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리다가 그의 언어에 대한 성찰에서 보여준 것은 문자 없는 말의 불가능성·기표 없는 사유와 의미의 불가능성이다. 그는 그 불가능성을 지적하면서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의 발판을 마련했다. 형이상학이 가정하는 원초의 관념·자연과 동일한 관념·절대적 의미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이미 어떤 내면적 순수사유에 따라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의 전달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물질적 조건, 즉 문자에 의해 이미 제약 당해 훼손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데리다의 결론은 언어의 물질적 표현을 초월하는 순수사유가 불가능하다는 메를로-퐁티의 생각과 관련이 있다. 메를로-퐁티에게서, 몸 없는 의식이 불가능하듯, 언어(단어·문자) 없는 사유는 불가능하다. "사유는 '내면적'인 어떠한 것도 아니다. 사유는 세계 바깥에, 단어들 바깥에 있지 않다."({지각의 현상학}) 하지만 메를로-퐁티는 데리다와는 다르게, 언어의 물질적 조건에 제약 당해 있지 않는 순수사유가 없다는 생각을 고전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방식에 대한 현상학적 탐구를 통해 밝혔다. 몸이 세계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언어가 우리를 세계와의 관계 가운데 놓는다. 언어는 사유 이전에 사유의 전제조건인 세계와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사고의 몸'이다.
(2) 데리다는 말의 구두성을 구성하는 것, 즉 목소리가 형이상학을 주도해왔다고 본다. 그러한 데리다의 생각은 어떤 귀에 들리는 소리가 형이상학을 추진해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플라톤에게서부터 말의 구두성을 이루는 핵심은 물리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제시된 말 가운데 나타난 말하는 자의 현전이었다. 철학의 역사,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말과 글이 구별될 수 없다. 거기서 글의 역사와 구별되는 말의 역사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데리다가 목소리가 형이상학의 동인이라고 단정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형이상학이 말하는 자― 또는 글쓰는 자, 어쨌든 언어를 사용하는 자 ―의 언어에서의 현전에 의해 지배당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현전의 모델을 바로 실재 말의 전달에서 드러난다고 여겨지는 1인칭 화자의 현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목소리란 물리적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언어에 기입되었다고 여겨진 1인칭의 말하는 자, '나'의 현전이다. 그러한 생각을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루소의 {언어의 기원에 대한 시론(Essai sur l'origine des langues)}에 대한 상세한 해석을 통해 밝혔다. 목소리, 1인칭의 말하는 자의 현전이 형이상학의 기원이다.
(3) 말과 문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이제 물리적 소리가 들리는가 아닌가, 대화자들이 서로 질문과 응답으로 살아있는 대화를 하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말은 그 자체 1인칭 화자의 현전을 담고 있는 언어이며 문자는 익명의 언어이다. 그러나 사실은 말은 언제나 문자에 오염되어 있으며, 타인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문자에 의존해야 한다. 그에 따라 말의 문자에 의한 전달에 있어서 1인칭 화자의 현전은 동일하게 보존될 수 없으며 변형을 겪게 된다. 문자는 1인칭의 화자를 증거한다기보다는 익명의 타자가 세계와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방식, 탈존(ex-istence, 실존)의 양태를 표현한다. 말하자면 문자는 특정 '누구'를 반영한다기보다는 '어떻게'를 제시한다. 그러나 탈존의 양태는 결코 전부 술어를 통해, 명제를 통해 설명되지, 고정되지― 주제화(主題化)되지 ― 않으며, 익명의 타자가 문자를 거쳐 다가오는 사건(그 사건이 문자의 목소리를 가능하게 한다)을 보게 한다. 탈존의 양태의 표현, 그것을 메를로-퐁티는 글쓰는 자, 저자의 스타일(style)이라고 불렀다. "스타일은 내가 어떤 개인, 어떤 저자에게서 확인하거나 이해하는, 상황을 다루는 방식이다. 나는 그 방식을 일종의 모방을 통해 나의 책임 하에 되찾는다."(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문자로 이루어진 텍스트에는, 그것이 문학 텍스트라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철학 텍스트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들어가 있으며, 독서란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는 행위이다. 어떠한 철학 텍스트도 사람이 배제된 순수한 추상적 개념의 구성체가 될 수 없다.
(4) 문자를 통해 다가오는 저자라 불리는 익명의 타자가 다가오는 사건을 블랑쇼는 '그(Il)'라고 표현했으며, '그'의 흔적이 '목소리(voix)'로 남는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블랑쇼에게서 '그'는 저자라는 1인칭이 문자를 통한 전달에서 독자의 독서를 통해 타자로 변형되어 나타나는 사건, 또는 독자라는 주체가 대화적 상황을 통해 자신을 초과하는 탈존의 양태에 기입되는 사건이다. 또한 문자의 목소리는 그 사건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기호의 기호, 이미지의 이미지, 또는 기표의 기표이다. 말하자면 문자의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