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육(고등부) 목연2년 20471018 임종표
I. 서론
지금 교회들의 교회교육은 어떠한가? 선교 초기부터 60년대까지만해도 교회교육은 당시의 교육의 내용이나 방법, 도구에 있어서 일반 학교나 기업 어디보다도 월등히 앞서 있었다.
이제까지의 교회교육은 교사와 학습자의 분리, 교재와 삶과의 분리, 이론과 실천의 분리,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 등 통합성이 없이 이원론적 사고에 의한 교육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 교육의 내용들은 일관성이나 뚜렷한 목표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목표가 있어도 행사 하나하나 마다 따로 목표가 주어졌을 뿐 교회교육 전체의 목표와는 연관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매년 교육목표를 세우고 주제를 만들지만 그 주제와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예배나 교육, 선교, 봉사, 교제가 연결되지 못하는 교육이었다.
그리고 예배나 공과공부등 대부분의 시간이 학생들의 참여가 없는 일방적인 교회교육이었다. 또한 통합적 교회 교육인 5가지 (예배, 교육, 교제, 봉사, 선교)의 내용이 균형있게 시행되지 못하고 한 두가지에 편중된 교육을 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현상학적 해석학에 근거한 통합성의 교육과정을 통해 이분법적인 사고를 극복하고 이 모든 것을 통합하여 교회교육의 모든 방법들이 상호연관 되도록 하여 교육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즉 해석학적 교회 교육이 되는 고등부 학생들 안에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는 교육이 되도록 하고자 한다.
II. 본론
1. 고등부(청소년)의 특성
에릭슨(Erik H. Erikson의 정서발달이론에 의하면 고등부 학생들의 시기는 정체성대 정체성 혼돈(identity vs. role diffusion)의 시기이다.
정체성의 획득이 이 시기의 주요 과업이다. 정체성이란 그 사람이 누구인가 (who persons are)와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where they are going)로 정의할 수 있다.
건강한 정체성은 이전 시기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지나왔는가와 건강한 부모에 달려있다.
청소년기는 정신적인 유예기간으로 아동과 성인 사이의 대기 시간이다. 여러 가지 역할이 시험당하는 시기로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체계가 적절히 조직화된 체계로 견고하게 다져져야 한다.
사춘기 말에 정체성의 위기를 겪게 되며 에릭슨은 이를 정상적인 위기라고 하였다. 이 시기에 실패하면 견고한 정체성 없이 사춘기를 지나게 되며 이렇게 되는 경우 정체성의 확산에 빠지는데 특징적으로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혼돈을 겪고 그 결과 가출, 범죄, 정신병 같은 이상 행동을 보이며 성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이런 정체성의 확산에 대항하여 파당이나 사교 집단에 가입하기도 하고 신화 속 영웅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또한 파울로(James Fowler)의 신앙발달이론에 의하면 중고등부 학생들은 종합적-인습적 신앙(Synthetic-Conventional Faith)으로서 사춘기의 전형적인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개인의 경험은 가족의 범위를 초월한 다양한 사회집단으로 확대되며, 이와 관련하여 신앙은 다양한 범위 속에서 일관된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 시기는 다양한 입장의 견해들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단지 개인에 따라 나타나는 차이라고 이해하며, 결국 자신이 속해있는 이념, 혹은 신앙의 범위에 대해 객관적이고 성찰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을 파울러는 "순응주의"라고 표현했다. 이 단계에서의 위험성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지나치게 내면화되었을 경우 초래되는 자율성에로의 발전 가능성 상실이다.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도록 촉진할 수 있는 요소로는 공식적인 입장과 충돌되는 사건이나 견해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공식적인 배경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비평적 성찰적 경험과 전망을 접하도록 하는 것이다.
