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에 세상 떠난 아들과의 약속 지켜야죠

산간벽지에 마을도서관 만들어주는 ‘책할아버지’ 김수연 목사
“할아버지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훌륭한 사람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한테, 어떻게 그렇게 잘사세요? 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대답이 전부 똑같애.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도 책 많이 읽을 거죠?” “네~!!” 아이들의 약속은 학교의 담을 넘어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땅 끝, 전남 해남에 위치한 현산남초등학교. 학교 안에 마을도서관을 만들어준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 대표 김수연(63) 목사는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곡히 전했다. 어느덧 105번째 도서관. 올해로 22년째다. 한때 방송국 기자였던 그는 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소중한 일을 하며 살겠다’고 했던 약속을 그렇게 지켜오며 ‘책할아버지’로 살고 있다.
‘좋은 책에 좋은 삶 있다’22년간 소명으로 해온 일

전교생 61명의 작은 시골학교, 전남 해남의 현산남초등학교 아이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학교에 낯선 손님도 많이 오고, 신기한 책버스도 구경했고, 재밌는 구연동화도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제 엄마 아빠도 같이 와서 책을 볼 수 있는 마을도서관이 학교에 생겼다.
책할아버지 김수연 목사님은 어린이 책 2,000권과 어른 책 1,000권을 갖고 오셨다고 했다. 모두 요즘 제일 인기 있다는 새로 나온 책들이다. 책장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아이들은 학부모들에게도 새로운 모습이었다. “부모님이 만화책이라도 들고 읽는 척해보세요. 그럼 애들도 따라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꼭 닮잖아요. 책은 절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책 속에 있어요. 유명한 사람, 세상을 빛낸 사람, 아름답게 산 사람, 희생한 사람. 이런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을 때 정말 잘살 수 있습니다.” 책의 중요성을 말할 때면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친다.
‘좋은 책이 좋은 삶,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확신과 진심 가득한 그의 말에 사람들은 감동하고 책을 펼쳐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궁금해한다. 1987년부터 산간벽지, 오지, 섬마을을 다니며 수백만 권의 책을 나눠주고 도서관만 100여 곳을 개설한 사람, 그러느라 100억이 넘는 전 재산을 쏟아 부은 사람, 이 일에 전념하기 위해 방송국 기자도 그만둔 사람, 오직 책 속에 행복이 있다고 22년을 한결같이 외치는 사람…. 그는 왜 이 일을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철이 들면서 인생을 소중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책무가 있는데, 그것이 뭔지 모르다가 찾은 거죠.” 그에게도 스스로 철이 없었다 여겨지는 시절은 있었다. 194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상당히 부유했다. 이미 물려받은 재산도 있었지만 사업과 주식투자에도 성공하는 등 젊어서부터 재물 복도 많은 사람이었다. 거기에 건장한 풍채와 호남형의 외모, 그리고 방송국 기자라는 직업까지, 그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무서울 것 없었던 세상, 그는 술과 환락에 빠져 살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73년부터 비극은 이어졌다.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비명에 가시고, 1978년에는 장인 장모가 조카사위에게 피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10년 새에 일가친척 13명을 잃었는데, 그 마지막이 내 자식이었어요.”
1984년 12월 19일. 일곱 살짜리 작은아들은 집에 혼자 있었다. 큰애는 학교에, 아내는 교회에 간 사이였다. 배가 고팠던 아이는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가스 불을 켰고 화재가 났다. 겁에 질린 아이는 그만 11층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다. 취재 현장에 있던 그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이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아내를 원망했다. 하지만 친정의 비극 후 종교에 의지했던 아내의 심정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부부는 이혼에 이른다. 그는 죄 많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방탕함으로 허비했던 지난날들이 이 모든 비극을 초래했다는 죄책감에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나님은 모든 걸 용서해 주신다는데 나 같은 놈도 용서해주실까….
연이은 비극, ‘내 마음, 내 잘못이다’ 깨우쳐

