치유의 능력에 반응하게 될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가정들이 신체적, 정신적, 또는 영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가정이 있을까? 믿음, 소망, 사랑, 행복은 들과 언덕과 나무들이 있는 한적한 곳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도시를 떠나서 시골에서 사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생각하고 기도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도시의 죄악이 계속해서 그 잔을 채워가고 있는 이 시대에 도시에 남아 있기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돈과 명예와 자녀의 세속적인 성공 때문이 아닌가? 나와 가족들의 구원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스도인의 귀농은 점점 그 중요성이 크게 인식될 것이다.
도시의 생활은 허위적이요 인공적이다. 돈을 벌고자 하는 열망, 흥분과 쾌락을 구하는 소용돌이, 자랑과 사치와 낭비에 대한 욕구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의 진정한 목적에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도시의 삶은 온갖 악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한다. 인간의 업적과 교만을 드러내는 빌딩숲, 보고 듣는 거의 모든 것이 죄 된 생각과 충동을 일으키는 곳에 거주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업적과 위대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가라.
아름답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천연계 가운데서 마음의 안식을 찾아라. 도시의 먼지와 연기로 흐려지지 않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생기를 주는 하늘의 공기를 마시라. 도시 생활의 오락과 방탕에서 벗어나 자연계 속에서 자녀의 친구가 되어 주고,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가라.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인생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생활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오셨다. 지혜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위하여 택해 주신 삶의 조건들은 어떤 것이었는가?
갈릴리 언덕의 한적한 가정, 자신의 힘으로 정직하게 노동함으로 살아가는 가정, 단순한 생활,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매일의 노력, 자아 희생, 절약, 인내,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봉사, 어머니 곁에서 성경을 펼쳐서 공부하는 시간, 푸른 산골짜기의 고요한 새벽과 황혼, 천연계의 신비함,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연구, 하나님과의 신령적 교제,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었다.
귀농과 자녀 교육
멸망에 이를 만큼 무르익은 도시의 유혹에 더는 자녀를 버려두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도시에 투자하고 재산을 늘려나가는 대신에 줄이고 정리하여 조용한 광야로 떠나야 할 때이다. 부모들이여,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하늘까지 데려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있는가? 안일, 안락, 편리함을 자녀의 영혼의 가치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를 무시하고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자들로부터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 혼잡한 도시 대신에 그대들의 자녀를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고 유용한 일을 교육하고 훈련할 수 있는 한적한 장소를 찾아라. 도시에 사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공격하는 가장 교활하고 위험한 유혹 중의 하나는 쾌락을 사랑하는 일이다.
휴일은 많고, 스포츠 경기와 연예오락은 수많은 사람을 사로잡고 청소년들로 하여금 인생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 많은 돈이 오락을 위하여 함부로 사용된다. 점점 도시를 떠나야 할 이유는 많아지고 있다. 부모가 세속적 만족과 돈을 위해서 대도시의 한복판에 살고 있으면서 자녀를 죄와 유혹으로부터 구원해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보호해 주실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가족이 단순성과 순결성에 대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는 시골에 거주지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 귀농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간이 갈수록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더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귀농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도시를 떠날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사전에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도시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온 힘을 다하여 유혹과 싸우며 선교 활동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분별력을 주셔서 당신의 방법과 시간표에 따라서 시골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귀농 지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산을 끼고 있는 곳이 좋다. 사람이 거할 목적으로 짓는 모든 건물은 지대가 높고 배수가 잘되는 땅에 세우는 것이 좋다.
주택을 건축할 때는 환기가 잘 되고 충분히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집에 있는 모든 방에 공기가 잘 유통되고 햇빛이 충분히 들어 올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웃의 지붕이 안 보일 정도의 독립성을 유지해야 신앙과 취향이 다른 이웃과 불필요한 투쟁을 피하고, 그리스도인 자녀 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적절하면서도 지혜로운 경작을 통해 땅은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보물을 낳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식탁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광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가지려고 귀농하여 땅을 사서 과목과 채소를 재배하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녀는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 신앙에 친숙하게 될 것이다.
귀농을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골과 산으로 가는 것을 커다란 손실로 생각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과 홀로 있을 수 있고, 그분의 뜻과 길을 배울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는 것으로 생각하라. 영성 회복은 우리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지금은 구원과 영성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결정을 해야 할 때이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것을 손실이라고 생각지 마라. 거기에는 얻으려고 팔을 벌리는 자들을 위한 풍성한 축복들이 기다리고 있다.
창조주의 솜씨인 자연의 광경들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솜씨를 세밀히 연구함으로, 그들은 그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 고된 일, 적은 임금, 어려운 경제 사정, 가끔 찾아오는 역경과 궁핍 등이 귀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악에 대한 유혹, 환락과 범죄, 불행과 불결 등이 있는 도시를 떠나 시골의 정적과 평안과 순결을 찾아가는 일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 될 것인가!
그리스도인 귀농과 예언
예언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이 귀농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장차 물건을 사고파는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진리의 말씀을 유의해야 할 때이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계 13:15~18)
요즘 세계적인 환경 재앙과 경제의 파국을 보면서 엄숙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이 경제적으로 무너지자, 유럽은 그것보다 훨씬 심각한 파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구 세계 전체가 경제적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 이처럼 적나라하게 이루어졌던 적이 과거에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성경 예언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심하게 흔들리는 이런 상황에서 환경 재앙이 겹치게 되면 경제는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말세에 경제의 몰락과 환경 재앙이 함께 일어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특별히 세계 경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매우 짧은 시간, 신속하게)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고들(Merchants-경제)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계 18:10~11)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경제인)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계 18:15-19)
세상 종말에 바벨론이 무너질 때에 그것의 한 축을 이루고 있던 상고들, 즉 경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짐승의 표 환란은 경제적인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내려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온갖 재난과 재앙이 세상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됨으로써 경제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이러한 세상 형편은 온 세상을 짐승의 표를 강요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몰고 가게 된다. 짐승의 표 환란이 일어나면 재난과 재앙은 심해질 것이며, 성경에 기록된 7재앙이 현실화될 것이다. 그리고 7재앙의 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가서 땅을 경작하며 직접 소산물을 재배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짐승의 환란의 때에 피난처가 될 것이다.
맺음말
마지막 사건들과 예수님의 재림은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임하는 것처럼 임하게 될 것이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할 때,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되다가 강해지면서 고통의 주기 또한 점점 더 짧아진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되돌아볼 때 우리는 해산하는 고통처럼 재난의 주기가 매우 짧아졌고 규모가 커져 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거의 해마다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재난이 지구를 덮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질 재난과 고통의 규모를 생각할 때마다 두려움을 숨길 수 없다. 지구 역사의 끝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아의 가족이 하나님께서 주신 정확한 설계도대로 방주를 만드는 일에 그들의 삶을 바쳤고 결국 그 방주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 마지막 시대에 품성 변화, 자녀교육, 건강을 위해서, 도시의 죄악을 피하고자 그리고 짐승의 표 환란과 7재앙 때에 임할 재난을 피하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방주는 귀농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매우 권장할만한 하나님의 지혜이다.
노아, 짐승의 표, 품성, 자녀교육, 건강, 7재앙, 지혜, 시골, 귀농
[출처] 그리스도인 귀농, 왜 그리고 어떻게? (킹스 메신저) |작성자 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