2. 해석학적 교회교육의 목적
해석학적 교회교육이란 지금까지의 교육과정들이 교육의 체계성이나 효율성이나 정당성 등 인간 외적인 것에 일차적인 관심과 연구대상을 집중해 온 인간소외의 교육과정이라고 한다면, 통합성의 교육과정은 '추구하는 인간상'을 교육과정을 풀어 나가는 단서로 삼고 있는 교육과정이다. 통합성의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해석학적 교회교육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인 인간의 이미지는 하나님의 형상의 형성 및 재형성 과정이라는 점에서, 통합성의 교육과정은 이미지 중심적인 교육과정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달리 표현한다면 만인제사장적이며(이원론적인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를 극복),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신학적 인간 이해의 이미지와 연관되며, 자기 지시적 학습자, 자아실현,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 개체성, 상호주관성, 관계적 자아, 입체적 시각을 가진 인간이라고 하는 교육학적, 심리학적, 철학적인 인간 이해의 이미지와 관련된다.
이렇게 추구하는 인간의 이미지 형성 및 재형성의 과정은 자기 이해 및 자기 정체성의 형성 및 재형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통합성의 교육과정의 목적과 목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평생 동안 계속되는 관계적이며 입체적인 자아의 이미지 형성 및 재형성을 위하여 교육과정의 개발과정, 내용의 선정과 조직, 교수-학습과정 및 방법, 평가 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해석학은 텍스트 이해의 학문이며, 의미의 생성 및 재생성의 학문 또는 이해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학문이다. 그리고 해석학은 소외 또는 분리되어 있는 인식 주체와 인식되는 객체 사이의 거리감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해석자는 해석의 주체이며 이해의 대상인 객체가 된다. 이는 해석자가 텍스트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됨을 말하며, 텍스트 이해의 과정은 자기 자신의 이해 과정임을 말한다. 텍스트 이해와 자기 이해, 하나님 이해와 자기 이해는 상호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해석학적 유형으로는 현상학적 해석학의 유형으로 상상력을 이해하고 있다.
3. 해석학적 교회교육의 내용
1) 예배(Leitourgia)
예배는 교회가 하는 모든 교육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예배가 바로 드려질 때에야 교육이나 선교, 봉사, 교제가 제대로 될 수 있다.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기를 가르치기보다 참다운 예배는 그들의 속마음과 존재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존 윌리암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학생들이 인생의 목적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세 가지의 기초적 욕구를 가진다. 첫째는 의지할만한 대상이고 둘째는 소속되고 싶은 어떤 것이고 셋째는 위하여 살만한 어떤 것이다. 이러한 기초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배이다"
(1) 예배의 의미-하나님과 사람의 만남
예배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경배하며 공동으로 말이나 행동에 의하여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그의 자녀들이 꼭 받으셔야 하는 영광을 돌려드리는 행위를 말한다. 폴 비츠는 예배에 대하여 "예배는 개인적인 교통행위이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선포되고 또한 알려진다. 이는 인간의 온전한 존재를 참여시키며 심령을 깨우치고 고귀하게 하며 마음을 감흥시키며 우리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라고 했다.
예배를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이라 말할 때 우리는 고등부 예배가 열려있는 예배여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① 예배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② 예배는 집단적 만남이다.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과 기도로서 하나님께 아뢰는 예배 행위를 말한다. ③ 예배는 규칙을 따라서 하는 집단적 만남이다. 예배가 일정한 질서와 규범을 좇아서 행하여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예배의 질서를 예배의식이라 한다. ④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일어나는 규칙적이고 집단적인 만남이다. 예배의 순서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서도 있고 회중들이 응답하는 순서도 있는데 하나님의 초청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드리는 것이다. ⑤ 예배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만남이다. 찬양은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필수적인 내용이다. 시편에서는 예배의 성격을 나타내는 근본적인 단어로 찬양이란 말을 쓰고 있다. ⑥ 예배는 복 받는 교회 안에서의 만남이다.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릴 뿐 아니라 받기도 한다.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한 결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를 통해서 받는 축복의 원천이다.
