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가는 스타크루즈호 갑판에 섰다.
바람의 명소답게 칼바람이 얼굴을 감싼다.
이 바람이 하멜의 배를 침몰시켰고 그들은 바다를 건너 강진 병영성으로 끌려갔다. 풍운아 김정희는 제주에서 세찬 바람과 굶주림 속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이 아련한 바다를 보며 육지를 향했을 것이다. 바다는 야속할 정도로 예쁜 코발트 빛이다. 광해군은 칼바람 속에 복수를 꿈꾸며 제주로 들어왔건만 결국 섬에서 위리안치를 당하며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름다운 제주를 구석구석 둘러봤으면 그리 원통하지 않았을 것을.... 노구의 송시열도 보길도를 거쳐 유배대열에 합류했고, 면암 최익현선생도 고난의 길을 기꺼이 감수했다.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는 아들을 추자도에 버리고 평생 노비로 살면서 신앙을 이어갔고 김영갑작가는 이런 바람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중산간 오름을 휘저으며 혼을 뿌려댔다.
유배자에게는 쓰라림을 맛 본 비운의 길이지만 제주사람들에게는 선진 문물을 습득할 실크로드였다. 상자갑같은 비행기에 앉으면 이 문화의 길을 전혀 볼 수 없다. 배를 타야 한다. 조금씩 멀어져 가는 제주의 윤곽을 끌어안으며 이별을 해야 유배길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단 말이다.
이젠 쉴 때도 되었지만 칼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옷깃 구석구석을 파고 들어도 난 요동도 하지 않고 돌하루방처럼 굳어 한라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상은 운무에 가려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살포시 쌓인 눈의 흔적은 볼 수 있다. 경칩이 지났건만 산 꼭데기는 아직도 한겨울이었다.
육지에서 온 유배객은 바다 먼발치에서 한라산을 접하게 된다. 하긴 제주 어디를 가든 한라산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다. 바다 위에 솟아 있어 그 웅장함에 육지인을 그만 압도당하고 그저 자연에 순응하게 된다. 바람을 통해 자신의 속을 해부하고 숭고한 한라산을 통해 겸손을 배우게 된다. 선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바위를 두부처럼 잘라 놓은 성벽보다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돌담길이 바람을 더 잘 이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분노는 용서로, 집착은 무욕으로 바뀐다. 이런 고통이 예술로 숭화된 것이 바로 김정의의 추사체이자 이중섭의 그림이고 김영갑의 용눈이 오름 사진이다.
중년의 신사가 갑판 난간을 붙들고 대화를 나눈다.
"우리 여기에 서서 제주도 더 보고 가자."
"추운데 들어가. 몇일 동안 제주도 실컷 봤으면서 뭘 또 볼 것이 있다고"
"제주를 보면 아쉬움이 남지 않니?"
"난 안도감이 들어. 난 바람 때문에 제주 못 살 것 같아."
아쉬움과 안도감. 이 두 감정을 모두 맛보는 자가 진정 제주를 아는 사람이다. 두 개를 모두 맛보았다면 섬을 빠져 나간 유배객 쯤 되겠다. 아쉬움만 들었다면 광해군처럼 이 먼 곳에서 쓸쓸히 죽어갔던 사람이다. 바람이 주는 양면성. 한라산 정상이 너무 추워 실눈을 뜨고 백록담을 바라 봤을 때는 바람이 너무 미웠다. 김영갑 작가는 그런 바람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바람을 사진속에 담을 수 있었다.
바람을 맞은지 1시간이 지났다. 오히려 더 신이 나서 입을 크게 벌려 내 심장까지 제주의 바람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제주도 이별에 대한 내 마지막 예의라고 보면 된다. 그런 내 심정을 알았는지 바다는 근사한 일몰을 선사한다. 바다에 딱 점하나 찍어 놓은 관탈섬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유배객들이 관복을 벗고 임금을 향해 절을 올리는 기준점에서 난 한라산에게 넙쭉 절을 한다.
실은 나역시 몸과 마음이 피폐한 상태였다. 눈물 한 방울 보일 정도로 위로 받았고 새 삶을 꾸려나가는데 큰 힘을 얻었다. 어머니같은 조언을 들었고 아버지 같은 호통도 감사를 느낀다.
