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Christ와 Mass의 합성어이다. Christ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가리키고, 매스(Mass)는 천주교의 미사 의식을 가리킨다. 물론 그것은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종교개혁 이전에 사용된 단어이기 때문에 당시의 예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Mass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결국 크리스마스의 어원적 의미는 '그리스도께 경배'라는 뜻이다. 한 마디로 크리스마스는 주님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날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탄생일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이 탄생한 정확한 연도, 월, 일 등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교회가 주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특히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그것이 일반화되어 지켜졌다. 그리하여 오늘날 개신 교회와 카톨릭 교회는 12월 25일, 동방 정교회나 알미니안 교회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여기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날짜를 정한 최초의 인물은 초기 기독교 속사도 교부(편집자 주로 설명 요)였던 히폴리투스(Hipolitus)로 알려져 있다. 히폴리투스는 약 2세기경의 인물로서 이레니우스와 함께 소아시아 신학을 주도했었는데, 지금의 사도신경에 가까운 형태의 신경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수태(受胎)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의 기간을 정확히 33년으로 보고, 이 두 사건이 모두 3월 25일에 있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수태할 것이라고 천사가 말해 준 때로부터 거꾸로 9개월을 역산(逆算)하여 정확하게 12월 25일이 주께서 탄생한 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를 5세기에 교부(敎父) 어거스틴(Augustine)이 지지했다. 그래서 상당히 오래 전부터 교회들이 이 날을 주께서 태어나신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주님의 나심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점에서 주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되새기고 그 이유와 목적에 부합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오늘날 교회들의 관습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크리스마스에 대한 의식을 바꾸고 실제로 복음에 부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도록 교회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진정한 성탄절
12월에 접어들면 거리에는 상업화된 흥겨운 크리스마스 음악들이 캐롤송(carol song)이란 이름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이브(Eve)에 그 절정을 이룬다. 매스컴에서도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날', '기분내는 날', '기분좋은 날'로 떠들어댄다. 더구나 시기적으로 연말과 맞물려 있어서 분위기가 매우 들뜨게 된다. 예전에 비해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이후에는 좀 덜한 느낌이 들지만,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어느 해나 마찬가지이다. 젊은 연인들은 물론이고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도 거리로 몰려 나와 의미를 알지 못하는 즐거운 휴일(?)을 즐기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밤새도록 술을 마셔대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환락의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술집, 노래방, 나이트클럽 등 육체의 즐거움을 주는 많은 장소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특히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에 주고받는 선물의 개념으로 성(sex)을 나누는 타락의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심지어 '바캉스 베이비'처럼 '크리스마스 베이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술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 크리스마스요, 가장 적게 팔리는 날이 석탄일이라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심각하게 각성하고 회개해야할 일이 아닌가? 가장 거룩한 날이 가장 더러운 날로 변한대서야 되겠는가?
크리스마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세속의 물결과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끌려가고 혹은 편승해서 교회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단지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지내야하는 날 정도로 여기는 모습이 허다한 것이 오늘날의 슬픈 현실이다.
많은 교회들이 성탄전야에 '새벽송'을 돈다. 누구를 위한 성탄 송인지 그 의미가 변질되어 알 수가 없다. 주님께 드리는 찬송인지 백성을 즐겝게하고 서로 즐기기 위한 노래인지 갈피를 가늠할 수 없다.
성탄 트리에 달린 등은 휘황찬란하게 밝혀놓고 있지만, 정작 세상을 향한 교회의 복음의 빛은 밝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어둡기가 한량없다. 교회 내에서 자기들끼리 행사라고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니 거룩한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은 세상과 조금도 다름없이 즐기고 오락하고 노래하고 세상으로 즐거움과 향락(?)에 치중하는 교회가 아닌가? 세상을 장악한 마귀가 이제는 교회 안에도 버젓이 들어와서 교회의 성탄 프로그램을 잠식해가고 있다. 이런 모습을 탈피하고 주님께서 주신 거룩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본분이라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탄절은 어떤 모습일까?