(2) 예배의 목적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다. 레이투르기아는 예배 또는 예전의 어원이다. 이 말은 삶 전체를 산 제물로 바치는 하나님의 백성 모두의 공통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3) 예배의 교육내용
예배의 교육과정을 위해서는 예배의 구성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예배의 구성요소로는 예식, 의식, 순서를 들 수 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예식은 순서와 의식을 포괄하는 것이다. 예식으로는 절기예식과 개인의 통과예식이 있다. 절기예식으로는 대림절, 성탄절, 현현절, 사순절, 부활절, 오순절, 추수감사절 등이 있고, 개인 통과예식으로는 생일, 사춘기, 졸업, 직업, 결혼, 은퇴, 이사, 장례식, 등이 있다. 이러한 예식을 통하여 참여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
둘째는 의식은 순서 안에 들어가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의식에는 찬송, 기도, 설교, 성례전 등의 내용들이 들어있다.
셋째로 순서는 예배의 전체적인 양식을 규정하는 구조적인 틀로서, 예배가 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니기 위해서는 공식적이며 특징적인 순서의 마련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예식과 의식과 순서를 잘 구성하여 중고등부로 하여금 예배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한다.
(4) 예배의 방법
오늘날의 예배는 회중의 참여가 거부된 예배로 전락하고 있는데 이것이 예배의 큰 위기이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회중의 주체적인 참여가 강조되는 처음교회의 공동예배의 회복에 있음을 은준관의 『실천적교회론』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회중 공동체와 분리된 예배로부터 공동체의 참여를 위한 예배로 변화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의 예배는 성(聖)과 속(俗)을 갈라놓는 종교행위가 아니라, 역사 안에 현존하는 거룩한 백성의 존재론적 표현이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예배의 구성요소인 예식과 의식과 순서를 가지고 절기예식과 개인의 통과 예식을 가지고 교회교육을 행한다. ① 예식의 방법에는 절기예배와 개인의식의 예배가 있는데 절기예배는 공동체 예배로서 세대구분 없이 드리게 한다. ② 성례전으로는 성찬과 세례식이 있는데, 청소년들로 하여금 성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게 하여 회중 앞에서 신앙고백하게 하고, 세례받은 청소년은 세례받던 때를 기억하게 함으로써 신앙고백을 확인하게 한다. ③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늘 기도해야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기도에는 개인기도와 공동기도가 있다는 것을 교육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여야 한다고 교육하여야 한다. ④ 케리그마에 대해서도 교육을 하여야 한다. 케리그마의 영역으로는 제사장적인 청취와 예언자적 설교가 있고, 정치적 옹호가 있는데 이 말은 정치적인 차원과 입법적인 차원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그룸은 설교를 교육적인 측면에서 일방적인 전달중심보다는 상호작용적인 대화중심의 설교가 되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⑤ 예배드리는 자세에서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가정 확실한 신앙고백이다. ⑥ 청소년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첫째로 죄를 회개하도록 하라. 예배가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이라면 죄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분리시킨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죄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가 없이 드려지는 예배는 이미 예배가 아니다. 둘째로 준비된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형식적인 예배에서 하나님과 예배하는 이들의 친교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예배를 준비하듯이 그들에게도 예배를 준비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예배를 드리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구별해 드리는 거룩함으로 예배가 시작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셋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도록 하라. 예배의 요소는 신령과 진정이되 예배의 방법은 입술과 마음이라는 두 가지의 도구로 드려져야 한다. 과연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바치고 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며 하나님을 향한 예배임이 체험되고 있는가? 우리 하나님께서는 청소년들의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나 종교적인 의식행위를 가장 가증스러워 하신다. 넷째로 바르게 찬송이 드려지게 하라. 찬송은 예배의 한 요소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에 초점을 두고 찬양해야 한다. 예배의 순서에서 불려지는 찬송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배하는 이들의 응답이라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찬송을 부름으로써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는 기쁨과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2) 교육(Didache)
(1) 교육의 목적
