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의 도로명을 보노라면 사기막골이 있다.
전국에 사기막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가 몇개쯤 될까?
아마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네는 땔나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을 것이고,
불과 흙이 어우러져 흙가마속에서 그릇들이 노릇노릇 익어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면 지금이 2000년대니까 과천의 노거수들은 이광경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싶다.
혹 자신이 땔감으로 쓰이지 않을까 걱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김없이 이런 동네이름은
사기를 굽던 가마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으로 현재도 사기막골,사그막골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름이 사기막골이 아니어도 과천에는 곳곳에 그릇굽던 흔적이 남아있다.
향토사에 따르면
<과천 일대의 옛 가마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권 148, 과천현에 도기소가 한 곳 있다. 과천현 북쪽의 가좌동에 있으며 중품이다(...陶器所一在縣北 加佐洞 中品...) 이라는 가사가 유일한 것이다.>
15∼16세기의 백자터로는
<백자 가마터는 과천시 문원 2동 사기막골 등산로 입구의 동·서의 산등성이에 있으며, 두 가마터 간의 거리는 등산로를 따라 200여 m이다. 서쪽 가마터 가)에는 현재 배나무 과수원이 있으며, 동쪽 가마터 나)는 경작지로 개간되고 있다.>
15∼16세기의 분청사기(분장된 회청사기로 고려말부터 조선전기에 이르기까지 갖은 기법과 다양한 명품을 낳았고 임진왜란을 계기로 소멸함) ) 터로는
< 과천시 중앙동 공업진흥청과 중앙공무원교육원 건물 사이로 난 관악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용운암 주위에 한 곳(가)이 있으며, 계속해서 100여m 올라간 지점에 또 한 곳(나)이 있다. 가)호 가마터의 처음 발견자는 충북대학교의 강경숙(도자사 전공) 박사인 것으로 생각되며, 나)호 가마터의 처음 발견자는 국사편찬위원회 이상태(고지도 전공) 교육연구관이다. 가)호 가마터는 용운암 뒷편에 약간의 퇴적층이 있으나 정확한 가마의 위치나 퇴적층은 확인할 수 없었으며, 나)호는 가마터로 추정되는 구릉의 아래쪽에 만들어진 지 2년 정도 지난 개인무덤이 있다. >
또한 그 이전의 가마터로
<관악산 서록의 가마터(과천현 상서면 비산리; 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에서는 11∼12세기의 조질청자(粗質靑磁)·조질철채도기(粗質鐵彩陶器)·흑유자편(黑釉磁片)과 14세기의 조질청자편·백자편이 함께 발견되었다. >
<관악산 동록의 가마터(현 과천동 무네미 마을)에서는 11∼12세기의 조질백자가 발견되었다.
대접·접시류가 주류를 이루며, 방구리(缸)로 추정되는 파편도 있다. 태토는 입자(粒子)가 굵고 회백색이며, 기벽은 얇은 편이다.>
지금의행정구역 과천내 여러곳에서도 흔적이 있음을 적고있다.
특히,
무네미는 남태령 마을 동쪽 등성이 너머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골짜기 안 깊숙이 자리해 있어 큰길이나 고갯길에서 볼 때는 마을이 있는 것조차 알 수 없다.
이 동록 가마터의 백자들은 보다 본격적인 조사에 의해서 더 분명한 시대설정이 가능해질 것이며 보다 많은 기형과 자료가 수집됨으로 해서 고려백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한다.
과천현 관아지 및 관악산일원 문화유적지 지표조사보고서 (1994, 단국대 사학과,과천시)에는
<이와같이 과천의 도요지에 관해서는 문헌에 1곳밖에 전하는 곳이 없으나, 안양시 비산동, 과천시 과천동 무네미골, 및 중앙동에서 요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현 수방사의 관내에도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내가 직접 돌아다녀본 바로는 대공원 산림욕장내에서도 자기편들을 발견할수 있었고,
과천동의 용마골에서도 많은 도침(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울때 이용되는 가마도구)과 태토 비짐눈등도 주울수 있었다.
이기주님의 증언으로는 성당뒤편 산속에 백토광산허가가 있었다하고,덕장골 근방에서도
많은 자기편들이 있었다며 주우신 그릇을 들고오기도 했다.
사정이 그렇다면 과천은 이또한 흙과 물과 불이 어우러져 예술을 낳았던 가히 문화의 고장이라 아니할수 없다.
이번기회에 도자기의 명명법이나 읽어보자( 출처: www.aichado.com 김진홍님)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동양삼국은 때론 독자적으로 때론 상호 연관을 주면서 독특한 도자기의 발전과 쇠퇴 그리고 부흥기를 가져왔습니다.
도자기의 이름을 짓는 명명법도 천차만별인데,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우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의 경우도 대체로 도자기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름을 짓습니다.
(나라명 또는 시대명) + 도자기의 종류(청자, 백자 등) + 기법(음각, 양각, 청화, 철화 등) + 문양의 경우 문양의 이름(당초문, 모란문 등) + 형태(통형, 호랑이발톱형, 원숭이형 등) + 기물의 종류(병, 화병, 주병, 주전자 등)
때문에 복잡하게 써놓았더라도 예를들어 아래의 이름은 다음과 같은 뜻이 됩니다.
예: 청자음각모란당초문과형주자
청자인데 음각으로 그림이 그려졌는데 무슨그림이냐 하면 모란과 당초문이 그려졌고 형태는 과일처럼 생겼는데 주전자와 같은 물을 붓도록 되어 있는 도자기 라는 뜻입니다.
근데 아무런 그림도 없다면 청자(음각모란당초문과형)주자 에서 ()부분을 생략한 청자주자가 됩니다. 유식하게 할경우에는 아무런무늬가 없다는 뜻으로 소문(素文)을 붙일 경우도 있습니다. 즉, 청자소문주자. 뭐 이런식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시대가 있으므로 시대나 나라명을 앞에 붙이면 위의 경우 고려청자음각모란당초문과형주자 이런식으로 이름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차분하게 앞에서부터 읽어나가시면 그리 어려운것이 아닙니다.
첫댓글 이기주님께서 광업공사를 통해서 광산허가사실을 확이해 주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