성경은 성탄절이 온 인류에게 최상의 기쁨을 주는 날이 틀림없음을 밝히 말한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0)
그러나 이런 사회 풍조로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하기 쉽다. 예수는 구주로서 오신 것이다. 즐겁게 놀게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자들이 어린 예수를 경배했고 천사들과 그 목자들이 하나님께 찬송을 했던 것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때로는 교회마저도 크리스마스 전야(前夜)에 다양한 형태의 발표회를 하면서 축하예배를 드리고, 그것이 끝나고 나면 각 부서로 흩어져 소위 올나이트(all night)라 불리는 밤샘을 하면서 윷놀이도 하고, 게임도 하고, 선물 교환도 하면서 그야말로 신나게 논다. 물론 그렇게 하고 나서 새벽송을 돌면서 첫 번 크리스마스를 맞았던 양치기들의 심정으로 돌아가 예수께서 태어나신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많은 교회들도 양적인 성장과 교회의 문화적인 수준 향상으로(?) 언제부터인가 '예수의 나심을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 돌리기 위해서'라는 매우 신앙적인 동기와 명목으로 보통 11월 정도부터는 크리스마스 칸타타나 음악 예배를 준비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신학교의 음악과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디데이로 잡고 1학기 또는 1년 정도 열심히 연습하여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와 같은 대규모 연주를 한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향해 믿는 이들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 가운데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는 있지만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으로 되어져 가고 있는가? 정작 우리에게만 임한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미치는 소식이 되도록 우리가 전도하고 복음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만의 예수가 아닌 모든 자의 예수가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님이 오신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로 인해 지옥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 소망 없는 죄인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의 모양, 곧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함이다. 예수의 나심은 우리의 영혼을 죄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징표이다. 그것은 지상 최대의 사건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성탄절의 여러 행사나 관습은 풍속
옛 로마에서는 농신제(農神祭)가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7일 동안 행해졌는데,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고 흥겨운 놀이를 행하기도 했다. 후에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방인들의 축제들을 성탄 행사로 대치하여 거기에 새로운 의의를 두었다. 또한 각 나라마다 그 특징을 살려 성탄 행사를 하고 있다.
현대에는 장사꾼들의 얄팍한 상혼에 휩쓸려 크리스마스를 빙자하여 사랑이란 이름으로 온갖 죄악들이 난무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크리스마스란 기쁜 날로서, 놀고, 술 마시고,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 때 카드나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이러한 이방 풍속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지상 최대의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온데간데없이 산타 클로스가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주는 위대한 분(?)으로 변신했고, 크리스마스 카드의 내용 중에는 귀신(강시)가 등장하기도하고 코믹하게 그리기 위해 각종 음란하고 문란한 모습의 카드까지 등장해 있다. 캐롤송까지도 코믹하게 되어 자신들을 즐겁게하는 것은 극대화되었지만 주님을 높이고 영광스럽게 한 것은 보기가 힘들다. 성탄절에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영광스럽게 드려지는 행사가 과연 얼마나 있는가?
'크리스마스'라는 말 자체로도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주께서 오신 목적을 깊이 묵상하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진리들을 전하여 그들의 삶을 보다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육신을 입고 오시사 죄를 용서하시러 오신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가 있다할 것이다.
복음적이지 못한 크리스마스의 관습
로마에서는 12월 말에 태양의 빛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축하하는 의미의 행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행사란 태양신 미드라의 생일(12월 25일)을 축하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의 이러한 축제에 참가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모여서 다른 의미의 축하행사를 가졌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성탄절의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336년경이었습니다. 어두운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 태양 빛이 회복되는 시기에 탄생하시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상과 또 예수님의 탄생이 늦가을이나 또는 겨울이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섞여서 이 때를 구주 탄생의 날로 축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시기에 고쳐야 할 사항들 육신을 입고,
성탄절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잊혀지지 않는 예화 하나가 생각난다. 그것은 천사들이 예수께서 아기로 나신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누는 대화였다. 어느 천사가 다른 천사에게 말하기를 "이것 봐, 예수께서 인간으로 세상에 나시기로 했대. 그것도 어린 아기로 가시기로 했대"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시지? 아니, 하늘의 영광중의 영광이신 분이, 우리 천사들을 호령하시고 거느리시는 분이 그렇게 낮고 천한 세상에 가시다니? 그것도 아기로 나신다는 말이야? 그런 엄청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지?" 맞습니다.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일이 나와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사해서 눈물로 찬송하고 또 감격 가운데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심의 의미를 깨닫지 않고서는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하여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시고 초라하고 비천한 말 구유에서 탄생하신 그 날,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감격 속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맞이하는 것이 성탄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기쁨을 성도들만이 향유할 것이 아니라 영육간의 배고픔에 처해있는 이웃에게도 나누어주어서 그들도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로 가시고, 세리와 창기의 벗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걷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의 희생적 삶이 실현되고 있습니까? 2002년 성탄을 맞이하면서 이 성탄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뜻을 부여하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졌으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의 참된 구원의 소망이요, 삶의 가치를 구현해 줍니다. 이러한 까닭에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나와 같이 더럽고 추한 죄인을 구속하시기 위해 핏덩이 어린 아기로 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오신 날이다. 이런 생각할 수 없고 누릴 수 없던 은혜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 선물에 대해 감사하며 선물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의미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