은준관의『실천적 교회론』에서 케리그마와 디다케의 단절을 역사적 변질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케리그마와 디다케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본질상 하나로 밀접하게 연합되어져 있어서 교육은 케리그마적이며, 케리그마는 교육적임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해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한다. 이런 의미의 개념을 교회교육의 목표로 설정하고, 이 의미를 얻는 것, 의미를 탐구하고 확장시켜 주는 것, 그리고 생산적으로 의미를 표현하는 것을 교육의 과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고등부 교사는 교회교육의 목적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교회교육의 기본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성경에 따라 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도록 하며 그들이 성령의 지배를 받도록 하는데 있다. 기본적인 목적은 ① 학생에게 주시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동적인 관계를 가르치고 인도한다. ②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로 성장하도록 학생을 인도하고 가르친다. ③ 학생들 각자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위탁함으로써 세계복음화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
(2) 교육의 내용
마리아 해리스는 케리그마와 디다케가 상호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가르침은 무엇보다 제사장적인 행위이며, 에언자적인 행위이며, 정치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실제로 케리그마와 분리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디다케의 형태를 카테케시스와 설교로 언급하고 있다. 카테케시스는 초대교회 때 세례지원자들을 위한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이 교육이 중세시대에 없어졌다가 종교개혁자인 루터에 의해 부활했다. 존 웨슬리도 카테케시스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리고 설교는 사도적인 선포와 해석으로서의 설교도 디다케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디다케의 형태 속에서의 설교는 ① 디다케를 필요로 하는 환경에 대한 고려-기독교교육에서의 디다케는 학교교실만이 아니라 교회와 가정의 환경, 사회와 매스미디어 등의 환경에서도 가능하다. ② 디다케의 내용이 될 교과목- 예배, 교제, 봉사, 선교, 등과 통전적인 관계로 이해하여야 한다. ③ 심리학, 사회학, 과학, 문화 등의 일반학문과의 통합적인 관계이해를 통한 다학문적 또는 간학문적인 교회교육과정이 필요하다. ④ 교사들을 위한 교육과정-교회교육에서의 교사는 하나님, 교회공동체, 부모, 교사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⑤ 디다케의 방법-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디다케를 수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려이다.
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육은 교회교육의 가장 으뜸 되는 내용은 자라나는 학생의 마음 속에 하나님은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실재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또 그와의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② 교회에 대한 교육은 교회교육에 있어서 특별히 조직신학의 교회론을 체계있게 가르침으로써 세례와 성만찬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그 참된 의미를 알게 한다. 또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단체임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온전한 교회를 세우도록 가르쳐야 한다. ③ 성경에 대한 교육은 성경은 교회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은 학생들을 위한 모든 교육활동에 반드시 적용되어야만 한다. ④ 교회문화에 대한 교육은 교회문화는 종교시, 희곡, 교회사, 선교사, 그 밖의 교리에 대한 저술, 신앙적 감명을 주는 저술 등 광범위한 문학작품을 가지고 있다. 이 문학작품들을 읽음으로써 고등부 학생들의 신앙은 더욱 성장하게 될 것이다. ⑤ 교회 청소년의 삶에 대한 교육은 교회교인은 누구나 예수의 인생관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하므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첫째 하나님께 대한 태도는 학생들이 기독교적 인생철학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결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지식은 인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계시해 주심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 둘째 이웃에 대한 태도는 이웃에 대한 기독교의 인생철학은 모든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평등하며 또 누구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학생들로 하여금 이웃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며 자기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셋째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는 기독교 인생철학에서 자기 자신에 관한 태도는 자신의 결함과 연약함, 그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겸손하게 시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 자신에게는 진정으로 값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삶을 살 때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줌으로써 그들이 용기있게 삶을 살아가도록 지도해야 한다. 넷째는 물질에 대한 태도는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 물질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물질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세상물질을 영원한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한 청지기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선하게 사용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3) 교육의 방법
청소년기에 있어서는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한 특강을 한다든지, 방송통신매체를 사용하여 좋은 영화를 감상하고 영화평하기, 성서인물들과 위인전, 성서이야기 그리고 독서를 통한 교육과 자연관찰로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 자존감을 갖게 한다.