지난 일주일동안 난 제주의 속살을 파고 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가난한 마을 돌감길에서 해안에서 해녀 할머니와 정담도 나누고 5일장에 들어가 민초들의 애환을 몸소 체험하고자 했다. 왜 육지 사람들이 올레길을 걸을까, 함께 동참하면서 내 자신을 들춰내기도 했다. 서귀포 5일장에 만난 보리빵 파는 아가씨를 다시 제주 5일장에서 만났다. "잠바가 바뀌었네요." 그 소소한 것을 기억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생우유빵 하나 더 건내주었을 때의 정은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다. "할머니 건강하셔야 제가 이 맛난 할망 빙떡을 먹지요." 그 말에 내 손을 잡아주었던 할망의 손길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사진 찍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붕어빵 할아버지의 무뚝뚝함은 이제사 이해하게 된다.
바쁜 점심시간이 찾아갔던 아름가든 사장님이 죽 한 그릇 먹고 가라고 내민 죽사발에 제주의 정에서 빠져 나온 것이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았고 주인장 없는 무인카페에서 원두커피향을 음미하며 손님에게 베풀어준 신뢰를 마시고 또 마셨다.
불과 15분 거리의 모슬포 병원에 간다고 1박 2일을 투자한 가파도 할아방의 보리 예찬도 아직도 귓가에 머문다. 제주의 서민들의 투박함과 초코파이보다 더욱 진한 정이야말로 제주에서 반드시 봐야할 것들이다.
이번만은 기간도 길고 여유 있게 둘러볼 요량이었지만 도무지 제주는 나를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일주일을 시간을 줬어도 결국 제주도 한 바퀴를 다 돌지 못했다. 입장료 단 한 푼 들이지 않고 가야할 곳이 부지기수며 아마 한 달 시간을 줘도 다 둘러볼 자신이 없는 곳이 제주다.
한라산 백록담에 백두산 천지물을 담아 보았고 물이 찰랑거리는 사라오름을 온몸으로 안아보았다. 거문오름의 깊은 속내도 변함이 없었고 사려니 숲길이야말로 진정한 시크릿가든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여기 우리나라 맞아." 혼자 감탄하면서 마음껏 숲길을 활보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했다. 보석 같은 도시 서귀포부터는 바다 올레 걷기에 동참했다. 내 발로 제주 남쪽 지도에 윤곽을 그리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법환에서 올레꾼과 소라 안주에 소주 한 잔 나누었고 모놀답사를 갔던 갯깍 옆에 해식 동굴이 있음을 확인했다. 논짓물이야말로 제주에서 가장 시원스런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속 좁게 살아온 자신을 책망할 뿐이다.
가파도의 보리밭은 한 동안 내 동공을 초록빛으로 물들게 했다. 감옥 같은 섬에서 몇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은 섬 밖을 나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돌을 닮아 있었고 거친 바다가 그들의 생활양식인 사람들이다. 서귀포 올레시장에서 떠온 자연산 횟감, 산방식당의 쫄깃한 밀면, 표선의 허름한 식당에서 맛본 고기국수, 밀감 넣은 김치가 느끼함을 똑 떨어지게 만든다. 바람의 신을 불러들이는 칠머리굿을 만난 행운을 얻었고 굿판에서 맛본 몸국은 몸서리 칠 정도로 맛이 끝내준다.
이제 수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만약 대한민국에 제주도가 없었다면 이 땅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난 아직까지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를 하지 않았다.
그것마저 선정되면 제주가 내 손에서 영영 떠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난 지금의 제주가 그저 좋다.
첫댓글 아름다운 풍경속에 많은 아픔도 있는 제주입니다. 갈 수 있을 때 바로 갈 수 있는 이국적인 섬 제주가 있어서 저도 참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
이런 글..
때문에 모놀은 항상 저를 붙들어매죠.
제주도는 흥미로운 곳이 아니라 중요한 곳임을...
살기 어려운 곳임에도 이를 뛰어넘어 살아남은 자의 영역이 확대된 곳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개그와 진지함을 넘나드는
대장님이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