그는 친척 동생이 하는 개척교회에 찾아갔다. 그런데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은 들어갈 자격조차 없었다. 그는 조금이나마 이 죄를 씻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았다. 봉제공장 건물 3층에 자리한 교회의 낡은 건물은 지저분했다. 그는 일요일이면 새벽같이 가서 계단과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이 바뀐 그날이었다.
그날도 청소를 다 마치고 가려고 했을 때였다. 한 청년이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지저분하게 볼일을 보고 물도 내리지 않고 가버렸다. 성질이 난 그는 있는 대로 욕을 하며 홧김에 물을 쫙 뿌렸다. 하지만 똥물은 오히려 자신에게 튀었다. 기가 막혔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겨우겨우 누른 채 세탁소로 향했다. 처량 맞게 남의 옷을 입고 세탁이 끝나길 기다릴 때였다. 순간 한 생각이 스치며 큰 깨침이 왔다. ‘이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할 걸 괜히 화는 내서 똥물을 뒤집어썼구나, 그러고 보니 내가 겪은 비극도 다 우연이 아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 다 내가 못할 짓하고 살아서 이렇게 됐구나. 다 내 잘못이다… 다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남은 인생만은 좋은 삶을 살겠노라 결심했다. 아이는 그것을 알게 하기 위해 천사가 되었던 것이다. “자랑스러운 부모로서 소중한 삶을 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뭘까, 생각했지요. 우선 나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 일이었어요.”
그 일이 책 읽기 운동으로 귀결 지어진 것은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가 기자생활 하면서 해외 선진국들을 취재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왜 잘살까, 왜 행복하게 살까 늘 의문이었죠. 그것을 취재해본 결과 대답이 다 똑같았어요.‘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들은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쌓았고 바른 가치관을 배웠다고 했다. 그 지식과 정보가 가리키는 대로 삶에 적용하니 풍요로울 수 있었고, 그 가치관대로 바르게 사니 마음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풍요롭고 자유로우니 행복했다. 행복의 열쇠는 책에 있었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일, 김수연 목사는 이처럼 소중한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신간서적을 사들고 다니며 산간벽지, 오지, 섬마을 여기저기에 기증했다. 도회지에는 책이 넘쳐나는데, 문화 혜택이 취약한 곳은 아예 책을 구경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농어촌의 집집마다 방문하며 책 읽기를 권해도 보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벽은 높았다.
“바빠 죽겠는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 “책 팔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차라리 돈으로 달라”…. 수없는 면박과 오해도 받았다. 그러던 1991년, 전북 남원의 원천마을에 마을도서관을 처음 연 것을 계기로 김목사는 초등학교 마을도서관 개설을 본격화했다. 최소 행정 단위인 읍면까지 초등학교는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에 도서관이 생기면 어린이들과 마을주민 모두에게 좋을 것이었다. 그는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 교육자, 주민들을 만나 설득했다. 거창한 구호 같은 건 없었다.
‘책이 있으면 책을 읽는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을 가까이 있게 하자’는 것뿐이었다. 점점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강원도 산골에도, 섬마을에도 마을도서관이 하나씩 들어섰다. 1996년엔 아예 방송국에 사표를 내고 전적으로 책 읽기 운동에만 매달렸다. 도서관 하나를 개설하는데 드는 비용이 약 3천만 원. 그는 재산을 하나씩 처분했다. 땅도 팔고 빌딩도 팔고 주식도 팔고 집도 팔고, 대출도 받았다. 사명감을 갖고 혼신을 다했던 그. 하지만 그렇게 17년이 지나자 몸도 마음도 지쳤다.
2004년, 그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20여 가구가 사는 산골마을로 들어갔다. 이제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봉평마을 주민들에게도 지극정성으로 책 읽기를 권했다. 처음엔 뜨악해했지만 그의 진심에 감동한 마을사람들은 하나 둘 책을 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목사님, 이 책은 목사님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하고 오히려 책을 권하는가 하면, 목사님의 고마움이 느껴져 책을 함부로 접지도 못하겠다는 ‘책 읽는 농부’들이 생겼다. 사람들이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큰 보람이었다. 그 무렵, ‘지식검색’으로 유명한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그의 책 읽기 운동에 함께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기업의 후원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또 하나의 힘이 되었다. 그는 다시 강원도 산골부터 남해의 어느 작은 섬마을까지, 마을도서관 만들기에 전념했다. 책을 흔들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아이들. 김수연 목사는 그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본다고 말한다. 25년 전 가슴에 묻었던 일곱 살 아이, 좋은 책 한 번 읽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던 그 아이가 책을 들어 보이며 좋아라 한다. “아이에게 감사해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은혜, 그 사랑에 보답하며 살게 해주었으니까요.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어야지요.”
김 수 연 목사는 1946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975년 한양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동아방송, KBS(방송통폐합) 기자로 1996년까지 재직하였습니다. 화재로 아들을 잃은 후 1986년엔 신학대학에 들어가 목회자로서의 길도 걷습니다. ‘좋은 책이 좋은 삶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취지 아래 1987년 전국 산간벽지, 농어촌, 섬마을에 책을 기증하기 시작한 님은 1991년부터 읍면 단위의 초등학교에 마을도서관을 개설하는 등 책 읽기와 책 보급 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모범독서운동가상(1992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상(1994년), 제13회 독서문화상 대통령상(2007)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마음수련 2008년 5월호 中-
첫댓글 버스가 너무 이뻐요 ^^
정말 대단하신분이에욧;
아해님 할룽~ 저 봉선이랍니닷! 저도 저 목사님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
ㅎㅎ
참 멋진 분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