3) 교제(Koinonia)
(1) 교제의 의미
코이노니아는 헬라어인데, '교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에서 코이노니아라는 용어는 무려 18번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다.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코이노니아의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교제, 하나님과의 교제로 인도되며, 동시에 이웃과의 교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서에서 증언하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로 인도되며 동시에 이웃과의 교제로 이어지는 것이 코이노니아의 의미이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로서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하고 그 관계로 끊임없이 부름을 받고 있다. 이 부름에 대한 응답은 결국에는 관계의 회복인데 이것이 코이노니아를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이 관계회복의 구체적인 모습은 우리의 신앙고백에서 나타난다. 신앙고백에서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은 바로 교제 '코이노니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나타난 코이노니아는 거룩한 공회와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이다. 바로 이 속에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여 코이노니아를 갖게 할 수 있는가 하는 해답이 주어지는데 그것은 신앙공동체(거룩한 공회) 안에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교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부름을 받고 있으나 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간 존재의 의미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는 응답을 통하여 가능해지는 것이다.
(2) 교제의 목적
교회는 절대적 미래에 도래할 종말론적 공동체이고,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학습을 위한 콘텍스트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관계적 학습을 통하여 공동체에 참여하게 하고, 학습활동을 통하여 교제하게 하며, 그 교제를 인하여 의미를 획득하고, 탐구하고, 표현되어져야 한다.
(3) 코이노니아의 교육내용
마리아 해리스는 코이노니아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코이노니아가 상호주관적인 공동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언급하였다. 그리고 해석학적 교회교육에서 코이노니아를 중요하게 여긴 것은 코이노니아가 교회교육에서의 장이자 내용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코이노니아를 통하여 이미지 형성을 하게하고, 이미지 형성을 위한 코이노니아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첫째는 반별을 통하여 청소년들에게 코이노니아를 위한 교육과정적인 과업을 하여야 한다. 해리스가 말하는 교구(반별)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작은 교회는 영적인 교제, 기도, 성경공부, 인격적인 나눔, 신자들의 제사장직 수행, 평신도 지도력이 살아있는 소공동체를 말한다. 이러한 일들이 교구(반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교육의 커리큘럼을 짜야 한다. 둘째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가정에서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도록 교육과정적인 작업을 하여야 한다.
가정은 ① 현존성- 현존은 친밀감을 느끼는 어떤 것으로서 인격적인 주체성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② 책임성-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도덕적인 능력을 양육하는 기회의 장이 가정이다. ③ 수용성- 가족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가정이 중요하다.
이러한 교회교육으로 청소년교육을 하여 청소년들도 반별 안에서 교제/참여하게 하고, 가정에서 어른으로서 책임성 있게 하며, 세대간에 차이를 좁힐 수 있도록 한다.
(3) 교제의 교육방법
코이노니아의 방법으로는 교회 안에서 할 수 있는 교육으로는 청소년수련회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고, 이웃과의 교제를 하도록 훈련을 하고, 수련회를 통하여 리더십 훈련도 하게 한다. 또 재활원, 독고노인, 청소년들을 방문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한다.
가정에서는 가족들과 온천을 다녀오게 하고, 비디오를 시청하고 평가하게 하며, 행복한 가정만들기를 하게 하여, 가족들과 친밀성을 높이고, 세대간의 의사전달을 하게 하여 간세대의 차를 좁히도록 한다.
4) 봉사(Diakonia)
디아코니아(봉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정신에 따라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디아코니아는 예수님의 삶 전체를 통하여 계속해서 모델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디아코니아는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이분법을 극복해야 하고 기독교적인 삶으로 이웃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1) 봉사의 목적
교회는 케리그마를 선포하는 역할과 함께 사회에 참여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욕구를 채워주는 일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웃에게,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기피할 수 있겠으나 교육을 통하여 사회에 참여한다는 의식을 갖게 하고 봉사를 함으로 자신이 필요로 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2) 봉사의 교육내용
교회교육자는 학습자에게 디아코니아를 통하여 섬기는 종의 이미지를 형성해 나가도록 하고, 교육의 영역들로는 사회적 관심, 사회적 의례, 사회적 권한위임, 사회적 법률개정 등의 사회와 관련되는 교육과정을 만든다. ① 사회적 관심-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사회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하다. ② 사회적 의식- 사회 약자들을 위한 커리큘럼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③ 사회적인 권한위임- 봉사는 타인들을 돕는다는 것만으로 제한하지 말고 타인으로 하여금 자립하는 것을 돕도록 해야 한다. ④ 사회적인 법률 개정- 정치적인 행동을 통하여 입법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3) 봉사의 교육방법
청소년으로 하여금 고아원을 방문하게 하여 고아원에서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하여 사회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한다. 이웃의 독거노인이나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직접 나누어주게 한다. 남을 섬김으로 보람을 갖게 한다. 청소년들의 봉사활동으로 장애인 돕기, 청소년 지도, 교통정리, 환경정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게 한다.
5) 선교(Missio)
(1) 선교의 의미와 목적
현대 선교학의 대가인 J. Verkuyl이 언급한 것은 구약에서 네 가지 모티프로 설명되어지며 먼저 '우주적 모티프'로 선교는 창조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모세의 하나님만 아니라 온 세계의 하나님을 의미하며 둘째는 '해방 모티프'로 이스라엘의 구속자 야훼는 모든 민족을 예루살렘에 모으시는 구원자 그리고 구원을 증언하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강조하며 셋째로 '선교적 모티프'는 예언자들을 선택하고 부르신 목적과 관계된다. 넷째로 '적대적 모티프'는 악한 세력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전쟁에 이기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증언이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구약의 사상을 이어 받으면서도 새로운 차원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 사건에서 나타난다. 선교는 선포와 기적 가운데 나타났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케되는 우주적 교제 속에 구현된다. 그리고 궁극적인 주체인 하나님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정점을 이루며 그 근거는 마 28:18-19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이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며 선교의 근원적 목적이 된다. 부르신 제자공동체는 본질상 종말적이며 증언적이며 선교적인 것이다.
교회는 부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동시에 보냄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선교는 교회 확장이나 해외 선교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존재 양식이며 이는 하나님 백성 하나하나가 삶과 역사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사람으로 선교사됨을 의미한다.
즉 선교(Missio)는 라틴어 동사인 Mittere(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리고 명사형인 Missio는 '내 보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것이다.
선교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기 것으로 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과 확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교는 전인적인 구원(영혼과 육체)과 통전적인 구원(개인과 사회 및 문화)이 되어야 한다.
(2)선교의 교육내용
은준관은 교권적 종말론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언급하고 있고, 오늘날의 미시오가 하나님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역사종말론적 공동체의 존재양식으로 다시 회복해야 할 것임을 말하였다. 그리고 역사 종말론적 공동체에서의 미시오는 교회 확장적인 선교이해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증언 그리고 섬김의 선교로 전향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메리 무어는 선교의 교육과정을 언급하면서 대화의 해석학과 관련하여 타종교와의 대화를 언급하였다. 그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말한 것을 보면, 첫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종교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하기 위하여 타종교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며, 둘째는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미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서이다. 셋째로는 공동선을 위해서 다양한 종교 공동체들과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서이고, 넷째는 국경을 초월하여 타종교인들에 대하여서도 공정한 돌봄이라는 윤리적인 실천을 격려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네 가지 이유가 선교교육과정의 영역이 되기도 한다.
(3) 선교의 방법
청소년의 교육을 선교적 차원에서 교육하고 여기에 선교적 방법으로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재활용품들을 모으기 운동을 일으켜 이것을 팔아 수익금으로 소년소녀가장 돕기 이웃돕기 등으로 선교하게 한다. .
4.해석학적 교회 교육의 방법
주제 : 교회와 사회
1) 정의: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태어나 그 사회의 규범과 문화를 배우고 익힐 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기독교인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본 회퍼는 그리스도인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인은 사회 안에 있지만 사회에 속해 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고 사회를 갱신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활동하실 뿐 아니라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교회는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책임이 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사회를 개선하고 사회에 새 질서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는 그리스도가 버린 곳이 아니고, 또한 사단이 지배하는 장소도 아니다. 세계와 사회는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지배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는 교회뿐 아니라 세속세계와 사회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사회는 과학혁명과 기술혁명으로 도시화되고 산업화됨에 따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 모인 회중에게 선포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들어가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구원과 사회적 책임수행이 적절하게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성서적 입장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사회에 갖는 관심은 독특하다. 우리 청소년들은 단지 공부하기 바쁘고 거기에 몰입되어 있어서 사회현상에 대해 무관심할 것이라는 견해는 옳지 못한 것이다. 청소년들은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어떤 세대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유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 그들의 장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청소년기라는 시기가 갖는 독특성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청소년기는 자신의 실제 행동보다는 이상적인 생각에 더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심리적 과제를 논할 때 자기정체감을 우선으로 여기는 학자들이 많다. 그만큼 자기됨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기됨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집과 좋은 가족, 그리고 개인적 부를 축적하고 사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이 과연 기독교적인 삶의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삶이 지속될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없이 어떻게 미래의 생활양식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자기중심에서 타자중심으로 살아갈 때 건전한 삶을 실현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공부만하면 된다는 의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건전한 사회의식을 가진 존재로 교육되어야 한다.
고등부 학생들에게 사회참여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참여할 뿐 아니라 사회를 갱신하는 복음의 역군이 되게 해야 한다.
2) 교육목적: 기독교인 한 개인의 구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실현하신 화해의 사명을 깨닫고 타자를 위한 존재로 변화되는 데 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고 그 기쁨을 자기만의 예배와 교육으로만 향하게 하는 것은 결코 참다운 기독교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그 기쁨을 사회로 확산시키고 그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고 나눌 때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라는 모든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과 사회, 세계, 그리고 역사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교육의 책임이다. 허셀은 "기독교인이 만약 하나님께서 인류 전체의 삶을 위한 계획과 목적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면 교육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3) 교육내용: 교회의 사회적 관심을 위한 교육은 어느 한편을 선택적으로 추구해서는 안 되고 인간의 통전성을 회복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인식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교육적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 사회와 역사에 대한 철저한 의식, 그리고 개인적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 공존하는 존재로서 자아인식을 추구한다. 물론 이것만을 교육내용으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 즉 예배, 교육, 선교, 봉사, 친교로 교회교육의 내용으로 실시한다.
(1)예배와 교육: 사회참여의 성격은 산상수훈에 구체화되어 있다.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집 없는 자에게 안식처를 주는 것, 그리고 벗은 자에게는 입을 것을, 아프고 병들고 죽어 가는 자에게 도움을 주며, 애통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자비롭게 되는 것 등이 사회참여이다. 때문에 사회참여의 출발은 연민의 힘이어야 한다. 이것은 신약에서 강조된 독특한 개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병자를 고치며 주린 자를 먹이는 등의 모습 속에서 그 힘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연민이야말로 기독교 가치관을 세상에 구체화하는 원동력이다.
(2)봉사와 교제와 선교: 사회봉사란 자선활동에 가까운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오로지 봉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여 일방적 도움을 주는 시혜적 차원의 사회봉사는 큰 의미가 없다. 교회의 사회봉사와 교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힘을 얻고 함께 교제하는 가운데서 자유 하는 봉사와 교제야말로 참된 보람을 갖게 된다. 사회봉사는 해리스가 말한대로 사회봉사자나 도움이 필요한 자나 서로 발전, 성장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봉사를 할 때에는 단순한 자선행위로 일시적 도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힘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교회의 사회봉사와 교제는 시혜적 차원을 넘어서 통전성을 지닌 개인으로 발돋움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의 봉사가 일반사회의 봉사 또는 사회사업과 다른 점이 무엇이며, 굳이 같은 일을 교회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양자의 분명한 구별점이 있다. 교회의 봉사와 교제는 사회사업이 아니라 구원의 행위 즉 선교이다.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낙오된 사람, 절망적인 사람들을 돋고 치료하는 봉사와 교제로, 전문직업이기 때문이라거나 혹은 동정심이나 자선을 베푼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인간을 구원한다는 정신으로 운영하는 선교적 차원인 것이다.
기독교인은 단지 그가 믿는 믿음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 믿는 대로 행동하며 살아간다. 기독교인은 그의 모든 삶을 통해 기독인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부패와 물질주의, 이기심에 대항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하며 부패한 사회를 갱신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성경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눅 12:42)라고 묻고 있다. 이 일은 기독교 청소년 가정, 학교, 생활 등 모든 일상생활에서 요청되고 있다.
교회에 속한 청소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 교회에 모여들어야 할 뿐 아니라 보다 큰 봉사와 교제의 삶과 사도적 임무를 다하는 사회참여로 선교적인 삶을 살기 위해 가정, 학교,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거기에 예수를 따를 수 있는 더욱 분명한 길이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확대하는 것이다.
3) 교육방법: 고등부학생들이 사회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직접전달과 간접전달이 병행되어야 한다. 직접전달의 대표적인 유형이 설교와 공과공부라면 간접전달은 매체를 통한 학습과 유적지를 답사하는 것 등 교사에 의해 선택된 것이지만 학생 스스로 느끼도록 직접체험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사회의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단지 직접전달만으로는 부족하다. 강의나 설교, 그리고 성경공부를 통해서 정확한 개념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현장을 찾아가 직접 체험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어떤 정보나 지식의 축적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는 말은 이 경우에 매우 적합한 말이다. 우리 주변에 말로만 들어서는 실감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현장에 가 볼 때 더 실감난다.
Ⅲ.결론
교회의 고등부(청소년)는 예배드리는 모임만이 아니다. 교회의 고등부를 가리켜서 교제하는 집합체라고 하는 것도 바른 정의는 되지 못한다. 교회의 고등부는 세상에서의 기능이 친교와 복음의 전파 그리고 봉사라고 할 때, 참으로 바람직한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은 해석학적 관점에서 교회 교육은 첫째 주제 중심, 둘째 교회력을 통한 것, 셋째 개인의 삶, 넷째 국가 기념일의 경우를 교회교육을 구체적으로 세워서 '예배, 교육, 교제 봉사 그리고 선교'로 균형이 잡혀야 할 것이다.
교회의 청소년들은 하나님 앞에서 흠 없는 사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으로 양육되어야 한다. 그들이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지는 일은 곧 그들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자기정체성으로 온전케 됨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학적 교회교육은 하나님의 형상의 형성과정, 하나님의 백성, 만인 제사장 등과도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청소년들이 그리스도의 삶을 살도록 양육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청소년들을 교회 밖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교회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휴지 조각이나 쓰고 남은 물건이나 사용했던 도구들이 사용한 곳에 그대로 널려져 있어도 그것들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인냥 지나치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 형상의, 하나님의 백성이요, 만민의 제사장이다. 이에 대한 해석학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더 구체적으로 연구 노력하여 하나님의 영원한나라를 이루어 나가야만 한다.
참고자료
이원일, 해석학적 상상력과 기독교 교육과정,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은준관, 실천적교회론, 대한기독교서회, 1999.
본 과목의 강의와 발제물